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멘트 May 06. 2024

어떻게 민희진의 두 시간은 여론을 바꾸었는가

‘국민’ 콘텐츠의 멸종

대한민국에서 근 한 달간 가장 뜨거운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민희진’ 이라는 대답이 들려온다면, 그에 반기를 들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24년 4월, 하이브는 감사 실시를 발표하며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경영권 찬탈과 배임 혐의를 제기했고, 민희진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강경한 태도로 하이브의 의혹 제기를 부인했다. 기업과 개인의 싸움으로 보이는 구도, 기사를 통해 쉴 틈 없이 밝혀지던 새로운 사실들로 인해 대중은 대부분 하이브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기자회견을 통해 민희진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되었고, 동시에 하이브의 손을 들어주던 여론은 단 번에 뒤집혔다. 대체 두 시간의 기자회견은 어떻게, 그리고 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기자회견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관계가 있고, 그 역시 당연히 여론을 변화시키는 데에 영향을 끼쳤겠지만, 대중의 마음이 변화한 데에는 무엇보다 민희진 대표 특유의 캐릭터와 전략이 가장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실제 민 대표가 어떤 전략을 세웠다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추측해보건대, 민희진 대표는 회견 전 자신의 캐릭터가 호감을 살만한 타겟이 누구인지 명확히 구분했을 것이다. 민 대표는 20대와 30대 사이, 직장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소위 실무진 급의 젊은 나이대를 공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 표현을 정제하지 않고 비속어를 자주 사용한 것은 물론, ‘미대’ 졸업한 사람에 불과하다며 스스로를 낮췄다. 더불어 본인이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프, 술, 배민, 야근 식대 등의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하이브의 임원진과 자신을 구분 지으며 타겟층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뿐만 아니라, 하이브 임원진과 자신을 구분 짓기 위해 민 대표는 자신이 여성인 점 역시 십분 활용했다. 나이대가 높은 남성들을 비난할 때 주로 사용되는 ‘개저씨’ 라는 속어를 서슴지 않고 활용하고, ‘산고의 고통’ 등을 언급하며 여성에게 특히 더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이 2024년이 아니라, 2014년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민 대표의 두 시간이 지금처럼 뜨거운 호응을 받을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그녀가 취한 위와 같은 전략과 태도는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민 대표와 같이 강렬한 캐릭터가 이토록 많은 호응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의 기자회견이 대중의 여론을 돌린 데에는 무엇보다 최근의 극화되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치,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점점 사람들의 취향은 극단적으로 변화하고, 더욱 더 강렬한 캐릭터와 모습을 찾고 있고, 극단화, 양극화는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적 양상이 되었다.


컨텐츠 분야에서 그 원인을 찾자면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컨텐츠 자체의 포화 상태이다. 컨텐츠 산업이 오랜 시간 이어져오고 있고, 최근 OTT, 유튜브 등의 등장으로 생산되는 컨텐츠의 숫자 자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수량 자체가 늘어나면서, 점차 소비자는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컨텐츠를 찾기 쉬워졌고, 그렇게 대중 취향은 과거에 비해 더더욱 세분화되었다. 자연스럽게 컨텐츠의 색 역시 세밀하면서도 분명해져 왔다. 또한 누적된 컨텐츠의 숫자, 그리고 소비자가 접하는 컨텐츠의 양이 과거보다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컨텐츠 자체를 통해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을 전달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더욱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내용을 통한 자극을 추구할 수밖에 없어졌다.

두 번째는 숏폼 컨텐츠의 유행이 있을 수 있다. 숏폼의 특성상, 컨텐츠를 만들어내기 쉬워지면서, 컨텐츠의 절대적인 수량 자체가 늘어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컨텐츠의 문법이 달라졌다는 것이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숏폼은 1분 내외의 컨텐츠를 의미하는데,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소비자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고, 그를 말미암아 다른 컨텐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롱폼과는 다른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극단적인 캐릭터의 등장이다. 과장된 행동과 강력한 메시지를 기반으로 캐릭터를 극대화해, 짧은 시간 내에 소비자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https://youtu.be/JleoAppaxi0

아이유 -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

이런 트렌드는 음악 업계에서도 드러나는데, 최근 이런 경향성을 가장 많이 실감케 한 가수의 앨범이 있다. 바로 아이유의 가장 최근 앨범이다. 아이유는 특정한 타겟층이 있다기보다는 언제나 대중 모두를 겨냥하는 선택을 해왔고, 그렇게 국민 가수가 되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든 반감을 살만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고,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이름에게, Love Poem과 같은 트랙들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보편의 생각을 담았을 뿐 반감을 살만한 강한 어조의 메시지는 없다. 24년 3월 발매된 앨범, The Winning의 선공개 싱글 ‘Love wins all’에서도 아이유는 유사한 전략을 활용했다. 그녀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도 서로를 사랑하자’는 매우 보편적이고 인류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이번 싱글에 대한 평가는 분명하게 갈렸다. 혹자는 그녀의 음악을 극찬했지만, 혹자는 곡의 제목이 LGBTQ에 대한 고려가 없었음을, 혹은 뮤직비디오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앨범 트랙 전반적으로 이전의 아이유가 달성했던 결과에 비해 다소 아쉬울만한 순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유와 비슷하게 ‘국민 여동생’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녀의 전략에 큰 변화를 주며 이례적인 결과를 달성했다. 7집 Lover에서 테일러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트랙을 수록하며 1020, 여성, 민주당 지지자와 같은 키워드를 기반으로 타겟을 좁혔다. 하지만, 그녀는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공연 티켓과 앨범을 팔고 있다. 불분명한 타겟층을 기반으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캐릭터에 대한 흥미가 식을 무렵, 숫자는 적더라도 분명한 팬덤을 공고히 하는 식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슈퍼 팬덤을 기반으로 판매량이 상승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결국 두 가수의 사례를 비교하면, 대중이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티스트가 보편적인 메시지를 던진다고 하더라도, 청자는 이제 음악 내외적으로 세부적인 것까지 들여다보며 자신의 생각과 상이함을 적극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으로 표현한다. 자신의 입맛과 견해를 그 어떤 때보다 분명하게 아는 대중들은 이제 모두가 만족할만한 콘텐츠에 반응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반감을 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극단적인 부분까지 짚어내며 자신과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캐릭터에 열광하고, 그런 극단적인 컨텐츠를 소비한다. 결국 과거보다 훨씬 세분화된 타겟층 설정, 그에 맞춘 강력한 캐릭터라는 전략은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필수적인 전략이 되었다.


키스오브라이프와 QWER

이런 모습은 솔로 아티스트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향성이 있지만, 그룹 위주의 케이팝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성별, 나이대, 정치적 성향 등 최대한 여러 카테고리를 통해 타겟을 분류하고 선정해야만 최소한의 주목이라도 받을 수 있다. 가장 최근, 예상 외의 큰 성과를 얻은 그룹이라 할 수 있는 키스오브라이프나 QWER이 그를 대변하는 예시라 생각한다. 두 그룹의 타겟층은 매우 상반되어서, 대중의 입맛이 과거처럼 세분화되지 않았다면, 도무지 동시에 두각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키스오브라이프는 걸크러쉬에 대한 동경을 가진 여성들을, QWER은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을 가진 남성들을 주 타겟으로 잡았다. 그렇기 때문에 키스오브라이프는 그들의 뛰어난 실력과 스타일리쉬한 모습을 키워드로 범접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고자 했고, 반대로 QWER은 일상적 공간인 학교와 군대 등의 행사에 얼굴을 비추며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요약해보자면, 이제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하는 콘텐츠는 남아있지 않다. 보다 많은 대중이 선택하는 컨텐츠는 남아있지만, 모든 국민을 타겟으로 한 체면 살린 미지근한 캐릭터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한다. 더 많은 대중에게 주목받기 위해서는, 그 숫자는 작더라도 보다 뚜렷한 충성심과 애정을 보여줄 특정 집단을 공략한 뒤, 그 현상 자체가 주목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그림이 되었다.


그러나, 음악 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경향성이 무작정 반가운 것은 아니다. 언제나 정치적으로 분열된 다툼은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은 언제나 문화 컨텐츠였다. 마이클 잭슨의 등장은 흑과 백 사이 공고하던 장벽을 깨는 주요한 사건이었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은 신세대와 기성세대 간 갈등의 골을 좁히는 주요한 계기였다. 음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반대편의 누군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 정도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음악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훌륭히 수행해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를 더 극단적으로 강화시키는 데에 일조할 뿐인 최근의 음악 시장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매출과 양적 성장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도 재고하는 것은 물론, 지나치게 자극적인 최근 컨텐츠와 전략을 경계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By. 이하보

https://brunch.co.kr/@habolee


매거진의 이전글 라이브는 최소한의 예절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