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3년 7월 3주)

E SENS, 정국, 홈 슬라이스, Blur, Dan + Shay 외

by 고멘트

"No boss, more money, no cases"


1. E SENS – [저금통]

20577761.jpg

준9 : 솔로 커리어에서 이센스가 보여주는 가사들은 하나같이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이번 앨범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성공한 래퍼라고 부를 수 있는 그는 여전히 돈에 얽매이는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번 돈을 나누기 싫어 회사를 나왔다고 말하는 첫 트랙 ‘No Boss’, 자신을 돈줄로 여겼던 옛 동료들에 대한 비난이 담긴 ‘저금통’과 ‘What The Hell’ 등의 트랙들은 뮤지션 이전 생활인으로서의 이센스를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앨범 전체의 테마이기도 한 ‘돈에 대한 욕구’라는 주제는 다른 래퍼들의 가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공과 랩머니, 스웨깅과 대치되기 때문에 리스너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성공을 자랑하는 래퍼들의 모습이 환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면서 한국 힙합씬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기분도 든다. ‘Piggy Bank’나 ‘Gas’에서 보여주는 호전적인 가사와 래핑은 이센스의 유명세와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가 씬의 가장자리, 주변부에 위치해 있는 외골수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이러한 캐릭터가 인위적인 포지셔닝이 아니라 그의 태도, 가사, 행보로 구축된 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편, ‘기분’은 연인과의 관계에서 소원해진 화자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과거 ‘정열의 방’이나 ‘Trouble’에서의 벌스를 떠올리게 한다. 주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것이 앨범 단위의 청취에서 다소 돌출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몽환적이고 풀어지는 무드의 ‘Vanilla Sky’에 이어지는 트랙으로서 이 곡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비교적 가요적이고 정형화되어 있는 특징 때문에 앞서 만들어온 흐름을 끊기 때문이다. 또한 ‘Real Ones’는 앞서 신랄한 벌스들을 내뱉던 트랙들과는 달리 ‘친구’를 대상으로 하는 마지막 트랙인데, 싱글 트랙으로서의 무드와 완성도는 좋지만 앞선 트랙과의 연결이 매끄럽지는 않게 느껴진다.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앨범이 주는 만족감은 그것을 웃돈다. 랩과 프로덕션이 주는 청각적 쾌감 때문이다. Hukky Shibaseki가 주도한 프로덕션은 ‘No Boss’, ‘What The Hell’, ‘Vanilla Sky’ 같은 붐뱁 기반의 비트부터 ‘How To Love’나, ‘Real Ones’ 같은 팝적인 트랙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앨범의 음악적 다양성을 책임진다. 그 위에 여전히, 혹은 더 능숙해진 라임을 펼쳐놓는 이센스의 퍼포먼스는 그의 위치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황금막내를 아십니까?"


2. 정국 – ‘Seven’

4088912.jpg

: 기다리는 자에게 띵곡이 온다고 했던가. 사운드 클라우드 곡까지 챙겨 들으며 정국의 솔로를 목 빠지게 기다린 끝에 등장한 ‘Seven’이다. 기다렸던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발매와 동시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착한 멜로디에 그렇지 못한 매운맛 가사와 한소희 주연의 때깔 좋은 뮤직비디오, 리드미컬한 기타 리프에 얹어지는 감미로운 보컬까지 흥미롭지 않은 구석이 없다. 또, 곡 자체가 호불호 갈릴 일 없이 안정적이고 무난한 진행에 적당히 중독성도 있어 듣는 재미가 있다. 케이팝을 즐겨 듣던 리스너라면 이 곡도 즐겨 듣게 되지 않을까? 취향이 케이팝에 절여진 나 역시 저항 없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듣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정국의 보컬적 매력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쿠스틱 기타에 UK 개러지 리듬이 어우러진 멜로디가 그의 보컬과 잘 어울렸으나 시원하게 터지는 포인트 없이 계속 같은 텐션을 이어가는 곡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LOVE YOURSELF 起 Wonder] 앨범에 수록됐던 솔로곡 ‘Euphoria’나 음원 발매하라고 아우성이었던 ‘Still With You’, 지민과 커버했던 ‘We don’t talk anymore’ 등에서 보여준 것 같이 특유의 맑고 청량한, 혹은 숨 가득 아련한 보컬이 그의 특장점이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앓는 킬링 포인트였을 건데 이번엔 조금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은 아닌가 싶다.


앞서 안정적으로 솔로 데뷔를 마친 다른 방탄소년단 멤버들 사이에서 후발 주자로서, 갈수록 본인과 팀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집중에 맞서 대담히 나서기까지 무수한 고민과 걱정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본인의 재능과 거대한 자본, 굳건한 팬덤에 기대어 조금 더 공격적인 자리매김을 시도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정도로도 ‘황금막내’ 닉값을 톡톡히 해내는 중이니 말이다.





"밴드 씬에 멀티미디어 팝아트 그룹의 등장이라•••"


3. 홈 슬라이스 – [Homie World]

20580274.jpg

교야 : 참으로 오랜 기다림이었다. 2019년 라이프앤타임의 갑작스러운 활동 중단은 팬들에겐 난데없이 덮쳐 온 일종의 자연재해였다. 다행히 4년 후 진실은 SNS를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고, 그는 팬들로 하여금 ‘진실이 어떤 음악/밴드로 돌아올까?’ 하는 기대를 아예 색다른 차원으로 비틀어 버린 ‘멀티미디어 팝아트 그룹’ 홈 슬라이스로 돌아왔다.


지난 22일 공개된 첫 EP [Homie World]는 홈 슬라이스의 세계관 안에서 설정된 캐릭터의 모험을 담은 컨셉 앨범이다. 이번 앨범은 예상과 달리 진실의 보컬이 아닌 Tommy choi의 래핑으로 가득 채워진다. 첫 트랙 ‘Mr Brain’부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래핑에 쌓여가는 라임을 끌어안고 넘실거리는 기타와 베이스는 힙합이나 록 등 어느 한 스타일로 치우치지 않고 유쾌하게 어우러진다. 리드미컬한 그루브 기반으로 단단한 구성을 비틀어 내며 상승하는 진실의 기타와 프로듀싱은 어느 트랙에서든 유연하게 빛을 발하며, ‘Homie World’까지 타이트하게 이어지다 그루비한 베이스라인을 앞세워 나른하게 늘어지는 ‘Dog God’은 한국어가 서툰 Tommy의 “Have you seen my 캉아취?’의 중독성 덕에 가장 캐치한 트랙이 된다. 랩과 밴드의 조합으로 넉살X까데호의 조합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데,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흘러가는 그들에 비해서는 훨씬 락킹하고 컨셉츄얼한 스토리텔링에서 나오는 밝은 텐션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크레딧의 ‘Original Story – Rich Lim’, ’Graphics – Juan Doe’, ‘3D Art – 조아형’을 통해 이들의 스토리텔링과 비주얼 작업이 꽤 본격적일 것이라고 느껴졌다. 다만 아직은 앨범의 가사들만으로는 커버의 로봇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어떤 모험을 떠나는지와 같은 스토리텔링이 잘 와닿지 않는다. 훌륭한 비주얼들을 활용한 콘텐츠들이 부족한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이미 릴스로 공개한 멤버 소개 영상만으로도 홈슬라이스만의 비주얼 콘텐츠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있는데 뮤직비디오나 실물 앨범도 없고, 쇼케이스 무대도 캐릭터가 춤추는 영상 외에는 별다른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실물 앨범을 대신해 QR을 제공한다는 점과 펜타포트 무대의 영상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부분에서는 머지않아 관련 콘텐츠들이 하나하나 공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아티스트들로 이뤄진 팀이 만든 하나의 IP는 기획자의 역량에 따라 전시, 공연, 굿즈, 영상 등으로 확장되며 소비자가 단순히 음악을 듣고 보는 것 외에 새로운 경험을 전해줄 수 있는 잠재력이 크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한다. 잘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아쉬운 점을 꼽게 되는 것 마냥 새로운 조합의 이 팀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더욱 다채로울 것이라 믿는다.





"2023년의 블러스러움"


4. Blur – [The Ballad of Darren]

32666334.jpg

교야 : 오아시스, 펄프, 스웨이드 등과 함께 90년대 브릿 팝의 시대를 염과 동시에 사망 선고까지 내린 Blur(이하 블러)가 9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8년 만에 발매된 반가운 앨범에서 그들이 보여준 2023년의 블러 음악은 많은 이들이 블러하면 떠올릴 ‘Girls & Boys’나 ‘Parklife’, ‘Song 2’에 비하면 눈에 띄게 서정적이고 성숙한 무드를 보여준다. 거대한 이별 발라드 ‘The Ballad’와 동화 같은 선율의 ‘Far Away Island’에서 특히 서정성이 두드러지고, 선공개된 ‘The Narcissist’는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다짐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며 한층 성숙한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서정적인 트랙들이 주를 이루는 와중에도 2집 혹은 3집의 블러스러운 트랙들도 눈에 띈다. 또 다른 선 공개 곡 ‘St. Charles Square’에서는 강렬한 도입부에서 이어지는 그레이엄 특유의 뒤틀리며 재미를 주는 리프와 질겅질겅한 탑 라인과 대비되는 샤우팅에서 단번에 향수를 느꼈으며 이달 초 진행된 웸블리 공연의 셋리스트 사이에서도 이질감 없이 섞인다. ‘Barbaric’ 역시 도입부의 통통 튀는 패드 소리에서 이어지는 리드미컬한 진행이 30년 전의 블러를 마주한 착각을 일으킨다. ‘The Narcissist’에서는 유독 젊은 데이먼 특유의 쫀득하고 툭툭 던지는 창법이 들리는 것 같아 오묘하다.


앨범 대부분의 트랙을 커버 사진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듯 서정적 컨셉을 기반의 곡으로 채우고, 과거 블러스러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트랙을 일부 추가한 구성은 그들이 오랜만에 완전체로 웸블리나 섬머소닉 등의 무대를 앞둔 점에서 ‘2023년의 블러’를 보여줌과 동시에 팬들과 함께 90년대의 향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효과적인 구성이다. 과거의 아이코닉한 아티스트들이 현대에 재소환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에만 애쓰며 금방 휘발되어 버린 경우 역시 적지 않게 봐왔기에 블러의 신보와 활동에 걱정도 들었지만, 그들은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맨날 티격태격하는 모 형제들과 다르게) 성숙된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트랙 ‘The Heights’에서 약 40초간 이어지는 노이즈들은 그들의 새 앨범이 단순한 이벤트성이 아니라 블러의 음악적인 수명이 한참 더 남아있음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그들은 2023년에도 블러스러움을 재정의하고 확장시켰다.





"컨트리의 봄이여 서둘러 오라"


5. Dan + Shay – 'Save Me The Trouble, Heartbreak On The Map, Bigger houses'

32295819.jpg

: 매 곡 고백 공격으로 대리 설렘 느끼게 하는 듀오, 댄 앤 셰이다. 이번에는 선공개 3곡을 담은 앨범을 공개했다. ‘Save Me The Trouble’이나 ‘Heartbreak On The Map’은 따뜻한 기타 반주에 스윗+폭신한 보컬이 더해진 기존에 댄 앤 셰이가 하던 음악이었다. 흥미로웠던 건 앨범 제목과 동명인 세 번째 트랙 ‘Bigger Houses’였다. 메인 기타가 만드는 고즈넉한 컨트리 무드가 잔잔히 스며드는 게 인상적이다. 늘 온화한 기타 반주에 화음 가득 쌓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게 컨트리라고?” 싶게 하던 댄 앤 셰이였는데, 3번 트랙을 들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미국 남부의 넓은 들판에 앉아 지는 노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타가 앞에 나와 확실한 컨트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이전에는 댄 앤 셰이에게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모습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다시 떠오르는 컨트리 씬에서 입지를 굳혀 보겠다는 선전포고일까?


사실 최근에 마초적이고 거침없는 정통 컨트리를 앞세운 모건 월렌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한 것도 모자라 그 인기를 14주나 끌고 있고, 루크 콤즈, 잭 브라이언, 옐리 롤 등의 컨트리 곡들이 차트 50위권 곳곳에 포진되면서 미국에 다시 컨트리의 봄이 오는 듯한 형세라, 이번 앨범의 방향성이 좋은 전략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한동안 외면당하던 컨트리 씬에 컨트리인 듯 아닌 듯 팝에 가까운 음악들을 해온 댄 앤 셰이에게는 트랙에서 마음껏 컨트리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이러한 씬의 부활이 그들에게 시의적절한 밀물이 될 것 같아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 볼 만하다.





"마르지 않는 우물 같은 재능"


6. Jacob Collier – ‘WELLLL’

준9 : 현시대 음악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뮤지션을 꼽아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단연 제이콥 콜리어다. 데뷔 앨범 [In My Room]을 시작으로 [Djesse Vol.3]에 이르기까지 제이콥 콜리어는 반짝거리는 재능으로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음악을 만들어왔다. 그의 음악을 장르적으로 정리하긴 쉽지 않다. 그의 음악 속엔 재즈, 클래식, 포크, 컨트리 등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이 뒤엉켜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소울, 알앤비 기반의 뮤지션으로 이해한다. 그가 구사하는 화성과 보컬적 특징들이 흑인 음악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록 음악을 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평범한 록은 아니다. AC/DC의 ‘Back In Black’을 닮은 절도 있는 기타 리프 위로 그의 장기인 보컬 화음 레이어를 두텁게 쌓아 풍성함을 더한 것부터가 특별하다. 또한 2분 39초라는 짧은 러닝 타임 안에서 영리한 구성적 전략을 세워 하드 록, 헤비메탈적 요소들을 충분히 보여준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특별히 이 지점을 주목할 만한 이유는 과거 5분 이상의 긴 호흡으로 곡을 뽑던 제이콥의 음악적 경향과 크게 비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WELLLL’은 곡 구성적으로 전혀 부족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운드적인 피로감을 느낄 여지를 차단시킴으로써 만족감을 안겨준다.


제이콥 콜리어가 이 시대 누구보다 ‘음악 천재’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여러 악기를 다루기 때문은 아니다. 미친 편곡 능력과 복잡한 사운드 요소들을 조율해 내는 믹싱 능력 때문만도 아니다. 한 옥타브를 13개 이상으로 쪼개는 ‘미분음’ 개념을 이용해 환상적인 보컬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도 결정적이진 않다. 그가 다른 뮤지션들과 다른 위치에 있는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을 전부 해내며 총체적인 결과물로서 멋진 곡, 멋진 앨범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마르지 않는 창작욕과 재능을 내뿜는 그이기에 다음 앨범 [Djesse Vol.4]가 기대될 수밖에 없다.





※ '준9', '교야', '율' 블로그

keyword
고멘트 음악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획자 프로필
팔로워 395
매거진의 이전글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3년 7월 2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