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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May 21. 2024

지극히 건전한 국내 차트에 관하여

올바른 도덕적 가치 판단인가 부작용인가

서술에 앞서, 전제는 다음과 같다. ‘현재 국내 차트의 행보는 꽤 건전하다는 점’이다. 멜론 TOP100을 기준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청소년 유해 판정을 받은 곡은 없으며, 대개 사랑을 관통하는 주제와 무해한 작사에 더불어, 차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아이돌의 음악은 일반적으로 청량한 콘셉트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국내 차트의 건전한 행보는 해외 차트와 대조했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19세 이상 이용 판정을 받은 곡들은 심심찮게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랭크되어 있고, 직설적인 화법을 이용하거나 비속어 및 섹슈얼한 비유를 이용한 곡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단편적으로 비교하자면 곡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이용했을 때 Taylor Swift는 나쁜 남자와 사랑했던 순간을 잔인한 여름이라는 직설적인 워딩으로 표현하고, 아일릿(ILLIT)은 상대방에게 끌리는 감정을 super 이끌림, like it’s magnetic 등의 다소 무해한 가사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 심화되고 있는 국내 차트의 건전화가 더욱 도드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대비되는 시대가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00년대 말부터 10년대에는 국내 가요계에 섹시 열풍이 불며, 이효리, 손담비 등 여성 솔로 가수를 필두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Abracadabra’, 짐승돌 콘셉트의 2PM, 트러블메이커, AOA 등 섹시가 대중음악의 주류 코드로 범람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는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여러 작사 키워드로 국내 차트의 다양성을 확립하기도 했다. 일례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교실 이데아’를 통해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아이돌 그룹 시크릿의 송지은은 통통 튀는 그룹의 색깔에서 벗어나 솔로 앨범에서는 당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던 스토킹 범죄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미친거니 (Feat.방용국)’는 멜론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음악을 통해 대중의 큰 관심을 끌어냈다.


또한 청소년 유해 판정을 받은 곡들이 크게 흥행하기도 했는데, 리쌍의 ‘TV를 껐네… (Feat. t윤미래, 권정열 Of 10cm)’, 박재범의 ‘몸매(MOMMAE)(Feat. Ugly Duck)’ 등이 그 사례이다. 특히 박재범은 섹슈얼한 주제를 내세운 해당 곡으로 여전히 페스티벌 공연과 축제에서 회자되고 있는 아티스트로 불리고 있으니 가히 큰 영향력을 자랑했던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섹슈얼한 주제 외에도 직설적인 워딩의 곡으로 화제가 되었던 지나의 ‘꺼져 줄게 잘 살아 (Feat. 용준형)’, 다이나믹 듀오의 ‘죽일 놈 (Guilty)’, 걸스데이의 ‘여자 대통령’ 등 개방적인 곡들이 당대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명확하다. 과거에는 여러 연령대를 아우르는 히트곡들이 그저 건전하고 무해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 차트의 방향성이 변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대중들의 인식 변화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차트를 지배하고 있는 아이돌 음악의 근간은 상업성이기에 제작자는 대중들의 인식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젠더 갈등이 세계에서 가장 심한 나라로 꼽히기도 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커뮤니티를 발판 삼아 국내의 젠더 갈등은 극심해지기 시작하여, 심화된 갈등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주로 문화 콘텐츠에 대한 논란과 분쟁이 불거지는 현 상황에서 대중음악의 생산자는 젠더 갈등이 조성될 만한 키워드를 회피하고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섹시 콘셉트 및 섹슈얼한 가사는 감히 내놓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식의 변화는 단순히 젠더 갈등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올 상반기에 발매된 아이유의 ‘Love wins all’ 사례를 보자. 발매 이전, 곡명 ‘Love Wins’의 트레일러가 공개되며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곡명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문구로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성정체성을 표명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문장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또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며 한 차례 더 논란이 발생한다. “등장인물 설정이 장애인을 묘사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장애물을 극복하는 맥락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등의 지적 의견이 나오며 장애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아이유는 곡명을 교체하고, 뮤직비디오의 감독은 연출 의도 해석본을 공개했다. ‘혐오 없는 세상’과 ‘사랑’을 강조하는 곡의 메시지가 무색하게도 논쟁이 두 차례나 발생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대중의 지식수준이 향상되고, 개인 권리 의식이 높아지며 과거에는 문제인지 몰랐던 것이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과 인터넷상 토론과 비판 활동이 활발해졌음을 알 수 있다. 부적절함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지만, 이에 따라 대중음악의 생산자는 제작에 앞서 대중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은 배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물론, 대중의 인식 변화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점점 낮아지고 있는 아이돌의 연령대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원인이다. 청소년 멤버가 다수이기에 더욱 보수적인 방향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또한, 발매 후의 음원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가족부에서는 2011년경 무더기로 유명 가수들의 신곡에 ‘19금(禁)’ 판정을 내렸다. 더불어 2014년, 청소년 연예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시행되었다. 이에 자체 음원 심의를 담당하는 방송사에서는 선정적인 가사와 퍼포먼스에 대해 규제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섹시 코드가 만연하던 가요계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즉, 창작자들이 건전하고 보수적인 음악을 제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꾸준하게 조성된 셈이다.



대혐오의 시대, 그리고 대중들의 인식 변화에 필요 이상으로 의거하는 심의와 시대에 발맞출 수밖에 없는 제작자들. 물론 단순 유행의 문제도 있겠으나, 한정된 소재 스펙트럼 안에서 제작된 소극적인 음악들만이 국내 차트를 지배하고 있는 경향은 분명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건전한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음악과 10대를 겨냥한 K-POP만이 차트에 나열되고, 시대를 이야기하는 아티스트는 흥할 수 없는 상황이 발발된다면 국내 차트의 다양성 저해는 물론,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국내 대중음악의 갈라파고스화를 유도할 뿐이다. 


더불어 국내 대중음악에만 엄격한 이중 잣대를 행사할 것이 아닌, 영화나 책을 하나의 예술로 바라보기에 여전히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대중 또한 인식이 완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의 규제로 이루어진 뉴미디어 콘텐츠가 성행하는 현재, 청소년유해매체물인 Doja Cat의 ‘Paint The Town Red’와 같은 곡의 챌린지는 남녀노소 여과 없이 소비하는 웃픈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국내의 음악 문화는 대중의 수용이 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즉, 혁신과 수용이 있었기에 현대의 K-POP이 존재하고 있으며, 한때 힙합이 유행할 수 있었고, 박진영, 서태지와 같은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의 아티스트들이 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 성향을 갖춘 현재의 차트 방향성과 이를 조성하게 만드는 사회적 문제가 꾸준히 유지된다면, 훗날에도 지속적인 음악적 발전을 보여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비판적 시각, 그리고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모두 공존하는 사회가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제2의 박진영, 서태지 같은 아티스트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By.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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