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I, LIGHTSUM, 봉제인간, Benny Sings 외
카니 : 엔믹스에서 믹스팝의 체인지를 외치던 지니가 솔로 아티스트로 데뷔했다. 당시 킬링파트를 맡았던 지니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일까? 첫 솔로 앨범을 듣고 난 후에도 여전히 엔믹스의 지니를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첫 EP [An Iron Hand In A Velvet Glove]는 총 5곡의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는 신스팝 기반의 앨범이다. 타이틀 ‘C’mon’은 피처링 Aminé, 프로듀서 Styalz Fuego, MZMC, 안무가 Kiel Tutin이 참여해 팡팡 터지는 신스사운드에 'c’mon, c’mon, c’mon' 하는 반복구간이 더해져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만들었고 에너제틱한 텐션이 퍼지지 않고 응축된 곡이다. 트렌디한 앨범인 건 분명하지만 지니의 톡 쏘고 찰진 보이스와 시원한 시원한 매력이 전혀 보이지 않아 곡명 뒤에 어떤 아티스트의 이름이 와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지니가 첫 데뷔앨범에 보여주고자 했던 포부는 ‘An Iron Hand In A Velvet Glove’로 부드럽고 우아한 외면 아래 강한 내면의 면모를 가진 아티스트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어떤 강인함과 우아함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아티스트로서는 담아내지 못해 그저 티저나 자켓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도에 그쳤다. 오히려 'Iron Hand'에서 'Velvet Glove'로 넘어가는 곡 구성을 담은 앨범이었다면 지니가 보여주고 싶어한 다방면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매듭 삼아 빈 공간을 채웠을 그룹활동과는 달리 홀로서기라는 점을 고려해 트렌드에 '집착'하는 것보다 본연의 '모습'에 집중해 정체성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다시 출발선에 선 지니에게 좋은 방향성이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만돌 : 1년 5개월의 공백은 2021년에 데뷔한 라잇썸에게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또한 컴백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갑작스러운 멤버 탈퇴는 그들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긴 터널에도 끝은 있듯이 나의 매력을 ‘Honey’ & ‘Spice'라는 키워드에 맞춰 위트 있는 가사로 라잇썸은 돌아왔다. 그룹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면서 말이다. 라잇썸에 가장 큰 장점은 데뷔 전부터 멤버 개인이 쌓았던 인지도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개성이라 생각한다. 특히, <프로듀스 48>에서 대중을 사로잡은 초원과 나영 또한 7년 4개월이라는 연습생 시간 그리고 연습생 신분으로 참여한 <댄싱 하이>에서 심사위원 모두의 극찬을 받은 주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런 면모는 싱글 2집 타이틀 ‘VIVACE’에서 가장 잘 비쳤다. 하이라이트에서 빠르게 초원 – 주현 – 나영 순으로 전개되는 그런 모습이 라잇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 속에서 대중들은 중심에서 퍼포먼스를 잡아주는 주현과 보컬 사운드를 책임지는 초원, 나영의 매력에 빠졌다. 또한 본인들이 공식적인 무대에서 AR 무대를 한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개인 능력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노래는 그런 장점을 1도 느낄 수 없다. 치고 나오는 보컬이 있는 것도 센터가 돋보이는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 특정 단어만 반복하는 그냥 평범한 걸그룹 노래라서 정말 이게 최선일까?라는 의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
frank :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베이시스트 지윤해, '장기하와 얼굴들'의 드러머 전일준, 그리고 '혁오'의 기타리스트 임현제까지. 그렇게 국내 정상급 밴드 출신 3명이 모여 밴드 '봉제인간'이 결성됐다. 소위 국내 밴드 신에서 이룰 만큼 이뤄 본 사람들이 모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대체 어떤 결핍을 채우고자 새로운 팀까지 결성해야만 했는지. 이들을 처음 본 것은 2022년 잔다리 페스타 때였다. 마치 마릴린 맨슨 같은 새하얀 메이크업에, 묘하게 하시디즘 공동체의 유니폼이 떠오르는 무대 의상을 입은 채. '거 우리는 뻔한 건 하고 싶지 않다고요'를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듯한 충격적인 등장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라이브도 가히 원초적이었다. 드럼, 기타, 베이스의 심플한 구성 하에 각 세션의 에너지를 극한의 자유도로 뿜어내는, 마치 '이게 밴드다 새끼들아!' 같은 느낌. 다만 그만한 에너지를 음원에 담아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고, 이 팀의 결성 목적이 온전히 라이브 퍼포먼스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작년 12월에 이들이 싱글을 발매했을 때 살짝 놀랐고, 잠시 후 실망했다. 그들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는 음원에서 너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역시 이들의 음악과 음원은 맞지 않는 포맷이라는 생각에 힘이 실렸다. 하물며 12곡짜리 정규라니? 의심과 심술 그득한 마음으로 재생할 수밖에.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메탈, 얼터너티브, 사이키델릭 등 근본 장르들을 한데 모아 노련하게 정제한, 하지만 날 것의 느낌이 나도록 완벽하게 요리했다. 이 문장에서 느껴지는 모순이 바로 이 앨범의 핵심 가치다. 3번 트랙 ‘Kiss’에서는 깔끔한 완급 조절로 감상에 즐거움을 더하고, 10번 트랙 ‘너만 없으면’에서는 정말 (회사였다면 모니터를 때려 부쉈을지도 모를) 미친 폭발력의 연주를 보여준다. 이렇게 포만감을 주는 앨범이 최근에 또 있었나 싶을 정도. 하긴 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검증된 셰프인데 안 먹고 배길 수가 있겠나. 그들의 의도와 한계를 마음대로 속단한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아무튼, 가을 록이 참 맛있게 익었다.
frank : 날이 추워질수록 따뜻한 음악을 찾곤 한다. 그러나 타고난 기질이 어두운지라, 조금만 오글거리는 느낌을 받으면 황급히 플레이어를 닫고 나의 다크 뮤직 컬렉션으로 도망치기 일쑤였다. 특히 요즘 발매되는 팝, R&B를 들으면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졌기에, 그 대안으로 올드팝은 나의 훌륭한 선택지가 되어주었다(내가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는 자기 암시가 필요하긴 했지만…). 어쨌든 나와 함께 한없이 늙어가는 나의 겨울 플레이리스트는 조금 가슴이 아픈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재해석의 결과물은 언제나 반갑다. 이 곡은 1979년도에 발매된 Christopher Cross의 원곡을 리워크한 곡이다. 싱글에는 리워크한 현재 버전과 오리지널 버전이 모두 수록되어 있는데, 이게 또 즉석에서 비교해 가며 듣는 재미가 있다. 큰 틀의 멜로디 라인은 유지한 채 보다 현대적인 신디사이저, 기타, 드럼 소스로 세련된 사운드를 만들었고, 기존 올드팝의 문법대로 끊김 없이 멜로디가 이어지는 원곡과 달리 소스 하나하나가 통통 튀는듯한 연출로 Benny Sings만의 캐릭터를 살린 지점도 흥미롭다. 빈티지함과 트렌디함이 적절히 공존하는, 리워크의 교과서 같은 곡이라 감히 평하고 싶다. 겨울의 나에게는 참 반가운 한 곡.
만돌 : 처음 가사부터 Fuxx you로 시작하는 게일의 싱글 앨범 ‘abcdefu’는 평범한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그녀의 퇴폐적인 이미지를 잡기 충분했다. 또한 그 노래가 틱톡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그녀는 메이저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번 앨범 ‘i don’t sleep as good as i used to’에서는 보다 더욱 강하게 퇴폐적인 모습이 강조됐다. 우선 앨범 커버에서는 도발적인 자세와 특유의 강한 눈 화장이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줬으며, 게일 스스로 이번 노래는 세상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마술적 사고를 잃는 것에 관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좀 더 풀어서 말해 인간이 경험을 쌓다 보면 어느새 세상은 당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표현했다. 이러한 속 뜻을 가지고 있는 이번 싱글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섬뜩한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저 '나는 예전처럼 잠을 잘 수 없어요' 이렇게 간접적으로 표현해 리스너를 사로잡은 전략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또한 중간에 섞인 욕설과 그녀의 샤우팅으로 시작하는 마지막 후렴구 파트가 인상적이다. 2004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이런 퇴폐미를 잘 보여주는 아티스트는 게일 뿐이라 생각하며, 거부감은 들지 않되 하고 싶은 말을 의미심장하게 전달하는 그녀의 음악은 더욱 심오하게 성장할 것이다.
카니 : 코끝이 시려지는 쌀쌀한 날씨엔 사랑노래보단, 쓸쓸한 이별노래가 끌리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제이미밀러의 반복되는 이별곡이 지루하기보단 내심 반가웠다. 서늘해진 날씨를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The Things I Left Unsaid]는 그동안 숱하게 보여준 타인과의 이별이 아닌 그 시절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연인이었던 나와 작별하며 이별의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특히 모노드라마 형식을 띠는 앨범으로 첫 번째 트랙 ‘Intro’에 삽입된 내레이션을 통해 현재 이별의 후폭풍 속에 있는 화자를 떠오르게 하고 ‘No Matter What’, ‘Empty Room’, ‘Rooting For You’, ‘Maybe Next Time’을 통해 이별 속 겪었던 감정들을 보여주며 몰입감을 극대화시키고 마지막 곡 ‘Only Place’을 통해 타인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을 내리며 이야기를 마친다.
사실 이 앨범이 반가웠던 것은 오로지 그의 목소리나 날씨 때문은 아니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감정이 짜임새 있게 잘 녹아든 앨범이라는 것뿐이라 반복되는 소재가 지루할 뻔했지만 이별의 문을 완전히 닫았다는 점이 지루함을 기대감으로 변환시켰다. 물론 제이미밀러가 소문난 이별맛집이라 불리지만 맛집도 365일 들으면 물리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미 기존에 발매된 ‘Here’s Your Perfect’, ‘I Lost Myself In Loving You’, ‘Last Call’와 같은 좋은 곡들이 존재하기에 과도한 이별기행 생성보단 새로운 로드무비를 만들어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던 차에 좋은 전환점이 될 앨범으로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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