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RIN, tripleS, WOODZ, GAC, Tems 외
미온 : 공중전화로, 편지로 마음을 전하던 아날로그 시절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카카오톡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요즘엔 느끼기 어려운, 기다림과 그리움 같은 것들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완벽한 노스탤지어가 되어줄 곡이 기린의 목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기린은 90년대 뉴잭스윙부터 알앤비까지, 오리지널을 재현하면서도 한국인 입맛에 맞는 퓨전음악을 만들어 왔다. 새로이 발매된 싱글 ‘데리러 갈게’도 마찬가지인데, 삐삐를 사용하던 그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신디사이저와 리버브 가득한 전자피아노, 슬로우한 리듬의 전자드럼까지.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와 같은 90년대 한국 알앤비, 발라드 음악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사운드를 재현해 내면서도 세련된 사운드를 담아냈다. 게다가 기교 없이 담담하게 얹어지는 보컬은 옛 발라드 음악 속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려줄 믹스 테이프를 만들어 수화기 건너로 들려주던 시절을 그리게 했다.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이제는 발라드 음악에서조차 보기 힘든 순애보의 정서를 이 곡에서 맛볼 수 있다는 점. 또, 이와 상반되는 재치 있는 뮤직비디오는 덤인데, 재치와 감정 모두 챙긴 싱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그를 통해 한국형 레트로 알앤비의 리바이벌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해'라는 텍스트 대신 호출번호 '486'으로 고백하던 시절, 누군가는 동경해왔을 낭만의 시절을 이 곡과 함께 몸소 체험해 보길 바란다.
배게비누 : 트리플에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가사를 몰라도 다양한 '소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새 유닛 NXT의 ‘Just Do It’은 사운드만으로도 소녀들의 포부, 노력, 미숙함을 충분히 담아낸다.
미성년자 멤버들의 풋풋한 음색은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소녀'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프리코러스에서는 이 목소리로 음 하나하나를 꼭꼭 눌러가며 부른다. 그 자체로도 서툴지만 차근히 나아가는 듯한 노래는 '흔들려도 피어나는', '마이크 쥐고서 하나둘씩'이라는 가사와 찰떡같이 달라붙는다. 위아래로 널뛰는 발랄한 멜로디의 후렴은 힘 있고 진한 보컬의 이질감은 줄이고 간절함을 전달한다. 남겨진 약간의 이질감은 오히려 특이점이 되어 이 파트를 뇌리에 남긴다.
트리플에스는 복잡한 세계관과 유닛 탓에 진입장벽이 높은 팀이지만 일관된 정체성과 이를 투영한 쉬운 음악으로 그 벽을 허물고 있다. 나 역시 듣기에도 즐기기에도 쉬운 음악의 힘에 의해 이 팀에 끌렸다. ‘Just Do It’은 세계관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소녀들의 당찬 활기가 필요할 때 여지없이 듣고 싶은 음악이다.
G.O : 프로젝트 아이돌 그룹 활동을 마친 후, 우즈는 록의 영향을 받은 음악들을 발매하곤 했다. 그 소극적인 시작을 보여주었던 팝 펑크곡 ‘BUMP BUMP’부터 우즈만의 감성을 각인시켰던 얼터너티브 록 ‘Drowning’까지. 아이돌 그룹 출신의 솔로 아티스트에서 끝내 라이징 록스타로 발돋움한 이 아티스트는 이번 싱글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록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상컨대 더는 대중성과 음악성 사이에서 고뇌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아티스트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곡이 아닐까 싶다.
이번 싱글 ‘AMNESIA’는 밴드 사운드와 보컬 볼륨이 커지기도 줄어들기도 하며 서로 대치하는 느낌이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거칠고도 과장된 밴드 사운드가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장르의 색을 짙게 부여하고, 보컬의 볼륨을 잡아먹을 듯 쓰나미처럼 강하게 밀려 들어온다. 트랙 그 자체만 보자면 장르적인 예술성이 짙어져, 대중성의 결여라는 문제가 아이돌 성향을 지닌 아티스트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것이다. 다만 대비되는 맑은 미성 보이스 컬러가 덧입혀지며 서로 단점을 상쇄하고, 기묘하게도 담백한 느낌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매니악한 색깔이 짙은 록 장르 음악과 다수가 소비하는 트렌디한 보컬이 제각기 개성을 뽐내며, 대중성과 예술성이 공존하는 유니크한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나는 이 지점을 '우즈만이 가진 감성'이라 정의하고 싶다.
또한, '무엇을 잊고 오늘을 살아가는가?'와 같이 곡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가 합쳐지며, 특별한 보컬 연기 없이도 울부짖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등 와닿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우즈만의 팝 펑크나 랩, R&B 등 올라운더의 면모가 보이는 음악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아쉬운 곡일 수 있겠으나, 아이돌 그룹의 래퍼 포지션이었던 '조승연'이 마침내 록 보컬리스트 'WOODZ'의 수식어를 얻어낸 상징적인 곡이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곧 시작될 군백기 이후에는 한층 더 다채로운 수식어를 얻게 될 우즈를 기대하며.
배게비누: 불후의 명곡인 마이클 잭슨의 ‘Love Never Felt So Good’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과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너무 잔잔하지도, 몰아치지도 않아서 딱 적당하고 4분 내내 기분 좋은 사랑스러움으로 넘쳐나 언제 들어도 만족스럽다. ‘THE WAY YOU MOVE’를 들으면 이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펑키한 기타로 시작하는 이 디스코 음악은 적당히 신나고 적당히 로맨틱해서 충분하다. 이 곡이 평범해서 넘어가는 곡이 아니라 적당해서 좋은 곡이 되는 건 스트링 사운드 덕분이다. 특히 2절 후렴과 마지막 연주에 등장하는 저음의 스트링은 들썩이는 세션에 고급스러움과 깊이를 더한다. 우연히 알게 된 인도네시아 그룹에게서 재발견한 적당함의 미학이 담긴 곡이다.
미온 : Future, Drake와 함께한 곡, ‘WAIT FOR YOU’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렸던 Tems. 이번엔 솔로곡을 통해 'Tems' 그 자체로서 기억될 준비를 마쳤다. 그녀는 주로 컨템포러리 알앤비와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오가곤 했으나, 이번 싱글에서는 알테(Alté)라는 아프로비트 퓨전 장르를 녹여냈다. 이는 2년 전 발매한 ‘Crazy Things’에서도 선보인 적 있는데, 그보다는 더욱 차분하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를 그려냈다.
특징적인 것은 날카롭게 쪼개지는 스네어 사운드와 부드럽게 흐르는 기타 사운드의 동시 배치인데, 이러한 배치는 흑과 백 마냥 강렬히 대조될 법하지만 예상외로 매끄러웠다. 이에 소울 가득한 보컬이 더해져 유려한 인상까지 자아낸다. 유려함은 꽉 찬 스트링 사운드만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 이 곡이 그 생각을 바뀌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는 이 곡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장면들, 곡선을 그리며 느릿하게 이어지는 움직임 등을 통해 이 곡이 가진 부드러운 바이브를 배로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아프로비트의 무한 확장, 부조화의 하모니를 맛보고 싶다면 필청해 보시길.
G.O : 남아공 출신 아티스트가 1968년 이후,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다. 흥행의 근원으로 틱톡 챌린지의 지대한 영향이 있었지만, 틱톡으로부터의 흥행은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음악'이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함께한다.
타이틀곡 ‘Water’는 물이라는 소재를 음악으로 청각화한 듯 유려하고도 느긋한 바이브의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느 하나 크게 임팩트가 있거나 강렬한 음악은 아니지만, 차트 성적으로도 증명되었듯 여유롭고도 편안한 느낌 그 자체로 소비를 끌어냈다. 아마피아노 특유의 부드러운 신스 사운드가 재지한 느낌을 주며 마치 라운지 음악과도 같은 궤를 함께한다. 근래의 해외차트를 강타한 아프리카 장르를 기반으로 유행을 선도하고, 로그 드럼과 셰이커 사운드를 통해 보다 더 이국적인 느낌을 한 스푼 가미했다. 다만 남아공 음악에 뿌리를 두고 제작된 이 음악이 크게 낯설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익숙한 R&B 스타일이 엿보이는 가창이 한몫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또한, 인트로부터 외치는 중심 멜로디를 통해 쉽게 곡을 각인했을 뿐 아니라, 그저 '매혹적인 유혹'을 노래하고 있기에 복잡한 해석을 필요치 않는다는 점.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유니크하지만 익숙하고도 직관적인 음악이라는 것이다.
비록 아쉬운 점은 5곡 남짓한 수록곡들이 모두 비슷한 기조로 흘러가기에 특별히 언급할 만한 요소는 전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틀곡 ‘Water’가 장르의 정석적인 특징은 물론이거니와 대중성도 두루 갖추며 현 아마피아노를 대표하는 곡이라 불리는 만큼, 들어야 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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