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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Sep 04. 2023

4명이 함께 넘어선 단단한 벽

f(x) 정규 4집 [4 Walls - The 4th Album]

f(x)(에프엑스)는 2009년에 데뷔한 팝댄스 그룹(공식 명칭이 이렇다.)으로, SM엔터테인먼트에서 소녀시대 이후 내놓은 걸그룹이다. 대형기획사 SM, 그리고 압도적인 대중성을 자랑했던 소녀시대를 생각하면 에프엑스의 활동 방향성은 굉장히 독특했다. 


데뷔곡 ‘라차타’의 ‘LA LA 이렇게 chA chA chA 로 AH! 신난다고 야 라차 라차 타타’부터 가사에 대한 대중들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 이후에도 명확하게 ‘언니’를 외치는 ‘NU 예삐오’, 상대를 ‘조각조각 땃따따’ 부수고 ‘맘에 들게 다시 조립’하는 ‘피노키오’, ‘전 기 충 격’의 4행시를 이용한 ‘Electric Shock’ 등 지금 봐도 특이한 가사의 음악으로 활동했다. 가사의 의미 전달보다는 발음 디자인을 최대한 활용해 음악의 개성을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에는 ‘너무 뇌절’이라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으나(물론 그땐 뇌절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탄탄한 구성의 정규 앨범들과 일렉트로닉을 적극 활용한 음악으로 매니악한 리스너 층을 확보했고, 크리스탈, 설리 등 대중성 높은 멤버들을 통해 안정적인 팬덤 기조 형성이 가능했다. SM 내부에서도, K-POP 씬에서도 다른 팀들과의 차별화가 명확한 경쟁력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정규 3집 [Red Light] 활동 이후 에프엑스에겐 풀어야 할 큰 숙제가 남겨졌다. 멤버 ‘설리’가 활동 중지 이후 탈퇴 절차를 밟았고, 후배 걸그룹인 레드벨벳이 ‘Ice Cream Cake’와 ‘Dumb Dumb’으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시기였기 때문에 팀의 안정성을 되찾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결국 1년이 넘는 공백기를 견딘 후, 2015년 하반기에 정규 4집 [4 Walls]를 발매하게 된다. 


f(x) [4 Walls - The 4th Album] Teaser Photo


SM은 에프엑스가 여전히 단단하다는 걸 알리는 게 우선이었다. 4명의 멤버, 4번째 정규 앨범, ‘4 Walls’라는 앨범명으로 노골적으로 ‘4’라는 키워드를 강조했고, 갤러리에 4개의 벽면을 활용한 전시를 진행하는 등 4인조로 개편된 에프엑스를 각인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팬들을 물론 대중들도 4인조 에프엑스를 향한 기대와 응원을 드러냈고,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컴백을 치를 수 있었다.

[4 WALLS] AN EXHIBIT 포스터


‘4 Walls’는 에프엑스 음악의 기조인 일렉트로닉을 이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 곡이다. 더우면 까만 긴 옷을 입고 ('Hot Summer'), 전류들이 몸을 타고 흘러 다니는 ('Electric Shock') 어디로 튈지 모르던 가사에서 갑작스레 사랑에 대한 감정을 진지하게 고찰한다.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함께 멤버들의 보컬까지 성숙해졌으며 ‘사방의 벽에 둘러싸인 사랑’이라는 심오한 가사와 잘 어우러진다.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연출이 고급스러운 향수를 떠오르게 하는 곡이다. 2014년의 3집 앨범 [Red Light]도 ‘첫 사랑니’의 재기 발랄함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무거운 메시지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작품이었지만, 리스너의 입장에선 혼란스럽고 어려운 음악이었다. 


[4 Walls - The 4th Album] 트랙리스트

런던노이즈의 하우스 ‘View (샤이니)’로 한차례 재미를 봤던 SM은 곧 에프엑스라는 훌륭한 소화제를 통해 더욱 본격적으로 하우스와 라운지 음악에 박차를 가했다. ‘4 Walls’와 ‘Rude Love’는 하우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비트와 베이스가 강렬한 곡으로, 장르 자체의 매력을 잘 살리면서도 멜로디는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가요에서는 흔히 들을 수 없는 사운드였으며, 가요에서 장르 음악으로 영역을 넓히는, 당시 아이돌의 명확한 한계를 한 걸음 앞선 성과였다. 사랑스러운 감정과 깜찍한 가사를 접목시킨 ‘Glitter’와 ‘X’,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는 ‘Papi’와 ‘Cash Me Out’은 일렉트로닉 음악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해 주고, 마침내 ‘When I’m Alone’에 이르며 ‘4 Walls’의 몽환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한 번 더 경험해 나름의 수미상관을 갖춘다.


SM의 기획과 곡 수집 능력도 놀랍지만, 원래 이런 음악을 해오던 것처럼 능수능란한 플레이를 보이는 에프엑스 멤버들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항상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크리스탈은 도입부나 후렴에서 여러 킬링파트를 훌륭히 소화하고, 무대 퍼포먼스에서도 곡의 분위기를 정확히 표현하는 연기력을 보인다. 설리의 몫이었던 verse와 후렴의 교량 역할은 그대로 빅토리아에게 인계되었고, 엠버는 한국어와 영어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더욱 적극적으로 랩을 보여준다. 데뷔 초 감탄사나 챈트 정도로만 활용되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루나는 전부터 탄탄한 발성을 자랑하는 멤버이긴 했지만, 이전보다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가창하며 곡을 이끈다. 당시 적지 않은 연차이던 팀답게 음악을 표현하는 데에 안정감이 있었다.


‘4 Walls’의 뮤직비디오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돌 뮤직비디오라면 으레 멤버들의 표정 연기와 화려한 안무, 다양한 착장으로 이목을 끌어야 하지만, 신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 음악을 위해 뮤직비디오는 스토리 위주로 진행하며 존재감을 양보한다. 비디오와 오디오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당시) 가장 큰 기획사였던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이런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건 흥미롭게 느껴진다.


에프엑스는 이 앨범을 통해 꽤 중요한 포지션이었던 멤버의 이탈마저 팀의 진일보로 이겨냈고, 이미 정상에 오른 아이돌이 어떻게 그 고리타분한 벽을 깨고 나아갈 수 있는지 음악으로 제시했다. 당사자가 아니므로 왜 [4 Walls]가 마지막 앨범이어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의미 있는 수작을 끝으로 팀의 활동이 멈춰 버린 건 너무 아쉽다. 


이 앨범이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이전의 에프엑스가 가요계에서 기묘한 모험을 자처했었기 때문이다.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던 그 시도들은 허투루 쌓이지 않았고, 비로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인 ‘All Mine’의 가사처럼, 에프엑스의 음악이 “눈을 감아도 영원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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