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MONSTER, 드림캐쳐, 태연, King Gnu 외
율무 : YG 엔터테인먼트는 서바이벌 콘텐츠 강자답게 노래, 랩, 퍼포먼스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데뷔 조 연습생들을 자신 있게 공개했다. 타이틀곡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신중을 기하기 위해 데뷔 일정까지 연기하며 데뷔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2NE1스러운 사운드 질감과 블랙핑크스러운 가사 스타일은 아는 맛, 먹어봤던 맛, 익숙한 맛을 연상시킨다. 좋게 말하면 안정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신인 걸그룹에게 촌스러움을 심어버렸다.
베이비몬스터는 야구 콘셉트를 통해 타격 준비를 마친 신인의 당찬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YG의 전통적인 힙합 느낌도 아닌, 그렇다고 4세대 걸그룹의 느낌도 아닌 노래 전반적으로 올드한 구성이 콘셉트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트렌드를 의식해서 반영한 듯한 프리코러스의 뜬금없는 저지클럽 사운드나 후반부의 억지스럽게 호응을 유도하는 떼창이 그러하다. 차라리 떼창 없이 깔끔하게 곡을 마무리했다면 지금보다 거부감이 덜 할지도 모른다. 또한 '예쁘고 착한 내가 어떻게 변할지'와 같이 블랙핑크에서 많이 들었던 뻔한 가사를 신인 걸그룹에게 적용했다는 점에서 묘한 이질감이 든다.
2NE1과 블랙핑크는 K-POP 걸그룹으로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걸스힙합의 훌륭한 레퍼런스가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데뷔곡에서 선배 걸그룹의 음악이 겹쳐 보인다는 점에서 결국 YG표 자가 복제라는 인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역대 K-POP 그룹의 데뷔곡 뮤직비디오 중 가장 빠르게 5,000만 뷰를 기록했다는 화제성은 꽉 잡았지만, 과연 타석에 들어선 베이비몬스터가 홈런을 쳤다고 볼 수 있을까. 홈런은 쳤을지언정 역습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등구 : 장르 음악적인 색채가 짙었던 아티스트가 팝스러워진 곡을 낸다면, 비교적 약해졌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VillainS]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여전히 펑크, 메탈적인 사운드가 있긴 하지만 이전에 비해 많이 빠졌고, 가사도 판타지적인 내용을 덜어내고 더 가벼워졌으며, 송폼도 일반적인 록의 작법에서 벗어나 흔치 않은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은 '다른 그룹이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사실 그렇게 느낀 건 이렇게 매번 하드한 메탈 사운드를 들려주는 아이돌이 드림캐쳐가 유일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예 다른 장르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변화를 주더라도 그들의 포지션이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쁘게 말하면 신선함을 주기 어렵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도 그걸 잘 알았기 때문에 [VillainS]라는 앨범이 나왔겠지만, 더욱 롱런하기 위해선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제이 :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곡, 다이내믹한 화려함이 아닌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담백함, 사운드보다는 보컬에 의존한 음악. 전체적으로 미니 4집 [What Do I Call You]와 비슷한 분위기를 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에 색다른 인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철저하게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 때문이다. 이 점이 이번 앨범을 태연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앨범명에서부터 편지를 연상시키는 [To. X]는 X라는 특정 인물이 낳은 이야기로 유기성 있는 서사를 자랑한다. 소개 글 또한 음악적 설명 없이 X를 향한 편지 형태로 짜임새 있는 구조를 보이는데, 이와 달리 음악적으로는 가볍고 단출한 방식을 지향했다. 타이틀 곡 ‘To. X’는 반복되는 기타 리프와 드럼을 기반으로 특별한 악기의 추가 없이 무난한 진행을 보이는데, 자칫 심심하다는 인상의 위험은 보컬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막았다. 편지라는 콘셉트에 따라 실제로 전 연인에게 말하는 듯한 날카롭게 읊조리는 보컬은 잠깐의 숨돌림 없이 할 말을 쏟아붓고, 또렷한 발음으로 단번에 내용 파악이 되는 다른 부분과 달리 코러스 말미에 빠르게 지나가는 'Gonna block you'는 일부러 'Fuck you'로 들리게끔 발음했다.
이후 다음 트랙인 ‘Melt Away’에서는 파워풀한 보컬로 잠깐 분위기 전환을 이루지만, 이마저도 줄지어 이어지는 chill 한 느낌의 곡들의 향연에 다시금 앨범의 색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해서 유지한 모노톤의 앨범이다. 사운드에 힘을 덜어 보컬에 실었고, 아트워크에서 빠진 색상은 서사를 다채롭게 덧칠했다. 형형색색의 화려함을 수놓아도, 흑백의 담백함을 가져와도, 모든 걸 태연으로 물들인 앨범이었다. 본인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 뚜렷한 색이 없는 가수라는 단점으로 여겼지만, 이는 명백한 장점이자 자신만의 필살기가 틀림없다.
등구 : 킹누는 항상 여러 장르를 섞어 뻔하지 않은 음악을 들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정통 락 사운드가 주가 되었었다. 하지만 이번 [THE GREATEST UNKNOWN]에서는 밴드 사운드가 줄고, 드릴을 연상시키는 808 베이스, 기계적인 보컬 이펙터, 글리치, 패드 사운드 등의 사이키델릭한 전자음악 요소들이 웅장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함께 이어가고 있다.
사실 이게 킹누와 딱 맞는 사운드라는 생각이 아직은 들지 않는다. ‘Asura’의 랩과 신스 사운드는 촌스럽고, ‘2MORO’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 오토튠은 과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다른 장르의 요소를 적재적소에 조화롭게 버무려 신선함을 주던 그들의 특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한 곡들(‘IKAROS’, ‘Asura’, ‘Abuku’, ‘2MORO’)과 대중성 있는 곡들(‘Sakayume’, ‘SPECIALZ’, ‘Ame Sansan’) 사이의 간극이 크게 느껴져 트랙들이 서로 따로 논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추가로 더 아쉬운 점은 이전 싱글곡들을 너무 많이 실어 앨범 볼륨이 필요 이상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터루드가 중간중간 껴있다고 하더라도 21곡이라는 트랙 수는 요즘 같이 점점 짧아지는 세상에선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무드를 신경 쓴 듯한 트랙 배치나, 인터루드로 트랙 사이사이를 연결해 주며 자연스레 흐름이 이어지도록 하는 등의 노력도 떨어지는 집중력을 붙잡기엔 부족했다. 거의 4년 만에 나온 정규지만, 여러모로 다시 앨범 단위로 재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율무 : MAX는 ‘Blueberry Eyes’를 통해 아내와의 로맨틱한 순간과 임신 중인 아이를 기다리며 느끼는 감정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번 신보를 통해 그의 딸 Edie Celine의 생일을 축하하며 그녀가 태어난 순간, 그의 품에 처음으로 안겼을 때의 감정을 표현했다. MAX는 당시의 벅찬 감정을 그대로 담아 딸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소개하고 싶다는 헌신적인 가사로써 가족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을 전한다. 후렴구에서 ‘Goodnight’ 가사의 반복을 통해 마치 자장가처럼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바이올린은 연약함을 담고 있으면서도 MAX의 목소리에 강인함을 실어준다. 동시에 부드러운 피아노는 겨울에 태어난 아이에게 포근한 이불이 되어주는 듯 편안한 무드를 이어간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만든 음악을 생일 선물로 전달함으로써 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Edie Celine을 향한 MAX의 애틋한 가사와 다정한 보컬을 담은 이번 신보는 Edie Celine뿐만 아니라 MAX에게도 2023년의 추억과 감정이 담긴 특별한 타임캡슐 같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부모가 아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그 사랑을 받는 삶의 작은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곡이 되길 바란다.
제이 : 테일러 스위프트가 사랑받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자기 경험을 노래에 녹여내어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그간 진솔한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로 풀어냈고, 이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엔 너무 큰 유명세를 가진 탓일까. 사람들은 음악보다는 화려한 연애사에 더 초점을 두곤 했다. 그 때문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몇몇 음악에는 전 연인에 대한 이슈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발매와 동시에 너나 할 거 없이 조 알윈과의 결별을 곡에 대입하고 있는 이번도 마찬가지다.
사실 해당 곡은 의식을 잃어간다는 제목과 인트로의 한숨만으로 충분한 메시지 전달을 이루는 곡이다. 즉, 음악 외적인 서사나 가사보다 사운드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온전한 감상이 가능하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청자의 이목을 끄는 심장 박동 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 테일러 스위프트의 심장 박동을 샘플링한 이 소리는 급진적인 전개 없이 섬세한 감정선 위주의 진행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4분 내내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심장 박동 소리에 의존한 채 담담하게 이어가는 보컬은 높은 몰입도를 자아내고, drop을 활용한 장치는 고조된 분위기의 주도권을 다시 섬세한 연출로 가져온다. 또, 테일러 스위프트의 작법 중 하나인 잔향이나 리버브가 많이 남는 듯한 믹싱을 통해 아련함을 배가했다.
이 정교한 사운드는 서사에 대한 이해 없이도 분위기를 압도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잠시 연애사에 대한 관심은 끄고 조용히 울려 퍼지는 심장 박동과 섬세한 보컬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이제는 그녀의 신보가 '아 그 전 남친 노래?'가 아닌 '아 그 심장 소리 나던 아련한 노래!'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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