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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Sep 09. 2023

그래서 재즈가 무엇인가요?

재즈를 상징하는 단어 블루 이야기


유튜브가 쏘아 올린 꽤나 큰 공


한동안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영상이 국내 유튜브 생태계를 장악했다. 지난 1976년 엘라 피츠제럴드와 멜 토메가 그래미 어워드에서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스캣으로 답을 대신했던 퍼포먼스가 오늘날 밈이 되어 다시금 주목받은 것이었다. 물론 재미를 위해 의도된 상황이었지만, 이처럼 아티스트가 개인적인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재즈는 그만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재즈를 상징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루이 암스트롱마저 "만일 당신이 재즈가 무엇이냐고 물어야 한다면, 당신은 재즈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재즈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미 어워즈 원본 영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존재한다. 쳇 베이커의 인생을 다룬 영화 'Born to be Blue', 미국의 대표적인 재즈 레이블 'Blue Note Records', 뉴욕의 유명 재즈 클럽 'Blue Note'에서도 볼 수 있듯이, 블루(Blue)라는 단어는 재즈사를 통틀어서 꾸준하게 사랑받아왔다. 명확한 정의가 없는 재즈이지만 다행히도 블루라는 키워드만큼은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재즈에서 블루의 의미는 무엇일까? 재즈를 조금이나마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하도록 도와주는 힌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서 블루(Blue)는 파란색보다 우울함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재즈와 블루스의 상관관계


우선 재즈는 태생적으로 블루스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 지역을 중심으로 스페인계 또는 프랑스계 흑인들(Creole)의 음악이었던 래그타임에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음악이었던 블루스가 결합되면서 재즈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킹 올리버 크레올 재즈 밴드의 'Dipper Mouth Blues'는, 래그타임의 경쾌하고 역동적인 리듬 위에 블루스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더해진 구성을 바탕으로 1920년대 초기 재즈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 Dipper Mouth Blues

초기 재즈를 지나 1930년대에는 듀크 엘링턴을 중심으로 빅 밴드 구성을 통해 흥겹게 춤을 출 수 있는 스타일의 스윙 재즈가, 1940년대에는 찰리 파커를 중심으로 소규모 밴드를 통해 음악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는 비밥이, 그리고 1950년대에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중심으로 냉소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는 쿨 재즈와 아트 블래키를 중심으로 드러머의 역할을 강조하는 하드밥이 재즈를 이끌었다. 이처럼 재즈는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세부 장르로 변화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구조나 문법적인 부분에서는 블루스와 지속적으로 연관성을 유지해 왔다.

시대를 대표하는 재즈 아티스트들





재즈스러운 음계 블루 노트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는 블루 노트라고 할 수 있다. 사전적으로는 블루스 스케일에서 특정음을 반음 낮춰 연주하는 독특한 음계 정도로 설명되지만, 결국 곡의 진행에서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블루 노트는 재즈가 특유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장르의 원곡을 재즈로 편곡한 버전을 들어보면, 특정음에서 직관적으로 "재즈스럽다"라는 생각을 유발하면서 원곡과는 분명 다른 느낌을 주는 부분들이 있다. (ex. 영상 9:13~9:16 부분) 자칫 불협화음처럼 들릴 수 있는 블루 노트가 기존 음들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 생동적이면서도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쿨 재즈처럼 느린 템포의 잔잔한 스타일에서만 아니라 스윙이나 하드밥처럼 비교적 빠르고 격렬한 스타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블루 노트가 있었기 때문에 재즈는 여려 형태로 변화하면서도 장르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뉴진스 재즈 버전 플레이리스트





[Kind of Blue]에서의 블루


재즈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받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에서도 블루 노트는 장르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선 [Kind of Blue]가 위대한 이유를 논할 때마다 ‘모달 재즈의 효시’라는 수식어가 등장한다. 정해진 코드를 화려하고 복잡하게 구사하는 기존 재즈의 규칙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코드만을 가지고 스케일을 활용해 다양한 선율을 창조하는 새로운 규칙을 정립한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아무 의미도 없는 현란한 코드로 가득 찬 연주, 나는 더 이상 그런 연주를 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을 만큼 자율성이 제한되는 것에 회의적이었고, 앨범 녹음 당시에도 정해진 테마 없이 ‘Flamenco Sketches’를 제외한 모든 트랙을 원테이크로 녹음했다. 예를 들어 앨범의 첫 트랙이자 제목부터 반항적인 ‘So What’에서는, 베이스의 리드로 테마라고 하기도 어려울 만큼 단순한 라인을 반복하다가 트럼펫 - 테너 색소폰 – 알토 색소폰 – 피아노가 자신들의 즉흥성을 한숨에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여백을 완벽하게 채웠다.

Miles Davis – So What

전통 블루스인 ‘Freddie Freeloader’를 제외한 모든 트랙은 이처럼 연주자들의 온전한 창조성에 몸을 맡긴 채 전혀 정형화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Kind of Blue]를 들어보면 트랙 전체가 정서적으로 연결된 듯한 통일감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So What’의 긴장감이 ‘Blue In Green’의 고요함과 쓸쓸함으로 이어지고, ‘All Blues’의 혼란스러움을 거쳐 ‘Flamenco Sketches’에서 비로소 편안함에 이른듯하다. 앨범명처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정확히 ‘어느 정도’로 트랙마다 섬세하게 있는 블루 노트가, 모달 재즈의 무한한 자유로움 속에서 쿨 재즈의 냉소적인 정체성을 은밀하게 지탱해 주는 것이다. 덕분에 [Kind of Blue]는 모달 재즈의 예술성과 쿨 재즈의 대중성을 모두 만족할 수 있었다. 재즈사에서 가장 실험적인 앨범으로 평가받는 동시에 재즈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며


정리하면 서정적인 블루스의 영향을 바탕으로 블루 노트는 재즈에서 특유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음악적 문법이 되었다. 그리고 재즈가 다양한 변화에 직면할 때마다 장르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블루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재즈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결국 재즈에서 블루의 의미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암울한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불렀던 초기 블루스의 치유 정신과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말해 블루스 스케일이나 블루 노트 같은 화성학적 요소들을 통해 고유의 정신이 음악에 스며들면서 장르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블루를 파란색보다 우울함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언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Topsy Chapman – Roll Jordan Roll

문득 뉴진스의 앨범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린 프로듀서 250이 오랜 시간 한국인의 정신인 '뽕'이 무엇인지를 연구한 끝에 "뭔가 슬픔이 있지만 어쨌든 조금은 웃긴 거죠"라는 답을 내린 것이 떠올랐다. 물론 블루의 정확한 의미나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 둘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들이 느껴진다. 어쩌면 재즈란 "뭔가 우울함(Blue)이 있지만 어쨌든 조금은 푸른(Blue) 희망도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by J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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