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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Feb 13. 2024

걸그룹 시장의 선택과 집중

개인에서 그룹으로, 이제 모두가 원하는 올라운더

컴백마다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뉴진스, 키치한 이미지로 초통령이라 불리는 아이브, 인기 게임 오버워치와 콜라보 앨범을 낼 만큼 해외 시장에서 큰 인지도를 얻는 르세라핌 등은 모두 4세대 케이팝 시장을 빛내고 있는 걸그룹이다. 이들은 걸그룹이 절대 넘볼 수 없을 것 같던 보이그룹 음반 판매량과의 격차도 80 대 20에서 65 대 35 수준까지 좁히는 등 현재 K-POP 시장을 이끌어 가는 중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출처 : 서클차트

이러한 4세대 걸그룹은 이전 세대 걸그룹들과 많은 차별성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는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2~3세대 걸그룹은 소녀시대, 트와이스 (9인조) / 러블리즈, 오마이걸 (8인조) / 에이핑크, AOA (7인조)처럼 7인 이상의 걸그룹이 많았으며, 우주소녀처럼 13인조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4세대 걸그룹은 데뷔 당시 르세라핌, 아이브 (6인조) / 뉴진스 (5인조) / 에스파, 하이키, 키스 오브 라이프 (4인조)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러한 변화에는 사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기 전, 과거 한 그룹에 다수의 멤버를 데뷔시킨 것에 대한 이유를 정리해 보면 “일단 누구든 띄우자”는 마인드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룹 전체를 성공시키기보다는 멤버 한 명을 성공시키는 것이 더 쉽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8인조 걸그룹 AOA의 멤버 설현은 타고난 피지컬을 통해 직캠 등지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각종 CF 모델로 활약해 당시 대세의 반열에 올랐다. 이런 설현의 인기에 힘입어 초반 밴드 콘셉트에서 섹시 콘셉트로 노선을 바꾼 AOA는 이내 각종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인지도를 높였다. 또한 소녀시대 역시 데뷔 초기부터 윤아는 드라마, 태연은 라디오, 티파니는 음악방송 MC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각자의 팬덤을 형성한 바 있다. 심지어 데뷔 초 태연 팬카페의 회원 수가 소녀시대 전체 팬 카페 회원 수보다 많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다 인원 그룹의 문제점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바로 비용적인 문제다. 아이돌 그룹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데뷔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으며 YG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리얼리티 프로그램(YG보석함)에서 연습생에게 1인당 최소 1억 원의 비용이 든다고 밝혔다. 이 비용에는 단순 춤, 노래뿐 아니라 연기와 외국어, 헬스 트레이닝 등이 포함된다. 데뷔 후에는 앨범 제작 비용, 녹음 스튜디오 비용, 음악 비디오 제작, 스타일링 및 의상, 프로모션 및 마케팅 비용이 추가된다. 전체적인 비용은 멤버 수에 따라 달라지며 다 인원 그룹을 론칭하고 유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금액은 적은 멤버 수의 그룹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다. 



출처 :YG 보석함


또한 미디어의 확산으로 새롭게 바뀐 홍보 방식 역시 걸그룹의 멤버 수가 적어진 이유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새로운 앨범을 홍보할 때 음악방송 출연뿐 아니라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많이 출연하곤 했으며, 특히 멤버 전부가 참여하는 것이 아닌 특정 멤버(일명 예능캐로 불리는)들이 꾸준히 방송에 출연해 그룹의 인지도를 높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큰 화제성을 낳기 위해 그룹 이미지와 상반되는 엽기 댄스 등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TV 예능이 아닌 기획사에서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자체 콘텐츠를 통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체 콘텐츠는 10분 내지는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멤버들의 참여로만 진행된다. 따라서 멤버 수가 많으면 집중이 분산되기에 과도하게 웃기려는 노력보다는 그룹의 케미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적이다. 즉, 홍보의 주체가 개인 차원에서 그룹 차원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흔히 말하는 “레전드 직캠”을 통해 그룹의 인지도를 높였던 그룹이 있었던 반면, 최근에는 직캠이 아닌 풀캠, 항공캠 등 그룹 전체를 찍는 영상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 역시 개인이 아닌 그룹 전체를 홍보하는 트렌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왼)1,2,3 IVE (오)뉴진스 - Attention 항공캠

한편 적어진 멤버의 구성원과 함께 구성원들의 고유한 포지션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큰 변화점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리더와 센터와 같은 분명한 포지션은 물론이고 같은 보컬 멤버들을 나눌 때도 메인 보컬, 리드 보컬, 서브 보컬 등 명확한 포지션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러한 세부적인 구분은 다인원 그룹일 때나 가능하다. 멤버 수가 적은 그룹일 경우 오히려 획일화된 정체성만 보여주게 되며, 매번 예상 가능한 파트분배와 대형으로만 활동을 하게 된다. 특정 포지션에 국한되는 것이 그룹 전체의 이미지 차원에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경우에는 명확한 포지션을 나누기보다 올라운더 그룹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최근 걸그룹 곡의 세부 파트를 보면 래퍼가 노래를 하거나 보컬이 랩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1절 후렴구와 2절 후렴구 역시 각기 다른 멤버들이 소화하곤 한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걸그룹 르세라핌과 아이브를 비교해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두 그룹의 공통점은 데뷔 초반에 인지도를 얻을 수 있는 특정 멤버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프로듀스 48>을 통해 데뷔한 아이즈원의 멤버 장원영과 안유진은 아이브로, 미야와키 사쿠라와 김채원은 르세라핌으로 재데뷔를 하였다. 그러나 두 그룹은 높은 인기를 가지고 있는 멤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멤버들에게 초반 스포트 라이트를 집중시켰다. 아이브는 첫 데뷔 앨범 ‘ELEVEN’에서 킬링 파트를 레이, 이서에게 주며 그들을 강조했다. 이어 다음 앨범에서는 멤버 가을의 헤어스타일을 과감히 바꾸고 킬링 파트를 주며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시도는 초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단순히 파트를 차별화시킨 것으로는 인지도를 크게 높이지 못했다. 이에 개인 인스타그램 팔로워 차이에서도 드러나듯이 아이브를 연상하면 댕댕이 예능캐 안유진, 원조센터 장원영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즉, 올라운더 그룹의 이미지를 잡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반면 르세라핌은 멤버 개인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에 확실한 노력을 기울였다. 유튜브에서 660만 조회수를 기록한 <LE SSERAFIM (르세라핌) Documentary 'The World Is My Oyster' EPISODE 01>을 보면 사쿠라, 김채원, 허윤진의 극적인 재회는 물론이고 일본에서 홀로 연습하는 발레 천재 카즈하와 본인이 데뷔할지 꿈에도 몰랐다는 황금 막내 홍은채처럼 전혀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았던 나머지 두 멤버들의 이미지 역시 확실하게 잡는 것에 성공했다. 단순히 킬링 파트를 소화하거나 센터를 많이 차지해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아닌 멤버 개인의 특색을 부각해 차별적인 이미지를 브랜딩 하는 전략이었다. 위와 같은 마케팅은 결과적으로 성공에 가깝게 흘러갔다. 카즈하는 발레로 단련된 복근을 통해 운동돌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청순한 비주얼과 상반되는 반전 매력을 뽐낼 수 있었고, 홍은채는 특유의 톡톡 튀는 막내의 발랄함을 바탕으로 제39대 뮤직뱅크 은행장(뮤직뱅크 MC)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아가 멜론 차트에서 몇 개월 동안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신곡 ‘Perfect Night’에서는 5명 멤버 전원이 후렴구 파트와 센터를 맡으며 고유의 포지션 없이 올라운더 그룹이 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위처럼 그룹의 멤버 수가 줄어드는 것이 퀄리티의 저하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적은 멤버로 무대를 얼마나 넓게 쓰는지, 멤버 개인의 매력을 어떠한 포인트로 보여주는지 등 세세한 디테일을 신경 쓴다면 더 높은 수준에도 도달할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걸그룹 음반 초동 판매량 기록은 현재 200만 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걸그룹의 컴백 때마다 음원 차트 상위권은 언제나 그들의 몫이다. 단순하게 인원을 늘려 제비 뽑기처럼 대중의 픽만을 기다리기는 것은 이제 구시대적인 방식이다. 비용적인 문제는 당연하고 멤버들의 관계, 학교폭력 등 사소한 논란에 빠질 가능성만 늘릴 뿐이다. 비록 소수의 멤버일지라도 그들이 모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시너지에 집중한다면 멤버 모두가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이 지금은 물론이고, 미래의 걸그룹 시장에도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남을 것이다. 





by 만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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