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3년 9월 3주)

BOYNEXTDOOR, CRAVITY, 한로로, Cardi B 외

by 고멘트

"소년미 만점, 퀄리티 만점"


1. BOYNEXTDOOR – [WHY…]

: 걸그룹의 강세에 기세가 꺾인 보이그룹 씬에 빛을 밝혀줄 루키의 등장이다. 데뷔 싱글 발매 3개월 만에 EP 1집으로 컴백한 보이넥스트도어는 지난 데뷔 앨범보다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이틀 ‘뭣 같아’는 도입의 강렬한 드럼 필인과 기타 사운드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이후로도 락 사운드를 메인으로 가져가는데, UK개러지와 저지클럽 등의 전자음악 장르가 넘치는 최근의 케이팝 사이에서는 신선한 등장이었다. 또, 이 락 사운드는 단순히 가사에서 소년의 치기 어린 감정을 표현한다는 식의 뻔한 설정보다 더 소년미를 자아내는 전략적인 설계 같았다. 첫사랑의 실패에 혼란스러운 소년들이 모인 합주 같달까. 더 청춘스러운 느낌을 더해준다.


언급한 김에 가사에 대해서도 말해보자면, 데뷔 앨범부터 멤버들이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 점이 눈에 띈다. '입이 거친 게 싫다던 너 때문에 / 화가 나도 욕을 못 하고' 나 '그래 오히려 좋지 / 시원하게 욕이나 뱉지' 같은 참신하고 재치 있는 가사도 진짜 소년들의 시선이었기에 나올 수 있는 가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소소한 디테일들은 옆집 소년 같은 편하고 친근한 노래를 하겠다는 그룹 스토리텔링에도 잘 맞아떨어지며 퀄리티 높은 첫 EP를 완성시켰다. '지코의 아들들'의 수식어에 가려져 기세를 못 펴면 어쩌나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실력이나 퍼포먼스 등의 성장세로 보아 앞으로는 기대감만 키워도 될 것 같다.





"물론 안전도 중요하지만.."


2. CRAVITY - [SUN SEEKER]

등구 : 남성미를 강조하는 보이그룹들 사이에서 크래비티는 ‘Adrenaline’을 기점으로 청량을 주 콘셉트로 밀며 확실한 포지셔닝에 성공했다. 데뷔 초의 패기 넘치는 힙합을 포기하고 시도한 청량은 그룹의 이미지와 멤버들의 구성에 딱 맞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SUN SEEKER]는 그것이 크래비티에게 맞는 색깔임을 한번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앨범이다. 다시 말해, 안전한 선택이었다.


타이틀곡 ‘Ready or Not’은 블락비의 ‘HER’이나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를 연상시키는 익숙한 진행과 사운드를 보여준다.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도 꽤나 다채로워 보이지만, 이 또한 '밝고 신나는 댄스곡 - 힙합이나 락 등을 섞은 강렬한 곡 - 리드미컬한 팝' 순서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이전 앨범인 [NEW WAVE]와 [MASTER : PIECE]의 흐름과 거의 동일하다. 이미 대중들에게 청량돌로 각인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번 더 보장된 결과에 기댄 선택은 결국 또 똑같은 인상과 재미없는 감상만을 남겨놓을 뿐이다. 물론 앨범 판매량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고, 크래비티와 같은 그룹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안정적으로 팬덤을 구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원어스, 베리베리와 같은 동세대 그룹들이 여전히 아이돌 씬에 센세이셔널한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라이즈와 같은 신진 그룹들이 점차 데뷔하고 있는 시점에서 조금이나마 새로운 트라이 혹은 포지셔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남자 아이돌 씬이 서브컬처화되는 상황에서 크래비티가 'one of 청량' 그룹으로만 남기에는 아쉽다.


그렇지만 지금의 콘셉트가 크래비티에게 잘 맞는 옷인건 분명하다. 하지만 꼭 청량이라고 해서 밝고 에너제틱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발매 당시 팬들과 대중 모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멜론에서 많은 하트를 받은 ‘A to Z’의 00년대를 연상시키는 레트로한 모습이나, ‘Adrenaline’의 커플링곡으로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좋아하나봐’의 로맨틱한 무드처럼, '크래비티 표 청량'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시도가 더해진다면, 그들은 더욱 독보적인 그룹이 될 것이다.





"그 흔한 청춘 노래가 다르게 들리는 이유"


3. 한로로 – [이상비행]

교야 : 작년 봄, 아슬히 피어나 묵직한 인사를 건넨 솔로 아티스트 한로로가 첫 EP 앨범을 발매했다. 한로로의 말처럼 5장의 싱글이 '청춘의 불안함'이라는 공통된 메시지를 가졌지만, 제각기 모두 다른 색을 가진 한 드라마의 다른 에피소드들이었다면, EP 앨범 [이상비행]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한 편의 영화 같다. 그는 여전히 의문도 많고(‘이상비행’) 나아가기는커녕 중심을 잡는 것도 힘들 만큼 자신을 붙잡는 기억(‘해초’)과 어둡고 습한 감정과 싸우다(‘화해’, ‘금붕어’) 무던해지기까지 하지만(‘사랑하게 될 거야’), 이번 앨범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이 자신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함임을 선포한다. 남들의 시선에 갇혀 홀로 품어온 이상에 강렬하게 내달리는 일렉 기타를 기반으로 한 록 사운드를 달아 앞으로 나아갈, 혹은 날아갈 이상에 대해 노래하고 춤을 춘다.


특유의 간드러진 보컬과 청춘의 어두운 면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20대의 김윤아가 자연스레 떠오르는데, 특히 2번 트랙 ‘해초’의 간드러진 탑라인은 지지 않고 매일 살아남기 위해 거울 속 나에게 팬이라고 말하는 자우림의 ‘팬이야’를 연상시킨다. 청춘의 다른 이름 격인 불안정함, 두려움, 고민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가사와 비틀거리는 듯 울부짖는 듯 사랑스러움과 처절함을 오가는 매력적인 보컬 그리고 이를 단단히 받쳐주는 록 사운드까지. 그리고 첫 EP를 통해 두려움을 넘어 이상과 자유를 꿈꾸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자우림과 더불어 한로로 역시 의심의 여지없이 이상적인 록으로 정의하고 싶다. 그렇지만 2000년생인 한로로보다 더 긴 세월을 지낸 자우림은 더 이상 청춘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그들의 고통을 살피고 위로한다.


그렇다면 청춘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한로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떤 음악과 이야기를 하게 될까? 자우림처럼 어른으로서 한 발짝 떨어져 청춘을 마음을 살피고 매만져줄까? 혹은 페퍼톤스처럼 영원한 청춘의 세계를 구축할까? 쉬이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앨범 소개 글처럼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년배로서, 가장 푸르렀던 봄이 지나도 마음속에 오래도록 연착된 그의 음악을 꺼내보고 싶다. 장르를 막론하고 수없이 많은 아티스트들이 노래하는 것이 청춘이지만 한로로는 신중하게 엮어내 단번에 쉬이 읽히지 않을 수 있는 문장들을 음악으로서 직관적으로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더 마음에 묵직하게 가닿기에 오래도록 꺼내 듣고 싶다. 행운이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는 이걸 뇌절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4. Cardi B – ‘Bongos’

: 싱글 발매 전부터 ‘WAP’ 2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카디 비가 준 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틱톡용 음악이었다. 제목과 곡 스토리텔링인 '드럼처럼 놀아보자(…)'에 맞는 'bong bong' 가사를 반복시켜 비트를 만들고 그 위에 808 베이스, 퍼커션을 얹은 게 전부인 초미니멀한 멜로디지만 계속 반복되는 리듬이라 그런지 중독성을 끌어내긴 하는 느낌이다. 대중의 반응도 상당히 냉랭한 편인데, 그 이유가 N번째 반복되는 지나치게 외설적인 가사와 연출에 있다고 생각한다. ‘Bongos’도 역시 MV를 틀자마자 귀를 때리는 P 다섯 글자와 각양각색의 엉*이들의 향연은 한두 번이 아닌 마라맛임에도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가사는 더 들을 것도 없이 늘 하던 돈과 관계 이야기고, 추가된 점이 있다면 엉*이 자랑 정도다. 반복되는 깡통 같은 가사에 상업용으로 끌어올린 텐션에 대해 곳곳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데, 어느 리스너의 'P 다섯 글자 말고는 할 얘기가 없냐'는 댓글에 나 역시 조용히 공감을 눌렀다.


의외인 점은 이런 불만 속에서도 컨트리가 장악한 빌보드 차트에 14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카디 비와 메간의 협업이라는 마케팅으로 끌린 관심인지 곡에 대한 긍정의 반응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으나, 그저 신나고 중독성 있기만 하면(혹은 상업적 수완이 좋기만 하면) 좋은 음악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곡임은 확실하다. 처음엔 그의 이런 당당하고 직설적인 모습이 새롭고 아이코닉해 보였으나, 같은 이야기를 멜로디만 바꿔 3절, 4절까지 가니 되려 그 이미지가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제 그만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느 날 현관으로 재즈 팝스타가 들어왔다"


5. Laufey – [Bewitched]

교야 : 고민이 깊었다. 대중음악 씬에서는 철저히 비주류인 재즈 아티스트의 신보(Laufey – ‘From The Start’)가 무서운 성장세로 1억 2천만 스트리밍을 넘어섰다는 대단한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 배경에는 2021년 첫 EP인 [Typical of Me EP]를 발매하기 전부터 틱톡을 통해 일상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꾸준히 대중에게 어필한 점이 있음을 언급할지, 알고 보니 나보다 어리다는 쓸데없는 말 등을 곁들 일지에 대해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계절을 핑계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Interlude 역할의 트랙 ‘Nocturne’을 기준으로 앞선 트랙들이 Laufey의 재즈 보컬에 화성,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오케스트라 등이 어우러지며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어떤 동화 같은 상상의 세계를 그리게 한다면, 그 이후의 트랙들은 악기를 많이 덜어내고 보컬의 클래식하면서 섬세한 감정선과 노랫말에 집중하게 만드는 곡들이 이어진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구성 속, 타이틀 곡 ‘Lovesick’과 첫 선공개 싱글 ‘From The Start’는 각 파트의 진행에 변주를 주며 존재감을 나타낸다. ‘Lovesick’은 그의 곡 중 가장 감정적으로 뜨겁게 터뜨리는 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웅장한 오케스트라 편곡과 콰이어와 함께 고조되는 보컬이 팝 록처럼 들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습이며, ‘From The Start’는 사랑이 막 시작되는 설렘이 담긴 생기 넘치는 보사노바 트랙으로 후반부의 차분한 트랙 사이에서 산뜻하게 반짝인다. ‘From The Start’의 전 트랙들이 사랑이 지나간 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곡을 기점으로 이후의 트랙들은 다시 마법 같은 사랑에 빠진 이의 세상을 노래한다는 점에서도 터닝포인트가 되는 여러모로 강렬한 트랙이다.


사실 Laufey는 재즈라는 장르적 베이스로 인한 고정된 악기 구성으로 비슷한 곡들이 많다는 인상도 있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Lovesick’도 사실 팝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진행과 탑 라인으로 장르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나뉘기도 한다. 그렇다면 Laufey는 더 새로운 장르나 콘셉트의 변화를 꾀해야 할까? 아니면 기존의 색을 유지하며 재즈 아티스트로 본인을 규정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고민이 무색할 만큼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곡이 새롭지는 않았지만 ‘Lovesick’을 통해 재즈의 향수가 가득 담긴 그의 보컬이 팝 트랙 안에서도 새롭게 터져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는 이 곡을 타이틀로 내세웠다. 이에 더해 재즈와 클래식이라는 그의 풍요로운 음악적 자산 역시 이번 앨범에서 그가 표방하는 모던재즈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Laufey가 점점 더 경직되고 격렬해지는 팝 시장 속에서 센트럴 파크 같은, 없어선 안될 휴식처의 포지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이름도 낯선 '재즈 팝스타'라는 형태로 말이다.





"불안과 외로움이 사라진 자리엔 사랑과 희망이"


6. Mitski - [The Land Is Inhospitable and So Are We]

등구 : 여성 해방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는 [Be The Cowboy]나, 그녀의 불안과 혼란을 직설적으로 말했던 [Laurel Hell] 등으로 비친 Mitski의 이미지는 예민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예술가 같았다. 하지만 [The Land Is Inhospitable and So Are We] 속 그녀는 더 이상 본인만의 세계에 갇혀있지 않다.


일렉트로 팝, 신스팝, 디스코 등 여러 장르가 섞여 전자적인 사운드가 많이 들렸던 이전과는 달리 앨범 전체가 컨트리, 포크의 어쿠스틱 하고 고전적인 사운드로 채워져 있고, 더블링조차 없던 외로운 보컬에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더해졌다. 사랑의 대가로 얻은 고통을 콰이어 코러스와 다이내믹한 구성으로 표현한 ‘Bug Like an Angel’과 ‘The Deal’, 컨트리 발라드와 오케스트라 선율로 희망을 말하는 ‘Heaven’,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마음을 로맨틱한 기타와 웅장한 드론 사운드로 표현한 ‘My Love Mine All Mine’과 ‘Star’를 포함한 이번 앨범은 '사랑'이라는 유기성으로 묶인다.


이번 앨범의 새로운 시도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솔직함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Mitski는 앨범 내내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인간의 목소리(콰이어), 컨트리, 포크의 자연적인 사운드로 연주하며 그녀의 내면을 투명하게 내보인다. 그러면서도 트랙 배치나 오케스트라 등을 활용한 다채로운 구성으로 지루함 없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녀는 더 이상 예민한 예술가는 아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를 위로한다. 그것이 Mitski가 훌륭한 아티스트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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