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IZE, 실리카겔, 정세운, Arden Jones 외
율무 : K-POP 씬에서 다소 흔한 첫사랑과 레트로를 키워드로 삼았지만, 라이즈의 음악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유려한 피아노 리프와 우아한 스트링이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지만, 스네어와 잘게 쪼갠 드럼 비트는 빠른 속도감과 긴장감, 그리고 힙한 매력까지 불러일으킨다. 단절되는 듯한 랩핑은 현재 30-40대에게는 90년대 god 음악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곡 전반적으로는 10-20대를 대상으로 한 트렌디한 이지리스닝 곡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세대를 포용하고 융합하려는 목표는 여전히 변함이 없어 보인다. 이는 시대를 초월한 명예의 노래방 애창곡, izi의 ‘응급실’을 샘플링함으로써 국내 팬층과 대중성을 더욱 확보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도 해석된다.
데뷔 이후 세 번째 싱글을 발매하고 나서야 라이즈가 정의한 '이모셔널 팝'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다. 기존의 것을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키기보단,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한 방울 더하는 것. 낯익은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신선함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아직 레트로를 지겨운 음악으로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일지도 모르겠다. 라이즈 덕분에 레트로는 더 많은 생명력을 얻었고, 유효기간은 무기한으로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Jason : 공백기를 거치면서 실리카겔의 음악은 보다 성숙해졌다. 전체적으로 디스토션이 강하게 걸린 사운드를 내면서, 전작들에서 자유롭게 활개치던 사이키델릭을 록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 ‘Kyo 181’은 사이키델릭 특유의 환상적인 몰입감은 여전하면서도 록에서 느껴지는 직관적인 쾌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앨범이었다. 마치 큐브를 맞추는 것처럼 모든 요소들이 질서정연하게 흘러가면서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는 곧 실리카겔의 새로운 챕터를 선포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큐브에서 온전한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은 단 한순간에 불과하듯, 이후로는 록 사운드가 더욱 두드러지면서 본래의 몽환적인 요소들은 어딘가 흐릿해졌다. [POWER ANDRE 99]는 이러한 실리카겔의 두 번째 챕터를 대변하는 앨범이다. 오히려 거친 질감을 강조한 ‘Eres Tu’나 펑크 록에 가까운 ‘APEX’처럼 록의 생동감을 극대화한 트랙들은 폭발적인 라이브를 듣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하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POWER ANDRE 99]는 전체적으로 사이키델릭과 록 사이의 어딘가에서 무질서하게 존재하는 애매한 상태로 남아버렸다. ‘NO PAIN’으로 기대가 커진 시점이었던 만큼 아쉬움도 크게 느껴졌다.
제이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방황하던 초기 음악과 달리 자칭타칭 '싱어송라이돌'이라는 타이틀이 부여된 순간부터 본인의 색을 찾아가던 정세운이었다.
사실 개인적인 감상으로 보컬 톤 자체가 자칫하면 지루하다는 인상을 주기 쉬운 편이라 사운드나 보컬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인 아티스트라 생각했다. 다행히도 이번 앨범에서는 여러 장치를 통해 위험 요소를 제거한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싱어송라이돌’에서는 댄스, 색소폰 등 자신을 소개하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에 맞는 사운드의 연출로 듣는 재미를 더했고, ‘Perfectly’와 ‘Glow in the show’, ‘YOU ARE WITH ME!’와 같이 나른한 보컬이 버무려진 곡 사이사이엔 힙합 리듬의 ‘Always’나 ‘17’의 러프한 기타 사운드 등 다양한 시도로 연속되는 잔잔한 무드를 중화시켰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타이틀 곡 ‘Quiz’는 짧은 시간 내에 너무 많은 얘기를 담으려다 보니 빈틈없이 진행되는 멜로디에 약간의 어색함이 묻어났고, 야심 차게 준비한 Nightly와의 협업인 ‘sharpie’는 피처링에 먹혀 주객전도된 모양새를 보였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보니 초래된 결과인 듯하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전적 이야기와 K팝스러운 음악, 인기 아이돌의 필수 코스이기도 한 해외 아티스트와의 콜라보 등 대기업의 자본과 만난 다재다능한 능력은 기존의 인기에 힘입어 그가 원하는 '싱어송라이돌'이라는 왕관을 주었지만,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한 노력은 안정권에 접어든 지금도 계속해서 필요할 듯하다.
율무 : 여러 아티스트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장르와 스타일을 확장하고자 한다는 그의 인터뷰 내용처럼, 이번 신보 ‘hard enough to stay alive’ 또한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익숙한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켄드릭 라마나 맥 밀러와 같은 힙합 아티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영리한 라임은 코러스에 중독성을 더했고, 락과 팝의 요소를 적절하게 버무린 재치 있는 탑라인은 프린스의 음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코러스 후반의 파워풀한 보컬과 드럼과 대비되는 쨍한 신스에 주목해 보자. 이는 벌스에서부터 이어진 강렬한 락 사운드로 인해 누적된 피로감을 조절하여 곡의 강약 조절을 해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음악을 해체하고 장르를 융합하는 과정에서 Arden Jones만의 사운드를 적절하게 시도해 곡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싸이키델릭한 드럼 앤 베이스의 ‘indigo’나 ‘hard enough to stay alive’와 비슷한 기조로 흘러가는 ‘count me in’은 싱글 단위에서는 모두 훌륭하다고 볼 수 있지만, 앨범 단위로 보면 다소 이질적인 조합으로 여겨진다. 세 곡 모두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탓에 트랙 간 조화가 미흡한 면이 있다. 트랙 간의 힘을 더하고 빼는 줄다리기가 조금 더 팽팽하게 조율되었다면 곡의 수가 적더라도 훨씬 조화롭고 콤팩트한 앨범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머무른다.
Jason : 우지를 록스타로 만들어준 곡을 고르자면 ‘XO Tour Llif3’를 언급하고 싶다. 싱잉과 트랩의 조합에서 파생한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더불어 록을 연상케하는 독특한 질감의 보이스가 귀를 사로잡으면서 선풍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릴린 맨슨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자신의 메탈 취향을 가득 담은 전작 [Pink Tape]은 힘이 과하게 들어간 느낌이었다. 강렬한 샤우팅으로 분위기를 살려보려 노력하고 브링 미 더 호라이즌을 피처링으로 내세우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어색했다. 돌이켜보면 우지 음악의 좋은 지점은 어디까지나 '가벼움'에 있기 때문이었다.
‘Red Moon’에서 우지는 다시 가벼움을 전면에 배치했다. 힘을 빼고 부른 싱잉 덕분에 매력적인 록 보이스가 은은하게 살아나면서 본연의 개성을 되찾았다. 다만 전작에서의 헤비함을 덜어내기 위함이었는지 브레이크비트를 결합하여 팝스러움을 첨가한 전략은 밋밋하게 느껴졌다. 트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은 좋았으나 아무래도 ‘Just Wanna Rock’의 임팩트가 강렬했기 때문인 듯하다. 오히려 트랩에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제이 : 그가 쌓아온 커리어를 보면 맥시가 평소 부드럽고 유연한 흐름을 지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신보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데, 이번엔 '느슨함'이라는 독특한 매력을 한 스푼 더했다.
첨가된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뭉개지는 발음으로 늘어지는 보컬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노래는 펑키한 베이스라인과 타이트한 보컬로 팽팽하게 진행되다가도 'Bodies In A Room'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순간 모든 건 한도 없이 풀어진다. 짧은 파트였지만 웅얼거리는 듯한 창법은 단시간에 메시지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직후에 등장하는 특이한 신스 사운드는 곧바로 느슨함을 다시 조이며 긴장감을 가져왔다. 급격한 변화로 인한 이질감이 아닌 되려 높은 몰입을 자아내는 순간이었다.
그 때문일까, 요즘 보기 드물다는 3분 후반대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 없이 곡이 전개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대놓고 드러난 전략이었기에 그 매력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곡은 짧은 음악에 중독된 우리를 느슨함이라는 무기로 단번에 치료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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