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JENNIE, Lacuna, JP Saxe 외
융 : 트리플 타이틀을 예고한 아이브 새 미니앨범의 두 번째 선공개 곡이다. 이전의 아이브와는 다른 노선을 택했던 ‘Either Way’와 마찬가지로 ‘Off The Record’ 역시 비교적 마이너한 감성을 표현한다.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로맨틱한 psycho 날 탐하면 모든 걸 견뎌야지' 등의 파트로 나르시시즘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무거운 베이스 사운드가 연출하는 나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위에 멤버들의 목소리가 너무 '예쁜'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사랑이 궁금한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곡 설명을 생각하면 가사가 원하는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멤버 전원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중저음의 보컬을 구사하는데, 특히 '이서', '원영' 등 보컬로 주목받지 않았던 멤버들의 활약이 큰 수확이다. 랩 담당의 멤버가 없음에도 랩 파트 역시 전작들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랩으로 곡의 흐름을 끊어 부자연스러웠던 전작들과는 달리 브릿지 파트의 강한 이펙트와 의도적인 챈트식 연출로 곡 안에서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다만, 타이틀곡으로서의 존재감이 조금 약하다. ‘Either Way’ 역시 비슷한 분위기의 선공개였지만, '타인의 시선'이라는 뻔해진 소재를 아이브의 자기애와 자연스레 연결시켜 아이브만의 느낌을 연출했다. 곡이 좋은가 안 좋은가를 떠나서, 정규도 아닌 미니앨범의 마이너한 타이틀곡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효한지 의문이 든다. 아쉬운 완성도였지만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결국 본작의 성공을 이끈 ‘Kitsch‘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꽤나 큰 사이즈였고 좋은 결과를 냈던 [I've IVE] 이후의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이후 본작의 타이틀곡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매력적인 수록곡' 정도의 역할이 어땠을까 싶다.
율무 : You & Me’와 ‘SOLO’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대중성을 택했다. ‘SOLO’가 코러스에 가사 없이 동양적인 휘슬 사운드가 단순 반복되는 퍼포먼스 위주인 곡에 그쳤다면, 이번 신보 ‘You & Me’는 코러스 가사를 탄탄하게 설정하여 노래에 공백을 주지 않았다. 또한 분위기의 전환을 통해 이 노래의 매력을 더욱 끌어 올려주는데, 하우스 특유의 몽환적이고 chill한 분위기에서 걸크러쉬까지 확장한다. 가장 귀를 사로잡는 포인트는 보컬이다. 코러스의 미끌미끌한 신스와 808 베이스를 통해 중저음역대 보컬과 랩을 부각하는데 이때 발음을 흘리거나, 첫 음을 올리는 등 보컬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듣는 재미를 더한다. 제니는 블랙핑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보컬, 랩, 퍼포먼스를 고루 갖춘 아티스트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발매 이틀 전에 기습 예고한 거 치곤 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매우 섬세하다. 5년 만에 발매한 솔로곡인 만큼 곡 자체 뿐만 아니라, 곡 외적인 부분에서까지 모두 정성을 풍성하게 담았다. '세일러문' 작가와 협업한 앨범 커버, 달을 배경으로 투사된 그림자 실루엣 퍼포먼스 비디오와 YG 표 무대 교차 편집 영상까지. 게다가 기존 투어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버전과 지난 4월 코첼라 무대에서 선보인 리믹스 버전까지 수록되어 취향에 따라 두 곡 중 하나를 선택하여 골라 들을 수 있다. 라이브 공연의 현장감과 분위기가 음원으로 담아내기란 어려운 과제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팬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제니는 직접 퍼포먼스 비디오 제작 의사를 밝히며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완벽히 해소했다. 블랙핑크의 월드 투어는 막을 내렸지만, 퍼포먼스 비디오와 교차 편집 영상만으로 방구석 콘서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Jason : 라쿠나는 언제 들어도 한결 같은 매력이 있다. 리버브를 진하게 입힌 기타 사운드가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섬세하게 직조한 가사가 촉촉한 치유의 감정을 전달한다. 데뷔 앨범 [끝이 없는 꿈을 그대에게 줄게요]부터 이들은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한 음악으로 자신들의 색을 분명하게 드러냈고, [CAKE], [정원], [Hello, Wonderland]로 이어지는 동화 3부작을 통해 드림팝이라는 밴드의 정체성을 견고하게 다져왔다. 아직 대체할 수 없는 밴드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잠깐이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위로를 받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밴드로 자리매김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 소년들은 생각보다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8월 발매한 ‘우주의 여름’에서는 시작부터 타이트한 기타 리프로 치고 들어오면서 사뭇 다르게 청량한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이윽고 ‘John’에서도 날카롭고 직선적인 사운드를 통해 공간감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어택감을 전면에 배치하는 작법을 선보였다. 물론 특유의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는 여전히 동화 3부작에서의 포근한 감성을 공유하지만, 한층 강렬해진 록 사운드는 이제 동화 속 세계를 깨고 나오겠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낸 셈이었다. 매주 홍대 클럽 공연을 다니던 시절부터 드림팝이라는 작고 소중한 동화를 통해 씬에서 성공적으로 입지를 다져왔지만, 최근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에 출연해 대중들에게도 이름을 알리고 국내외 페스티벌에 연이어 초청될 만큼 부쩍 영향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변화를 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쿠나의 동화는 아무튼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Cake]에 수록된 이들의 곡명처럼 동화는 본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후의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는 법이다. 다행히도 ‘John’은 익숙함에 새로움이 더해진 안정적인 변화였기 때문인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덕분에 동화의 결말을 맞이한 라쿠나가 앞으로 어떤 사운드와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달할지를 기대하게 되었다. 과연 이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상투적인 결말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동화 너머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지켜보자.
율무 : 밝은 흰색도, 어두운 검은색도 아닌 회색은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모호한 색상이다. 감정도 그러하다. 우리는 종종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JP Saxe는 이러한 회색 감정의 조각들을 [A Grey Area]를 통해 이야기한다.
‘Anywhere’이 상실에 관해 다룬다면, ‘Caught Up On You’는 관계의 모순을 표현한다. ‘Someone Else’s Home’의 'How I don’t feel like anymore'라는 가사는 내가 남의 집에 있는 것처럼 나답지 않다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어둠에 잠기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The Good Parts’의 'Fossilize my heart'라는 가사는 좋은 기억을 붙잡고 싶어 마음을 화석화하고, ‘Fear & Intuition’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하는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드러낸다. 즉 그는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적 고통을 직면하고, 이를 조절해 나가야 하는 과정을 통해 JP Saxe만의 고유한 '회색 감정' 서사를 구축해 나간다. 이러한 회색 감정을 스토리텔링 하는 데 있어 노래 가사와 함께 가장 강조한 수단은 '보컬'이다. 악기 세션보다 보컬과 코러스 화음의 레벨을 높여 지난날의 추억이 좋든 나쁘든 되새긴다. 또한 사운드적으로도 이러한 서사가 뒷받침된다. 트랙이 진행됨에 따라 드럼과 신스가 등장하면서 템포는 점점 빨라지고, 읊조리는 듯한 속삭임이 호소력 짙은 외침으로 전환되며 깊은 감정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에피그래프에 해당하는 첫 번째 트랙만 듣고 섣부르게 잔잔한 앨범이라고 오해하기 쉬울지도 모르지만, 트랙 곳곳에 재즈와 컨트리 요소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사운드도 존재해서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과 사운드를 통해 앨범은 어둡고 쓸쓸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물씬 풍겨, 서늘한 가을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유려한 피아노 선율과 부드러운 기타 소리는 희망적이기까지 하다. JP Saxe는 마지막 트랙 ‘If Love Ends’을 질문 형태로 마무리하면서 그에 대한 답은 친절하게 제시해 주지 않았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가 던진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며 따스한 감정을 오래도록 간직해 보면 어떨까.
융 : 인디와 메인스트림을 넘나들며 포크라는 장르의 진정한 매력을 널리 알린 수프얀 스티븐스의 10번째 정규앨범이다. 보컬과 사운드, 실물 음반의 아트워크와 에세이 등 앨범의 모든 요소에서 그의 섬세함이 묻어 있고, 앨범을 듣는 순간 수프얀 스티븐스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세계관과 이야기가 선명하게 펼쳐진다.
화음이나 백 보컬은 촘촘히 쌓는데 비해 악기의 사용은 적다 보니 중후반부의 지루함을 우려했는데, 다양한 악기들이 겹쳐지며 사운드가 풍부해지고 가창자의 감정 변화를 음악의 분위기로 연출한다. 앨범이 진행하는 내내 보컬이 의도적으로 감정을 숨기고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데도 곡들이 심심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또한 최대한으로 감정을 절제하는 보컬 때문에(혹은 덕분에) 이 작품이 마냥 밝고 따뜻하지만은 않게 흘러간다. 앨범 전반에 흐르는 그 평화로움이 곧 깨질 듯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우울한 감정이 뒤섞이며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한 편의 좋은 영화가 사람을 바꾸듯, 그럴 만한 힘이 있는 낭만적이고도 위험한 작품이다. 공격적인 가사와 사운드, 혹은 그런 세상이 지겨워진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Jason : 컨트리는 블루스만치 올드한 인상을 주는 장르다. 블루스가 삶의 애환을 치유하기 위한 미국 흑인 이주민들의 고전 음악이라면, 컨트리는 조국에 대한 애정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미국 백인 서민층의 전통적인 장르다. 그러나 유행은 돌고 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금의 컨트리는 빌보드를 지배하며 트렌디한 장르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마침 근본이 넘치는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컨트리가 시작된 테네시 주 내슈빌처럼 미국 내륙의 시골 동네인 오클라호마 주 올로가에서 자랐고, 컨트리 특유의 애국적인 정서와 어울리게도 군인 가정에서 태어나 해군에서 8년간 복무했으며, 역사적으로 컨트리에서 중요한 경력으로 여겨지는 프로그램 '그랜드 올 오프리'를 거친 아티스트다. 바로 ‘I Remember Everything’으로 빌보드 정상에 오르며 컨트리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자크 브라이언이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본인이 컨트리 아티스트라는 카테고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촌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미국의 깊은 내면을 이야기하기에 이만큼 훌륭한 배경을 찾기도 어려워 보이지만 자크 브라이언이 추구하는 음악은 엄밀하게 말하면 포크에 가깝다. [American Heartbreak]에서는 스트리밍을 전략적으로 공략하며 컨트리 트렌드를 이끈 모건 월렌의 영향을 받은 듯한 앨범 구성을 선보이면서도, 인터뷰가 아닌 트위터(X)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등 컨트리의 불문율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I Remember Everything’이 컨트리 팬들을 사로잡은 시점에서 불과 한 달 만에 포크 아티스트들을 피처링으로 참여시킨 [Boys Of Faith]를 발매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절정의 순간에서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은 포크라고 외치는 것이라면 앨범은 충분히 유의미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제이슨 알딘의 ‘Try That In A Small Town’처럼 정치적 이슈와 연계된 자극적인 컨트리가 자칫 피로감을 줄 수도 있는 시점에서 'Sarah's Place'처럼 직관적으로 듣는 맛에 집중한 포크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네이티브가 아니기에 내러티브에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가 불러일으키려는 향수의 잔향 정도는 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거나 흐리지 않고 선명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지금도 그는 어느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며 포크를 흥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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