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NA, 잔나비, 전유동, Phabo 외
동봄 :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최예나의 이번 싱글은 상당히 가닥이 잘 잡힌 앨범이라고 볼 만하다. 다크 팝스러운 무드의 첫 트랙 ‘BAD HOBBY’와 거기에 락 사운드를 더한 마지막 트랙 ‘WICKED LOVE’ 그리고 본인의 아이덴티티라 할 만한 팝 펑크의 타이틀 ‘Hate Rodrigo’까지. 앨범 전체의 통일성은 빗나갔더라도 대중에게 최예나가 어떻게 보이고 싶어 하는지 잘 표현해 낸 축에 속한다.
다만 문제는 그 타이틀에서부터 시작했다. 팝스타에 대한 동경으로 질투를 느낀다는 발상 자체는 충분히 있을 법하고 어쩌면 꽤 쓸만한 기획이라 볼 수 있겠지만, 단순히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샤라웃을 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데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아쉬운 측면이다. 또한 MV에서 그와 관련된 IP까지 협의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기획사의 위기관리 능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하고 싶은 기획 하나에 꽂혀서 놓쳐서는 안 되는 기본을 놓쳐버리게 된 앨범이다. 기획사의 완전한 실책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미온 : 오랜만에 꺼낸 사진첩, 빛바랜 편지, 먼지 쌓인 음반, 전해주지 못한 시집. 잔나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들이다. 이처럼 그들은 특유의 아련함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들로 '레트로 감성'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 후 우후죽순 '레트로 감성'을 내세우는 뮤지션들이 많아졌고, 희소성이 떨어진 탓인지 나는 그들의 음악에도 권태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매된 'pony'는 나의 인상을 한 방에 바꿔주었는데, 그들의 위치를 다시 한번 드러낼 수 있는 보증 수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추억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큰 원동력이 되곤 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갔던 여행, 함께 들었던 음악들을 떠올리면 괜스레 힘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곡에도 최정훈과 그의 어머니의 추억이 아로새겨져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기억을 “그녀의 젊은 자동차”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는데, 꾸려진 모든 사운드들이 추억의 순간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인트로에 흘러나오는 아르페지오 선율은 그의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곧이어 쌓이는 일렉기타 사운드는 그의 어머니가 즐겨 들었을 80년대 한국 록밴드의 음악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에 더해 색소폰 소리는 지난날의 장면들을 더욱 아련하고 찬란하게 보여준다. 이렇듯 ‘pony’에 사용된 사운드들은 모두 ‘TPO’에 맞는 사운드가 사용되었다. 메시지와 사운드, 감성까지 일치시킬 수 있는 뮤지션은 얼마나 있을까. 그런 점에서도 잔나비는 여타 ‘레트로 감성’ 뮤지션과는 확실히 다른 게 증명됐다.
잔나비의 음악은 ‘추억을 연료로 삼아 미래로 향하는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이 들려주는 아름답고도 아련한 이야기들은 과거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찬 응원가로 남았다. 그렇기에 잔나비의 음악과 함께하는 날들은 분명 미래를 살아가기에 좋은 연료가 되어줄 것이다.
준9 : 자연을 관찰하는 데에 몰두해 있던 첫 정규 [관찰자로서의 숲], EP [이소]와 비교했을 때, 전유동의 새 앨범은 사뭇 달라 보인다. 앨범명부터 그렇다. 참새, 뻐꾸기, 올빼미 등을 노래하던 그에게 ‘사랑’이라는 관념, 감정에 관해 깊게 고민하게 될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두 번째 정규에서 몰두하고자 했던 것은 자기 자신의 내면,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있는 (혹은 있었던) 사람들이다. ‘토마토’에서의 “작별 인사”, “외로움” 같은 키워드나, ‘아름 아름, 이름들 얼굴들’에서의 “잊고 지낸 이름들”, “잊혀지는 얼굴들”,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에서의 “네가 머문 자리” 같은 노랫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며 새삼 느꼈다. 산속에 사는 사람 같았던 전유동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고 외로워하고 사랑을 느끼는 존재라는 걸.
이러한 내용들을 담아내는 사운드 역시 언급을 빼놓을 수 없다. 소속 레이블 오소리웍스의 대표 단편선이 주도한 음악은 매끄럽고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앨범을 여는 첫 트랙 ‘강변’이 인상적이다. 전형적인 포크록 사운드이지만 구성적인 치밀함과 공간감을 만드는 방식 등이 앨범을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어지는 트랙이자 타이틀 중 하나인 ‘토마토’의 록 사운드 역시 앨범의 힘을 더해준다. 이와 대비되는 연주곡 ‘Arrive’와 ‘아름 아름, 이름들 얼굴들’의 현악이 주도하는 동화적인 사운드도 앞선 트랙들과 성격은 다르지만 이질감 없이 들릴 뿐만 아니라 앨범의 인상적인 구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준9 : 현재의 음악 트렌드인 아프로 비츠와 라틴 팝은 알앤비 음악으로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것이 나쁜 현상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전의 알앤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흥행이 보장되어 있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예전 스타일의 알앤비를 이어가는 뮤지션들에게 애정이 간다. 그런 의미에서 Phabo는 눈길이 가는 뮤지션이다.
레이블 Soulection에서 90년대 알앤비 스타일을 구현한 [Soulquarius]로 데뷔한 그가 두 번째 앨범을 냈다. 18 트랙의 앨범은 얼터너티브 알앤비 스타일의 ‘Line’이나 힙합, 트랩 트랙 ‘Swing My Way’, 아프로 비츠의 요소가 가미된 ‘Geneva’ 등으로 문을 연다. 이는 요즘 리스너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앨범의 정체성은 그 네오소울에 기반한 알앤비에 가깝다. ‘Casamiogs’, ‘Luv Songs (Unruly)’ 같은 음악 위에 얹어지는 Phabo의 멜로디와 보컬, 가사는 그가 들어왔을 뮤지션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멜로디나 가사적으로 포인트를 줄줄 아는 감각은 그가 좋은 송라이터라는 점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게스트와의 합도 인상적이다. Shaé Universe, Ambré와 같은 여성 싱어와의 합을 보여준 ‘Out of Touch’나 ‘NYL’에서 그의 퍼포먼스는 조화롭게 게스트의 보컬과 버무려진다.
한동안 이 앨범을 자주 듣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양한 스타일이 있음에도 그것들을 봉합하는 Phabo의 음악적 재능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미온 : 힙합, 소울, 일렉트로닉 장르를 필두로 자신만의 사운드를 구축해 온 호주의 프로듀서 'Ta-ku'의 싱글 'SMILE'이다. 소울풀한 사운드와 하모니가 돋보이는 곡으로, 최근 그가 콜라보하거나 리믹스 한 음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트랙이다. 그는 다양한 장르 안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블렌딩 시킬 수 있는 프로듀서로 알려져 있는데, 필자는 그중에서도 R&B/Soul 장르 안에서 그의 솜씨가 더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이번 싱글이 그 예다.
그가 한국에서 이름을 알린 곡은 'American Girl'이다.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곡은 아닌데, 이번 싱글이야말로 그의 대표 격인 트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곡에 등장하는 끈적한 드럼 비트나 하모니를 듣다 보면 'Silk Sonic'과 'Phony PPL'의 음악도 잠깐 스쳐 지나간다. 두 아티스트들의 고급진 사운드에 녹아져 있던 킥 포인트들을 추출해 자신의 색과 블렌딩 시킨 것처럼 보이는데, 마냥 익숙하지만은 않은 새로운 향미도 느껴진다. 이처럼 섬세하고 담백하게 내린 그의 음악은, 카페에서 풍겨져 나오는 원두향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동봄 : 개인적으로 WurtS의 강점은 전자 음악이나 전자 음악을 기반으로 락을 섞어낸 곡에서 더 드러난다고 생각하기에 최근 발매된 싱글들에게 끌리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싱글 ‘BORDER’ 역시 마찬가지로 WurtS가 [MOONRAKER]에서 보여주던 그 재기 발랄한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다. 그나마 가까웠던 싱글이 ‘Time Lag!’ 정도이겠지만 그 역시 기존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다만 최근 발매되었던 세 싱글들이 모두 다른 면이 있기에 WurtS가 본인의 장르적 스펙트럼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BORDER’와 같은 락 일변도만으로 기존 리스너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나마 신비롭게 들리는 듯한 뮤트된 사운드나 전조되는 파트 같이 신선한 부분은 있었으나, 결국 새로움은 짧고 지루함은 길었던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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