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의 위기를 통해 살펴본 SNS의 고질병
세계적인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미국 정부와 유니버설 뮤직 그룹(이하 UMG)을 상대로 갈등을 겪고 있다. 최근 일명 ‘틱톡 금지법’이 미국 하원을 빠르게 통과했는데, 이 법안이 대통령의 승인을 받으면 그 누구도 미국에서 틱톡을 다운로드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에게 미국 사업권을 매각하거나 국가 차원의 규제를 감수하라는 통보를 한 상태다. 미국 입장에서 이는 국가 안보의 문제로 중국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그 명분이다.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틱톡은 세계 3대 음악 레이블이자 유통사인 UMG와의 음원 사용 계약 분쟁으로 무려 700만 곡 이상을 삭제할 위기에 놓였다. 틱톡의 입장은 음원 전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타 플랫폼만큼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이에 UMG 측이 폭로 수준의 입장문을 발표하며 강력하게 맞섰다. 틱톡이 그 규모와 음악 의존도에 비해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으며, 일부 음악을 삭제하고 아티스트에게 불공정 계약을 강요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협상에 실패할 경우 틱톡은 UMG와 계약 관계에 있는 모든 음악을 삭제해야 한다. 추정치만 해도 그간 사용된 음악의 약 50%라니 그 피해가 상당할 듯하다.
만약 틱톡이 이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다면 문화와 미디어 시장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틱톡이 가져왔던 격변만큼의 충격을 다시 겪게 될까? 틱톡의 등장은 이전에 보지 못한 역학 관계를 만들고 나아가 소비자들의 취향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음악 시장 역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새 시대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주로 틱톡에서 새로운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틱톡 챌린지로 인기를 끈 음악이 메인 차트를 장악했다. 업계는 틱톡에 주목했고, 이를 타깃 한 Sped Up Ver. 음원과 리믹스 앨범 발매는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일례로 FIFTY FIFTY의 ‘Cupid - Sped Up Version’은 틱톡 붐에 힘입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7위와 25주 차트인이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작은 틱톡이었을지 몰라도 새로 정립된 문화는 틱톡의 것이 아니다. 비단 SNS뿐만 아니라 영상, 음악 재생시간, 생활패턴까지 숏폼의 등장으로 온 세상이 짧아지고 빨라지고 단순해졌다. 그저 틱톡을 규제한다고 숏폼 문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숏폼 문화를 공고히 하는 릴스와 쇼츠라는 대안이 이미 존재하며 둘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다음 주역의 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유튜브 쇼츠는 모체인 대형 플랫폼의 이용자를 그대로 끌어오면서 빠르게 자리 잡았고 이용자 수만 봤을 때 세 플랫폼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따라서 틱톡 이용자들이 타 플랫폼으로 이동하는데 딱히 큰 비용이 들지 않을 거라 추측된다. 특히나 UMG의 음악을 사용할 수 있는 유튜브 쇼츠는 계약 분쟁 뉴스가 나온 뒤 뮤직비디오 리믹스 기능을 빠르게 도입했다. 거기에 UMG가 폭로했던 AI 기술을 이용한 저작권 침해와 문제성 콘텐츠 규제에도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내놓으며 틱톡의 위기를 쇼츠의 기회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을 종합했을 때 틱톡이 위기를 넘기지 못하더라도 이미 뒤바뀐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는 없을 것이다. 지금 틱톡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 분쟁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닐까.
다른 플랫폼들이 안심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앞선 이슈들이 비단 틱톡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틱톡커가 생성형 AI로 제작한 Drake와 The Weeknd의 가짜 신곡이 스포티파이와 유튜브까지 침투했던 사건은 여타 플랫폼에서도 생성형 AI 관련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개인정보 및 데이터 유출, 각종 유해 콘텐츠, 사용자의 중독 위험 방치, 가짜 뉴스, 여론몰이 같은 이슈는 과거 페이스북, 트위터 시절부터 지금까지 SNS의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되어 온 사안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SNS의 주요 타깃인 10대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의 공방은 피곤한 잡음일 뿐이다. 이에 질린 나머지 이탈하는 청년층을 잡지 못하면 SNS는 그대로 나락이다. 페이스북은 잡음을 해결하지 못한 플랫폼이 맞게 될 미래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사용자의 노령화로 지금은 중장년층이 주로 쓰는 앱이 되었으며 Boomerbook (baby boomer + facebook)이라 불리며 경쟁에서 뒤처지는 중이다.
다행히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규제 압박이 이어지자 IT 기업들은 앞다투어 대책을 내놓고 있다. 오픈 AI, 구글, 어도비 등 7개 기업은 생성형 AI로 제작한 콘텐츠에 워터마크를 적용하겠다 밝혔고, 메타는 미 대선을 앞두고 정치 광고 제작에 생성형 AI 사용을 금지시켰다. 유튜브는 AI를 음악 분야에 적용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을 발표했으며 틱톡은 18세 미만 사용자 계정에 한 해 일일 사용 시간을 60분으로 제한했다. 이런 정책들이 여전히 완벽하지 않고 또 어떤 맹점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 안전한 시스템과 환경 조성에 협조해야 새로운 기술을 슬기롭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by 배게비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