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4월 1주)

KISS OF LIFE, 사비나앤드론즈, 아일릿, Doechii 외

by 고멘트

"웰 메이드 아이콘은 삼대를 먹여 살린다."


1. KISS OF LIFE - ‘Midas Touch

도라 : KISS OF LIFE를 알리는 데 일조한 트랙을 꼽아보자면, 멤버 나띠의 솔로곡 ‘Sugarcoat’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를 통해 나띠는 데뷔 전부터 '리틀 이효리'라는 별명도 얻었으니, 그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 KISS OF LIFE가 ‘Midas Touch’로 비슷한 느낌의 밀레니얼 팝을 재현해 냈다. 강점을 살려 단일 멤버에서 그룹 단위로 '00년대 팝 스타' 이미지를 가져오려는 기획의 현명함을 엿볼 수 있었다.


‘Midas Touch’를 둘러싼 여론 중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두 명 있다. 바로 Britney Spears와 이효리이다. 실제로 멤버 인터뷰를 통해 이번 싱글에서 Britney Spears의 ‘Toxic’을 재해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Midas Touch’를 통해, 'Britney Spears를 벤치마킹한 이효리'를 떠올리는 사실이 꽤나 재미있게 다가왔다.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성공적인 재해석인가! 섹시 컨셉이 국내 가요계를 주름잡던 시대에 Britney Spears와 The Pussycat Dolls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서 가져온 빠른 스트링 사운드, 이국적인 아라비안 멜로디, 그리고 걸스 힙합이 한글 가사를 통해 등장했을 때 모두가 열광했음을 잊지 못한다. 당시 걸스 힙합은 그야말로 새로운 문화에 가까웠다. 그런 힙합 베이스의 섹시 아이콘은 이효리, 보아를 이어 KISS OF LIFE까지 뻗어나갔다. 겉핥기식 이미지 모방이 아닌 원류 R&B, 힙합을 통해 이루어진 성공적인 계승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데뷔 당시의 세계관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KISS OF LIFE의 센세이셔널한 데뷔에는 멤버들의 출중한 실력도 있지만, 솔로가 모여 그룹이 된다는 점이 컸다. '가난한 아티스트 나띠, 발레 천재 외동딸 벨, 완벽해 보이는 퀸카 쥴리, 두 얼굴의 SNS 스타 하늘' 네 명이 ‘안녕, 네버랜드’를 통해 뭉치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KISS OF LIFE로써 보여주는 무대가 타이틀 곡 ‘쉿 (Shhh)’이었다. 똑 떼어놓고 봐도 매력적인 그룹의 세계관이 잠정 중단된 것인지, 이후의 행보는 장르 음악에 단편적인 이미지에 매진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를테면, 이번 싱글은 '가난한 아티스트인 나띠가 혼자서는 완성하지 못했던 무대를 멤버들과 합류한 뒤 성공을 거두게 된다. ‘Midas Touch’는 하나가 아닌 넷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식으로도 풀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 KISS OF LIFE가 풀지 못한 여정을 기대하는 리스너들은 충분하다. 음악과 세계관의 유기성을 단단히 한다면 4세대 걸그룹 내에서 대체할 수 없는 그룹이 되리라 생각한다.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치유의 선율"


2. 사비나앤드론즈 – ‘La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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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 : 상실과 하강의 감정이 핵심 키워드지만 섬세한 은유와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이러한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바다의 숨결, 그것을 나는 고통이라 불렀다”, “당신은 모든 색깔로, 여전히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당신이 그림자가 되었을 때, 모든 날이 사라져 갔다”와 같은 메타포는 상실의 느낌과 내면의 고통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욕조에 누워 귀를 떨어트렸다. 그것은 하수구로 떨어져 파도 속으로 흘러갔다”처럼 감각적인 구절은 내면의 고독과 고립을 드러냈다. 이러한 감정의 깊이와 복잡성을 표현한 시적인 작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응어리진 감정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더불어 깊은 사운드적 반향은 나의 내면과 함께 공명하며 아픔을 씻겨주었다. 그렇게 나는 음악적 치유를 경험했다. 팬들에게 그녀의 음악은 산소호흡기로 불리는데, 아마 그들도 나와 같이 사비나의 음악을 통해 마음의 병을 씻어낸 자들일 것이다. 그녀는 간호사로서 죽음에 초연해지는 순간들을 경험하면서도 결코 사명감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과 가치관이 그녀의 예술관에도 스며들어 있기에 우리가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건 아닐까?


'사비나앤드론즈'라는 명은 그녀의 천주교 세례명과 공명을 뜻하는 단어의 조합이다. 특유의 길게 미끄러지는 고혹적인 보컬과 울림을 위해 의도적으로 공간감 있는 사운드 풍경을 자아낸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철저한 브랜딩이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며, 이로써 그녀만의 독보적인 아이덴티티가 완성되었다고 본다.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OST까지 작업하는 등 대중적인 접근도 하고자 하지만 사비나의 아이덴티티가 스며들면 모든 게 사비나화가 되어버린다. 이쯤 되면 사비나 그 자체를 한 장르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비주류로 분류되는 것을 염려하는 인터뷰를 봤는데, 염려할 필요 없다고 전하고 싶다. 독립 음악씬에서도 그렇게 불리는 것은 당신이 다른 이들과는 현저히 다른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예술관에도 관통하며 '사비나앤드론즈'라는 브랜드를 공고히 했다는 점. 이토록 신념과 개인적 표현이 확고한 아티스트가 몇이나 될까? 그녀를 알게 된 건 진심으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아일릿은 차갑다."


3. 아일릿(ILLIT) - [SUPER REAL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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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 '오마주를 하기는 아직 이르지 않나?'라는 물음표가 먼저 떠오를 만큼 뉴진스와 가깝게 맞닿아 있다. 특히 10대 소녀들의 티 없이 맑은 비주얼과 자유분방하게 노는 모습을 담은 ‘Magnetic’의 뮤직비디오는 ‘Ditto’에서 입었던 교복을 파자마로 갈아입힌 듯하다.


그런데 아일릿은 묘하게 차갑다. 뉴진스가 외부의 시선에서 이상적인 10대의 이미지를 비춰주면서 여러 세대들의 공감을 유도했다면, 아일릿은 반대로 내부의 시선에서 10대만이 공유하는 정서를 담아내면서 또래 친구들끼리만 결속력을 다지기 때문이다. [SUPER REAL ME]에서 아일릿은 “This is my world”라는 가사로 리스너들을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에 흔쾌히 초대한다. 그러나 ‘Midnight Fiction’의 도입부에서 분위기를 잔잔하게 풀어주는 16마디 정도를 제외하면, ‘My World’부터 ‘Lucky Girl Syndrome’까지 모든 트랙을 과하게 동화적인 분위기로 채우면서 암묵적으로 출입을 제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앨범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도 아일릿과의 묘한 거리감을 지우기가 어렵다.


이유는 단순하다. 글로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틱톡은 10대들의 놀이터다. 그래서 아일릿은 또래 친구들과의 유대감에 집중한다. 특히 ‘Magnetic은 플럭앤비 특유의 캐치한 효과음을 살리는 동시에 전체적인 사운드 질감을 더욱 부드럽게 다듬어서 틱톡에 최적화된 몽환적이면서도 발랄한 감성을 제대로 전달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 차갑더라도 또래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게 다가가는 것이 아일릿의 글로벌 인기 비결이다.





"댄스 신고식이 랩을 만날 때"


4. Doechii - ‘Alter Ego (with J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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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축복받은 유전자가 하나 있다. 바로 유로댄스 유전자이다. 노홍철의 저질 댄스 음악으로 잘 알려진 2 Unlimited의 ‘No Limit’, 복고 특집 하면 빠질 수 없는 London Boys의 ‘London Nights’ 그리고 ‘Harlem Desire’, 마지막으로 DDR 대표곡이 되어 SBS 인기가요까지 출연해 버린 SMiLE.dk의 ‘Butterfly’까지. 90년대생에게는 예능으로 그보다 윗세대는 나이트를 통해 범국민적 흥이 되어버린 유로댄스가 래퍼 Doechii에 의해 부활했다.


처음 이 트랙을 들었을 때 섹션과 섹션 사이에 장르가 온전히 바뀌는 데에서 기존 K-Pop 송폼이 떠올랐다. 허나, 우리에게는 익숙한 송폼이 해외 리스너에게는 난해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 난해함이 매력적이라는 점을 포함해서 말이다. 처음 곡을 들었을 때는 나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이하게 이어질 거라 생각하던 벌스를 지나 코러스에 챈팅이 나오는 순간 이어폰 속 세상이 180도 뒤집힌 느낌이었다. 익숙해질 만할 때 프리코러스는 딥 하우스로 가버리니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혼돈 그 자체인 매력적인 트랙이었다.


Doechii는 이번 싱글을 통해 스스로 'Editorial rap'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수렴했다고 말했다. '힙합과 하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그녀가 한마디로 표현한 'Editorial rap' 장르의 핵심이다. 각 장르의 장점을 쏙 빼다 만들었으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만, 장르로 기능할 만큼 많은 파생 작업물이 얼마나 나올지가 관건이 되겠다. 그러나 파생 작업물을 가장 잘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가 하나 있다. 그렇다, 바로 힙합과 유로 비트, 조각조각 땃땃따 팝에 익숙한 한국이다! 익숙함 위에 새로움을 한 스푼 넣고 싶은 제작자에게는 시도해 봄 직한 도전이 아닐까? 몸 안에 자연스럽게 내재한 국내 리스너의 흥을 끌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다.





"연구 실패"


5. Imagine Dragons – ‘Eyes Closed’

수니 : 2010년대 이후 록밴드에 일렉트로닉이 결합하는 일은 흔했다. 대표적으로 Coldplay는 ‘Mylo Xyloto’에서 신디사이저의 비중과 전자음 요소를 대폭 증가시켰고, Muse는 ‘The 2nd Law’에서 덥스텝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더해 실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Imagine Dragons의 ‘Night Visions’은 진정한 21세기형 록밴드의 탄생을 알린 것임이 분명했다. 강렬한 드럼과 일렉 기타 리프로 록밴드로서의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루프, 신스와 같은 전자음 요소를 적절히 결합했다. 힘 있는 가사와 특유의 시원한 드롭을 댄의 폭발력 있는 가창으로 풀어내는 것은 이 밴드의 독보적인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Night Visions’의 엄청난 성공으로 그 압박에 시달렸던 탓일까? 이후 밴드는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더니 결국 ‘Eyes Closed’에 이르러 밴드의 골격을 완전히 무너뜨린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는 록밴드가 아니라 일렉트로니카 그룹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밴드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악기의 모습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거슬리는 신스와 스트링, 거친 힙합 비트가 과장되어 있으며 가사 또한 강한 느낌을 넘어 거만해지고 있다. 댄은 ‘Eyes Closed’가 향수와 신선함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과정이라고 언급했는데, 그 인터뷰를 보고 순간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었다. 균형을 찾겠다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전자음 요소로 밴드의 골격을 완벽하게 허물어버렸기 때문이다. 댄은 이제 밴드의 프론트 맨이 아닌, 마치 연구실의 교수와 같은 모습으로 변모해 버렸다. 과거 U2의 사례를 보면, 이 밴드 역시 이전 작의 큰 성공이 오히려 위기로 작용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위기 속에서도 ‘Achtung Baby’라는 얼터너티브 최고의 걸작을 길어 올렸다. 이 작품은 그들의 전통적인 사운드에 일렉트로닉을 도입한 과감한 접근이었다. 이는 록밴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변신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Imagine Dragons는 U2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Achtung Baby’ 사례를 필히 되돌아봤으면 한다.





"물의 무게를 견뎌라"


6. Tyla - [TY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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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 틱톡에서 '물 트월킹'으로 수많은 챌린지를 만들어낸 ‘Water’. 타일라는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에너지라는 댄스 팝의 기조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음악으로 순식간에 아마피아노를 메인스트림으로 이끌었다. 다음 스텝은 아마피아노의 침공을 공언하는 앨범을 드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깨가 무거웠을까. [TYLA]는 그저 ‘Water’스러운 곡들로만 가득하다. 덕분에 ‘Truth or Dare’이나 ‘Breathe Me’처럼 트랙마다 느껴지는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세련된 감각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Safer’부터 ‘On and On’까지 이어지는 일곱 트랙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전부 한 곡처럼 느껴진다. 거나와 스킬리벵의 피처링이 들어오면서 아프로비츠로 분위기를 전환한 ‘Jump’를 만나기 전까지는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운 앨범이다.


앞으로 메인스트림에서 아마피아노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본다. 거리의 파티 음악에서 애환을 전달하는 문화적인 음악으로 발전한 과정은 다름 아닌 힙합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과언일지도 모르지만 아마피아노가 새로운 시대의 힙합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때가 오면 [TYLA]가 어떻게 재평가를 받을지도.





※ 'Jason', '도라', '수니'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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