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ssemble, 아이리 칸나/아카네 리제, 허클베리피 외
벤느 : 루셈블의 지난 데뷔곡 ‘Sensitive’는 통통 튀는 신스 사운드와 발랄함은 이달의 소녀의 ‘Why Not’을, 청순한 스쿨룩은 ‘Hi High’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었던 모습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포인트들이 단기적으로는 이달의 소녀 팬덤을 유지하고자 하는 측면에서는 유리할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자칫 새로운 팬덤의 유입이 힘들 수도 있다는 양날의 검이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선 이달의 소녀라는 타이틀을 완전하게 탈피하려고 한 듯하다.
이를 위해, 과감하게 싸이키델릭한 인트로와 전체적으로 깔린 로우파이 사운드로 신비하고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퓨처리즘이라는 이들만의 컨셉을 확고히 했다. 예상치 못한 장르들의 조합이라는 신선한 음악적 시도도 돋보인다. 타이틀 ‘Moonlight’은 펑키한 기타 리프와 몽환적인 신스라는 이질적인 조합을 적절히 풀어냈고, ‘Trueman show’는 키치한 하이틴이 고정 컨셉이였던 K-POP 식의 팝펑크 대신 서정적인 분위기를 택했다. 그러면서도 타이틀 ‘Girls Night’은 밝은 팝댄스곡으로 자신들의 발랄한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성을 챙겼다.
이달의 소녀보다 훨씬 SF틱하지만 이미지에 맞는 발랄함. 주류 장르가 아니라 대중들에게는 오묘하고 이질적이게 들릴지는 몰라도, 이제야 루셈블이 하고자 하는 음악이 오롯이 드러나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런 이달의 소녀 후속 그룹이 아닌 신인 걸그룹 루셈블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배게비누 : K-POP이 가상의 영역으로 확장됐을 때 흔히 들리는 사운드의 곡이다. 좁게는 K/DA와 MAVE:, 이세계아이돌의 음악에서 찾을 수 있고 가상이라는 키워드를 컨셉으로까지 확장해 보면 aespa의 음악에서도 이런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버추얼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뻔한 일렉트로닉 K-POP이라는 감상이다. 마찬가지로 이 범주에 속하는 아이리 칸나의 솔로곡 ‘ADDICT!ON’과 비교했을 때 아카네 리제와의 유닛이 주는 차별점도 보이지 않는다. K-POP 스타일을 계속한다면 PLAVE나 이세계아이돌처럼 '버추얼'에 갇히지 않고 컨셉에 맞는 곡을 찾는 쪽이 이들의 성장에 좋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미온 : 킵루츠와 허클베리피가 잠들어 있던 올드스쿨 러버들을 깨웠다. 많은 이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힙합 황금기'를 작정하고 소환했기 때문이다. 첫 트랙부터 풍겨오는 퍼블릭 에너미, 비스티 보이즈의 펑키한 록 사운드부터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스크래치와 브레이크 비트, N.W.A 같은 강한 어택감의 래핑, The Notorious B.I.G가 떠오르는 제목과 붐뱁 특유의 플로우 등은 80~90년대의 올드스쿨, 골든에라를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게다가 트랙 곳곳에 리오 케이코아, CBMass, YDG, I.F, 팔로알토 등 00년대를 풍미했던 국내 래퍼들의 벌스들을 이스터 에그처럼 넣어두고선 올드키드들을 끊임없이 후킹한다.
그렇다고 꼭 올드스쿨 러버만을 위한 앨범은 아니다. 붐뱁이라는 하나의 스타일을 가져갈 뿐, 트랙마다 달리 구성된 MC들의 조합은 힙합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다. ‘Showdown 2024’만 봐도 그렇다. 20년 전에 발매된 킵루츠의 ‘Showdown’의 Part.2인 셈인데, 그 목소리가 힙합 1세대 Side-B부터 베테랑 팔로알토, 신예 99' Nasty Kidz까지 하나로 이어지니 지금의 힙합과 예전의 힙합을 좋아하던 이들을 하나로 묶기에도 충분하다. 이외에도 붐뱁 비트 위의 트래퍼, 언더그라운드와 메인스트림과 같은 이질적인 조합이 트랙마다 등장하면서, 오로지 힙합에 대한 애정 하나로 똘똘 뭉친 장면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렇기에 장르를 막론하고 힙합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앨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그의 필살기인 '컨셔스'한 랩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피노다인 시절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개인 앨범 [점]에서 보여줬던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모습은 이 앨범에서 볼 수 없다. 허클베리피표 대표메뉴가 사라진 느낌이라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가 왜 이런 음악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이유도 짐작이 가기는 한다. 그는 재작년 음주운전이라는 범법행위를 저질렀다. 그런 스스로가 세상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무게감 있는 가사나 사운드 대신, 자신이 애정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형식의 음악들을 선보인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이 선택만으로 대중들이 그를 '재입학' 시켜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힙합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회자될 앨범임은 분명하지 않을까.
배게비누 : [The Rise and Fall of a Midwest Princess]는 80년대 댄스팝에 GenZ스러움을 가미한 데뷔 앨범이다. 프로듀서 Dan Nigro와의 작품이라 그런지 그와 작업한 GenZ 슈퍼스타 Olivia Rodrigo가 떠오른다. 팝 록과의 믹스나 특유의 기타 사운드, 발랄한 보컬, 발라드 트랙들이 그렇다. 무엇보다 이 둘은 당돌하고 반항적인 대사와 날 것의 감정에서 느껴지는 그 나이대의 정서를 공유한다. Roan은 발매 이후 [Guts] 투어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는데, Rodrigo의 팬덤에게는 다소 올드한 장르임에도 스트리밍 수가 무려 3배 이상 증가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둔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매한 ‘Good Luck, Babe!’는 Roan에게 첫 빌보드 메인차트 진입이라는 성과를 안긴다. 놀랍게도 이 곡은 Cindy Lauper나 Kate Bush가 생각날 정도로 80년대 신스팝의 향취를 더욱 끌어올리며 옛날로 돌아갔다. 이 결실은 맞춤형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마이크로 트렌드와 틱톡의 콜라보로 음악과 대중 사이에서 장르, 시대의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1985년에 발매된 신스팝 장르의 ‘Running Up That Hill’이나 각각 00년대, 10년대에 발매된 디스코 음악 ‘Murder on the dance floor’, 포스트 펑크에 속하는 ‘shut up and dance’ 등이 차트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Roan의 ‘Good Luck, Babe’가 선택받은 이유는 아티스트와 그의 음악이 현세대가 공유하는 정서적 맥락에 속하기 때문이다. [Gut] 투어의 라인업을 봤을 때, Rodrigo는 자신과 같은 진보적이고 젊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주목받길 바라는 듯하다. 그녀의 공연을 보러 가는 팬들 역시 이에 공감할 것이다. 퀴어 여성으로서 사랑을 노래하는 Roan은 이 가치관과 정서를 공유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정체성과 음악이 거대한 팬덤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된 게 아닐까? 음악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보다 강력한 전략은 없다.
미온 : EDM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 'David Guetta', 일렉트로닉 팝 대중화를 이끌었던 그였지만 강산이 너무 변한 탓일까. 이번 싱글은 처참함 그 자체다. 곡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국내에서 현영의 ‘누나의 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O-Zone의 ‘Dragostea din tei’ 멜로디 라인을 후렴구로 썼다는 것뿐, 그 외엔 새로움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한 볼륨의 드랍과 복사/붙여넣기 식의 빌드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양산형 EDM의 표본을 찾는 사람에게 이 곡을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다. 차라리 10년도 더 된 ‘Titanium’처럼 서정적인 무드를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구성을 하거나, OneRepublic의 그룹 특성을 활용해 록 사운드를 융합시킨 형태로 가져갔으면 적어도 '뻔함'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떼창을 이끌 수 있고, 페스티벌과 댄스 플로어에 걸맞은 음악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번 싱글이 명곡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리스너들이 원하는 건 복제된 EDM이 아니지 않던가. 새로움도, 발전도 없는 보수적인 사운드는 피로감만 안겨줄 뿐이다. 이제는 새로운 문법을 가져올 차례다. 그가 하루빨리 자신의 명성과 경력에 걸맞은 음악들을 보여주길 바란다.
벤느 :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브릿팝 스타일로 인기를 끌던 뉴호프클럽이 20대 중반에 맞게 음악적 변화를 꾀하려는 듯하다. 밴드 사운드가 아닌 클래식 스트링 소리로 시작하는 도입부와 팝에 치중된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성숙한 이미지를 풍긴다. 항상 멤버 위주의 뮤직비디오에서 애니메이션으로만 구성된 뮤직비디오로 변화를 준 것도 신선하다. 노래 자체는 특별히 캐치한 부분이 없어서 아쉽지만, 시기상 어차피 시도했어야 할 변화의 초읽기로 내기에는 무난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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