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B, 나찰, Viann, UNEDUCATED KID 외
최크롬 : ‘New Edition’ 시리즈에서 다원과 함께한 다섯 번째 싱글. 다원의 참여한 곡들의 경우 문학과 과학 등 뻔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소재로 해서 개인적으로 늘 기대를 갖는 조합이다. 한 명을 뮤즈로 해서 주기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시도한다는 점도 매력적인 부분. ‘뒷모습도 나쁘지 않아’는 대체로 밝고 쾌활했던 이전 곡들과 달리 끈적함이 살짝 걸쳐져 있는 R&B 계열의 트랙이다. 물론 새로운 시도라는 의의도 있지만, 아쉽게도 다원의 보컬 톤이 원체 소녀스러운 느낌인 데다가 크게 그루브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소화력에 있어서 크게 메리트가 없다. 이번 싱글에서는 특유의 포인트를 주는 편곡, 가령 후반 하이라이트의 기타 톤에 만족하는 것에 그쳤다. 이런 감성 또한 ‘나쁘지 않’게 소화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 거듭나기를.
베실베실 : 2009년 아이삭 스쿼브와의 합작 앨범과 몇몇 컴필레이션 참여를 제외하면 사실상 솔로로서의 첫 작품이다. 랩 디자인 자체는 예전 가리온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눈에 띄는 점은 발성이다. 과거에는 ‘한국스럽게’ 소리를 꽉 채워서 뱉었다면 지금은 조금 더 ‘본토스럽게’ 힘을 뺀 상태로 뱉는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한국을 대표하던 OG의 명성은 과연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베실베실 : 쿤디판다와 함께 한 앨범부터 솔로 앨범, 데자부와 서리의 이름으로 낸 모든 앨범들까지. 여태껏 비앙이 참여한 음악 중에 나를 실망시킨 앨범은 없었으나… 이번 앨범은 Viann의 오점으로 남을 것 같다. 비트 자체는 언제나 그랬듯 세련되면서도 감각적이지만 문제는 그를 밑받침하는 랩이다. 최근 쇼미더머니와 각종 유튜브 출연 등으로 인지도를 얻은 그들이지만 아직 이런 비트를 소화하기엔 내공이 부족해 보인다. 새로운 것 하나 없는 플로우, 억지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발성, 진부한 훅까지. 들으면 들을수록 ‘이 비트가 쿤디판다나 비와이에게 갔으면..’하는 생각만 든다. 데자부 레이블이 새삼 대단하다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으면 성공스러운 앨범이다.
최크롬 : [HOODSTAR 2] 이후 1년 넘게 지났으니 꽤 오랜만에 나온 EP 규모의 앨범이다. 하지만 기개 넘치는 앨범명에 비해 기대치를 크게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릴 우지 버트 재질의 사운드부터 아득할 정도로 반복되는 훅의 가사까지, 우리가 그의 음악에서 익숙함을 느끼기 시작한지도 꽤 오래됐다. 요컨대 씬에 누구보다 큰 충격을 주었던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또한 자기 복제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드리우기 시작했다. 물론 이 앨범을 커리어 상 쉬어 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앨범이다. 신선하든 아니든 지루함 없이 앨범 대부분의 트랙을 귀에 각인할 수 있는 래퍼는 드물다. 어쨌든 그는 정신 나간 딜리버리와 기믹을 보유한 능력자다. 앨범을 정주행한 내 머릿속에는 최소한 ‘어쩌라고’, ‘무지성’이란 단어는 강하게 남아 있으니까. [HOODSTAR]의 멜론 명반 딱지 덕에 매 앨범 관심이 쏠리는 그이지만, 심각함을 치워 두고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베실베실 : 켄드릭 라마가 칸예 웨스트, 타일러와 함께 현시대를 대표하는 힙합 아티스트였던 이유는 ‘힙합’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타덤에 오르게 한 [GKMC] 앨범과 이후 [TPAB], [Damn.] 앨범에서 그는 단순히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흑인 사회와 오바마의 미국 사회 모두를 대변했다. 즉 그는 단순한 래퍼가 아니라 한 시대의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본인 스스로 그 위치에 대한 부담을 느꼈는지 이번 앨범은 그러한 주제 의식이 담긴 ‘AOTY’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노력이 보인다. 그러나 모든 걸 내려놓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힘을 빼는 데에 힘이 들어가서일까. 메시지는 짐짓 가벼워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무언가 굉장히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고 앨범의 사운드 역시 미니멀해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앨범 단위로’ 유기성 있게 배치했다는 점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딱히 엄청난 킬링 트랙도 없고, 그렇다고 전작과 비교해 서사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니게 된 앨범이 나와버렸다. 물론 ‘켄드릭 라마’라는 이름표를 떼고 보면 괜찮은 앨범인 건 분명하지만, 우리가 켄드릭에게 기대하는 건 이 정도의 퀄리티가 아니다.
최크롬 : 참여 조합을 보고 화끈한 가창력과 터프한 랩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말랑말랑한 감성도 그렇고 전반적인 때깔에서 BENEE의 ‘Supalonely’가 살짝 보이는 곡이다. 리드 싱글급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트랙은 아니지만 부담 없이 귀에 감기는 코러스를 포함해 억지스러움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랩은 “굳이?”라는 의문이 들게 하지만, 단순 반복형의 코러스로 인한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배치한 듯하다. 라토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는 점도 흠이긴 하다. 한편 ‘I Just Called’가 틱톡을 저격해서 만들어진 곡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재미있어진다. 통화 상황을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가사, 그리고 약간은 하이틴스러운 감성까지 곡을 바이럴하기에 좋은 요소들이 많다. 곡 전체에 힘을 줄 필요가 없으니 2분 중반 대라는 러닝타임 또한 납득이 간다. 이젠 콘텐츠 플랫폼이 곡의 프로덕션 단계부터 영향을 주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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