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3년 9월 1주)

RIIZE, V, 화사, Griff, Oliva Rodrigo 외

by 고멘트

"애피타이저로 딱"


1. RIIZE – [Get A Guitar]

: SM엔터테인먼트에서 NCT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보이그룹이다. 팀의 각인과 성장에는 음악이나 멤버들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사실 제일 궁금했던 부분은 'NCT'와의 차별점이다. 가장 기대되면서도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


‘Get A Guitar’와 ‘Memories’는 근래 SM에서 발매되었던 음악들 중 가장 가볍고 즐기기 쉽다. 그 어떤 복잡한 세계관도, 이해하기 어려운 가사도, 흔히 말하는 '유영진 타임'도 없다. 앨범 소개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이모셔널 팝'이나 '성장사', '일상의 경험' 등의 워딩을 보면, 아이돌의 새로운 콘셉트나 기이한 방향성을 제시하던 SM이 이번만큼은 현재의 시류를 적절히 의식한 듯하다. 두 곡 모두 레트로한 신시와 기타 사운드를 활용했으며, 멤버들 간의 추억을 감성적인 가사로 담아냈다. 두 곡이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각각의 뚜렷한 존재감보다는 하나의 싱글 같은 모양새를 띤다.


다행히도 NCT의 네오한 힙합과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지만, 샤이니의 청량감이나 엔시티드림의 성장 서사 연출과는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두었을 뿐이다. 차세대 뉴 보이그룹의 산뜻한 시작이라는 측면에서는 적격인 싱글이지만, 오직 'RIIZE'만의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다음 작품의 부담감이 커져버렸다.





"FRNK 재즈 페스티벌"


2. V - [Layover]

Jason : [Layover]는 BTS로서의 화려함을 덜어내고 뷔 내면의 담백함에 천천히 집중한 앨범이다.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의 팝 R&B 장르에 재즈 요소가 가미되면서 차분한 분위기를 세련되게 완성했다. 먼저 영화 'A Rainy Day In New York'을 연상케 하는 첫 트랙 ‘Rainy Days’는 재즈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앨범 전체에 입히는 역할을 했다. 이어 ‘Blue’와 ‘Love Me Again’은 묘하게 우울하면서도 생동적인 질감을 트렌디하게 표현했고, ‘Slow Dancing’은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듯한 감상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절정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고급스러운 플루트 사운드가 일품이었다.


ADOR의 민희진 대표가 [Layover]의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뉴진스의 앨범을 통해 여러 차례 협업해 온 작곡가 FRNK가 함께 앨범에 참여했다. 래퍼 김심야와 듀오로 활동하는 XXX의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면, FRNK의 작법은 본래 힙합 기반의 변칙적인 진행과 날카로운 사운드가 특징이다. 이를 바탕으로 [KYOMI]는 전위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며 힙합 씬에 신선한 충격을 일으켰고, [LANGUAGE]는 한국 힙합 최초로 권위 있는 음악 평론 매체 '피치포크'에 리뷰되는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물론 FRNK가 특정 스타일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뉴진스의 ‘Cookie’와 ‘OMG’에서는 트랩 비트와 신스 사운드의 조화로 캐치함을 한껏 뽐냈다. 예술성이든 대중성이든 음악은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것을 보란 듯이 퀄리티로 증명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ayover]에서의 FRNK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치 '힘을 빼는 방법'을 터득한 듯하기 때문이다. 심히 변칙적이거나 대단히 캐치한 여타 음악적 요소들 없이 순수하게 감성만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FRNK가 참여한 ‘Blue’, ‘Love Me Again’, ‘Slow Dancing’ 모두 심플한 진행과 부드러운 사운드 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몽환적인 재즈 요소가 뷔의 섬세한 보컬과도 조화를 이루면서 서정적인 감성을 극대화했다. 심지어 인터뷰에서 그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일 만큼 집착해서 들었지만 따라 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 프로듀서 제이 딜라 특유의 로파이한 질감이 은연중에 떠오르기도 한다. 때문에 [Layover]에서의 FRNK는 힘을 빼고 본질에 가까워지면서 한 단계 더 높은 레벨로 올라섰다고 느껴진다. 과장 조금 보태면 머지않아 재즈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거장' FRNK의 이름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대로 가면 퀸의 자리가 위험합니다."


3. 화사 (HWASA) – ‘I Love My Body’

율무 : Lizzo와 Meghan Trainor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펑키한 뉴트로 기반의 자기애 메시지를 담은 음악들은 각종 매체를 타고 성공적으로 바이럴 되었고, 그 트렌드는 국내에도 정착했다. 어쩌면 여타 아이돌과 달리 성숙한 건강미를 갖춘 화사에게 가장 제격인 콘셉트일 수도 있어서일까. 피네이션은 이 서사를 주저 없이 선택하였다.


다크하고 묵직했던 이전 솔로 앨범과는 다르게 러블리하면서 힙한 콘셉트를 화사 특유의 끼로 소화하는 기조는 매우 선명하다. 프리 코러스까지 열심히 달리다가 코러스에서 힘을 툭 빼는 기법, 핑크 스타일링과 화려한 퍼포먼스, 화음을 강조하는 두왑과 트랩 비트는 고전적인 레트로 형식과 현대적인 사운드가 절충된 형태로써 합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 곡이 '화사 효과'를 일으킬 만한 '유니크한 팔과 다리'가 될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Maria’와 ‘I’m a 빛’에서 두드러졌던 화사의 독보적인 아우라는 그녀의 지독한 성찰을 통해 그녀만의 언어로 타인을 끌어안는 공감과 위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몸을 사랑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풀어내기 위해 1차원적으로 단순한 가사와 뻔한 복고풍 설계는 싸이가 불러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화사의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둥지와 새로운 변화의 길목에서 화사가 솔로 가수로서 유일무이한 입지를 이어 가기 위해서는 피네이션이 아닌 화사의 언어를 통해 내면을 살피는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 모두 사랑이 두렵잖아"


4. Griff – ‘Vertigo’

율무 :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One Foot in Front of the Other’에서 마음의 상처를 서서히 치유하는 과정을 외줄 타기에 비유했듯이 이번 신보를 통해 Griff는 높이 올라가는 것이 두려워 생긴 현기증으로부터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Griff 표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묵직한 신스가 강조되었고, 중국인 어머니로부터 영향받은 동양적인 타악기의 사용은 이전에 비해 한층 덜어내었다. 중저음의 울림을 극대화하여 덤덤하게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공유하는 동시에 슬픔을 절제하는 듯하다. 또한 Visualiser 영상에서 수시로 흔들리는 핸드헬드 기법과 슬로우 모션의 대비를 통해 그녀의 불안과 고뇌는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좁은 공간에 갇혀 피사체의 행동은 최소화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정처 없이 우주를 떠도는 듯하여 Griff의 혼란스러운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작사,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까지 가능한 신예 싱어송라이터가 대중의 공감을 보편적으로 자아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성숙한 관찰력으로 풀어낸 자아 표출이다. 그녀 또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두려움에 못 이겨 도망치는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고 다독여 준다. Griff는 깊은 사색의 결과로써 자칫 폭발적으로 터질 수 있는 일렉트로닉 음악 속에서도 한결같이 절제된 상태로 자신의 생각을 고백했다.





"완급 조절, 혹은 갈팡질팡"


5. Olivia Rodrigo – [GUTS]

: '드디어 팝스타가 하나 나오는구나'하는 기대부터, '그래 뭐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같은 꼬인 사람들까지 많은 리스너들이 로드리고의 앨범을 주목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려보자면, 앨범에 대한 평가는 갈리겠지만 로드리고는 아티스트로서 꽤 괜찮은 영역을 안정적으로 선점했다는 것이다.


첫 트랙부터 쏟아지는 기타 사운드는 공격적이다 못해 파괴적으로 느껴지고, 부담스럽기까지 한 로드리고의 샤우팅은 팝펑크 바이브를 제대로 연출한다. '너무 간 거 아니야?' 싶기도 하고 에이브릴라빈이 수시로 떠오르지만, 차세대 팝스타로서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적절한 도전이다.


싱글 단위의 감상은 만족스러우나 앨범 단위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초반부의 팝펑크와 중반부의 다운된 발라드가 그리 조화롭지 못해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한다. 발라드(혹은 새드 팝)라는 장르의 특성이라고 감안하기에는 곡 자체의 매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Sour]와 유사한 전개 방식과 발라드 트랙들의 기시감은 중반부를 다소 심심하게 만들었다. 날뛰는 감정선이 조금 정신없기도 하지만, 록과 발라드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역시 로큰롤은 꼰대가 틀어야 해"


6. The Rolling Stones – ‘Angry’

Jason : 록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입술 밖으로 혀를 내밀고 있는 이들의 로고는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롤링스톤스가 돌아왔다. 1960년대 비틀즈와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살아있는 전설 롤링스톤스는 18년 만에 신곡으로 채워진 정규 앨범 [Hackney Diamonds] 발매에 앞서 싱글 ‘Angry’를 공개했다. 도입에서부터 키스 리차드의 직선적인 기타 리프와 믹 재거의 날카로운 보이스가 전설의 귀환을 선포했다. 마치 "우리 올해 80인데 어디 우리보다 잘하는 사람 있어?"라는 듯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어지는 심플한 베이스 라인은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절제된 로큰롤 그루브를 만들었고, 절정에서 터지는 로니 우드의 역동적인 솔로 플레이는 코러스와 어우러지면서 자유롭고 반항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다시 말해 위대한 로큰롤 스타이자 진정한 악동 뮤지션인 롤링스톤스 자체를 상징하는 음악적 요소들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이들은 "그래 우리가 바로 롤링스톤스다"라는 것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롤링스톤스의 로고를 앰블럼으로 달고 있는 붉은색 빈티지 메르세데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달리면서 이들의 역사적인 모습들이 담겨있는 도로 위 광고판들을 지나쳤다. 롤링스톤스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올드 팬들에게는 과거의 영광을 영화처럼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세대에게는 전설로서 인사 제대로 한 번 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그 위에서 관능적인 매력을 마음껏 뽐내는 여자 주인공은 롤링스톤스 특유의 남성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마초성이 짙은 레트로 영화인 '탑건'이나 '캡틴 아메리카'처럼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의 존재가 남자 주인공들의 영웅적 기상을 한층 높이는 듯한 효과를 준 것이다.


키스 리차드가 "요즘 로큰롤의 문제점은 밴드들이 록(Rock)은 잘하지만 롤(Roll)은 못하는 데 있다"라고 했을 만큼, 롤링스톤스는 블루스의 성향이 짙은 정통 로큰롤 그루브를 한결같이 추구해 왔다. 화려한 기타 테크닉이나 폭발적인 가창력이 아닌 로큰롤 정신을 무엇보다 중시한 것이다. 고집스럽게 들리지만 ‘Angry’처럼 오직 담백하고 진한 그루브만으로도 음악의 깊은 맛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 이들의 완고함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사실 잔소리와 조언은 한 끗 차이인 법이다. 무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압도적인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는 '꼰대'들이 틀어주는 로큰롤이라면, 정통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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