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MIXX, 오존, 하현상, Lil Nas X 외
도라 : 엔믹스가 돌아왔다. 말랑하고 쉬운 음악이 아니라 본래의 복잡함으로. 솔직히 말해서, 전작 ‘A Midsummer NMIXX’s Dream’과 ‘expérgo’을 통해 이지리스닝 노선에 잠시 발을 들였을 때 길을 단단히 잃었다고 생각했다. 'NMIXX!'를 외치며 쫀득하게 새로운 세계를 열던 엔믹스 대신 김 빠진 아쉬움이 잔존했으니까. 누군가는 그 허전함을 탈퇴한 멤버의 부재 때문이라 했지만, 내게는 탈(脫) 믹스 팝의 혼란기로 느껴졌다. 그런 엔믹스에게 이번 음반은 트렌드를 좇던 2023년을 실패가 아닌 '여정'으로 탈바꿈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ack to basic. 두 번째 페이즈를 시작하듯 'NMIXX!'를 외치는 게 역시 답이었다.
올드 스쿨 힙합의 묵직함에서 팝 펑크로, 라틴 힙합에서 드림 팝으로 톤을 유지하며 엔믹스는 초 단위로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과연 닫혀있는 세계를 부수고 달려가려는 앨범다운 기세다. 엔믹스의 조화로운 세계는 다양한 취향을 묶어 함께 춤추게 한다. 패션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친구가 되듯, UK Garage와 미니멀 팝에 푹 빠진 리스너와 클라이맥스에 고음이 터지는 '고인 물 케이팝' 리스너까지 포용하는 담대함이란!
대략 10가지의 장르가 7개의 트랙으로 꽃다발처럼 풍성하게 엮였다. 그럼에도 큰 토대는 RAW하고 묵직한 비트가 중심을 잡은 가운데 분홍빛 드림 팝이 살며시 올라탄다. 자칫 평면적으로 비칠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자리에서 작업물로써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입체적인 모습이 아닐까? 헐렁한 와이드 팬츠, 가끔은 리본 가득한 원피스, 질리면 카우보이 부츠. 그 모든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 말할 수 있는 엔믹스의 매력 맥시멀리스트 행보에 다 함께 DASH!
frank : 공존하는 감정이 있다. 쓸쓸하면서 포근하고, 차가우면서 따뜻하고, 어둡지만 한 편으론 희망적인. 사실 현실 속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단 공존하는 감정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감정의 치우침을 노래하는 곡들은 자극적이지만, 그렇기에 또한 편치 않다. 과도한 사랑도, 과도한 슬픔도 뭐든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은 부담스러운 법이니까.
그럴 때면 오존의 음악을 찾게 된다. 그의 음악은 항상 적당하다. 적당히 희망적이고, 적당히 슬프다. 하지만 내게 뭔가 주입하지 않으려는 그 적당한 거리감이 참 편안하고 위로가 된다. 또한 음악에 여백이 많다. 하고픈 말을 가사에 고봉밥처럼 담아 소화하기 바쁜 곡들과 달리, 마치 모든 것에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가사로 멜로디를 따라 흐르듯 노래한다. 그리고 그 여백 덕에 나는 나름대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번 싱글에 수록된 ‘Bye’와 ‘Don’t Cry’는 같은 곡을 2가지 버전으로 편곡했다. 한 곡은 비교적 희망찬 분위기지만, 한 곡은 어딘가 모를 먹먹함을 남긴다. 같은 상황 속 두 개의 감정이 공존한다. ‘Bye’가 때로는 밝은 인사말이 되고, 때로는 눈물 섞인 이별의 마지막 한 마디가 되기도 하듯이. 하지만 이를 표현하기 위한 그 어떠한 과도함도 없다. 오존이 언제나 그랬듯 그저 적당히 노래했을 뿐.
카니 : 나에게 하현상의 노래 중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역시 ‘등대’일 것이다. 사운드가 월등한 건 아니지만 위태로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네는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하현상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곡이라 생각한다. 이번 앨범 역시 그런 기조를 살리되 더 성숙해진 앨범으로 찾아왔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때는 타이틀 곡 ‘사랑이라고 말해줘’나 업라이트 피아노에 몽환적인 신스를 쌓아 올린 서정적인 타이틀 곡 ‘서로가 없는 곳’보다는 몽글한 사운드에 현악기를 더해 유려한 느낌이 드는 ‘눈꽃’이나 확실한 기승전결에 락 사운드가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Pain’이 좀 더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그러나 곱씹어 듣다 보니 타이틀곡들 속에서 하현상만의 담백함이 느껴졌다. 조잡한 사운드는 배제하고 기교 없는 목소리, 작은 떨림까지 담아내니 가사가 귀에 확 꽂히는 음악, ‘등대’처럼 하현상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음악이었다.
첫 앨범 [My Poor Lonely Heart]는 거친 목소리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수룩했던 앨범이었다면, 5년이 흐른 뒤 나온 [With All My Heart]는 잘 가꿔진 미성의 목소리가 가사에 귀 기울이게 하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시적인 감성이 더 깊어져 전체적으로 성숙해진 앨범이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곡에 듣는 이를 동화시키는 것, 그것은 하현상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고유의 색이며 영원히 변치 않을 유일한 색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카니 : 릴 나스 엑스는 ‘Old Town Road’로 '원 히트 원더'라는 별칭을 얻었음에도 보란 듯이 [MONTERO]를 발매하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입증했다. ‘Old Town Road’에 이어 ‘MONTERO’, ‘INDUSTRY BABY’까지 누구나 들으며 즐길 수 있고 홀리듯 중독되는 훅이 매력적인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J CHRIST’부터는 릴 나스 엑스만의 음악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켄드릭 라마의 ‘HUMBLE’을 샘플링한 비트에 러닝타임 반 이상을 차지하는 훅이 그동안 해왔던 밈에 최적화된 음악은 맞지만 ‘Old Town Road’처럼 재미를 위한 고민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아 임팩트가 전혀 없었다. 그 때문일까 차트를 다 쓸어버릴 거라는 자신감을 비췄음에도 스포티파이 TOP 50 (US) 조차 차트인하지 못하는 결과를 보여줬다.
이유를 찾자면 역시 지나친 컨셉질이다. 릴 나스 엑스는 ‘MONTERO’에서는 사탄, ‘J CHRIST’에서는 신을 본인에 투영시키며 기독교의 동성애 억압에서 파생된 파괴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초반에는 신선했을지 모르지만 점점 선을 넘는 행위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음악은 귀를 질리게 했다. 돌이켜보면 30달러짜리 비트로 시작된 음악이 결국 그를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냈지만 현재 '화제성, 관심, 이슈'에만 매료된 릴 나스 엑스가 가장 빠르게 손 놓아버린 건 음악인 셈이다. 결국 음악 위에 컨셉이 위치한다면 다시 음지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도라 : 영화, 음악, 미술 모든 작품을 볼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게 있다. 아티스트의 원색적인 에너지. 이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뾰족하게 날 선 에너지가 전문가의 손길로 절묘하게 깎여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로다워지면 프로다워질수록 소모되기 쉬운 감정인데 아직 날이 서 있는 걸 보면 그녀의 많지 않은 나이에 감사하게 된다. 그때에 표현할 수 있는 날 것의 에너지가 날 흥분시켰다. 아마도 11살 어린 나이부터 시작한 작곡을 통해 끊임없이 감정을 담아내는 연습을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사운드의 퀄리티는 훌륭하다. 꽉 찬 룸 음향이 방 한가운데에서 원망, 사랑, 분노, 그리움 등 무수히 많은 감정에 짓눌리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를 가능케 만드는 건 그녀가 가진 중저역의 깊은 음색과 공명하는 세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를 외치는 그녀와 함께 울렁거리며 신디사이저가 비명을 지른다. 그렇게 드럼 위에서 한차례 폭풍 같은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그 자리에 찾아온 공허함처럼 베이스와 기타가 텅 빈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뿐일까? ‘Conceited’에서 제세동기의 펄스 소리 같은 날카로운 신스 사운드가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갈 때 지겨움과 배신감 뒤의 의문에 대한 물음표를 그려낸다. 너무 실망한 나머지 차갑게 식어버리는 감정을 이토록 뜨겁게 표현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있을까.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감정들을 음악이라는 매체로 만들어낸 그녀의 삶을 들어보시라.
frank : 라이브로 연주할 음악을 만들고 싶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조니 그린우드와 '선즈 오브 케멧'의 드러머 톰 스키너로 구성된 'The Smile' 결성의 이유라고 한다. 그만큼 싸이키델릭한 전자음은 빠지고 밴드 셋을 비롯한 아날로그 악기 위주로 전개되며, 핵심 멤버 둘이 포함된 만큼 어딘가 초창기 라디오헤드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밴드로서의 메리트가 없지 않느냐고? 과연 그럴까.
톰 요크와 조니 그린우드의 천재성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지만, 나는 이 팀의 진짜 매력은 나머지 한 명의 멤버 톰 스키너의 드럼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전작 [A Light for Attracting Attention]에서는 펑키한 연주로 곡의 최전방에서 활약했다면, 이번 싱글에서는 잔잔한 곡 진행의 사이사이에 개입하며 감상의 즐거움을 더한다. 특히 3번 트랙인 ‘Bending Hectic’의 불규칙한 연주가 인상적인데, 재즈 밴드 드러머 특유의 즉흥 연주로 전반적인 곡의 무드가 너무 처지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라디오헤드스러움'과의 결정적인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 싱글은 (나를 포함한) 라디오헤드의 팬들에게 큰 선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차별점을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라디오헤드의 위대함 없이도 The Smile의 음악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필터를 씌우지 않아도 아름다운 사진이 있듯, 음악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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