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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ul 25. 2023

K팝이 빚어낸 여성의 주체성,
그리고 그다음

I am으로 완성된 주체적 여성상과 정치적 올바름


“I’m super shy” (NewJeans – ‘Super Shy’)
“I’m a 퀸카” ((여자)아이들 – ‘퀸카 (Queencard)’)
“So that is who I am” (IVE – ‘I AM’)
“I’m too Spicy” (aespa – ‘Spicy’)
“I’m a Villain” (LE SSERAFIM – ‘UNFORGIVEN’)
 “I’m a mess” (LE SSERAFIM –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최근 국내 음악 차트를 휩쓰는 중인 걸그룹들의 약진 속에는 마치 우연의 일치처럼 한 가지 공통점이 숨어있다. 바로 가사에서 “I am”이라는 구를 사용하여 곡에서 화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동시에 타이틀곡이나 전체적인 앨범의 키워드를 정립해 내는 것이다. 쉽게 말해 “주체성”이라 부를만한 이 앨범 기획 양식은 이미 K팝 시장에서 적어도 몇 년간 지속해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걸그룹 시장에서 그 양상은 확연하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걸그룹들이 모두 한 방식으로 그 주체성을 풀어내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것이 최고점에 이르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걸그룹의 주체성이라는 키워드는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페미니즘이 사회문화적 화두로 떠오른 2010년대 후반부터 여성 소비자가 매출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돌 시장 역시 그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었다. 흔히 가사의 “해요체”나 “검은 머리색”, “테니스 치마” 등으로 대표되었던 청순 컨셉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과한 노출이나 섹시한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던 섹시 컨셉 역시 찾기 힘들어졌다. 나아가 대중적으로도 걸그룹보다는 발라드, 힙합, 보이그룹이 더 주목받기 시작하는 와중에 한 걸그룹이 데뷔하기에 이른다.



2019년, “걸그룹 명가”라고도 불리는 JYP에서 선보인 ITZY의 ‘달라달라’는 당돌한 가사와 자기애 컨셉으로 대중의 큰 반향을 이끌어내었다. 이후 ‘달라달라’는 멜론 연간차트 16위에 오르며 ITZY는 단숨에 괴물신인 그룹으로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ITZY의 이 반짝임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으나 현재 차트를 점령 중인 걸그룹들이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닦았다는 측면에서 분명히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던 걸그룹들과 ITZY의 성공 여부를 가른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이를 “심도”와 “복합성”이라고 생각한다. ITZY가 선보인 주체성은 “자기애”라는 하나의 주제만을 토대로 밀고 나가는 비교적 얕은 모습이었다. ‘달라달라’로 시작하고 ‘ICY’를 지나 ‘WANNABE’로 끝난 ITZY의 소위 “자기애 시리즈”는 결과적으로 “난 내가 좋아, 남 시선 신경 안 쓸 거야”라는 단순한 주장의 반복에 그쳤다. “어떠한 나”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에서 주가 아니었다. 더해서 그들에게는 “플러스 알파”가 부재했다. 알록달록한 색감이나 순간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 요소에 집중하고 앨범이나 그룹의 정체성을 정의할만한 컨셉과 키워드에는 다소 힘을 뺀 모습이었다. 또한 힙합과 EDM의 요소들을 배합해 “퓨전 그루브 트랙”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ITZY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삼았으나, 장르가 섞인 것의 한계인지 오히려 ITZY의 음악적 정체성이 애매해지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ITZY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하나의 키워드나 이미지가 부재했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 걸그룹들은 앞서 언급한 가사에서 보았듯 저마다 “어떠한 나”에 대한 확실한 이야기를 담으며 보다 심도 있는 주체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더해서 뉴진스는 거기에 약간의 청순함과 음악성을, (여자)아이들은 능동적인 섹시를, 아이브는 복잡하지 않고 확실한 대중성을, 에스파와 르세라핌은 다크함과 세계관을 섞어내어 “플러스 알파”까지 완성했다. ITZY와 같이 단순한 주체성만 부르짖는 것이 아닌, 조금 더 복합적인 주체성을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가상 아이돌의 대중적 성공과 같이 산업의 근본 자체가 뒤집어지는 일이 아닌 이상, 여성이 아이돌 시장의 주 소비자이자 매출원이라는 것은 하나의 불변의 진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페미니즘”과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키워드를 넘어선 다음 담론은 무엇이 될까? 단어의 폭이 넓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를 “정치적 올바름(PC)”이라고 본다. 최근 큰 논쟁이 있기도 했던 디즈니의 <인어공주>처럼 PC는 그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과 상관없이 하나의 물결처럼 문화 산업을 덮치고 있다. 음악 산업 역시 당장 Lil Nas X나 Sam Smith와 같은 퀴어 아티스트들이 퀴어에 대한 주제를 담은 음악으로 팝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K팝에서도 더디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츄의 ‘Heart Attack’ MV나 OnlyOneOf의 MV들은 동성애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최근 온라인에서 잠시 조명받았던 걸그룹 블랙스완의 경우 동아시아 혹은 동양인의 전유물이라 생각되던 K팝 멤버의 인종과 국적을 타 아시아와 서양까지 확대한 사례이다. 약하다면 약한 사례일 수 있지만 이것이 시작일수도 있다. 단순히 퀴어 컨셉에 그치지 않고 퀴어 멤버들로 이루어진 아이돌이 메이저에서 활동할 수도 있으며 아티스트가 커밍아웃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구 반대편에서 백인과 흑인으로 이루어진 그룹이 스스로가 K팝 그룹이라 자처할지도 모른다. 생산과 판매 모두 해외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 K팝 역시 결과적으로 문화 산업에 불어 닥치고 있는 PC의 큰 물결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라 본다. 





by 동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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