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MS, 김나영, 조우찬, Mabel, Nia Archives 외
베실베실 : 유행이 다 끝난 줄 알았던 ‘K-시티 팝’ 장르이지만 뉴진스와 ARTMS가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는 듯하다. 이전 유행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여러모로 분위기가 정제돼 있다는 점. 예전 K-시티 팝은 빠른 BPM과 브라스 사용을 바탕으로 댄서블한 느낌, 청량한 이미지를 구현하려고 했다면 ARTMS는 Mary J Blige의 ‘Mary Jane’, 혹은 PREP의 ‘Line By Line’이 떠오르는 신스 리프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느린 BPM, 코러스 파트의 가성 활용 등을 통해 조금 그루비한, 흑인 음악적인 이미지를 재현해낸다. Toto의 ‘Georgy Porgy’가 연상되는 간주의 섹션 파트는 덤이다.
첫 정규 앨범 [Dall]을 준비하며 정병기와 ARTMS는 제대로 칼을 간 듯하다. 첫 선공개 곡이었던 ‘Birth’는 이것을 과연 K팝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실험이 돋보였던 곡이고, 두 번째로 공개된 ‘Flower Rhythm’는 17년 ODD EYE CIRCLE의 음악이 떠오를 만큼 감각적인 퓨쳐 베이스 넘버의 곡이었다. ‘Candy Crush’를 비롯한 이 3곡의 완성도는 동 장르의 케이 팝 곡들과 비교해 더할 나위 없이 감각적이고 뛰어났다. 그렇지만 이 곡들을 들으며 생기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으니, "이토록 상이한 장르의 곡들을 한 앨범에서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정병기의 남은 과제는 단 하나. 교통정리뿐이다. 곡들의 퀄리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곡들을 하나의 앨범에서 유기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발매된다면, 그 앨범은 그저 꽤나 그럴싸한 'K 팝 컴필레이션' 그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성공하면 명반, 실패하면 평생의 아쉬움이 될 터이니, [Max&Match]라는 K 팝 불후의 명반을 선보였었던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다시 한번 증명할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요구사항을 하나만 더 말해본다면, 타이틀곡만큼은 대중적인 곡으로 뽑아주기를.
아민 : 2012년 정키의 노래 ‘홀로’를 피처링하며 데뷔한 김나영의 발자취는 거의 모두 사랑의 끝과 이별로 이어진다. 2017년에 ‘어른이 된다는 게’에서 사랑이 아닌 소재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으나 다시금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노래하는 가수로 돌아왔다.
드라마 OST 활동을 통해 인기를 얻었으나 그것은 그녀의 노래 때문이 아닌 해당 드라마의 화제성을 따라간 것이었다. 그걸 두고 가수 자체가 실력을 인정받고 인기를 얻은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이전과 별다를 것 없이 이별을 소재로 한 이번 곡을 두고 그녀의 호소력 짙은 보컬에 대해서는 칭찬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곡 자체에 있어서 특별한 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 그저 그런 이별 담당 발라드 가수로만 불리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든다.
이번 곡을 듣고 나니 정키와 협업한 곡을 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차라리 탄탄한 고음과 시원한 보컬이라는 장점을 살려 아직까지도 팬들이 찾아보는 옛 영상 속 ‘Street Life’를 부르던 그때처럼 패기 넘치는 락 스타일의 곡을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드라마의 인기를 따라가지 않고 본인의 노래로 자신을 알리고 싶다면 이제는 이별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율무 : 청소년기를 담은 성장 앨범의 3부작 이후, 조우찬은 소년미를 벗어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는 거친 레이지와 하드코어 힙합이라는 장르를 과감하게 선택했다. 타이틀곡 ‘Rage’는 묵직한 신스 사운드로 시작하다가 서던 힙합과 직선적인 하드코어 힙합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세련된 하드코어 스타일이라고 할 만큼도 아니며, 억지로 트렌드를 따라가려다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 특히 트랙을 넘기다 보면 ‘Shawty’부터 급격하게 느려지는 템포와 함께 뜬금없이 무겁게 감정을 잡으니, 앨범의 정체성을 명확히 파악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앨범은 애매하게 날이 선 미성숙한 스무 살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인다.
율무 : ‘Don’t Call Me Up’과 ‘Mad Love’과 같은 하우스 장르의 연이은 성공 이후, Mabel의 행보는 예상 밖이었다. 이미 전자음악으로 포화상태에 이른 영국 음악 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Mabel은 데뷔 초에 시도했던 R&B 스타일로 다시 복귀했다. 그러나 이번 신보에서 Mabel은 과거와 달리 R&B의 원형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다. 오히려 작년 R&B 씬에서 가장 주목했던 Victoria monet의 작법을 따라, 고전적이면서 세련된 현대적인 사운드의 균형을 조화롭게 가져왔다. Mabel 특유의 관능적이면서 chill한 무드를 하우스에서 R&B로 부드럽게 이어감으로써, 그녀의 새로운 변화를 자연스럽게 반길 수 있었다.
베실베실 : 이전 EP [Forbidden Feelinz], [Sunrise Bang Ur Head Against tha Wall]과 비슷하게 정글 장르를 바탕으로 팝적 감성을 버무린 음악을 선보이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과감해졌다. 전작에서는 네오 소울, 보사노바, R&B 등 예측할 수 있는 흑인음악의 범주에서의 융합을 시도했다면 본 앨범에서는 과감한 신스 사운드의 운용을 통해 조금 더 듣는 재미를 보장한 것. 타이틀 ‘Silence Is Loud’나 ‘Crowded Roomz’의 신스는 마치 90년대 레이브 씬의 그것처럼 광적이며 ‘Tell Me What It’s Like?’에서는 포스트 펑크 장르의 음산한 분위기까지 구현해낸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넓혔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물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무엇을 들어도 동일한 드럼 라인에 비슷한 BPM, 비슷한 빌드업 방식이다 보니 13 트랙을 끝까지 감상하기에는 쉽지 않다. 이 문제점은 Jungle 장르 본연의 특징에서 오는 한계일 확률이 크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위에 아무리 신스와 같은 다양한 악기를 넣고, 다양한 장르를 재현해낸다 할지라도 그 용골은 정글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현시대에 Nia Archives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브레이크 비트류 아티스트일 PinkPantheress 역시도 같은 딜레마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PinkPantheress의 작년 앨범이 분명 성적표는 나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이전의 성과를 뛰어넘었을 정도도 아니고, ‘Boy’s a Liar’의 파괴력을 이어받을 곡이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튜브의 떨어진 조회 수가 가장 강력한 근거이다.) 유행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팝 씬을 오랫동안 주름잡을 것만 같았던 브레이크 비트 계통의 음악도 몇 년이나 됐다고 벌써 끝물이 보이는 것만 같다. 만약 Nia Archives와 PinkPantheress가 정말로 한때의 원 히트 원더가 아닌 진정 재능 넘치는 뮤지션이라면, 기존의 기조를 이어받으면서도 다른 뼈대의 음악으로도 증명을 할 시기가 온 듯하다.
아민 : Oliver Cronin의 데뷔곡 ‘Poppin’은 최근에 발매한 곡들과는 달리 잘게 쪼갠 스네어와 둥둥 울리는 킥으로 이루어진 비트 위의 싱잉랩을 통해 힙합 바이브를 보여준다.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는 크로닌 버전 리믹스도 대부분 싱잉랩 위주의 힙합이며, 대표적으로 ‘EXES’ 리믹스가 있다. 또한, 데뷔 1년 차에 발표했던 ‘Drip’도 싱잉랩 기반이고 크로닌의 곡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Ruby’ 역시 정석적인 힙합 바이브의 곡이다.
하지만 실제 발매하는 곡들은 거의 모두 보컬을 살린 팝 장르에 가까운데, 특히 이번 곡은 멜로디나 사운드가 인스타 릴스에서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또 The Kid Laroi, Lauv 등의 가수를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이번 곡처럼 인스타 릴스용 팝이 아니라 차라리 리믹스와 데뷔곡을 통해 자기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싱잉랩 기반의 힙합을 가져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가끔은 누가 뭐래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자신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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