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 아일리원, 전소미, HOME, Lauv 외
frank : 밴드를 잘 모르는 사람도 ‘넬’은 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은 안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겪는 딜레마지만, 넬의 엄청난 인지도를 생각하면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짐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로부터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넬의 대표곡은 ‘기억을 걷는 시간’이다. 그만큼 대단한 곡을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곡으로 대중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당연히 공존할 것이다.
이번 싱글 ‘Wanderer’에서도 비슷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파워풀하고 미니멀한 기타 리프와 진행으로 곡의 기반을 심플하게 완성하고, 여기에 김종완의 사기적인 보컬이 더해지며 ‘넬의 음악’이 완성된다. 누구나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깔끔한 곡이다. 시기를 고려했을 때 페스티벌 곡으로도 좋은 호응을 얻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패턴의 ‘답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넬은 오래된 팀이다. 새로운 시도보다는 팬들이 좋아하고 자신들도 잘하는, 익숙한 음악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맞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컬에 대한 높은 의존도 대비 점점 단순해져 가는 사운드를 보며, 보컬과 세션 모두 존재감이 확실했던 과거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또 다른 ‘기억을 걷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 그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방황을 시작하는 것 아닐까.
만돌 : 걸그룹 경쟁은 케이팝 초창기(1998년 S.E.S., 핑클)부터 정말 뜨거웠다. 그리고 하나의 공식처럼 세대별로 “청순”을 주 키워드로 잡은 걸그룹이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구체적인 예시로, 요정돌의 시작 S.E.S. 그리고 바통을 받은 에이핑크 마지막으로 청순에 몽환을 추가한 오마이걸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청순을 콘셉트로 한 그룹들은 강인함이나 섹시한 콘셉트를 가진 타 경쟁그룹과는 다른 큰 특징이 또 하나 있는데, 해외 시장을 겨냥하는 다국적 그룹이 아닌 전원 한국인 그룹으로 팀을 구성하는 것처럼 국내 시장을 메인 타겟으로 삼는 것이다. 아일리원은 그런 “청순”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2022년의 데뷔한 걸그룹이다.
이전 앨범의 타이틀 ‘별꽃동화’를 들었을 때 너무 반가운 느낌을 받았다. 라붐의 ‘겨울동화’를 비롯한 에이프릴의 ‘봄의 나라 이야기’ 그리고 오마이걸의 ‘비밀정원’처럼 2016~18년 연말, 연초를 강타한 노래들과 비슷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의 노래는 최근 케이팝 씬에서 쉽게 듣기 힘들었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 앨범 타이틀 ‘MY COLOR’ 역시 저번 스토리의 확장판이며, 몽환적인 분위기에 청순한 느낌이 나는 무드가 큰 특징이다.
한 분야에 정상까지 올랐던 사람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새로운 신예가 등장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케이팝 씬에서도 에이핑크. 러블리즈, 여자친구, 오마이걸 등 큰 인기를 얻었던 그룹들이 해체하거나 주춤하는 사이 비슷한 콘셉트의 신예 첫사랑, 아일리원이 데뷔해 왕좌의 공백을 노리고 있다. 언론에서는 첫사랑을 러블리즈로 아일리원을 오마이걸로 비유하곤 한다. 첫사랑은 딱 18살 나이의 느끼는 청순을 그리고 아일리원은 청순+몽환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일리원에게는 단순한 콘셉트를 넘어서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니, 그것은 청순 걸그룹 최초로 그룹 내 외국인 멤버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원래 대중성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콘셉트에서 이러한 도전은 참신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과연 잘 될까? 이미지로 승부를 본다는 것은 음악 또는 세계관을 경시한다는 말과 같은데 그렇게 해서 해외 팬들의 수준 높은 눈과 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녀들의 여정 중 가장 큰 걸림돌은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카니 : 테크토닉은 테크노와 일렉트로닉의 합성어로, 한국에서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맞춰서 추는 춤을 지칭한다. k-pop과 테크토닉은 물과 기름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Fast Forward’에 결합된 테크토닉은 꽤나 세련된 무드를 보여준다. ‘Fast Forward’는 EDM 딥하우스 장르로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안무를 구사하는 테크토닉이 포인트인 곡이기 때문에 퍼포먼스를 함께 감상했을 때 진가가 발휘되고 중독성 또한 가중된다.
[GAME PLAN]은 데뷔곡 ‘BIRTHDAY’가 떠오르는 ‘금금금’, ‘Watermelon’에 이은 과일 시리즈 ‘자두’, 직설화법으로 화제가 된 자작곡 ‘개별로’와 ‘The Way’까지 5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앨범으로 곡마다 독보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어 한 곡 한 곡이 싱글 앨범 같은 느낌을 준다. 그로 인해 전곡을 플레이했을 때 오는 이질감은 지울 수 없지만 [XOXO]와 비슷한 하이틴 팝스타일의 앨범으로 컴백할 것이라는 뻔한 클리셰를 버리고 컨셉추얼 한 곡을 시도한 점으로 충분히 상쇄 가능한 점이다.
좋은 앨범의 가치는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능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GAME PLAN]의 경우가 그렇다. 신곡을 듣자마자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른다. 특히 ‘금금금’에서 보여준 전소미의 랩핑이 그 기대감을 키우기 충분했다. 하지만 더 무겁게 달라붙는 아쉬움은 ‘금금금’을 선공개했다면 앨범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면서 상반되는 분위기의 타이틀 곡이 좀 더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더불어 긴 공백기 또한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이번 앨범만 봐도 창작에 대한 고민과 주체적으로 앨범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 노력이 크레딧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에 긴 텀을 두고 활동하기보다는 지속적인 음원 발매로 크레딧의 입지를 더 굳건하게 다지고, 전소미만의 무드로 채워나가는 것이 시기에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frank : 완벽하게 새로운 음악은 존재할 수 없다. 그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어떻게 편집해서 어떻게 아티스트의 캐릭터에 맞게 녹여낼 것인지에 방점이 찍힌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참신하다고 이야기하는 장기하의 음악도 결국 데이비드 번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이러한 면에서 오키나와 베이스의 3인조 밴드 HOME의 음악은 정석에 가깝게 느껴진다. MV에서도 보이는 오키나와 현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80년대 스타일의 기타 사운드로 절묘하게 풀어냈으며, 이것만으로는 살짝 아쉬웠던 2%를 보컬의 유니크한 톤이 채워주고 있다. 그리고 아직 첫 곡일 뿐이지만 인디록과 팝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장르적 중립성과, 100% 영어 가사로 쓰였다는 점도 HOME의 음악이 어떤 시장을 타겟팅하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대단히 센세이션 하진 않지만 밴드의 첫 단추로써는 나쁘지 않았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 어떤 이미지를 쌓아갈지 더욱 기대되는 스타일리시한 데뷔작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보컬의 유니크한 캐릭터, 그리고 앨범 커버부터 영상까지 모두 친구들과 작업한다는 점에서 국내의 밴드 혁오와 다다이즘 크루의 관계가 떠오르기도 한다(보컬이 스킨헤드라는 점까지도…). 이들의 음악은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뻔함에도 멋있을 수 있다는 것은 뮤지션에게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만돌 : 라우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천재 아티스트? 싱어송라이터? 모두 맞다. 하지만 그를 단 한 줄로 요약하면 훈훈한 교회 오빠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날카롭지 않고 편안한 인상을 주는 특유의 비주얼도 그 이유 중 하나일 테지만, 이런 느낌을 주는 결정적인 이유는 감미로운 음색에 있다. 어쿠스틱 고백 노래를 하기에 최적화된 보이스 그리고 ‘I Like Me Better’와 같은 곡을 라이브 할 때 그 무대 위에서의 여유로운 제스처나 시선 처리와 같은 디테일은 마치 품격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편한 동네 오빠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 ‘Love U Like That’에서 역시 그는 비슷한 인상을 준다. 개인적으로 살짝 연하남의 순수하고 본인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어설픔을 스토리로 담았다고 느꼈다. “내 가슴 위로 네 손이 올라올 때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어.” 이런 가사를 통해 사랑이 서툰 연하남의 기분을 노골적으로 담았으며, 노래 중간마다 “Oh my god”을 강조해 자기감정에 성숙하지 못한 상황을 표현했다. 라우브는 더더욱 큰 눈에 귀여운 비주얼까지 지녔기에 이런 스토리는 리스너들에게 와닿기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뮤직비디오가 아닌, 오피셜 비주얼 영상을 선보인 것은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우선 색감에 관해 얘기하면 몽환적 그리고 감미로움을 보다 극대화하기 위해 연보라색으로 초반 분위기를 잘 잡았다. 또한 다각도에서 눈과 얼굴을 클로즈업한 작은 컷으로 프레임을 꾸민 것은 평소 라우브의 훈훈한 비주얼을 좋아하는 대중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이러한 콘텐츠 역시 하나의 마케팅이다. 그렇기에 노래의 무드에 맞는 그리고 아티스트의 강점을 잘 살린 이번 비주얼 영상은 큰 흥미를 유발했다.
카니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팝의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음악성을 보여주는 Sigrid는 뚜렷하게 개성을 가지는 아티스트라기보다는 다채로움이 내포되어 있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서울재즈페스티벌 2023 공연에서 넘쳐흐르는 자유분방함과 Sigrid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어 노래에 맞춰 추는 막춤까지 사랑스러운 아티스트로 입각되었다. 특히 라이브에서 들려주는 보컬의 기량은 단전 속에서 끌어다 올리는 듯한 깊이를 보여줘 라이브에서 더 빛나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발매된 ‘The Hype’는 Sigrid만의 자유분방한 면모가 제대로 표현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지리스닝에 초점을 맞춘 팝 락 장르로 막힘없는 보컬의 울림이 시원한 여름 분위기를 조성한다. 인트로에서 ‘In your dreams’하고 툭 던지며 시작되는 점과 킥 드럼 비트를 중심으로 ‘Tell me’하고 터지는 청량함이 매력적인 곡이다. 전형적인 팝 구성을 띄고 있지만 마지막 코러스가 끝나고 신스 사운드가 고조되면서 슬로우 모션처럼 흘러가는 독특한 엔딩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싱글을 연달아 발매한 후 곡들을 묶어 정규앨범을 발매했던 그동안의 행보를 보았을 때, ‘The Hype’는 다음 앨범을 위한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만 정규 2집 [How To Let Go]가 다채로움에 집중한 나머지 트랙 밸런스가 무너져버렸다는 점을 보았을 때, 차후 발매되는 앨범에서는 ‘The Hype’가 담고 있는 Sigrid의 자유분방함을 이어가 적어도 ‘Plot Twist’나 ‘Don’t Kill My Vibe’ 같은 신스 사운드에 청량감을 담은 곡들로 유기성 있게 앨범을 완성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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