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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Sep 04. 2023

컨트리로 촉발된 이념 대리전

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

미국을 상징하는 장르 중 하나인 힙합이 올해 빌보드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을 상징하는 또 다른 장르는 이와 반대로 상당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빌보드 HOT 100의 1위, 2위, 3위를 휩쓸며 그 기세를 자랑하고 있는 컨트리가 바로 그것이다. 전례가 없던 일이긴 하지만 특히 이번 컨트리의 돌풍이 인상적인 이유는 컨트리가 비교적 외면받았던 장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백인, 보수, 남성 등으로 요약되는 정치적 흐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모건 월렌 - 'Last Night'

그 흐름은 ‘Last Night’으로 빌보드 HOT 100 1위에 올랐던 모건 월렌에게서 시작되었다. 모건 월렌은 사적인 모임에서 ‘N word’를 사용한 영상이 퍼지며 흑인 비하 논란이 일었던 아티스트이다. 이에 대중과 시장으로부터 완전히 외면받으며 커리어가 끝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최근 Cancel Culture, Black Lives Matter 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PC주의에 큰 염증을 느낀 백인 보수층이 결집하며 그를 폭발적으로 밀어주기 시작했다. 이에 모건 월렌의 ‘Last Night’은 총 16주간 HOT 100 1위를 달성하며 사실상 올해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올리버 앤소니 - 'Rich Men North of Richmond'

이러한 상황 속 뒤이어 HOT 100 1위를 달성한 제이슨 알딘은 ‘Try That In A Small Town’의 가사에서 도시의 모순적 행동과 총기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며 그 양상에 실로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현재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올리버 앤소니의 ‘Rich Men North of Richmond’가 HOT 100 1위에 오르며, 특정 이념과 거리가 먼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서로를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등 미국 사회 내의 갑론을박을 촉발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멀리서 보기에 컨트리의 돌풍은 미국의 전통 음악이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보기 좋은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음악이 그저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뜨거운 이념 대리전이 그 실상인 셈이다.


미국과 비슷한 상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임영웅을 위시로 전통 음악이라 할 만한 트로트가 나름의 돌풍을 일으킨 전적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사례처럼 국내에서도 트로트 등의 특정 장르에 정치적 색이 입혀질 가능성이 있을까?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다인종, 다문화 국가이다. PC주의와 그에 대한 반발 역시 미국이 다인종 사회라는 점에서 그들에게 더 큰 담론으로 작용한다. 인종, 지역별로 정치적 성향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점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특징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며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옅어지고 있긴 하지만, 미국과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나마 지역 갈등이 존재하는 전라도와 경상도 역시 미국과는 다르게 행정 구역 상 서로 붙어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리, 인문학적 특성상 미국의 현상이 국내에 이식될 가능성은 굉장히 낮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 선거 유세에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주 기본적인 대중의 성향이 그 가능성을 기초부터 차단할 것이라 본다.



더해서 국내에 강력한 규제가 있었다는 점도 음악과 정치가 결합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음반 사전심의는 1996년에 사라져 철폐된 지 3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1995년의 사례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은 과격한 가사와 부정적인 현실을 그렸다는 단순한 이유로 발매가 불허되었다. 해당 사례만으로도 정치적 색채를 가진 음반에 대한 처우를 지레짐작할 만하다. 국내 대중음악은 자연스레 정치적 성향과는 거리가 먼 보편적, 상업적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미국 내 컨트리의 돌풍은 현재 미국 내부에 드리워진 커다란 크랙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갈등이 문화 영역까지 번지지 않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중이 가진 하나의 역할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by 동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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