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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ul 25. 2023

태연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태연 정규 2집 [Purpose – The 2nd Album]

솔로 데뷔곡 'I (2015)'와 첫 정규 [My Voice] (2017)에서 태연이라는 아티스트가 절대 '만약에'와 '들리나요'에 국한하지 않을 거라는 건 대부분이 느꼈을 것이다. 'Why (2016)'에선 트로피컬 하우스와 함께 댄서블한 면모도 잃지 않았으며, 'Something New (2018)'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네오 소울의 시도로 리스너들을 놀라게 했다.


정규 2집 앨범의 발매는 태연에게 꽤나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사계’의 성공적인 커리어 직후의 앨범이었으며, 아티스트 본인이 음악과 가창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고 인터뷰나 SNS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음악에 대한 재능을 의심하기도 하고, 이제는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참고 : 문명특급 태연편>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아티스트의 영역 확장이나 포지셔닝, 음반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이 많았을 것이고 그 고민이 음반에 드러나 있다.




앨범의 흐름이 전작들보다 훨씬 가라앉고 딥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시작부터 달라졌다. 이별의 감정을 다룬 타이틀 'Fine'이 주도했던 1집과 달리, 이번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했다. 혹은, 집중하려고 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케이팝씬의 슈퍼스타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를 갖는 'Here I Am'을 시작으로 앨범의 주제 의식을 밝히며 하이라이트를 불 피우는 ‘불티’, 다시 한번 태연 본인의 목적을 다짐하는 'Find Me'까지 냉소적일 정도로 자신에게만 집중한 모습이다. 이렇게 동일한 주제로 여러 곡을 연달아 수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감상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은 물론, 몰입감이 굉장히 강하다. (이는 리패키지 앨범의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 ‘월식’과도 이어진다.)


앨범의 초반부가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데 할애했다면, 중후반부에서는 다양성을 지향한다. 여러 장르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능력, 폭넓음 음역의 사용, 음악에 맞게 변화무쌍하게 분하는 연기력 등 베테랑 보컬의 여유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아이돌과 보컬리스트라는 두 영역을 완전히 분리하지도, 그 중간을 택하지도 않고 기호에 맞게 활용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베스트 트랙으로 꼽고 싶은 'Love You Like Crazy'는 보컬의 표현력이 파워풀하다 못해 강한 질감의 피아노 사운드를 압도하기에 이르고, 바로 이어지는 ‘하하하’ 역시 거친 브라스 사운드와 냉소적인 보컬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다. 재즈 기반의 'Do You Love Me?'와 깊고 오래된 사랑을 이야기하는 ‘Wine’은 진가성 전환을 부드럽게 사용하는 스킬을 느낄 수 있으며, 헬난이도 'Better Babe'은 F#5를 오가는 고음 이후 브릿지의 애절한 가성 표현이 백미이다. 달달한 러브송에 레트로 감성을 더 한 'City Love'와, 주위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하는 'Gravity'까지 태연의 섬세한 곡 해석력이 돋보인다. 요동치는 감정의 반복은 ‘Blue’를 통해 한 번 숨을 고르고, ‘사계’의 ‘내가 너를 사랑했을까?’로 어딘가 시원하지 못한, 씁쓸한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어느 곡 하나 보컬의 존재감이 옅지 않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점이다.


<'s...TAEYEON CONCERT 中 'Love You Like Crazy'>

흥미로운 건 몇몇의 트랙이 어딘가 전작들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Love You Like Crazy'는 'I Got Love (2017)'의 다크하고 강렬한 퍼포먼스의 확장판이며, ‘Better Babe’은 앨범의 중반부에서 격한 감정 표현을 쏟아냈던 ‘Time Lapse (2017)’의 역할과 유사하다. 'City Love'는 사랑에 들뜬 마음을 표현하지만 묘하게 도시의 쓸쓸함과 차가움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저녁의 이유 (2018)'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특히 'Find Me'와 ‘Gravity’는 각각 ‘날개 (2017)’와 ‘U R (2015)’을 닮아 있는데, 곡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장르도 유사해 더욱 와닿는다. ‘Find Me’와 ‘날개 (2017)’는 자신을 위한 다짐과 굳은 의지를 묵직한 드럼을 기반으로 표현하고, ‘Gravity’와 ‘U R (2015)’은 사람을 향한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발라드 곡이다.


다만 타이틀곡 ‘불티’는 싱글 단위로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Rolling in the Deep’ (아델)’의 기시감이 선명하고 다른 준수한 곡들이 즐비한데도 음반의 타이틀로 내세웠다. SM이 끝내 대중성을 포용한 지점인걸까. (놓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태연을 ‘소녀시대’와는 적절하게 분리했지만, ‘아이돌’이라는 영역에서는 갈팡질팡한 듯하다.




태연의 작사, 작곡 참여가 없다는 점도 주목하고 싶다. 오로지 가창에만 참여했을 뿐인 데도 아티스트의 색이 선명하고 자전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태연의 보컬 역량의 방증이다. 작곡가와 작사가가 만든 뼈대를 자신만의 음악으로 해석해 가창하는 일이 대중가수의 가장 큰 역할이다. 태연도 이 작업이 가수 생활의 즐거운 점이라고 언급했듯이, 누구보다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작곡진과 프로듀서, 혹은 회사의 개입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점. 항상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 앨범에서만큼은, 태연과 SM엔터테인먼트는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완벽히 이해하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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