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ss, 더 보울스, 이하이, Ariana Grande 외
SOOO : 퐁실퐁실한 수플레 팬케이크 같다. 빡빡한 완성도를 보여줬던 이전의 프로젝트 앨범들과 다르게 이번 앨범은 꿀꺽꿀꺽 넘어간다. 그러나 뭐 하나 대충은 없다. 그는 힘을 빼고서도 앨범만의 콘셉트와 메시지를 완벽하게 담아낸다. 컨셉추얼 프로듀서의 경지다.
사랑의 깊이를 물어보는 앨범명을 따라, 부드럽고 흐릿한 사랑의 감정을 8개의 알앤비 트랙으로 풀어낸다. Sogumm, Kid Milli와 전 곡을 함께했던 두 편의 프로젝트 앨범 이후의 드레스만의 첫 개인 정규 앨범이다. 1 Singer 1 Producer 체계를 벗어나 더 다양한 아티스트와 자유롭게 그려냈다. 가장 뜨거운 반응의 트랙은 타이틀곡 아닌, ‘Take me a home (feat. Meego, dori)’. 몽환적인 부드러운 사운드를 베이스로 Meego와 Dori만의 트렌디한 음색을 얹어 동화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매 앨범마다 그 씬의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는 것도 드레스만의 특징. 이번에도 Sion, 이강승, 구원찬, 종한, 안다영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드레스의 앨범에 이름을 올렸다. 개성 강한 R&B의 소금드레스와 촘촘한 힙합의 밀리드레스에 이어, '사랑의 깊이'라는 아티스트가 아닌 콘셉트로도 완벽한 프로듀싱을 선보인다. 이번 앨범 역시, 장인은 장르와 콘셉트를 가리지 않는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드레스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등구 : 2019년도까지만 해도 블루스 록, 싸이키델릭 록, 훵크 등 여러 장르를 섞으며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주던 더 보울스는 타히티 80이라는 프로듀서를 만난 후 인디 팝, AOR의 방향으로 점점 돌아서더니, 작년 발매한 [BBA]에 이어 이번 싱글에서 90-00년대 시부야케이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마치 Cymbals, Pizzicato Five, KIRINJI를 연상케하는 스트링과 신디사이저, 재지한 멜로디 진행 등은 우리의 향수를 제대로 자극하며 현생으로 굳어있던 몸의 긴장을 풀게 한다.
주말 오전 11시의 평화로운 햇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산뜻한 감성은 어떤 밴드에서 찾든 항상 너무 좋지만, 그들이 국내 밴드라는 것에서 오는 신선함이 감상을 더욱 즐겁게 해 준다. 또한 계속되는 레트로 유행과 J-POP의 흥행 속에서 나름의 전략이자 방향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그들의 음악이 더 많은 트래픽을 모으길 바라는 팬의 입장에서 이번 싱글은 꽤 달가운 행보이기도 하다.
물론 한 앨범, 한 곡에 여러 장르와 요소들을 담아내던 과거와는 다르게 더 대중적이고 팝스러워진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전혀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음악을 계속해서 탐구하고 찾아나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도 이들은 또 새로운 장르를 들고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랬듯 그것도 아주 잘 어울릴 거니까. 지금은 그저 그들이 들려주는 대로 따라 들으면 된다. 그냥 '느껴!'
동치쓰 : 그렇지 않은 곡들도 다수 존재하지만, 보편적으로 발라드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는 경향이 있기에 과한 기교나 감정 과잉 등의 요소가 나에게는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느껴졌다. 그러한 이유로 유독 한국에서는 한 장르로 칭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발라드임에도 개인적으로 해당 장르를 즐겨 듣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귀를 트이게 하는 발라드곡들이 더러 존재해왔다. 신파적인 요란함보다는 감정의 절제를 통한 '덜어냄의 미학'이 통용되는 발라드곡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곡들은 보컬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가사나 사운드 등의 다른 요소들에서마저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개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개인적인 호불호를 넘어서 오히려 플레이리스트에 넣을 정도로 즐겨 듣는 예도 있었다.
그리고 이하이의 이번 싱글 ‘그대가 해준 말’이 그런 예 중 하나가 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간 R&B 보컬로서 커리어를 쌓아왔기에 발라드를 다룰 때도 당연하게 보컬의 기교적인 부분이나 풍부한 감성으로 채워져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해당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꾹꾹 눌러 담은 절제된 감성을 담아낸다. 그녀의 장기인 소울풀한 음색도 기존에 보여왔던 리듬감 있는 보컬 스킬이 아닌, 짙어진 감성과 맞물리니 오히려 곡이 먹먹함으로 가득 찬다. 그렇기에 가사에서처럼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는 사랑 고백이 아이러니하게도 슬프면서 오히려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던 ‘한숨’ 등의 트랙이나, 성시경과 함께한 지난 싱글 ‘골목길’에서 보여준 가능성이 이번 곡을 통해 더욱 꽃을 피웠다는 인상이다. 국내 R&B 보컬리스트로서 이하이가 그은 한 획에 이어, 훗날 이 곡이 감성이 돋보이는 발라더 이하이로서 긋게 될 한 획 중 일부가 되길 바라며.
SOOO : 3년 만에 돌아온 노래하는 아리아나 그란데. 그간 코스메틱 사업과 영화 촬영으로만 얼굴을 비추었던 그녀는 복잡한 사생활과 급격한 체중 감소로만 유명했다. 불륜인가 아닌가, 섭식장애인가 아닌가 떠드는 거대한 소셜 미디어의 태풍을 특유의 가볍고 반짝이는 보컬로 헤쳐나간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프로듀서 Max Martin와 Ilya Salmanzadeh가 함께한 이번 싱글은 Madonna의 ‘Vogue’를 오마쥬하였다. 1990년대의 히트들을 연상시키는 하우스 그루브는 조용하고 매끈하게 이어진다. 익스클루시브 음감회에 평론가들을 앉혀두고 직선적이고 발칙한 가사로 노래하는 아리아나가 그란데의 모습은 Madonna의 ‘Vogue’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연상시킨다.
‘Thank you, Next’의 부드러운 신스 라인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이번 싱글에서는 사운드보다 가사에 집중하고 싶다. 이 정도 실력에 이만큼 'Raw'할 수 있는 팝스타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정도. 그녀의 의도도 그런 듯하다. 특유의 트레이드마크인 높은 애드리브와 가성, 샤이한 추임새는 과감히 생략했다. 걷어낸 자리엔 '네 일은 너의 일, 내 일은 내 것'과 '내 몸에 대해 언급하지 마'등 프라이버시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향한 불쾌감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지난 연말, 그녀는 새 앨범을 작업 중이라는 인스타그램 포스트를 게시했고 이번 싱글은 앞으로 공개될 앨범의 시작일 것이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지나 더 깊어진 감성으로 본업에 돌아온 아리아나 그란데의 새로운 앨범에 집중해보자.
등구 : 섬세한 관능미를 담은 네오소울, 콘템포러리 R&B 앨범 [Red Moon In Venus], 거기에 레게톤이 조화롭게 섞인 [Sin Miedo (del Amor y Otros Demonios)]을 지나 칼리 우치스가 새롭게 제시한 [ORQUÍDEAS]은 라틴 팝이다. 이번 앨범도 과거의 칼리 같은 곡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모두 영어 가사였던 작년 앨범과는 달리 다시 스페인어로 돌아온 가사와 함께, 만약 아무런 정보 없이 들었다면 그녀의 노래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정통 라틴 팝스러운 몇몇 트랙들이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Te Mata’는 볼레로 그 자체라고 볼 수 있고, ‘Muñekita’는 인트로부터 ROSALÍA가 생각나는 곡이었다. 거기에 현재 씬에서 주목받고 있는 라틴 팝 아티스트들로 화려하게 채워진 피처링까지, 그녀는 이번 앨범의 키워드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라틴 팝의 색이 너무 진하다 보니, 보여야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녀 본인에게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도전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녀의 특징이자 장점이 먹먹하고 공간감 있는 사운드 질감과 유려한 멜로디 같은 일관된 프로덕션 안에서 여러 장르들을 하나로 포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몇 트랙들에서는 그 점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같은 앨범 안에 있기에 조화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내가 원했던 대로 레게톤을 그녀만의 몽환적인 사운드로 잘 다듬은 ‘Me Pongo Loca’나 ‘Diosa’ 같은 트랙들의 비중을 더 늘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동치쓰 : 각자의 색이 뚜렷한 세 명의 아티스트가 모였음에도 해당 곡에서는 셋의 색채가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그 중심에는 보컬로서 기둥 역할을 하는 거스 대퍼튼이 있고, 그가 주로 선보여온 몽환적인 사운드가 이 곡의 전체적인 메인 색채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색채에 맞춰 두 힙합 아티스트는 기존에 선보여 온 바이브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감성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특히, 세 박자로 카운트되는 신비로운 아르페지오의 진행이 릴 야티의 랩핑과 함께 투박한 정박의 베이스 사운드로 바뀌는 순간이 해당 곡에서 제일 인상 깊었다. 마치 우리가 꿈꿀 때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꿈 속이기에 용납되듯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그의 곡 소화력이 인상 깊었다.
중심에 자리 잡은 거스 대퍼튼의 색채에 맞추려다 보니 기존의 릴 야티나 조이 배드애스의 매력을 느낄 수 없다는 감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 기존의 색채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어울리는 곡 소화력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기존에 한 팀으로 활동하던 3인조 그룹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해당 곡이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다름 아닌 '리리컬 레모네이드'의 MV 감독 콜 베넷 (Cole Bennett)이 만든 감각적인 MV 때문이다.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세 아티스트의 모습을 공통적으로 검은 배경에 희미하게 노란빛이 감도는 각종 오브제를 활용해 시각적인 감각으로 잡아내니, 서로 다른 세 자아를 가진 한 사람이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렇듯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도 콜 베넷의 시각적인 가이드와 함께 감상하니 더욱 그 어우러짐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올바른 컬러 조합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이 든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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