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ASURE, 달의하루, 토미요, Dominic Fike 외
배게비누 : Reboot(이하 리부트)는 ‘재시동하다, 프로그램을 다시 로드하다’라는 뜻이다. 보통 컴퓨터에 오류가 생겼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했을 때, 업그레이드를 할 때 부팅을 다시 하곤 한다. 콘텐츠를 리부트 한다고 하면 오리지널 창작물의 뼈대만 남겨둔 채 새롭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는 최신의 이미지를 씌우고 업그레이드된 내용으로 새로운 팬덤의 유입을 이끌기 위함이다. TREASURE (트레저)(이하 트레저)는 정규 2집으로 바로 이 ‘리부트’를 하겠다고 선언하며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들이 가져온 컴퓨터는 리부트 했다고 하기엔 아쉬운 점이 많고 그 말이 어울리지도 않는다. 내부는 바뀐 점 없이 화면만 다크 모드로 바꾼 컴퓨터 같기 때문이다. 다크 모드로 바꾸겠다고 컴퓨터를 껐다 켜진 않는데 말이다.
트레저의 핵심을 잃지 않은 과감한 변신을 기대했건만 안전한 변화를 추구하다가 낡은 것을 가져왔고 오히려 트레저의 색깔을 흐려버렸다. 이 앨범에는 2010년대 중후반 YG 아티스트들(빅뱅, 위너, 블랙핑크)의 흔적이 많이 보이며 수록곡들이 전반적으로 올드하다. 특히나 아쉬웠던 것은 선공개된 T5의 ‘MOVE’와 타이틀 ‘BONA BONA’인데 두 곡 모두 브라스 사운드가 들어간 강렬한 베이스와 신스의 트랙을 사용했다. ‘MOVE’는 이 트랙에 정통 케이팝스러운 멜로디가 올려진 곡으로 트랙과 멜로디 둘 중 하나라도 정통 케이팝에서 벗어났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가장 아쉬운 것은 타이틀곡인데 이 트랙에 마칭밴드가 들어가고 전개마저 YG 공식을 철저하게 따라가면서 블랙핑크와 트레저의 혼종이 되어버렸다.
기존 YG 남자 아이돌과 다른 기조의 팀이라 YG의 음악적 특징이 덜 느껴진다는 것이 이 팀의 양날의 검이었는데,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잘 닦아가던 트레저에게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은 독이 된 듯하다. 애초에 이들에게 정말 ‘리부트’라고 부를 정도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던 건지 의문이 든다. 어찌 되었건 앨범은 이미 발매되었고 아쉽지만 온고지신을 노렸던 이번 리부트는 재정비가 필요하다.
G.O : 달의하루 음악의 가사에는 늘 의문문이 존재했다. “떠오르지 않나요?” “회자정리인가요?” “누구에게 말해야만 해?” [염라(Karma)中], “뒤집어쓴 가면을 벗기 시작하니?” [너로피어오라(Flowering)中] 등 이처럼 포인트가 되었던 가사들은 마치 응답을 요구하는 무수한 물음 같기도, 다음 곡으로 향하는 빌드업 같기도 했다. 다만 이 독특한 특징을 뒤로한 채 마지막 유작으로 남은 ‘순혈주의자’에는 더 이상 물음이 없다. 그들이 전하고자 했다던 ‘다정한 상처’가 이번 음악에서는 이렇게도 표현되었을까 싶다. 대답을 들어줄 화자의 빈자리가 맞아떨어지며 섣부른 의미 부여를 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참신하고도 다소 심오한 느낌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에, 특징의 부재가 무색하게도 ‘달의하루’스러운 가사였다. 빽빽하게 쏟아지는 가사에 단 한마디의 외래어가 보이질 않고, 염세주의적 시집 한 권을 독해하듯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가사가 하나 없는데도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와닿게 만들고 있다. 역설, 은유, 직유 등의 시적 표현과 시적 허용을 남발하며 ‘달의하루’만의 언어를 늘어놓고 따라 할 수 없는 차별성을 구축했다. 연이은 발매에도 아직 자기 옷을 찾아나가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는 반면, 단 3곡의 음원만을 발매한 2인조 인디 밴드가 ‘달의하루’스러운 것을 해냈다.
타 아티스트의 도움으로 완성되어 겨우내 빛을 보게 된 곡이기에, 사실상 온전히 새롭기도 완벽히 앰프스타일의 것이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타인의 개입으로 소극적인 변화가 생겼지만, 확실한 건 이번 음악도 J-pop 스타일을 계승한다. 도입부터 일렉기타 사운드와 비슷하게 이펙트를 먹인 보컬로 시작되어 보컬로이드 스타일로 스타트를 끊는다. 140 bpm의 빠른 리듬에 화려한 건반 트레몰로, 랩 하듯 빠르게 쏟아지는 탑라인의 향연과 크런치 톤의 기타 리프까지. 제각기 빠르게 손을 움직이는 악기들의 합이 볼륨을 키우면서도 Verse1, Pre-chorus에서 확실하게 악기 구성을 덜어 버리니 밸런스가 잡혔다. 4:10초의 보기 드물게 긴 러닝 타임에도 피로함보다는 익숙한 기타 리프의 잔음이 남아있는 듯하다. 브릿지에는 페이드 효과도 없이 음악을 툭 끊어 버린다. 영상일 경우 블랙아웃이라 치부되는 사고를 달의하루는 부러 집어넣고 있다. 불교적 색채, 사고 같은 연출, J-POP과 K-POP 사이의 음악. 이처럼 달의하루의 음악을 정의하자면 특이한 것들이 많다. 과거 불교 색채의 음악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도 ’힙하다’는 이유가 전제였으니 이번 연출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2023년 7월 부로 달의하루의 1집 ‘염라(Karma)’ M/V는 조회수 2452만회를 기록했다. 내수 시장에서 도약한 서브컬쳐 계열 음악의 가능성을 증명했던 그룹이기에 이번 신보 소식은 더욱 반갑고, 기약할 수 없기에 아쉽기도 할 이들이 많을 터이다. 이번 음악이 좋든 아쉽든, 근래의 J-pop 흥행에 더불어 새로운 유입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녹록치 않은 이 시장을 흔든 그들의 음악이 계속 화두에 오르길 바라며, 이제 아쉬움을 뒤로 하고자 한다. 이번 곡도 새삼 ‘달의하루’스러웠다.
미온 : 최근 몇 년 동안 인디씬에서는 유독 90년대에 사랑받은 락 장르를 가져온 음악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TRPP의 [TRPP], 김뜻돌의 [COBALT] 정도가 되겠다. 이들은 슈게이징부터 90년대 개러지락까지 수준급으로 재현해 내고 재해석한 결과, 락 마니아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토미요(TOMYO)의 새로운 싱글 'shootamoviewithu'에서도 그런 아우라가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두 앨범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고마운 등장은 없지 않을까.
그녀가 이전에 발매한 '춤'과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는 모두 모던락으로, 공허하면서도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드의 곡들은 한국에서의 '김 씨' 성처럼 국내 인디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곡들이기에, 두 곡이 그녀의 존재감을 극적으로 드러내긴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싱글은 달랐다. 'shootamoviewithu'는 노이즈가 잔뜩 낀 기타 톤, 슈게이징과 인디록 그 사이에 위치한 사운드를 담아 하이틴스러우면서도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느낌을 잘 살려냈다. 토미요의 가장 큰 매력은 공기를 한껏 머금은 듯한 몽환적인 보컬 톤인데, 슈게이징이라는 장르에 최적화된 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장르 선택부터 성공적인 접근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김뜻돌이 오버랩된다는 점인데, 한 편으로는 당연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성공 사례를 참고하면서 영감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적절한 차용은 영리한 전략이 아니던가. 적어도 그녀가 이전에 발매한 곡들보다는 특색 있고 새롭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었음은 분명하다. 이렇듯 토미요는 시기적절한 변화로 자신의 음악에 희소가치를 부여했고, 마니아층을 끌어모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냈다. 인디씬에서는 자리매김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뮤지션의 수명이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래도 개성의 영역이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디음악의 특성 때문일 텐데, 그런 측면에서도 이번 싱글은 탁월하다고 말하고 싶다. 전략적이면서도 질 좋은 음악은 사랑받기에 마땅하다. 아마 락덕후들에게는 토미요가 더욱이 사랑스러운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지 않을까.
배게비누 : Dominic Fike의 곡은 흥미로우면서도 쉬운 멜로디 전개와 로파이 한 질감, 개성 있는 보컬과 랩이 매력이다. 이 앨범 전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내 인상은 힙한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낫마스인 라이징 아티스트였다. 몇 곡을 제외하고는 큰 임팩트가 있진 않았고 나에게 좀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Sunburn]을 듣고 Dominic Fike에게 입덕하고 말았다. (내가 힙한 사람이 된 건 아니다.)
나를 입덕시킨 새로운 앨범 [Sunburn]은 플로리다의 여름이 느껴지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커버와 귀에 착착 감기는 쉽고 재밌는 곡들로 가득 차 있다. 3분 남짓한 짧은 길이의 14곡은 록, 힙합, 팝, 인디를 넘나들어 지루할 틈이 없다. 로파이 사운드는 과거를 회상하는 앨범의 감성을 끌어올리고, 톤앤무드를 잡아주는 따뜻한 기타 톤은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연주되며 곡의 맛을 살린다. 첫 곡 ‘How Much Is Weed?’는 바래진 사진첩을 매개로 한 가사에 빠른 랩으로 순식간에 청자를 그의 과거로 끌어들인다. 따뜻하고 여유로운 겉모습에 가려진 가정환경, 사랑, 재판과 감옥, 죽음 등 플로리다에서 일어났던 기억 속 어두운 이면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연일 폭염 특보가 발효되는 요즘, 따갑고 갑갑하기만 한 도심 속 여름을 나느라 다들 고생이다. 음악을 듣는다고 더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Dominic Fike가 들려주는 플로리다의 여름을 상상하며 불쾌감을 덜고 나른함과 여유를 더해보길 바란다.
미온 :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커버 음악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던 Pomplamoose의 새로운 싱글 'À Cabo'이다. 이들은 주로 창작 음악보다는 커버 음악을 다루는 듀오인데, 이번엔 커버가 아닌 창작 음악을 발매했다. 그 내용물을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조합이 눈에 띈다. 불어와 보사노바의 만남,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조합이지 않은가. 불어 특유의 몽글몽글한 발음과 산들거리는 보사노바 리듬이 한 데 모여 여름이라는 계절을 더욱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은 레코딩 과정에서 모두 실물 악기를 사용하여 날 것의 소리를 쌓아 하모니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 하모니를 통해 비교적 정제되지 않은 소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황홀함을 담뿍 느낄 수 있는데, 이 포인트가 'À Cabo'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또, 기타 위주의 보사노바 곡이 아니라는 지점도 인상적이다. 인트로 이후부터 드럼으로 보사노바 리듬을 가져가면서도 인디팝에 가까운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뻔한 보사노바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좋았다. 빈티지하고 로맨틱한 피아노 연주부터 가벼운 질감의 기타, 무게감 있는 트럼본과 호른까지. 황금 비율로 배합해 산뜻하지만 풍성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최근 이렇게 자연스러운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듣기에 모난 구석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음악이 숨과 쉼 같은 존재인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음악은 없지 않을까. 이제 이 여름 제철 음악을 맛보면서 휴식을 즐겨보자. 이보다 더 달콤한 휴식은 없을 것이다.
G.O : 샐럼 일리스가 가진 강력한 무기는 ‘참신한 발상’과 ‘스토리텔링’이다.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진솔하게 써 내린 곡들은 샐럼 일리스에 대한 흥미의 촉진제가 되었다. 그렇게 바이럴을 통해 퍼져나간 ‘Mad at Disney’는 150만 개 이상의 틱톡 영상에 쓰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명이 되었다. 이번 앨범에 담긴 곡들도 그러하다. 비방 편지글을 상냥한 어투로 풀어내며 백 마디의 욕설보다도 뼈가 있는 한마디의 말이 더 마음에 꽂힌다는 점을 노리고, 직전 발매된 싱글 ‘Team Sport’에서는 사랑을 팀 스포츠에 빗대며 ‘함께’에 충실하지 않았던 상대방에게 일침을 꽂는다. 단순히 편지 형식을 활용하는 것만이 아닌 친절함으로 무장한 비방 편지글로 신선함을, 사랑과 무관해 보이는 팀 스포츠에 사랑을 엮으며 샐럼 일리스가 중시하는 ‘참신한 발상’이 무엇인지 대변한다.
컨템포러리 R&B와 신스팝을 주로 노래하던 그녀는 종종 변모하고자 했다. 이번 앨범도 대다수의 곡이 팝 펑크를 기반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기조의 변화는 확실했다. 그러나 ‘신선한 소재와 멍멍한 음색’이 강점인 아티스트가 팝 펑크를 시원하게 소화해 내리라 싶은 생각이라면 오판이다. 결국, 구태여 택한 이 장르만의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디메리트로 따라붙었다. 타이틀 ‘Strongly Worded Letter’에서 보사노바풍 스타일로 변주하는 프리코러스 구간이 도리어 샐럼 일리스의 본연의 음색과 어우러졌다. 기묘한 부조화가 그녀의 목표라면 이루어 냈지만, 지난 히트곡 ‘Mad at Disney’나 작가진으로 참여했던 Bella Poarch의 ‘Build a Bitch’ 같은 다크 팝을 기대했던 리스너에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곡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인트로의 레트로한 타자기 사운드, 인터루드의 강한 왜곡을 첨가한 일렉기타 사운드와 프리코러스의 변주까지. 재치 있는 사운드 활용과 참신한 구성은 샐럼 일리스표 음악임을 증명한다. 다만 아티스트의 가창과 합쳐 보자니 시너지 없이 꽤 심심하게 흘러간다는 점. 아쉬움이 남지만, 진짜 MZ 세대가 써 내려간 재치 있는 곡이 궁금하다면 감상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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