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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Nov 07. 2023

케이팝의 과도한 레퍼런스, 이게 최선입니까?

올해 4월과 10월에 발매된 하동균의 노래 ‘푸른 밤 이 노래’와 ‘이 밤 나의 마음’은 2023년 발매된 곡 중에서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든 곡일 것이다. 레드벨벳의 조이가 듀엣으로 참여한 ‘푸른 밤 이 노래’는 첫 인트로 기타 리프부터 시작해 악기들의 운용, 탑라인을 비롯한 전체적인 진행 등 모든 면에서 잔나비가 떠오르지만 그래도 이 곡은 하동균의 커리어라기보다는 PJ 엔터테인먼트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성 싱글이기에 그나마 참작이 가능하다. 작곡가도 하동균 본인이 아니고 말이다. 


문제는 ‘이 밤 나의 마음’이다. 이 노래를 재생하면 우리는 3초 내로 검정치마의 ‘Everything’을 떠오르게 된다. 혹자는 ‘이런 몽환적이고 로파이한 사운드의 인디팝이 널리고 널린 게 인디 씬이지 않나’라고도 반문하겠지만 이 곡이 하동균의 커리어에서 최악의 오점인 이유는, 그리고 올해 들은 음악 중 최악이었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검정치마의 ‘Everything’을 시작으로 한국 인디 씬을 강타했던 유사한 질감의 노래들 ─너드커넥션 (Nerd Connection)의 ‘좋은 밤 좋은 꿈’이라거나 카더가든의 ‘Home Sweet Home’ 같은 곡─ 은 엄밀히 말하면 2016년부터 2020년, 조금 넉넉하게 잡으면 21년까지 유행했다가 서서히 저물고 있는 장르이다. 20년 전후부터는 레트로 열풍이 불어 시티팝이나 신스팝 장르의 음악들이 유행했으며, 최근에는 일본 음악의 유행으로 J Rock 스타일의 곡, 혹은 테크닉을 강조한 (그러면서도 대중성까지 가미한) 신예 밴드들의 약진이 돋보이고 있는 것이 현재 인디 씬이다. 그렇다면 하동균의 ‘이 밤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2023년 지금 시점에서 유행이 한참 다 지나간 곡을 가져온 것도 문제지만 그 속에서 본인의 개성이라거나 재해석이 들어가 있는가? 솔직하게 말해서 이 곡은 ‘Everything’의 재판에 불과한, 모조품에 불과하다. 


뮤비마저 5년 전 그 감성이라 너무 킹받는다.

두 번째 이유는 하동균 본인의 커리어적 문제이다. 2003년에 데뷔한 하동균은 어느덧 데뷔 21주년이니, 현재 대중가수 중에서도 무척이나 경력이 긴 편에 속한다. 그렇게 긴 커리어 속에서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히트곡을 배출해온 그가 이렇게도 의도가 보이는 레퍼런스 속에서 뻔하디 뻔한 곡을 가지고 나왔으니 커리어 내에서도 매우 안타까운 순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21년의 짬밥의 결과물이 이런 곡이라는 것은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과도한 레퍼런스 문제는 비단 하동균만이 아니라 케이팝 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발매된 VIVIZ (비비지)의 타이틀곡 ‘MANIAC’이 그렇다. 이 곡과 IVE (아이브)의 ‘Off the Record’ 사이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이브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 곡들이 과연 FIFTY FIFTY의 ‘Cupid’와 어떤 차별점이 있으며, 그 외에도 일 년에 수십 곡씩 쏟아지는 양산형 디스코-신스팝 넘버의 곡들과 무슨 차이가 있냐는 말이다. 하다못해 그 ‘Cupid’조차도 BENEE의 ‘Supalonely’와 비슷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말이다. 


케이팝에서 너무 많이 들어본 이 맛. 물론 이 곡이 그 장르의 원조인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의 케이팝 씬은 철저한 레퍼런스 싸움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획사에서 다음 앨범을 기획하기 위해 해외의 핫한 장르와 뮤지션, 작곡가들을 찾는데 혈안이 돼있으며 이는 곧 해외의 유행하는 음악 누구보다 빠르게 카피하기로 귀결된다. 올해 초 발매된 키의 ‘Killer’는 The Weeknd의 복제판이었으며 (심지어 ‘Blinding Lights’는 아무리 좋게 봐도 유행이 다 지난 곡이었다!) LE SSERAFIM (르세라핌) 역시 ‘ANTIFRAGILE’ 이후로 계속해서 Rosalia를 레퍼런스 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NewJeans 역시도 PinkPantheress의 음악을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리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고, 이 밖에도 정도를 넘어선 레퍼런스의 곡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 상황이다. 디스코가 유행했을 때는 많은 그룹들이 앞다투어 디스코 음악을 시도했고, UK 개러지가 떠오르면 너 나 할 것 없이 UK 개러지를 선보인다. 이런 시도는 그 아티스트들이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을 의미할까, 줏대 없이 유행하는 음악을 좇는다는 것을 의미할까? 최고의 프로듀서들 아래에서 장기적으로 음악을 기획하는 NewJeans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룹들은 높은 확률로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즉, 나쁘게 말하면 현재 케이팝 그룹의 음악적 정체성은 작곡가들의 실험과 개성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 ‘해외 아티스트 음악들을 누가 먼저 어떻게 선점하는가’에서 탄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레퍼런스 자체의 문제는 최근만이 일이 아니긴 하다. 작년의 유희열 사태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크고 작은 과도한 레퍼런스와 표절 논란들이 가요계를 꾸준히 달궈 왔다.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의 양상을 비교해 보면 그 디테일은 사뭇 다르다. 00년대 이전에는 팝송 자체가 워낙 듣는 것부터 어려웠으니 말 그대로 팝송을 듣고 훌륭하게 잘 레퍼런스 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뛰어난 아티스트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00년대부터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대중들도 쉽게 팝송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최소한 숨겨진 노래들이나 옛날 노래들을 레퍼런스 하려는 노력이라도 있었다. 때문에 이때까지의 표절 논란들은 동시대의 히트 곡들보다는 예전의 히트곡들, 혹은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앞서 언급했듯) 그 누구보다 빨리 해외의 신곡을 레퍼런스 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중들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각종 플랫폼을 통해 해외의 음악들을 빠르게 접할 수 있기에 그것을 눈치채기도 더욱 쉬운 상황이다.

르세라핌 - 로살리아는 음악 뿐 아니라 컨셉과 안무, 의상마저도 비슷하다


과거의 표절과 과도한 레퍼런스를 옹호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런 팝 레퍼런스는 결국 해외의 청자들을 사로잡아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도 알고 있으며, 해외의 팝스타들 역시도 서로를 레퍼런스 하는 일도 많다는 것도 역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케이팝 음악이 빌보드 싱글 1위를 달성하고, 앨범 판매량은 조금만 잘나가면 초동 100만 장을 우습게 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런 지금도 음악적으로 팝과 다른, 새로운 무엇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누가 누가 훌륭하게 잘 레퍼런스 하는가’가 핵심 논점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프다. 케이팝이라는 음악이 단순히 팝의 아류가 아닌 정말로 독자적인 하나의 음악 장르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말로 아티스틱 한 무언가가,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돌 그룹뿐만 아니라 하동균을 비롯한 메이저 아티스트들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이 커지고 자본이 유입되면 그 돈에 맞는 음악을 선보이기 위해 더더욱 노력해야 한다.






By 베실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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