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Naughty, H1-KEY, Jclef, Navi99 외
율 : 사랑에 호되게 당했는지 빅 나티의 역량도 크게 성장했음이 돋보였던 앨범, [호프리스 로맨틱]은 네가 좋아하는 무엇이든 되어주겠다며 낭만을 그리던 소년이 담아낸 사랑의 잔해 같은 앨범이다. 특유의 허스키한 보이스로 읊조리는 사랑의 허망함은 그 어느 때보다 절절했고 시렸다. 타이틀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의 경우 차분한 피아노 멜로디로 시작해 차츰 더해지는 빅 나티와 이수현의 보컬, 마지막 코러스의 휘몰아치는 감정과 스트링 사운드는 사랑의 씁쓸함 한가운데에 데려다주었으나, 울컥 차오르는 감정 속에도 낭만이 있었다. 이어지는 트랙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듯 감아 오르는 신스와 장면의 전환을 보여주는 무거운 기타 리프에 던지는 이별에 대한 항변의 말 ‘덫’, 몽환적인 신스에 네가 가자는 곳은 어디든 갔던 나라, 너 없이는 떠도는 존재가 되었다는 상실감의 ‘몽유’, 미니멀한 밴드 사운드에 울부짖으며 너를 정리하는 ‘마지막 시’, 오토튠 위에 남기는 사랑의 마지막 잔해들 ‘빠삐용.’까지 완벽한 서사로 그의 성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전 앨범에 비해 극히 최소화된 앨범 참여진 또한 성장의 근거가 아닐까. 사랑에 때론 설레고, 한편으론 찌질했던 소년의 코드네임 낭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오마주로 시작한 소년이 온전히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 모두 그의 낭만이다.
만돌 : 힙합 베이스 리듬에 감성적인 가사가 조합된 타이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올해 상반기 많은 리스너의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저 우연일까? 단순히 타 아티스트가 홍보했고, 챌린지의 열풍을 받았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이키 멤버는 도합 22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쳤으며, 처음부터 한 곳에서 연습한 것 또한 아니다. 이전 회사에서 ‘데뷔 무산’ 같이 빛을 보지 못한 경력직 멤버들이 모여 새로운 도전을 했으며, 작년에 데뷔해 뮤직비디오 1,000만 뷰를 기록했다. 그 속에는 데뷔곡 'ATHLETIC GIRL'의 가사 "헛된 노력이 아니야 Never let me down" 같은 의지가 돋보인다. 그런 의지는 이번 타이틀에서 ‘고개 들고 버틸 게 끝까지’라는 가사를 통해 험한 가요계 속 살아남으려는 절실함으로 커져 그들의 과거를 대변했으며, 진정성 있게 노래를 소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휘서의 파트 "그때그때 잘 견뎌냈다고"는 실제 9년의 연습생을 견딘 휘서 본인의 스토리를 진정성 있게 잘 표현했으며, 이러한 진정성이 리스너에게 큰 감동을 주어 사랑을 받은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역주행해 많은 인지도를 얻은 부분만 보는 것이 아닌, 이 노래를 부르는 하이키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서 노래를 감상하길 바란다.
베실베실 : 기타 치는 친구에게 ‘jonny’s sofa’를 처음 들려줬을 때의 반응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사의 말마따나 "프렛 넘기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일견 차분한 공중도둑처럼 들리기도 하는) 기타 톤과 리버브가 하나도 걸려있지 않는 듯한 드라이한 보컬 같은 요소는 그에게 ‘데모 같다’는 인상을 주었나 보다. 확실히 본 앨범의 사운드는 특이한 부분이 많다. 앞서 언급한 기타 톤과 보컬을 포함해 ‘o, pruned’에서 의도적일 기타 버징 소리나 갑자기 몰아치다가 빠지는 신스 피아노 소리도 특이하고, 'jonny's guitar'의 대화는 일반적인 나레이션 기법과 달리 진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배치돼 있다. 이토록 앨범의 전반적인 요소들은 철저하게 정제됐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플레이어와 청자와의 ‘제4의 벽’을 허물려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5년 전의 Jclef는 누구보다 염세적인 사람이었다. [Flaw, Flaw]는 철저하게 사람의 흠에 대해 천착하는 앨범이었으며 앨범의 마지막에서는 결국 “지구를 멸망”시키기에 이른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우리 옆에 앉아 친구와 기타를 튕기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이 앨범은 '무언가'의 가사처럼 "온기가 필요한 어느 날 꺼내 품에 안곤 하는" 앨범이자 나원영 평론가의 말처럼 "오! 하면서 감탄하는" 앨범일 것이다.
데이먼 : 올해 국내 힙합씬에서는 유독 크루 단위의 활동이 눈에 띄고 있다. 나비99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소위 말하는 ‘하입(hype)’ 을 받으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크루들 중 하나로, “We are not ordinary”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여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차별점인 ‘크루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쿨함’을 더해 음악에 녹여내고 있다. 그들의 첫 EP [Cruel Winter]은 이러한 강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앨범이다. 일반적으로 컴필레이션 앨범의 경우, 특정 아티스트가 두드러져 흐름을 방해하거나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아티스트 고유의 특색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Nicco’s complex’부터 마지막 트랙인 ‘Bud’에 이르기까지, 나비99는 각 트랙마다 여러 장르적 요소를 더해 흥미를 잃지 않게 함과 동시에 크루가 가진 음악적 방향성만큼은 그 결을 유지하며 완성도 있는 앨범을 만들었다. 여기에 미디어 아트가 더해진 감각적인 영상은 이 크루가 왜 다른 집단과 차별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기도 하다. 이들의 음악은 이미 리스너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으며, 거기에 서리 크루와 호프갱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샷아웃을 받으며 점차 라이징 스타로 거듭나는 중이다. ‘Bud’의 가사 중 "잔혹한 겨울은 끝났다"라고 외치는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포부처럼, 나비99의 날갯짓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현재의 국내 힙합씬에 어쩌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frank : 황소윤은 음악을 잘한다.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살짝 바꿔보자. 황소윤에게 누구도 대체 불가능한 음악적 유니크함이 있는가? 몇몇 떠오르는 곡들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이 궁금했다. 명확한 캐릭터를 잡고자 기존 방향성을 후벼 팔지, 혹은 아예 완전히 새로운 땅을 딛고 삽을 퍼 올릴지. 하지만 실상은 그 어느 방향도 아니었다. 솔로 데뷔앨범이 소윤의 파워풀한 페르소나를 비주얼과 음악에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다 자빠진 느낌이라면, 이번 앨범은 욕심을 내려놓고 황소윤식 ‘이지 리스닝’이 무엇인지 확실히 들려줬다. 사운드적으로 지나친 다이나믹은 지양하지만, 황소윤의 보컬 자체가 조미료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참 ‘흐르듯이’ 듣기 좋은 앨범이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나는 그녀가 ‘유니크해지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느꼈다. 그녀의 넘치는 재능과 캐릭터성을 보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쓸 만한 무기는 분명 꽤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소윤은 그저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본질에 집중했고, 주변의 우려 어린 시선을 보기 좋게 불식시켰다. <황소윤이 좋은 앨범을 만들었다>. 그녀가 이번에 방점을 찍은 곳은 자신의 이름 석 자보다는 뒤쪽의 네 글자였다.
융 : ‘Teddy Bear’는 스테이씨의 기회와 강점을 응축해 놓은 고밀도 싱글이다. 쉽고 또렷한 음악과 그 근간에는 탄탄한 가창이 있다. 이전의 음악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곰인형 한 마리가 찢어버렸다. 스테이씨의 곡들에서 파트나 구성이 재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Teddy Bear’에서는 그 편견을 깨뜨린다. 메인보컬인 ‘윤’보다 ‘아이사’, ‘수민’ 등 다른 멤버들이 후렴을 맡고, 다른 메인보컬인 ‘시은’은 랩 파트를 맡아 지루하지 않은 구성을 취한다. ‘색안경’이나 ‘BEAUTIFUL MONSTER’ 등에서 아쉬운 반응이 많았던 이유는 노잼 멜로디로 인한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진행 때문이다. ‘Teddy Bear’는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진행하면서도, 그 안에서 캐치한 포인트들이 다수 존재해 듣는 재미를 최대한 끌어올린다. 특히 일본에 뺏긴 곡 ‘Poppy’는 후렴까지의 안정적인 빌드업과 툭 떨어뜨리며 자연스럽게 내뱉는 중독적인 훅, 이후의 시원한 보컬과 브릿지의 고음까지 K-POP 히트곡의 완벽한 전형을 따른다. 이 싱글의 대단한 점은 모두에게 익숙하면서 자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중들의 눈을 돌렸다는 점이다. 그런 음악에다 어디서든 열심히 라이브를 해내는 멤버들의 열정까지 더해졌으니, 대중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스테이씨의 포지셔닝은 바로 이 지점이다. 앞으로도 이 영역의 일인자로 남아주기를.
동봄 : 첫인상은 김동률과 멀게 느껴지지만, 결국 김동률의 곡임을 깨닫게 되는 싱글이다. 고전 히어로물을 연상시키는 제목에, 곡 초반의 보컬 효과, 잔잔함과는 거리가 먼 빠르기 등 기존 김동률의 이미지와 어느 정도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연스럽고 정교하게 쌓이는 악기들과 켜켜이 쌓이는 보컬들의 웅장함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자면 이 음악이 김동률의 음악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나아가 생소한 주제를 가사로 풀어낸 솜씨 역시 눈에 띈다. 좋아하는 히어로로 분장하고 영웅 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어른이 된 우리는 영화 속 히어로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동률은 곡에서 자신과 황금가면을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를 단순히 어른의 유치한 놀이가 아닌, 사회를 향한 어른의 당당한 포효로 그려내었다. 아이언맨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내가 아이언맨이 되면 될 일이다. 김동률이 ‘황금가면’을 통해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 속으로 날린 위로는 쓰러진 어른들의 쉼터이자 발판이 되었다. 실로 멋진 싱글이다.
G.O : 부석순의 첫 피지컬 싱글 앨범, 타이틀곡 ‘파이팅 해야지’는 멜론 TOP100 역사상 역대 유닛 최고 차트인 기록을 달성했다. 부진하고 있는 보이 그룹 사이에서 정규도 아니고 싱글, 완전체 그룹도 아닌 유닛의 앨범이 국내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많은 의의를 가진다. 부석순이 가진 차별점은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리스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느냐는 의문이 생겼다면, 그들이 내세워 강조한 ‘B급 감성의 힘’과 ‘음악의 본질적인 힘’이라 답을 써 내리고 싶다. 이들은 ‘SECOND WIND’를 통해 유쾌한 실력파의 입지를 다졌다. 듣는 이와 부르는 이 모두가 본능적으로 텐션을 치솟게 만드는 음악, 아침 점심 저녁에 나누어 듣도록 만든 수록곡 구성까지 친근하게 접근하여 대중성을 붙잡고 커리어 하이를 이룩했다. 어설픈 위로나 공감을 내세우는 대신, 업템포의 펑키한 리듬으로 활력을 전달했으며 아티스트의 소화력까지 더해지니 뒷심이 좋았다. 트렌디한 장르, 다이나믹한 송폼, 창의적이고 세련된 스토리텔링 등의 예쁘장한 미사여구를 덧붙이며 설명이 필요한 앨범은 아니므로 단순하게 풀이하고 싶다. 부석순의 파이팅은 ‘진짜 파이팅’이 되어 음악이 가진 즐거운 힘을 일깨웠고, 그렇게 2023년 상반기의 유의미한 음악으로 남았다. 결국 솔직하고 가벼웠기에 흥겹지 않았는가?
교야 : 특별한 의미 없이 구현하고자 하는 사운드를 충실히 구현한 초기 작들과 달리, 전역 후의 실리카겔은 ‘kyo181’에서는 대안적인 작법과 사운드를, ‘Desert Eagle’에서는 근본에 충실한 탄탄한 연주력 등을 보여줬다. 그리고 ‘NO PAIN’에서는 처음으로 메시지를 녹여내 대중성까지 사로잡으며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타고 오른 그들이 6년 만에 발표한 EP앨범은 이러한 흐름이 반영된 모습이다. 날카로운 금속들이 맞부딪히고 부서지는 강렬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클래식 피아노와 가상 악기들까지 실리카겔만의 메커니즘으로 구성된 앨범은 노래와 메시지의 비중이 커진 곡들 역시 훌륭하지만, ‘Machineboy空’에서 ‘NO PAIN (Fire-Toolz Remix)'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퀀스는 앨범을 관통하는 컨셉에 대한 자유로운 감상을 가능케 함과 동시에 그들만의 독보적인 정체성과 역량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여기에 실리카겔의 음악을 한층 더 공감각적으로 끌어올리는 멜트미러 감독의 뮤직비디오와 패션 브랜드 산산기어와의 협업은 그들만의 이미지에 완성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이러한 높은 퀄리티의 비주얼을 팬들이 손쉽게 소장할 수 있는 ‘프린팅 박스’ 이벤트로 그들이 음악 외적인 부분에도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기계적인 사운드를 드러냄에도 생동하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앨범과 실리카겔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팀의 팀플레이는 올해 상반기의 가장 강렬한 음악적 경험이라 자부한다.
준9 : 기존 멤버 대부분이 탈퇴하고 프론트맨 황인경만이 남았다. 원맨 밴드 형태로 7년 만에 발매한 세 번째 정규 앨범은 여전히 전기뱀장어만의 감성을 한가득 머금고 있다.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이자 첫 트랙인 ‘동심원’의 첫 가사부터 그렇다. “너의 얼굴 옆으로 상영되는 저 바다”라는 구절을 통해 청자는 금세 노래 속 장소와 상황에 가닿게 된다. 이어지는 ‘자연사 박물관’, ‘탠저린’, ‘파트타임 히어로즈’ 등도 마찬가지다. 황인경의 가사는 뚜렷한 테마와 키워드를 중심으로 문학적이고 재치 있는 표현, 그리고 탁월한 비유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이전까지의 전기뱀장어 음악도 그렇지만, 음악을 보다 생명력 있고 기억에 남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그의 멜로디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금방 각인되는 특별함이 있다. 자극적 요소 없이 담백한 앨범임에도 2023년 하반기 가장 강렬했던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최근 대중음악 시장에서 이러한 종류의 음악들이(적어도 이러한 음악을 향한 관심도가) 줄어드는 모양새다 보니 그럴 것이다. 그리고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전기뱀장어, 그리고 황인경은 더 주목받아야 하는 밴드이자 뮤지션임이 틀림없다. 9와 숫자들, 브로콜리너마저와 같은 걸출한 밴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배게비누 : ‘당장의 달콤한 안주’와 ‘성장을 위한 전진’ 중 하나를 택한다면 큰 고민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선택과 다르게 실천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쉽지 않다. 우리는 삶에서 이런 갈등을 종종 마주한다. 거창할 것도 없다. 당장 해야 할 게 있는데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을 봐라.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또래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한다. ‘Devil by the Window’의 몽환적인 아웃트로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야 마는 화자의 꿈속에 들어간 듯하다. 섹시하고 펑키한 무드의 타이틀곡은 그룹의 청량함을 잃지 않으면서 ‘악마의 유혹에 빠진 소년’이라는 테마를 극적으로 이어간다. ‘Happy Fools (feat. Coi Leray)’는 여유롭고 해맑은 화자의 마음을 보사노바 기타와 플루트 소리에 담아 유혹에 심취한 상태를 절정에 올린다. ‘Tinnitus (돌멩이가 되고 싶어)’에서는 ‘Want it’을 수없이 되뇌며 속으로만 간직하던 성취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드러낸다. 그 열망은 결국 현실을 외면하게 해 준 네버랜드를 스스로가 떠나게 한다. 이를 담은 마지막 곡이 앨범의 무드와 속도를 끝까지 살리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앨범은 메시지, 스토리, 음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시도하지만 이처럼 균형 잡힌 앨범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내겐 더욱 반가웠고 인상 깊었던 앨범이었다.
미온 : 싱어송라이터와 재즈 피아니스트의 만남은 서로의 여백을 채워주기에 적합했다. 진수영에게 없는 목소리는 홍이삭이 채워줬고, 홍이삭에게 없는 사운드는 진수영이 채워줬다. 두 사람의 시너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트랙은 'pages'와 'a bird'인데, 홍이삭의 쓸쓸한 보이스 컬러와 진수영의 따뜻한 연주가 잘 어우러져 있다. 미니멀하지만 깊이 있는 진수영의 연주는 곡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면서도 홍이삭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뚜렷하게 조명해 주는데, 이는 어두운 밤거리에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처럼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첫 트랙 'her'과 타이틀곡 'everland'에서도 두 사람의 합이 돋보인다. 'her'은 부드러운 신시사이저 비트와 아르페지에이터, 오르간 사운드를 통해 꿈꾸는 듯한 사운드를 담았는데, 이들이 합심하여 배치한 사운드는 각자의 음악에서 선보였던 것보다 훨씬 더 유려하다. 'everland'는 R&B 곡으로 두 사람 모두 시도해 보지 않은 장르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함께 시도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운드는 또 얼마나 세련됐는가. 이 모든 게 그들을 '필승 조합'으로 말하고 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콜라보 음악을 선보이지만, 음악적 발전이 두드러지는 음악은 흔치 않다. 그러나 홍이삭과 진수영이 만든 음악은 달랐다. 아마 이 음반은 콜라보 음반의 모범답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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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주간 신보 리뷰>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