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3년 10월 4주)

박새별,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Alec Benjamin 외

by 고멘트

"가수가 인공지능(AI)을 공부하게 되면 생기는 일"


1. 박새별 - [Everblo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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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온 : 4년 만에 돌아온 박새별의 앨범이다. 그녀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피아노와 공기 반 소리 반의 간드러지는 목소리. 이번 앨범에서도 특출난 연주 실력과 보이스는 여전했지만, 그간 보여준 퓨어한 스타일의 음악과 별 다를 것이 없었기에 그리 구미가 당기는 앨범은 아니었다. 앨범은 잔잔하고 빛이 산란하는 듯한 사운드, 동화적이고 성스러운 무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운드의 질감은 좋지만 다소 루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자극적인 노래들이 판을 치는 요즘, 중노동을 하고 있는 귀에게 힐링 테라피를 선사하는 사운드임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 번째 트랙이다. ‘fall in love’는 부드러운 팝 R&B 곡으로, 곡만 보았을 땐 그리 특색 있는 곡은 아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인상을 바꿀 정도로 재미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바로 'AI 보컬'의 참여이다. 해당 곡의 보컬은 박새별 목소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I 보컬이다. 쉽게 말하자면 박새별 목소리가 남자 버전으로 구현된 것인데, 이는 AI 음성합성 기술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박새별의 창법과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 '스스로' 곡을 해석해 그에 맞는 목소리와 스타일로 부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루즈해진 앨범의 흐름을 환기시키기에도 좋았다.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박새별의 목소리로 채워졌다면 확실히 지루한 감이 있었겠지만, AI 보컬을 통해 신선함을 부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꽤나 괜찮은 전략처럼 느껴졌다.


또, 박새별은 올해 카이스트(KAIST)에서 음악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해당 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전문가들과 함께 해당 트랙을 만든 것인데, 이전까진 AI 보컬이 복제 기술로서 활용되었다면, 이제는 창작 기술에 한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셈이다. 비록 한 트랙이지만, 한 트랙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verblooming]은 음악 창작자들에게 기회로 다가갈까, 위기로 다가갈까.





"세븐틴이 제일 잘하는 그거"


2. 세븐틴 (SEVENTEEN) – [SEVENTEENTH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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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 세븐틴의 주요한 음악적 정체성은 건강한 에너지의 발산이라 할 수 있겠다. 총 13명이라는 다인원 그룹의 저력을 확실하게 이용한 차별점이었다. ‘만세’, ‘아주 NICE’, ‘박수’ 그리고 유닛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 등을 통해 정체성을 강화하던 세븐틴은 이번 앨범을 통해 끝내 결실을 보았다. 평균 나이 27.5세 그룹의 가식 없는 정직한 에너지 발산이 결국 초동 509만 장이라는 기록으로 돌아왔고, 역대 1위라는 유의미한 수식어를 얻었다. Seventh Heaven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앨범명이 그대로 회수된 것이다.


타이틀곡 ‘음악의 신’은 삐뚤게 보자면 뻔하고, 곱게 보자면 익숙한 것이 가장 무섭다는 점을 제대로 짚은 곡이다. 크게 변주하거나 튀는 파트 없이, 세븐틴의 대표곡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던 펑키함을 꽉 채워 담아냈다. 다인원 그룹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에너제틱한 챈팅의 등장이나 세븐틴의 보컬 팀의 강점을 담아내기 위한 높은 Key 설정 등의 여러 장치가 전체적으로 하이 텐션을 이끌어가며, 건강한 에너지 발산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또한, 특정 언어에 치우치는 가사를 지양하고,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가 Post-Chorus에 배치되어 불특정 다수가 청음한대도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이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비록 유치해 보일 수 있는 가사일지라도, 음악이 가진 근본적인 즐거운 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사례가 되었다. 이처럼 세븐틴은 트렌드를 뒤쫓기보다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을 내세워 다시 대체 불가 입지를 다졌다. 결국 Only one 전략이 Best one이 되어 버린 셈이다.


외에도 '세븐틴만의 축제'라는 앨범 테마에 맞춘 EDM 기반의 곡들과 팬송, 발라드 등의 수록곡들이 풍성한 인상을 부여한다. 실제로 가사에서 '축제'라는 언급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음에도, 마치 축제에 참여한 것만 같은 추상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이유는 미니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꽉 찬 구성이 그 근원이 아닐지 싶다. 입장료 무료, 보고 들을 거리 많은 이 축제에 참여하려거든 우선 감상을 통해 경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환상 속 추락의 노래"


3.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이름의 장: FREE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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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게비누 : 뚜렷한 세계관을 가진 그룹은 청자의 과몰입을 위해 현실과 세계관 속 아이돌 간의 거리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 [이름의 장: FREEFALL] 속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성장을 유예하던 과거를 뒤로하고 현실로 자신을 내던지는 추락을 감행한다. 그러나 현실의 이 소년들은 해외 유수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고, 대형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서는 등 그룹으로서 가파르고 빛나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관의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는 반드시 상승과 하강이 있어야 함을 알지만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세계관 속 캐릭터가 실제 멤버들과 괴리감을 불러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 괴리감을 지우기 위해 이 앨범은 청자를 대상으로 한 트루먼쇼가 되기로 한다. 과거를 뒤로 하고 현실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지겠다는 ‘Growing Pain’과 ‘Chasing That Feeling’. 잊었던 꿈과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Dreamer’와 ‘Deep Down’, 녹록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Happily Ever After’, ‘물수제비’까지. 사랑을 노래하며 아이돌 앨범임을 상기시키는 밝은 선공개 곡 ‘Back for More’와 ‘Do It Like That’을 제외하면 emo 감성으로 점철된 곡과 성장 서사를 따르는 이야기 전개는 과몰입이라는 환상을 위한 촘촘하고 계획적인 결과물이다.





"소년 보컬과 다크 팝의 인지부조화"


4. Alec Benjamin – ‘Different Kind Of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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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 독특한 미성이라는 특징을 제외하고 알렉 벤자민을 설명할 순 없다. 이제 변성기를 막 지난 듯한 앳된 소년의 모습이 그려지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사실 만 29세의 어른이라는 사실. 이 대조적인 팩트가 알렉 벤자민이라는 아티스트의 음악이 더 유니크하게 들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멜론 팬 맺기 지표만 확인하더라도 중형급 보이 그룹에 준하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니, 국내에서의 수요도 이끌어냈음이 틀림없다. 다만, 이 독보적인 강점이 때로는 되레 독이 되기도 하는데, 이번 신보가 딱 그러하다.


현악기를 모방한 웅장한 플럭 사운드와 서늘한 일렉기타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다크한 무드를 조성한 채, 미니멀한 악기 구성을 유지하기에 보컬의 힘이 중요한 곡이었다. 명확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음색이 얹어지며 신선함을 유지하는 곡이지만, 과연 잘 어우러졌는지 묻는다면 답은 '글쎄'다. 세월이 흘러도 소년 같은 미성을 유지하는 아티스트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퇴폐미가 느껴지는 농밀한 곡을 노래한다면 그저 나이가 나이이니, 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다크 팝의 시도는 참신했으나, 알렉 벤자민 특유의 강점이 겉돌고 있으니 애매한 인상이 맴돌고 있다. 타임지가 선정한 '팝 스토리텔러'라는 수식어도 무색하게 딥한 사랑 표현과 앳된 목소리가 매치되지 않아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알렉 벤자민을 많은 대중에게 알린 히트곡 ‘Let Me Down Slowly’ 이후, 사실 이 아티스트는 이번 신보뿐 아니라 여러 변화를 꾀했다. 음반 업계에 대한 비판을 담은 ‘Jesus in LA’, 잔혹 동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 ‘Paper Crown’, 중국어로 구성한 EP 등 자신이 가진 음색이라는 유니크한 무기에 늘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라는 포인트를 입혀냈다. 하지만, 이번 신보는 자신의 음색이 지정한 한계의 틀을 벗어나고자 '성숙함'이라는 애매한 무기를 내세워 낯설다는 점이 가장 큰 장벽이 아닐지 싶다. 그의 음색은 강력한 무기임이 틀림없지만, 싱어송라이터만의 자유로운 면을 세워주지는 못하고 있다. 애석하지만 이처럼 멈추지 않는 탐구 정신이 훗날 유연한 변화를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연말을 책임질 사랑의 무도"


5. beabadoobee, Laufey – ‘A Night To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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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게비누 : 비슷한 듯 다른 두 여성 아티스트의 합이 돋보이는 로맨틱한 보사노바 곡이다. 운명의 상대를 마주한 설렘과 긴장감이 느껴지는 퍼커션 소리는 코러스가 시작되며 두 사람이 밟는 스텝이 되고, 주고받던 보컬은 스트링 소리와 함께 하나로 합쳐져 사랑의 순간을 고백한다. 두 보컬이 그려내는 서로 다른 파장은 오히려 공간감을 만들며 하나의 풍성한 사운드가 된다.


둘의 콜라보는 오피셜 싱글 차트 84위에 오르며 차트인에 성공했다. 두 아티스트의 그간 성적을 생각하면 꽤나 준수한 결과이다. 점점 더 추워질 겨울과 로맨스가 넘쳐날 연말을 생각하면 좋은 타이밍에 나온 좋은 곡. 앞으로 차트에서 오래 보길 바란다. 아, 유감스럽게도 나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분위기 잡을 일이 있다면 이 곡을 강력히 추천해 본다.





"이상한데 묘하게 중독되네"


6. eyedress - My Simple Jeep (feat. Mac DeMa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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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온 : "이상한데 묘하게 중독되네.." 평양냉면을 처음 먹던 날, 육수를 세 번 떠먹은 뒤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다. 맹숭맹숭한데 묘하게 중독되는 맛은 나를 매료시켰고, 이 곡 또한 그랬다. 'My Simple Jeep'은 지난 8월에 발매한 싱글 'The Dark Prince'에 이어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곡이다. 이들 사이에는 맹숭맹숭한 목소리와 베드룸팝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래서인지 나른하면서도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한 곡에서의 두 사람은 물 만난 고기처럼 느껴진다.


매가리 없고 졸린 듯한 eyedress와 Mac Demarco의 목소리, 조금씩 조율이 안 된 것 같은 헐렁거리는 악기 소리는 이상하지만 신기하게도 조화로운 맛이 난다. 불안정한 듯하면서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리들은 이 곡의 매력을 배로 더해줬고, MV 또한 두 사람의 괴짜스러움이 한 스푼 들어가 귀여운 맛을 더했다. 그것 말곤 이 음악을 설명할 건 딱히 없다. 어떠한 메시지나 울림도 없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뚱땅거리는 사운드만으로도 이들이 음악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내가 받은 인상은 놀이에 가까운 음악을 담았다는 것인데, 그 부분이 좋았다. 목적도 없고 어떠한 거창한 메시지도 없고, 그저 즐기고자 하는 모습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돌이켜 보면 그렇다. 음악에서 꼭 무언갈 느껴야만 하나? 이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줬다. 그리곤 속삭인다. "한 입 더 먹어 볼래?"





※ '미온', '배게비누', 'G.O'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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