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 유라, 홍다빈, Jennifer Lopez 외
배게비누 : '유러피안 유스 컬처'라는 의미 모를 콘셉트를 내세우며 등장한 POW. 이 팀의 데뷔곡 ‘Dazzling’은 남자 아이돌 치고 꽤나 과감한 선택이었다. 남자 솔로 아티스트가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달콤하고 펑키한 팝 소울 트랙으로 이지리스닝 추세를 타고자 한 듯하다. 곡 자체는 정말 좋았지만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리스너라면 굳이 아이돌 노래를 안 들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좀 더 아이돌스러웠으면, 그러니까 좀 더 춤추고 싶게 해 주길 바랐다.
전작의 곡과 MV를 토대로 '유러피안 유스 컬처'는 '로맨틱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청춘'이라 나름대로 해석했다. 새 싱글 ‘Valentine’은 이런 감성을 UK 개러지에 입힌 곡이다. 여전히 달콤하고 쉬운 멜로디와 가벼운 트랙은 신나면서도 편안하다. Pow가 하려는 콘셉트를 이어가면서도 댄스 장르를 더해 아이돌의 노래임을 잊지 않는다. 이제야 미상의 콘셉트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며 POW만의 특장점으로 떠오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에 등장한 YG 스타일의 떼창 파트. 그렇게까지 신날 필요는 없었는데 갑자기 급발진해 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환영이고 이번 곡의 변화와 방향성에 긍정적인 한 표를 보낸다. POW가 '유러피안 유스 컬처'라는 이름 아래 보여줄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하겠다.
제이 : 인트로의 필름 끊기는 듯한 소리를 시작으로 2분 18초에 이르는 순간까지, 곡 전반에 깔린 실험적인 사운드는 처음엔 살짝 난해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 곡이 이끄는 대로 여지없이 따라가게 된다. 그녀의 상징이기도 한 감각적인 무드는 한층 더 짙어졌고, 생소한 표현의 나열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비슷한 결의 수많은 여자 아티스트 가운데 유라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시적이고 감각적인 가사였다. 주로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생각을 최대한 돌려서 표현하며 자신의 상징인 몽환적이고 나른한 분위기에 힘을 가했고, 이번에는 시적인 표현과 함께 영어로 뒤범벅된 가사를 뭉개는 듯한 발음으로 독특함과 감각적인 무드를 동시에 잡았다. 약간의 차별점이 있다면 반복적인 구절로 전보다 조금 단순하게 접근한 것. 특히, 코러스의 "Worm in the apple"은 중독성을 자아내며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역할을 했다.
다만, 이러한 장치를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이지 않은 탓에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이미 유라의 음악을 알고 있었기에 마냥 당황스럽진 않았지만, 그녀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청자의 상상력에 맡긴다는 의도는 유라의 음악을 아는 사람들과 곡의 분위기에 취한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탄탄한 팬층을 확보했다면, 이제는 대중과 만날 차례다. 과연 복잡해진 음악관이 만들어낸 생소함이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율무 : Jasmine 향기를 불러일으켰던 DPR LIVE가 아닌, '홍다빈'이란 본명 석 자로 선보인 [Giggles]는 곪아버린 내면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거친 락 사운드와 온갖 감정의 응어리가 담긴 강렬한 랩핑으로부터 절규와 독기가 그대로 전달된다. 특히 ‘WMP freestyle’에서 오토튠으로 만들어낸 기묘한 보컬 톤과 찢어질 듯한 사운드가 분노를 증폭시켰다면, ‘unconscious interlude’ 이후 부유하면서도 침잠하는 듯한 앰비언트와 로파이함은 점차 괴로움의 극복과 해방의 경로로 인도한다. 음악을 매개로 감정과 상황을 중재하는 힘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홍다빈과 DPR LIVE라는 두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발버둥 치는 듯하다.
아쉬운 점은 음악 자체는 촘촘하게 짜인 서사를 충분히 반영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전적인 흐름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응축된 분노 표출이라는 단일한 메시지와 감정의 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인털루드에서조차 듣는 내내 피로감이 상당하다. 아무리 신선하고 세련된 사운드가 강점일지라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며 형성된 어수선하고 무질서한 분위기가 오히려 서사에 집중하기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율무 : 기복 없이 담백한 보컬은 겉으로는 절제된 듯하지만, 실제로는 완벽하게 농익은 농염함을 기반으로 장난스럽고 경쾌한 탑라인을 당당하게 걸어 다닌다. 마치 베이스를 연상시키는 듯 낮은음을 연주하는 건반과 중간중간 감칠맛 나게 등장하는 트럼펫까지, 풍성한 세션들의 조화는 Jennifer Lopez의 자신감 넘치는 에너지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준다. 특히 디바의 등장을 알리는 듯한 인트로부터 시작하여 계속해서 휘몰아치는 강렬한 드럼의 타격감에 주목해 보자. 투박하면서도 활기차고, 용감함마저 느껴지는 드럼의 흥겨움은 00년대 감성을 생생하게 재현하기에 제격이었다.
그러나 섣부르게 영(young)한 바이브를 의식했던 걸까. 무거운 트랩의 등장은 분위기를 환기하는 용도로는 좋았으나, 리드미컬한 보컬 파트와 자연스럽게 섞이지 않아 서로 다른 두 곡을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이질감이 든다. 힙합과 R&B의 만남이라는 제법 보편적인 성공 법칙을 시도했지만, 단순히 변화구의 무비판적인 수용보다는 랩 파트를 동원해야 했던 당위성을 충분히 마련했어야 했다.
제이 : 라로이의 지난 음악들을 보면 '콜라보 가수'를 넘어 '아티스트' 칭호를 얻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특히, 지난 앨범 [THE FIRST TIME]에서는 랩스타와 팝스타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각 트랙마다 중점을 다르게 두는 다양한 스타일을 통해 폭넓은 능력을 보여줬다. 또한, 길었던 정규 앨범 공백기에 발매되었던 싱글들도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적절히 섞이며 아티스트를 향한 여정에 적당한 계단이 되어 주었다. 이는 아마도 거물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얻게 된 명성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 본인이 잘하고, 해오던 것으로 만든 결과물은 '부단한 노력'이라기보다는 '무난한 안전빵'에 가까웠다. 강렬한 감성과 거친 보컬, 서정적인 분위기 등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를 그대로 내세우다 보니 이전과 비슷한 기조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주로 사랑을 다뤘던 전과 달리 고통스러운 성장사라는 심도 있는 주제를 보면 라로이는 분명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에게 ‘Stay’를 넘어서는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확고한 팬층과 '라로이'라는 이름으로 성적은 보장되겠지만, 본인이 풀어갈 숙제에 대한 고민이 지속해서 필요할 듯하다.
배게비누 : 나를 포함한 샤워할 때 노래 부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왜 그럴까? ‘Shower Song’의 가사는 샤워 과정을 의식의 흐름대로 표현한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I sound great When I’m singin’ in the shower/ Every time I’m in the shower I just feel so brave/ Sing it like Whitney 샤워부스 안에서 화자의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게 느껴진다. 이 자신감 덕분에 화자는 Whitney Houston에 빙의해서 노래할 수 있다. 두 가지 물음이 남는다. 샤워부스와 자신감의 관계는 무엇이고 자신감의 원천은 어디인가? 샤워부스는 타인의 시선을 차단하는 공간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태초의 모습인 나체로 존재한다. 이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상태는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것은 자신감과 천진난만함으로 이어지며 화자로 대표되는 우리는 그 감정을 노래라는 행위로 만끽한다.
가사에 자신감을, 음악과 영상에 천진난만함을 담은 ‘Shower Song’은 #샤워할_때_부르는_노래 그 자체다. 저음역의 간소한 악기 구성으로 리듬의 재미는 배가 되고 우리는 절로 몸을 들썩이며 순수한 가사와 감정에 공감한다. Tierra Whack은 그만의 개성 있는 영상으로도 유명하다. 콜라주로 만든 장면에 낮은 프레임률을 적용한 이번 MV는 마치 아기자기한 종이 인형극 같다. 여기에 개구진 의상과 알록달록한 색감, 빈티지한 질감까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느껴진다.
‘Shower Song’은 3월 발매 예정인 앨범 [World Wide Whack]의 선공개 곡이다. 숏폼에 완벽하게 적응한 동시에 예술성도 놓지 않은 데뷔 앨범으로 세상을 놀랜 전적이 있는 아티스트다. 무엇도 예사롭지 않은 그녀의 세상이 World Wide로 확장된 모습이 기다려진다.
※ '베게비누', '율무', '제이'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