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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민정 Jun 09. 2024

고백하건대, 나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땀 한 땀 꼽은, 나의 소중한 결혼식 플레이리스트 (1)




고백하건대, 나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식이란 삶에서 엄청난 결정의 순간이다. 1인분의 삶을 꾸려가던 누군가가 다른 1인분의 삶과 함께할 결심을 하다니. 인생길에 있어서 엄청난 갈림길에 들어서는 결정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캘린더에 이번 주말 누군가의 결혼식이 잡혀있으면 한숨이 난다. 이번 주말 쉬기는 글렀구나. 주말엔 집에 콕 박혀있길 좋아하는 집순이인 나는 축하하는 진심과는 별개로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결혼을 내가 하게 되었다. 좋은 짝꿍을 만난 건 참 좋은데, 결혼식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 정말 부담스러웠다. 누구를 어디까지 초대해야 하나, 이 사람을 초대하면 기뻐할까 귀찮아할까, 초대하지 않으면 섭섭해할까 편안해할까. 생각이 많은 나는 결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머리가 뽀개질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하기로 했으니, 나답게 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나답게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획일화된, 공장화된 결혼 시스템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비용이었다. '수제'가 붙으면 가격이 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 그림책 작가 생활을 하느라 그림그릴 종이 사는데도 손을 달달달 떨며 결제하는 나는 도대체 어떤 선택해야 한다는 말인가? 


가만히 누워 생각해 봤다. 그래. 돈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돈 꿔서 결혼식 할 일도 아니지 않나. 그럼 최대한 돈이 들지 않는 선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 그러다 예식장에서 BGM을 확정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예식 순서별로 예식장에서 추천하는 노래들이 이미 있었다. 하나씩 찾아서 들어봤는데 웃음이 나왔다. 와, 나 이 노래 결혼식장에서 맨날 들었어. 이때 번뜩, 하고 틈을 봤다. 평소랑 노래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결혼식이 될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나에게 의미 있는 노래들로 결혼식을 해보자!



개봉박두, 나의 결혼식 플레이리스트 


1. 잔나비 - She (화촉점화)

https://youtu.be/UbSlWaerUIE?si=ogfjSQ8hX9i4htZb

잔나비 - She

'She is everything to me

지친 나를 감싸 안아줄 그대

나를 반겨줄 천사 같은 이름

Ooh-ooh-ooh-ooh-ooh-ooh-ooh-ooh, she'


화촉점화는 양가 어머니들이 신랑 신부가 걸어갈 길을 먼저 걸어 나와 촛불로 그 길을 밝혀주는 의미를 가진 순서다. 잔나비의 She 가사는 늘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2. Sarah Vaughan -  A Lover's Concerto (신랑신부입장)

https://youtu.be/KahAPQ9sl6g?si=zJeoOy51_BbIIz0N


'초원 위에 부드럽게 내리는 비는 얼마나 부드러운가
How gentle is the rain that falls softly on the meadow

나무 위 높이 새들이 꽃에게 노래를 불러 오오오

Birds high above in the trees serenade the flowers with their melodies oh oh oh

저기 언덕 너머 밝은 무지개 색깔을 보세요

See there beyond the hill the bright colors of the rainbow

하늘의 어떤 마법이 오늘 우리가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었어요

Some magic from above made this day for us just to fall in love'


우리는 아빠가 신랑에게 신부의 손을 넘겨주는 것 말고,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함께 걸어 나오기로 했다. 함께 첫걸음을 걷는다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 가사와 멜로디의 달달함은 이 노래를 따라갈 자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3. 버스커버스커 -  봄바람 (맞절) 

https://youtu.be/h6EGDoW6p1k?si=O0XrmaTBeAUHXKb4


요건 조금 쉬어가는 의미로, 가사가 없는 노래를 골랐다. 

버스커버스커의 봄바람은 결혼식에 많이 사용되는 노래라고 한다. 




4. The Sound of music soundtrack9 -  Edelweiss (혼인서약)

https://youtu.be/8bL2BCiFkTk?si=_CeRF85CMaUH0-sy


The sound of music이라는 오래된 영화를 참 좋아한다. 아이가 9명 딸린, 아내와 사별하고 무뚝뚝하게 지내는 한 남자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 수녀의 이야기. 밝고 맑고 즐거운 한 사람이 어떻게 한 가족을 물들이는가-에 대한 이야기. '집에서 노래는 금지'라던 남자가 깊고 고요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백씬 중 하나다. 


각자의 삶을 살던 우리가 한 점에서 만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고 고백하는 자리에 꼭 이 노래와 함께하고 싶었다. 서약서 내용도 언젠가 글로 남겨둘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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