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2월 2주)

SUPER JUNIOR-L.S.S., 윤지영, 주영 외

by 고멘트

"아티스트의 장기근속 및 유닛 체제의 완성을 알리다."


1. SUPER JUNIOR-L.S.S. (슈퍼주니어-L.S.S.) - ‘C'MON (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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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 처음 SUPER JUNIOR-L.S.S.의 티저가 공개되었을 때 일본의 오래된 아이돌 그룹들의 활동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23년 7월 일본에서 먼저 데뷔를 한 유닛이 국내 활동을 시작하는 양상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가 그토록 그려왔던 아티스트의 장기근속과 유닛 체제가 국내 엔터테인먼트 씬에 자리를 잡았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SUPER JUNIOR-L.S.S. 와 함께 터졌다. SUPER JUNIOR의 데뷔 전까지 나에게 있어 유닛이라는 존재는 일본의 헬로! 프로젝트의 モーニング娘。(모닝구 무스메)에서나 듣던 체계였다. 그건 비단 나뿐만의 일이 아니었던지, '슈퍼주니어 T는 뭐고 M은 뭔데?'라는 반응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랬던 국내에서 데뷔 18년차 현역 아이돌의 유닛을 보게 될 줄이야! 감회가 새롭지 않을 리가 없다.


처음 트랙을 듣자, 2013~2015년도에 유행했던 팝송들이 마구 떠올랐다. Robin Thicke(로빈 시크)의 ‘Blurred Lines feat. T.I.&Pharrell’, Mark Ronson(마크 론슨)의 ‘Uptown Funk feat. Bruno Mars’, 그리고 Jason Derulo(제이슨 데룰로)의 ‘Wiggle feat. Snoop Dogg’까지. 당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슈퍼주니어 멤버들에게도 익숙할 장르의 곡들이다. 그 덕분에, 트랙의 소화력이 상당했다. 18년 차의 노련함 이전에 익숙하기에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이나 표현력이 느껴졌다. 그 위에 올라탄 노련함이라는 시너지 효과가 대단했다. 오래 활동하는 그룹들이 새로운 장르를 도전할 때 '이건 같은 소속사의 누구한테 주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일절 들지 않았다. 그 점이 놀라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맞춤 정장을 입은 듯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최근 00년대 초중반 팝송의 재해석 및 재현이 세련된 트렌드로 오르고 있는 덕분에 '촌스럽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기획, 시기, 역량. 피타고라스도 울고 갈 완벽한 삼각형이다.


아티스트가 잘 해낼 수 있으면서 트렌디함을 놓치지 않는 기획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한다. 오래 본 사이가 만들어 낸 최선의 결과물. 그런 한편, 위와 같은 아티스트의 장기근속 및 유닛 체제를 자리 잡는데 누구보다 열을 올렸던 이수만 프로듀서의 부재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오히려 미성숙함이 그립다"


2. 윤지영 – ‘Love Is 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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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 : 사색의 순간 속에서 길어 올린 [나의 정원에서]를 통해 윤지영은 내적 성숙을 거듭했다. 그녀는 이제 '너'와 '나'를 넘어 '세상'을 보는 차원에 도달했다. 주로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된 감정을 전달했던 이전과는 달리 ‘Love Is Everywhere’에서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는 점은 윤지영의 시선이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뮤직비디오에서 비뚤어진 가면을 쓰고 다투는 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러한 연출과 함께 곡 분위기는 냉소적이지만, 후렴의 극적인 신스와 공간감 있는 사운드스케이프, 그리고 '사랑'를 전하는 노랫말이 작은 온기가 느껴지게 한다. 홀로 가면을 쓰지 않고 있는 윤지영은 '분쟁의 해결체'로서 작용하여 스스로를 '사랑'이라고 표방한다. 이런 그녀는 사람들의 가면을 벗기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거나 그들을 포용한다. 메말라 가는 세상 속에서 이 다툼을 끝낼 수 있는 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작은 온기인 '사랑'이며, 궁극적으로 그 해결책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윤지영은 말한다. 이처럼 윤지영은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이치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세상을 어루만지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윤지영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있는 '정원의 리스너' 입장에서 ‘Love Is Everywhere’는 이후의 서사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곡 자체로만 놓고 보면 그녀의 본래 장점이 무디어진 곡인 것 같아 아쉬움도 들게 한다. 윤지영 음악의 최대 무기는 '솔직함'인데 이는 ‘꿈’이나 ‘부끄럽네’와 같은 곡에서 두드러진다. 이 곡들은 꾸밈없는 보컬이 그대로 드러난 편곡과 담백한 작법 덕분에 듣기 편하고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허나 이번 싱글은 리버브에 휩싸여 전반적으로 흐릿해진 분위기와 '진리', '찰나의 승리'처럼 사유를 거쳐야 하는 언어 때문에 편하게 접근하기 어려웠고 이해를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 윤지영의 '나의 그늘'은 과거에 비해 잔뜩 움츠린 형상이다. 이것은 어쩌면 '성숙함' 아래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이라면 성숙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전과 같은 솔직한 윤지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트랙"


3. 주영 – [Sp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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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 : [Sphere]는 단어의 뜻 그대로 트랙들이 하나의 구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를 가진 앨범으로 과거 주영이 [Fountain]에서 보여준 그루비함과 새로운 스타일의 사운드를 모두 담아냈다. 또한 레이블의 명칭을 그대로 차용한 점은 미뤄보면 [Sphere]는 주영의 본체를 투영한 앨범임을 의미한다. 즉, 트랙들이 순환되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주영을 구처럼 잇는 앨범인 것이다.


앨범 초반 ‘Wonder’부터 ‘My Soles Worn Out’까지 트랙은 어쿠스틱의 비중이 높아서 인디 느낌이 낭낭하지만 ‘Be’부터 ‘Sunshine’까지는 신디 비중이 높아져 공격적인 사운드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상반된 트랙들 사이에 신스와 어쿠스틱이 절묘하게 섞인 ‘Night Run’을 끼워 넣어 앞뒤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사운드가 거친 곡들은 데크레셴도로 끝을 맺어 트랙 사이사이의 결속력을 높여 유기성을 완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Sphere] 감상 시 중요한 포인트는 ‘Night Run’를 기점으로 변화하는 사운드와 어떻게 유기적 구조를 이뤄냈는가에 집중하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음악을 느껴보는 것이다.


상징성, 유기성과 더불어 놀라웠던 점은 ‘Wonder’, ‘Haunted House’와 같이 다소 실험적이고 대범한 사운드를 사용했음에도 광범위한 장르의 조화를 이뤄냈고 전체적으로는 몽환적이고 우울한 감성을 유지하며 완벽한 얼터너티브 알앤비 앨범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정성이 느껴지는 앨범으로 [Sphere]를 듣게 된다면 긴 공백 동안의 주영이 했던 고민과 신중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결이 다른 레트로"

4. Conan gray - ‘Lovely Dancers’

카니 : ‘Maniac’, ‘Memories’와 같은 곡들로 그를 추앙하던 팬들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이틴 팝스타 상승세를 타던 Conan Gray가 ‘Lovely Dancers’를 발매하며 복고 앨범 [FOUND HEAVEN]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Never Ending Song’, ‘Killing Me’, ‘Winner’에 이은 신보 ‘Lovely Dancers’를 통해 Conan Gray는 7080년대 레트로 팝을 재현했다. 7080 노래방을 모방한 스페셜 영상과 시원하게 팔다리를 뻗는 복고댄스가 인상적인 뮤직비디오, 장발의 펌으로 이미지 변신도 꾀하며 완벽한 복고 스타 탄생을 알렸다. 특히 ‘Lovely Dancers’는 롤러장에서 흘러나올 거 같은 댄서블한 리듬감과 레트로함으로 [FOUND HEAVEN]의 컨셉에 불을 지폈다.


‘Lovely Dancers’를 듣고 난 후, Conan Gray의 [FOUND HEAVEN]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7080의 시늉만 내거나 전자 사운드를 때려 넣는 식이 아닌 당시 음악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음색에도 변화가 있었다. 평소 부드러운 미성과 시원하게 터지는 보컬로 청량함을 줬다면 날카로워지고 얇아진 톤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Winner’에서는 퀸의 모습을 전반적으로는 마이클 잭슨을 떠올리게 하는 보컬로 곡에 완벽히 스며든다. 그러니 곧 다가올 4월에는 춤바람이 들만한 구색 좋은 레트로 앨범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 같다.





"오래 저을수록 풍부한 맛"


5. Ghost Funk Orchestra -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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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 아주 무겁고 쓴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 절로 떠오르는 곡을 만났다. 미니멀한 트랙들이 강세인 가운데 아주 오랜만에 만난 투 머치한 트랙. 윌리 웡카가 초콜릿 분수를 두고 그랬던가, 폭포가 떨어질 때 섞이는 공기층이 초콜릿을 더욱 부드럽게 한다고. 마치 그 장면을 음악으로 옮겨놓은 것만 같다. 진하고 부드러운 다크 초콜릿. 애들은 느낄 수 없는 풍미! 무겁지만 빠져든다. 온 힘을 다해 짜내는 소울풀 보컬이 거칠게 섞이지 않고 악기들 안에 둥글게 싸이는 믹스 마스터링이 일품이다. 본디, 사이키델릭 록을 하던 그룹답게 광활한 공간감을 유지하면서도 악기와 보컬의 질감이 살아있다. 꽉 채운 자만이 심플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아이싱 크림을 예술적으로 덜어내는 에스테틱 영상 같은 섬세함과 과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트랙이다.


아주 다양한 장르를 혼합하는 퓨전 밴드로 발전한 덕분에 오리지널 재즈의 부담스러움이 옅어진 것 같다. (오리지널 재즈를 기준으로)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러닝 타임이 그걸 증명한다. 수록곡 ‘To The Moon!’의 인트로 내레이션을 듣는 순간 데뷔 초의 사이키델릭 록을 간직한 Ghost Funk Orchestra로 돌아가는데, 곡의 포문을 여는 건 재즈 드럼의 toms 사운드다. 그럼 타이틀 곡 ‘Again’처럼 '재즈가 메인인 트랙으로 바뀌는 걸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다 보면 오르간, 신디사이저 솔로가 등장한다. 그렇게 사이키델릭 록의 존재를 놓지 않는다. 재즈와 소울 위에 사이키델릭을 살짝 뿌려 장식한 트랙. 그룹의 루트(Root)가 확실한 퓨전 밴드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는 싱글이었다.





"슈게이징 희망의 기폭제"


6. NewDad – [MA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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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 : NewDad는 My Bloody Valentine의 [Loveless], Ride의 [Nowhere] 등 슈게이징 걸작에 엔지니어로 참여한 프로듀서와 작업하며 슈게이징으로의 확실한 진입을 꾀한다. 이는 기존 인디 팝 경향에서 벗어나 더욱 실험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들이 동세대 밴드와 차별화될 수 있는 포인트는 '타고난 실험 정신'인데, 이는 강렬한 불협화음과 어두운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노이즈 록 밴드 Just Mustard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보컬 Julie Dawson은 NME와의 인터뷰에서 Just Mustard가 자신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NewDad의 첫 행보가 1번 트랙 ‘Angel’이다. 중독성 있고 반복적인 패턴의 무거운 베이스 라인과 노이지한 기타 레이어가 주는 불안정한 느낌은 Just Mustard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10번 트랙 ‘White Ribbon’에서는 드림 팝스러워지더니 11번 트랙 ‘Madra’의 초반부는 마치 Beach House의 ‘Space Song’을 연상케 한다.


물론 그들은 단순히 전임자들의 흔적을 따라가지 않았다. 노이즈를 활용하여 강한 디스토션을 만들어내지만, 부드러운 탑라인과 숨소리 섞인 보컬로 균형을 맞추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생성했다. 이렇게 장르를 혼합하는 실험적 접근은 그들만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탄생시켰다. 평소에 부드러운 팝을 선호하는 내게도 이런 사운드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특히 ‘Angel’이 주는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은 신선했다. 이러한 NewDad의 실험적인 정신을 응원하며, 그들의 사운드가 슈게이징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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