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sherman, YOUNG POSSE, 퍼플키스, Dasha 외
미온 : 사람들은 꿈, 우정, 사랑, 종교 등 저마다의 가치를 좇으며 살아간다. 피셔맨은 그 과정에서 겪는 내면적 고뇌와 상념을 전작 [The Dragon Warrior]로 그려냈는데, [DLC]에서도 그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른바 용(절대적 가치)을 좇는 전사의 또 다른 에피소드, '확장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전작이 내면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DLC]는 외부로부터 생길 수 있는 갈등, 즉 용을 좇는 여정에서 걸릴 수 있는 '디버프(debuff)'와 관련지을 수 있다.
이는 앨범 속 가사에서 엿볼 수 있다. 치킨에 핫소스를 뿌려먹는 것만으로도 "쟤는 음식도 그냥 못 먹네", "걔는 주어진 것도 만족 못 하네"(‘Stalkin'’) 라거나 "타투 걸"을 만난 곳이 "클럽은 아니었어"(‘3UPHORIA’)라며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이는 모습은 '다름'이라는 이유로 쉽게 평가하고 재단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다름'은 평가받기 십상이고 그것은 나만의 가치를 좇는 동안 디버프처럼 작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버프(buff)를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그 방법은 'eyes 2 eyes'. 서로의 의견을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눈을 마주치듯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각자의 절대적 가치를 좇는 여정의 버프로 작용되리라.
피셔맨의 사운드 또한 버프를 잔뜩 받았다. 새로운 사운드들이 돋보이는데, 특히 ‘3UPHORIA’의 경우 인트로부터 등장하는 청량한 전자음으로 피셔맨의 아우라를 풍기다가, 상상도 못 한 날카로운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등장시키는 전개를 선보였다. 그러면서도 시그니처인 공간감 가득한 사운드는 스무스하게 잘 녹아들었다. 흐름 또한 센스가 넘치는데, 첫 트랙에서 얹어진 그루브는 ‘slide’에서까지 미끄럼 타듯 이어지고, 촘촘하고 공격적인 전자음이 나열된 ‘3UPHORIA’에 이어 세미 앰비언트스러운 ‘Eyes-2-Eye’를 배치해 이전 트랙에서 느낄 수 있는 생소함을 줄였다. 이처럼 [DLC]는 ‘Slide’의 가사처럼 "파고들수록 재밌어지는 게임"이다. 자신만의 해석과 의미를 붙인 채 즐겨보자.
배게비누 : 2024년 XXL이 선정한 ROOKIE OF THE YEAR은 YOUNG POSSE? 평균 나이 만 17세. 이 패기 넘치는 GenZ 힙합 걸그룹은 시크하고 스트릿한 스타일로 십 대의 치기를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확신이 없고, 맞춤법을 틀리며, 유치하지만 앨범을 통해 이런 약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YOUNG POSSE도 다른 청소년과 다를 바 없음을 어필하는 것이다. 블랙핑크, 2NE1, 포미닛 등 힙합을 접목한 걸그룹은 익히 있었지만 이들은 데뷔 당시 성인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힙합 아이돌을 표방하는 십 대 보이그룹 역시 낯설지 않지만 십 대 힙합 '걸’그룹' 이거 귀하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YOUNG POSSE가 끌리는 이유다.
힙합 아이돌은 정말 이지리스닝을 포기해야 하는가? [XXL EP]는 이 질문에 NO라고 답한다. YOUNG POSSE는 K POP 아티스트답게 레이지, 올드스쿨, 칩멍크 소울 등 여러 장르를 선보이지만 이를 한 곡에 하나씩 적용한다. 트랙 안에서 장르 변화나 진행이 급작스럽지 않기 때문에 이 앨범은 난해하지 않다. 이것이 국내 시장에 어필 가능한 포인트라면, K POP 특유의 순한 가사로 쓰인 힙합 음악이라는 점에서 해외 시장의 반응도 기대해 볼 만하다.
신인 아이돌의 데뷔 텀은 짧아지고 활동 기간은 늘어나면서 K POP은 아이돌 포화시장이 됐다. 그럴수록 더더욱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기획력이다.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KISS OF LIFE나 YOUNG POSSE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신선한 매력은 자본이 아닌 독특한 기획의 힘으로 살 길을 모색하는 중소 기획사에서 나오는 것 같다. 중소 기획사에 기대하는 것은 대형 기획사가 쏘아 올린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K POP에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중소의 기적은 바로 이런 곳에서 일어난다.
벤느 : 퍼플키스는 지난 싱글 ‘7HEAVEN’에서 기존의 색과 정반대인 밝고 통통 튀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새로운 시도는 좋았지만 급격한 컨셉 변화는 당혹스러웠고 그룹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이러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이번 앨범에서는 앞으로 보여줄 발랄함과 기존의 다크하고 힙한 컨셉 사이의 중심을 잘 잡아냈다.
타이틀 ‘BBB’는 트랩 비트 위에 리드미컬 한 멜로디와 캐치하고 반복적인 후렴구로 대중성에 초점을 둔 티가 난다. 미니멀 한 구성은 예상보다 심심했지만 그다음 트랙 ‘Bitter Sweet’에서 강렬한 비트와 함께 기존의 퍼플키스만의 오묘한 분위기를 살리며 아쉬움을 덜어줬다. 더 나아가 독특한 플럭 사운드가 들어간 힙합R&B 장르의 ‘Toy Boy’, 몽환적인 음색이 돋보이는 ‘Heart Attack’, 애절한 보컬 실력을 보여주는 ‘Voyager’에서는 멤버들의 프로듀싱 역량을 드러내면서 곡의 퀄리티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데뷔 때부터 다크한 마녀 컨셉으로 팀의 정체성을 뚜렷이 했지만 흥행면에서는 실패해서인지, 밝고 대중적인 곡으로 새로운 챕터를 써내려 가는 퍼플키스. 보컬, 댄스, 프로듀싱까지 다재다능한 실력으로 매번 완성도 있는 앨범을 내고 있는 그들인 만큼 이번 챕터는 아름답게 마무리되길 빌어본다.
배게비누 : 전반적으로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기를 중심으로 잔잔하게, 감성적으로 흘러가는 팝 앨범이다. 여기에 컨트리가 더해지면서 산통을 깨기는커녕 킬링 트랙으로 거듭난다. 벤조, 피들 등 이 장르에서 주로 사용되는 악기가 익숙한 팝과 만나 신선한 재미를 준다. 전작은 시네마틱 한 앨범 커버 말고는 어떠한 인상도 남기지 못했지만 [What Happens Now?]는 음악으로 눈도장을 단단히 찍는다.
컨트리는 보수+중년+백인+남성이라는 명확한 타깃을 가진 장르이며 나는 이 장르와 평생 친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Austin’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 컨트리 팝 장르의 ‘Austin’은 Beyonce의 신곡 ‘Texas Hold’em’의 낙수효과로 틱톡 바이럴을 제대로 탔다. 이것이 미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컨트리가 먹혔다는 증거라면 어쩌면 컨트리는 메인 차트에 대거 등장하는 것을 넘어 소비층의 확대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Beyonce가 아직 앨범을 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격변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벤느 : 제이크의 보석함에는 얼마나 더 많은 명곡들이 들어있을까. 한두 달 간격으로 꾸준히 곡을 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곡들을 계속해서 내고 있다. 이번 싱글 ‘Clouds’는 퓨처팝 장르의 곡으로 그의 대표작인 ‘Golden Hour’ 같이 신선한 코드 진행은 없지만 충분히 대중적인 멜로디를 보여준다. 가벼운 휘파람 사운드로 신나는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했고, 몽환적인 패드와 신스 사운드를 통해 그만의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로우파이 하면서 몽글몽글한 느낌도 살렸다. 여기에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떠다니는 구름 위에 올라가는 것으로 비유한 참신한 표현력은 곡의 매력도를 한껏 끌어올려준다. 최상급 보석들을 자랑하는 JVKE의 보석함은 이미 열렸고, 쏟아져 나오는 명곡들을 듣는 일은 앞으로도 즐겁기만 할 것 같다.
미온 : 영국의 뮤지션이자 패션 디자이너, 프로듀서, 비주얼 아티스트인 Lava La Rue. 그녀는 힙합, R&B, 사이키델릭 록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여 온 이력이 있다. 이번엔 여유로운 바이브의 밴드 사운드 위에 랩을 얹었는데, 겉보기엔 뾰족한 특징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살짝 뜯어보면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는 곡이다. 펑키한 베이스 라인, 적당한 속도의 비트, 떼창도 가능할 훅 멜로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곡이긴 하나, 작은 디테일을 살펴보면 마냥 그렇진 않다.
인트로에 울려 퍼지는 피리인지 플루트인지 모를 독주부터 그렇다. 은근한 신비감으로 텐션을 주다가 곧바로 나오는 리드미컬한 비트로 긴장감을 풀어버린다. 또, 곡 중반 브릿지부터 등장하는 Prince '1999'표 신스 사운드는 옛날 댄스곡에서 나올만한 댄스 브레이크 같은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동시에 멜로디 라인도 80년대 신스팝처럼 예스럽게 바뀌면서 새로운 자극을 준다. 분명 촌스러울 수 있는 포인트들이 되려 트렌디하게 느껴진다는 점도 이 곡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전에 발매한 [Hi-Fidelity], [Letra]에 비해선 특유의 트렌디하면서도 전위적인 구성은 옅어진 감이 있다. 되려 뮤직비디오에서 그 장점이 더 잘 나타난 느낌이다. 물론 '보는' 음악이라는 개념에서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전작에서 느껴진 장점들이 곡을 통해 조금 더 짙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해당 싱글은 향후 발매될 앨범의 트레일러의 개념이긴 하지만, 비주얼만큼이나 음악에도 실험적인 구성이 조금 더 추가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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