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의 음악이 새롭게 들리는 이유
뉴진스 (NewJeans)의 2번째 EP [Get Up]의 발매 이후, 뉴진스는 현재의 K POP 시장에 빠져서는 안될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월 발매된 싱글 ‘Ditto’, ‘OMG’ 에 이어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차트 진입과 시카고에서 열린 Lollapalooza (롤라팔루자) 헤드라이너에 이르기까지, 뉴진스는 데뷔 1년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숨가쁘게 달려오며 국내를 넘어 전세계로 그 영향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여기도 뉴진스, 저기도 뉴진스, 그야말로 ‘뉴진스 신드롬’ 이다.
하지만 뉴진스가 이처럼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단순히 K POP의 높은 완성도 때문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당위성에 맞지 않는다. 수준 높은 퀄리티의 음악은 이미 뉴진스 이외에도 여러 그룹들이 이전부터 만들어왔으며, 국내 차트에서는 아이들 ((G)I-DLE)이나 아이브 (IVE) 등의 여러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상위에 있거나, 얼마 전 BTS 정국의 솔로 음반이 핫100 차트 1위에 진입하는 등 이미 K POP을 대표하는 많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美 유명 평론지 ‘Pitchfork (피치포크)’에서는 이들의 음악에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가장 높은 점수인 7.6점을 주었다. 이는 현재 K POP의 인지도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높은 수치이며, 최근 미국 빌보드 핫 100차트와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한 미국 컨트리 스타 Morgan Wallen의 앨범(4.1)과 Taylor Swift의 앨범(7.5)보다도 높다. 이들의 음악이 퀄리티를 넘어선,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기존 K POP 팬층 사이에서도 뉴진스의 음악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분명 좋다고 느끼는데, 지금까지 들어왔던 K POP 과는 그 결이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여러 플랫폼이나 매체 또한 이들의 음악을 ‘새롭다’는 말을 붙여 소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들의 음악이 ‘새롭다’는 인상을 받는 걸까?
최근, AI로 재구성한 보이스를 통해 아티스트의 곡을 커버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팝 아티스트 Bruno Mars가 커버한 뉴진스의 ‘hype boy’, 국내 R&B 아티스트 딘(Dean)이 커버한 ‘Seven’ 등 이미 알고 있던 곡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많은 소비자의 관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이후 무수히 많은 AI 커버 곡들이 플랫폼에 쏟아져나왔다. 특이했던 것은, K POP에서는 솔로 아티스트의 곡을 제외하면 타 아티스트들과 비교해서 뉴진스의 곡을 압도적으로 많이 커버했다는 점이다. 물론 뉴진스의 음악이 화제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를 들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솔로 아티스트들이 이들의 곡을 커버해도 ‘자연스럽게’ 들리기 때문이다.
AI 커버곡이 자연스럽게 들리기 위해서는 보컬의 진행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 유독 솔로 아티스트의 곡 커버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K POP의 경우, 곡의 구성이 다이나믹하고, 그만큼 다양한 보컬로 구성되어 있어 AI로 오롯이 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뉴진스의 경우 마찬가지로 여러 멤버들이 파트를 나눠 부르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보컬의 다이나믹이 타 그룹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전체적인 코드 진행 또한 단순한데, 뉴진스의 ‘Super Shy’의 경우, Gm7 코드와 Fm7 코드 2개로만 곡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멜론 차트 상위에 있는 경쟁그룹인 아이브 (IVE)의 ‘I AM’과 비교했을 때, 브릿지 구간에서만 해도 D-G-D/F#-Em 순서로 코드가 변화하다 보니 그 차이가 뚜렷하게 보인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뉴진스의 곡이 타 그룹에 비해 솔로 AI 커버가 용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차이가 발생했던 데에는 그간 K POP 그룹을 대표하는 주요 키워드가 ‘내가 최고’ 라는 메시지를 담은 나르시시즘이라는 이유도 큰 영향을 준다. 그룹에 따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그룹이 나르시시즘을 표현하고자 강렬한 퍼포먼스를 주로 내세우게 되었고, 하이라이트에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파트가 분절되고 각 파트마다 진행 방식이나 보컬의 편차, 심하게는 장르가 바뀌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뉴진스는 이와는 동떨어진 ‘자연스러움’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다. 파트별 편차가 크지 않고, 강한 고음이 없는 편안한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음악적 퍼포먼스보다 가사에 집중할 수 있고, 큰 호불호를 타지 않기 때문에 결국 많은 리스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의 완성으로 귀결될 수 있었다.
이번 EP [Get Up]의 러닝타임은 12분 13초, 트랙 별 평균 러닝타임이 2분 정도에 그친다. 이는 최근 음악들의 러닝타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눈에 띄는 짧은 구조이다. 송폼에서도 그 차이가 드러나는데, 뉴진스의 곡 대부분은 브릿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이라이트 구간 또한 2절 코러스에 귀속되어 그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이 ‘무드’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K POP이 ‘벌스 - 코러스 - 브릿지’ 순의 빌드업을 거쳐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감정이나 메세지를 오롯이 전달하는 서사 위주의 구조였다면, 뉴진스는 많은 것을 풀어내기보다 곡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공유한다.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냄으로써 곡의 구조는 짧아지게 되고, 리스너들에게 집약된 형태의 음악과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트랙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앞서 이야기한 부분과 마찬가지로 뉴진스의 곡은 비트 위에 2개 내지 4개 정도의 코드만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작법은 힙합이나 R&B 장르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데, 최소한의 요소를 가지고서 곡을 전개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루프의 구조를 띄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난 10년간 힙합 음악이 주류로 자리잡았던 K POP에서는 이와 같은 작법이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다인원의 퍼포먼스와 곡의 기승전결을 구성함에 따라 악기의 구성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 맥시멀한 사운드로 완성되는 K POP의 흐름과 다르게, 일관된 코드 구성처럼 각 트랙에 필요한 최소한의 악기 사운드만 붙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팝 음악과 유사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컨대 기존 K POP이 각 파트에 따른 여러 이미지들을 붙여가면서 이미지를 완성하고 있다면, 뉴진스의 음악은 미니멀한 구조로 시작부터 하나의 큰 이미지를 통째로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미니멀한 구성으로 곡 전체는 여유롭지만, 자칫 루즈하게 들릴 수 있는 문제를 러닝타임을 단축시킴으로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지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뉴진스의 치밀한 프로덕션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뉴진스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새로움’은 구조적인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흔히들 뉴진스의 음악을 감상했을 때 낯선 느낌을 받는 가장 큰 이유를 ‘해외 음악시장의 트렌드를 발빠르게 캐치해 기존 K POP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던 여러 장르의 비트를 가져왔기 때문’ 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뉴진스가 전개하는 음악을 ‘새로움’ 이라는 키워드로만 정의내리기에는 그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뉴진스가 ‘Ditto’에서 보여준 빠른 Jersey Club (저지클럽) 비트나, ‘Super Shy’에서 들리는 2-Step Garage (투스텝 개러지) 바탕의 사운드는 분명 지금의 리스너들에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에 없는 사운드를 도입한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Drum & Bass (드럼앤베이스) 를 기반으로 한 K POP 곡들은 종종 있어왔고, 당장에 Lil Uzi Vert의 ‘Just Wanna Rock’ 를 들어도 뉴진스의 음악과 어떤 뿌리를 같이하는지 한 번에 와닿지 않는다.
뉴진스는 단순히 트렌드를 가져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에 자신들만의 1%를 적절하게 섞어냈다. 기존의 Jersey Club (저지클럽)은 빠른 BPM 때문에 주로 퓨처리스틱한 분위기를 내거나, 댄서블한 무드를 드러내는 데 주력하는 음악에 가까웠다. 하지만 뉴진스는 공간감을 주는 EP와 힘을 뺀 보컬을 더해 몽환적인 ‘Ditto’를 만들어냈다. EP [Get Up]의 타이틀곡인 ‘ETA’ 또한 강렬한 브라스 사운드 샘플링이 가장 먼저 들어오지만, 정작 곡을 진행하는 코드는 차분하면서도 감성적이다. 이렇게 약간의 의외성을 가미해 기존 장르에 대한 인식을 깨고, ‘뉴진스만의’ 독창적인 음악으로 융화시킨다.
그래서인지 전문가들은 이들의 음악 앞에 필드를 벗어났다는 뜻인 ‘Left-field’ (레프트필드)를 붙여 설명하고 있다. 기존 K POP이 컨셉과 음악을 일치시키는 단편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면, 뉴진스는 여기에 약간의 의외성을 덧붙여 곡에 입체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들의 음악을 새롭다고 느끼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에서의 차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져왔냐는 것보다 ‘어떻게’ 가져왔냐는 사실이다.
2022년 데뷔 이후 2번째 EP [Get Up]에 이르기까지, 뉴진스의 음악적 성공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의의는 ‘음악시장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는 메시지의 방증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된다. 국내에서도 피프티피프티 (FIFTY FIFTY) 나 트리플에스 (TripleS) 등 ‘포스트 뉴진스’로 일컫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으며, 국내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장르는 보다 다양해지고, 경계는 점차 흐려졌다. 뉴진스의 음악적 시도가 단순한 그룹의 히트를 넘어서 씬의 생태계나 작업문화까지 바꿔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모 평론가는 "뉴진스의 성공은 결국 좋은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이들의 성공을 단순히 '좋고 나쁨'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이야기했듯 현재 K POP 시장의 다른 그룹에서도 양질의 퀄리티를 가진 음악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하지만 뉴진스는 단순히 ‘좋은 음악’을 넘어 그 음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만들어냈고, 1%의 의외성을 더해 K POP 영역의 확장을 이루어냈다. 여기에 민희진을 비롯한 ADOR 사단의 허를 찌르는 마케팅과 프로모션까지 결합되었으니, 어찌 보면 뉴진스의 성공은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03/0011992810
https://weekly.donga.com/3/all/11/4319392/1
https://www.dispatch.co.kr/2259094
by 데이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