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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Aug 08. 2023

R&B 음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알앤비는 이제 어디로 흘러갈까?

1. 얼터너티브 알앤비(Alternative R&B)의 시작


얼터너티브 알앤비 유행을 이끈 앨범들

알앤비 음악 역사의 흐름으로 봤을 때 2010년대는 PBR&B, 즉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전 시대의 알앤비가 서던 힙합과 결합된 형태, 그리고 90년대 컨템포러리 알앤비를 계승한 사운드 둘로 양분되어 있었던 데 반해 얼터너티브 알앤비는 블랙뮤직의 틀에서 벗어나 타 장르와의 결합을 서슴지 않는 시도가 돋보였다. 구체적으로,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특징이라면 일렉트로닉, 인디 락 등 타 장르와의 혼합이라는 속성 하에 몽환적으로 깔리는 신스 사운드와 공간감을 살리는 사운드 이펙팅. 가창력을 과시하기보다는 나긋나긋하게 진행되는 멜로디 라인 등의 요소들을 꼽을 수 있겠다.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대표 주자, Frank Ocean과 The Weeknd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Frank Ocean은 그간에 알앤비 음악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웠던 가사의 서정성으로 주목받았다. 이전까지 대다수 정통 알앤비의 가사적 특징은 관능적인 소재를 재치 있게 표현하 것이었다. 그런 알앤비 음악에서 개인의 내면에 집중해 고통을 표현하고 철학적 사유를 드러내는 리리시즘(lyricism)은 독창적인 것이었다. 또한 그것을 뒷받침하는 유려한 멜로디와 미니멀한 프로덕션도 Ocean의 음악적 정체성이자 성공 요인이었다. 한편, Weeknd는 음악의 사운드적 특징에 더 주목할 수 있다. 눅눅하고 공간감이 가득 차서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프로덕션은 영국에서 기원한 트립 합 사운드에서 차용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여기에 위켄드만의 보컬과 멜로디를 얹어 굉장히 매력적인 스타일로 완성했다.

Frank Ocean - Thinkin Bout You
The Weeknd - Wicked Games


그렇게 그들이 정립하고 유행시킨 얼터너티브 알앤비라는 장르는 이후 The Internet, dvsn, PARTYNEXTDOOR, Jhené Aiko, Gallant 등 다양한 재능 있는 뮤지션들에 의해 흐름을 이어나갔다. 음악업계의 권위 있는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도 2013년부터 기존 ‘Best Contemporary R&B Album’을 폐기하고 ‘Best Progressive R&B’ 부문을 신설하며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얼터너티브 알앤비도 여느 장르처럼 영원할 흐름은 아니다. 알앤비 아티스트들은 계속 고민해왔다. ‘대안적’이라는 용어로 네이밍 된 알앤비가 이미 주류가 되었고, 그 주류의 흐름이 지나가고 있는 상황에 관해서 말이다. 이다음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뮤지션들은 각자만의 답을 내놓았다. Frank Ocean은 [blond]라는 이전작보다 더 미니멀하고 내면적인 음악을 내놓았고, The Weeknd는 더 대중적인 터치의 팝으로 나아갔다. 알앤비 뮤지션들은 각자의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한다.



2. 복고의 열풍과 정통 알앤비의 재현


2010년대 중후반에는 전 세계적인 뉴트로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훵크(Funk)나 디스코 음악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다. Bruno Mars와 Calvin Harris 등이 주도한 이 흐름은 그 영향력이 너무도 커서 많은 뮤지션들이 ‘복고’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당장 Weeknd부터 신스웨이브라는 80년대 디스코 하위 장르를 시도하고 그것으로 큰 명성을 얻게 된 것을 보면 그 시류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다. 알앤비 장르 음악씬을 넘어 세계 음악 시장의 거대한 흐름이었던 이 복고 열품은 한편으로는 장르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실험과 새로운 물결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복고라는 것은 ‘재현’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생산해 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Mark Ronson - Uptown Funk ft. Bruno Mars


때문에 다소 전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던 알앤비 음악의 흐름은 더 미래적인 방식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것들을 체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Anderson Paak, Daniel Caesar, 그리고 H.E.R.이나 Summer Walker, Kali Uchis 등 2010년대 중후반 등장한 알앤비 스타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과거 시절의 알앤비를 구현하는 데에 집중한다. 훵크, 디스코를 비롯해 네오소울, 컨템포러리 알앤비 등등 다양한 알앤비 하위 장르들이 재현되는 가운데 주로 90년대나 2000년대 초까지의 알앤비 스타일이 집중적으로 재현의 대상이 되었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로 데뷔했던 dvsn, Gallant 등의 아티스트들도 2020년대에 이르러선 과거 스타일의 알앤비 앨범을 발매할 정도였다.



3. 오늘의 알앤비 음악


작년 2022년부터 올해까지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앨범을 낸 알앤비 아티스트들을 꼽자면 The Weeknd와 Steve Lacy, SZA 정도를 떠올릴 수 있다. 2022년 상반기 [Dawn FM]를 발매한 Weeknd는 비록 차트 성적은 이전보다 좋지 않았지만 완성도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2022년 중순에는 Steve Lacy가 낸 앨범 [Gemini Rights]와 리드 싱글 'Bad Habits'가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동시에 평론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22년 12월엔 SZA가 약 5년 반 만에 발매한 새 정규 앨범 [SOS]가 냈다. 역시 이 앨범으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Kill Bill', 'Snooze' 같은 곡들이 차트에 자리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동안 크게 인기를 얻은 알앤비 아티스트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만, 더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바로 이들의 노래들이 하나같이 알앤비로부터 상당히 거리가 있는 상태라는 사실이다. 앞서 이야기한 Weeknd는 제쳐두고라도, Steve Lacy의 [Gemini Rights]은 여러 장르 요소가 섞인 인디 락에(실제 빌보드 차트에서 그의 앨범은 알앤비와 더불어 락 차트에 포함되었다) 가까웠으며, SZA의 [SOS]는 팝, 로파이, 인디 락 등등 다양 섞인 형태다. 점점 알앤비 음악의 흐름이 하나의 큰 줄기로 맥을 이어나간다기보다는 뮤지션의 스타일 취향에 맞게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른 말로 하면 ‘복고’를 대신해 시대를 관통할 만한 새로운 키워드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좌) Steve Lacy [Gemini Rights], 우) SZA [SOS]


10년 전처럼 씬의 음악 스타일을 뒤바꿀 만큼의 파급력을 갖춘 스타의 등장도, ‘PBR&B’라는 이름으로 장르를 규정하고 새로운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에 주목하던 미디어의 역할도 지금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SZA 같이 인기 있는 알앤비 뮤지션은 자기 작품을 알앤비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알앤비는 이제 주류의 영향력을 행사할 장르가 아닌 것인가? 알앤비는 정말 죽어가는 걸까?


알앤비가 주류 음악시장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알앤비가 죽어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약하게나마 음악적 실험을 보여주는 재능 있는 뮤지션들은 계속해서 등장하고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Sudan Archives나 올해 Liv.e 같은 뮤지션들이 그렇다. Sudan이 작년에 발표한 앨범 [Natural Brown Prom Queen]은 실험 정신과 그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수작이다. 일렉트로닉, 힙합, 포크, 아프리카 전통 음악, 알앤비 등 넓은 범위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완성도 있는 앨범으로 완성한 솜씨는 독보적이라고 말해도 좋다. 올해 Liv.e의 앨범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앨범은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품고 있으면서도 Liv.e의 알앤비 보컬 문법이 중심을 잡아주며 독특하고 신선한 감상을 자아낸다. 멜랑콜리한 정서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앨범 비록 차트에 오르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음악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시도는 리스너와 동료 뮤지션들에게 충격과 자극을 주어 씬을 더 활성화시킬 동력이 될 것이다.

Sudan Archives - Home Maker
Liv.e - Ghost

한편, 2020년 전후로 세계 음악 시장과 블랙뮤직 씬에서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듬이 있다. 바로 아프로비츠(Afrobeats)다. Beyoncé, Janelle Monáe 같은 베테랑 뮤지션들이 시도할 뿐만 아니라 Amaarae 같이 아예 이 장르를 정체성으로 삼는 신인 알앤비 뮤지션이 등장했다. 물론 나이지리아, 가나를 비롯한 아프리카 대륙에선 주류 음악으로 자리 잡혀있는 이 장르가 전혀 새로운 형식은 아니겠지만, 세계 음악 시장을 움직이는 미국에서 아프로비츠를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뮤지션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보인다. 사실 아프로비츠는 유행을 타는 장르로 보일 특징들이 있다. 리듬적 개성이 강한 장르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변주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대중들이 금방 질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알앤비에 접목된다고 해서 그것이 알앤비 음악의 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이미 나이지리아에는 자체적인 씬이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로비츠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일이 의미 없진 않을 것이다. 이 장르와 접목된 미국 알앤비 뮤지션들의 좋은 작업물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떤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아프로비츠와 결합된 알앤비로 장르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지 기대가 된다. 


Amaarae - Reckless & Sweet


4. 마치며


알앤비 팬들에게 요즘 음악 시장의 형태는 많이 아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알앤비 스타가 미디어를 정복하고 그들의 음악이 차트를 석권하는 황금 같은 시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장르의 죽음을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알앤비 음악의 탄생이 곧 대중음악의 탄생과 동의어일 정도로 알앤비는 뿌리 깊고 생명력이 강한 장르다. 곧 알앤비를 구원할 영웅, 메시아가 등장할 거라는 믿음을 거둘 수는 없다. 2020년대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알앤비 장르 팬들은 절망보다는 기대감을 품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by 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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