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3년 10월 3주)

선미, 예성, 츄, berhana, Lil Pump 외

by 고멘트

"이번엔 그저 미친 여자일 뿐이지만..."


1. 선미 -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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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쓰 : 선미는 그간 자신이 보여 온 음악적 이미지를 '곱게 미친 여자'라는 키워드로 소개해오곤 했다. 이번 앨범 [STRANGER]에서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레트로하면서도 음산한 분위기의 트랙 구성 그리고 팀 버튼 감독의 영화가 떠오르는 엉뚱하면서도 기이한 아트 스타일까지, 지금까지 선보였던 작품들의 결을 유지하면서도 강렬함을 한 스푼 반 정도 더하였다. 다만 이번에는 '곱게'보다는 '미친'이란 키워드에 더 주목하여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이 고수해 온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 한 강박에서 온 결과물로 느껴졌다.


타이틀곡 ‘STRANGER’에서의 마치 다른 곡들을 얼기설기 억지로 이어 붙인 듯 뚝뚝 끊기는 분절적인 구성에서 특히 이러한 강박감이 가장 크게 느껴졌다. 이런 분절적인 구성은 최근 케이팝 씬에서 자주 활용되는 음악적 문법으로, 다이나믹한 퍼포먼스를 살리면서 한 곡 안에서 여러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안으로 선택되곤 하였다. 하지만 구간별 변화가 과하거나 부자연스러울 경우, 정신없다는 평을 받는 등 대중들에겐 난해함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STRANGER’에서의 구성도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하는 장점보다는 난해함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저음의 챈트 형식으로 강렬하게 임팩트를 주는 코러스 구간 이후 맥없게 이어지는 벌스 부분은, 이제 막 고조되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즐길 새도 없이 줬다 뺏어버리는 느낌이 강했다. 기존에 보여주지 못한 것에 집착하다 보니 '곱게 미쳐야'할 곡의 구성이 곱진 않고 그저 '미친 것에만 몰두'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선미의 시도는 높게 평가하고 싶다. 해오던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창작가로서는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끝없는 고뇌와 시도 끝에 더욱 높은 차원의 작품이 탄생하리라 믿는다. 어느덧 데뷔 17년 차가 된 중년 가수 선미가 솔로 가수로서 드물게 그 명성과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그녀가 자신의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며 끊임없이 자신에 관해 탐구하고 변화한 것에서 기인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시도가 아쉬우면서도 다음 작품이 오히려 기대되는 이유다.





"연륜을 갈아 넣어 만든 새 맞춤 정장"


2. 예성 (YESUNG) - [Unfading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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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구 : 예성이 5번째 미니앨범 [Unfading Sense]로 돌아왔다. 이번 앨범을 포함해 3번에 걸쳐 완성된 예성의 인디 팝 디스코그래피는 '예성=발라더'라는 공식을 깨버리며 음악적 전환점 역할을 해냈다. 이번 앨범은 앞선 [Sensory Flows], [Floral Sense]와 구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 wave to earth의 김다니엘이 참여해 특유의 몽글거림이 돋보이는 타이틀곡이 중심이 되고, 키스누, 녹두, 강사라, 글렌체크로 이어지는 다양한 인디 뮤지션들의 참여가 예성이 추구하는 인디 팝 감성의 완성도를 직접적으로 높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실 이전 앨범은 전체적으로 인디 감성이 너무 세서 예성의 앨범이라기보다는 그냥 익숙한 인디 팝 앨범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여유가 생긴 듯했다. 빈티지한 일렉기타, 어쿠스틱 기타, 또는 따뜻한 피아노 사운드로 앨범 전체가 유기적으로 인디의 소박한 무드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그가 해온 발라드와 대중성 있는 팝을 섞음으로써 단조로움을 빼고 다채로움을 더했다.


가끔 솔로에서는 그룹 활동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거나 과해지는 경우를 몇몇 봤는데, 예성은 17년간의 케이팝 활동에서 얻은 무기와 노하우를 외면하지 않고 그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더 친절하게 들려주는 데 활용했다. 트렌드와 상업적인 성공만을 좇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앨범을 만드는 것도 멋있지만, 그는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본인에게 맞춤인 옷으로 만들지에 대한 고민 또한 잊지 않는다. 아마 17년 뒤에도 예성은 그 만의 음악을 꾸준히 하고 있지 않을까.





"지켜츄 절대 지켜"


3. 츄 (CHUU) – [H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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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야 : 사이다 같은 강렬함만이 쾌감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두에게 해피한 에너지를 전해주던 인간 비타민 츄가 무표정한 얼굴과 상처받은 이면을 드러내며 '세상이 망해도 상관없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자아낸다. 이미지 변신이나 반전은 아주 흔한 전략이지만, 츄의 이름으로 사랑받아 온 사랑스럽고 무해한 캐릭터에 이전 소속사와의 서사가 쌓여 결과적으로 더 큰 몰입을 일으킨 것 같다. 내 안의 또 다른, 상처받은 나에 기대어 우리만의 세상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츄의 첫 솔로 앨범은 츄 자신뿐만 아니라 안타까운 상황을 함께 지켜보며 기다린 팬들을 향한 것도 같아 괜히 뭉클한 마음도 든다.


그 긴 혼란스러운 과정 끝에 찾은 자유로움, 그리고 홀가분함은 타이틀 곡 ‘Howl’ 속 인트로의 몽환적인 사운드와 벌스의 보이스 이펙터를 활용해 두 자아가 말하는 듯한 연출, 신호음을 연상시키는 브라스, 뒤틀리고 퍼지는 프리코러스의 신스와 효과음이 자아내는 우주 같은 광활함과 ‘Underwater’의 맑게 튀어 오르는 클래식 기타와 에스닉한 비트가 자아내는 대자연의 무드로 치환되고, 동화 같은 ‘My Palace’를 기점으로는 점차 우리가 알던 순수하고 활기찬 츄의 모습으로 돌아와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드러내며 마무리된다.


물론 ‘Howl’을 태연 같은 파워풀한 보컬이 불렀다면 쾌감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솔로로서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드러내야 하는 시작점에서, 기존의 순수하고 동화 속 캐릭터 같은 아티스트의 보컬 및 이미지와 상충하는 서사를 잘 매듭지어 앨범에 대한 몰입을 충분히 끌어냈고, 솔로 아티스트 츄만의 새로운 서막을 열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때로는 아는 맛이 최고의 맛"


4. berhana - [Amén (The Nomad’s Dream)]

등구 : 최근 멤버들의 군 제대 이후 2년 만의 활동 재개를 알리는 보이그룹의 신보를 듣고, 크게 새로운 것이 없어도 아티스트의 색깔이 잘 담겨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곡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 berhana의 [Amén (The Nomad’s Dream)] 또한 그런 감상이 떠오르는 앨범이었다.


4년 만에 발매된 정규앨범 [Amén (The Nomad’s Dream)]은 [HAN]의 프로듀서 pomo와 다시 한번 손잡아, 마치 [HAN]의 시퀄처럼 느껴질 만큼 비슷한 무드를 공유하고 있다. 여전히 사운드는 빈티지하고, 멜로디는 재지하며, 리듬은 펑키하다. 뭐 하나 튀는 트랙 없이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흘러가며 완벽한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으며, 인트로와 아웃트로뿐만 아니라 트랙 사이사이에 인터루드식의 짧은 곡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환기와 연결을 기가 막히게 하는 것 또한 변함이 없다.


거기서 이미 충분히 반갑고 좋았지만, 그 위에 새롭게 얹어진 아프로비츠와 타악기 소리, 적당히 힘 있는 랩핑은 아프리칸 디아스포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도 이전 앨범과의 차이점이자 재밌는 감상 포인트가 되어 감칠맛을 더해준다. 결국 그는 몇 년간의 휴업 따위로는 맛이 변하지 않는, 깊은 노하우를 가진 맛집임을 증명해냈다.





"언/젠가/부터/릴펌/은안멋져~"


5. Lil Pump - ‘6 R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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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쓰 : 올해 발매된 [Lil Pump 2]에서 Lil Pump은 이전과 달리 헤비메탈, 레이지 등 다양한 장르적인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역량 미달로 인해 처참한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후에 [Lil Pump 2 Deluxe]의 싱글로 발매된 '6 Rings’에서는 그가 본래 주특기로 활용하던 '멍청 트랩'의 형식으로 다시금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계속해서 보여준 여타 다른 곡들과의 확실한 차이점을 만들지 못해서일 것이다.


2분 남짓한 곡 길이에 반복적이고 캐치한 몇 단어의 조합과 추임새로 가득 차 있기에 해당 곡을 한 번 듣고 나면 머릿속엔 확실한 인상이 남는다. 하지만 거기서 그칠 뿐이다. 이젠 그를 대체할 신선한 아티스트도 넘쳐나고, 심지어 ‘Gucci Gang’을 비롯하여 그의 예전 히트곡들에서 더욱 그 임팩트가 크게 느껴진다. 그럴싸하게 준비한 새로운 시도도, 기존에 계속해서 보여줬던 음악들도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실패하였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래퍼 Lil Pump은 언젠가부터 멋있지 않게 되었다. 힙합 씬 자체의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거론되는 현시점에 우리는 Lil Pump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What I got from Troye"


6. Troye Sivan – [Something To Give Each Other]

교야 : 지난여름 상상도 못 한 정체 ‘Rush’에게 맞아 얼얼했던 뒤통수의 열기가 식어갈 즈음 그의 정규 앨범이 발매되었다. 과감한 앨범 커버로 전체적으로 ‘Rush’ 같은 끈적함과 뜨거움이 지배할 것 같다는 예상을 뒤엎고, 앨범은 기존 Troye만의 chill한 몽환미 역시 한층 더 노련하게 가공되어 담겨 있었다. 그간의 다양한 콜라보 작업, 브랜드 론칭, 연기 활동 등 화려한 외부 활동을 거친 뒤 자신의 음악으로 돌아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새롭게 경험한 사랑, 관계, 희망, 환희, 상처 등을 공유해 준 점도 반갑지만, 사실 이런 가사나 맥락을 배제하더라도 음악 그 자체가 주는 청각적인 쾌감과 유기성 역시 훌륭한 앨범이다.


‘Rush’의 열정적인 퍼커션은 ‘What’s The Time Where You Are?’의 그루비한 베이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One Of Your Girls’까지 베이스라인을 기반으로 농밀하게 이어지던 무드는 로맨틱한 소울을 연상시키는 ‘In My Room’에서 확 환기된다. 비트감을 덜어낸 팝 ‘Still Got It’은 앨범의 가장 딥한 트랙인 ‘Can’t Go Back Baby’까지 안내해주지만, 투 스텝 개러지 리듬의 ‘Got Me Started’과 함께 리부트된다. 하우스 리듬으로 흐름을 넘겨받은 ‘Silly’는 숨소리와 가성으로 채워져 가장 차가운 섹시함을 자아내고, ‘Honey’에서는 choir 코러스로 야릇함을 덜어내고 벅차오르는 무해한 기분을 선사한다. 제멋대로인 전자 악기들 사이로 나른하게 얹히는 색소폰과 함께 저물어 가는 ‘How To Stay With You’까지 사랑의 황홀함, 주체할 수 없는 무아지경의 감정, 무어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묘한 감정 등을 아름답게 구현했다.


앨범을 통해 스토리를 들려주기보다 음악으로 무언가 느끼게 해주고 싶어 했던 Troye로부터, 나는 다시금 사람에게 뛰어들어 무아지경까지 가보고픈 용기를 전해 받았다. 말도 안 되게 복잡해지는 인간관계 속에서 나는 아직도 [Blue Neighbourhood] 속 서투른 Troye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행동은 소극적으로 변하고 감정은 숨기기 급급해 깊은 관계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는 와중에, Troye는 8년간 관계와 감정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고민하고 성찰한 덕에 이번 앨범까지 전해줄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용기를 낸 결과가 Troye의 음악 같지 않을지라도 관계의 다음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 썩 즐겁다. 성숙한 음악이 또 한 시절의 나를 키워낸다.





※ '교야', '등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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