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과 K팝
포털 사이트의 뉴스 칸을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지나가면서 한 번 정도는 들어 보았을 만한 단어가 있다. 바로 “ESG”가 그것이다. ESG는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앞 글자를 따 만든 단어로 각 요소에 대해 기업이 가지는 책임의 중요성과 지속가능한 경영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재무제표와 같이 기업의 가치 측정을 담당하던 기존의 수량적 혹은 정량적 평가를 넘어, 수치로는 평가할 수 없는 요소까지 평가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개념이 ESG인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개념만으로는 K팝 산업과 ESG가 이렇다 할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K팝 산업에서도 ESG에 대한 담론이 뜨겁게 끓고 있는 중이다.
K팝 산업에서 빠르게 늘고 있는 ESG에 대한 요구는 사실 전 세계적인 추세에 가깝다. 이미 미국, 유럽 연합 등에서 ESG와 관련된 규제들이 강화 및 시행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금융위원회가 2026년부터 코스피 상장사들에게 ESG 공시를 의무화하기로 한 바 있다. 또한 코스피뿐만 아니라 코스닥 상장사들에게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미 큰 K팝 기업들이 국내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으며, 국내를 넘어 글로벌한 기업 활동을 영위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K팝 산업에 ESG가 요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ESG에 대한 K팝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는 중에 환경적 요소가 가장 먼저 발목을 잡았다. 특히 K팝 아티스트의 앨범 판매 측면에서 문제는 가장 크게 드러난다.
현 K팝 산업에서 대부분의 음반은 판매 이후로 그 가치를 잃게 된다. 대체로 앨범이 팬사인회를 참여하기 위한 “티켓” 정도로만 여겨지기 때문인데, 팬들의 맹목적 소비와 함께 이를 촉진하는 유통사와 K팝 기업의 “밀어내기” 상술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더해서 앨범 한정으로 랜덤하게 동봉된 포토 카드를 뽑기 위해 앨범을 다수 구매하거나, 앨범 판매량이 그룹의 지위와 맞먹는다는 생각으로 초동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음반을 다수 구매하는 사례 역시 적지 않다. 즉, 소장을 목적으로 한 극히 일부의 앨범 혹은 포토 카드와 같은 몇몇 구성품들을 제외하면 모두 버려지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버려지는 앨범과 그 구성물들을 재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그 효용성은 미미하다. CD나 포장재, 혹은 코팅된 종이들은 기본적으로 재활용 가능한 자원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일반폐기물로 소각장에 보내져 상당한 양의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재가 될 따름이다. 더해서 앨범이 불필요하게 많이 제작되는 현재 상황이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2023년 판매된 전체 K팝 앨범 약 1억 1600만 장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는 약 5800만 kg으로 추정된다. 효용 가치가 없는 물건이 생산되며 굳이 배출되지 않아도 되는 유해한 물질들이 배출되도록 방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앨범 판매를 포기하거나, 크게 감축하면 해결될 일이 아닐까? 아쉽게도 그것은 기업들에게 선택하기 쉽지 않은 선택지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월 하이브의 실적 발표에 따르면, 2023년 하이브가 음반/음원을 판매해 거둔 매출은 약 9700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약 44%이다. 그중 약 4360만 장의 음반 판매를 통해 기록한 매출은 약 6727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약 30%에 해당하는 매출이 음반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모든 수입원과 비교해 보아도 음반 판매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기업의 가장 큰 수입원을 감축하는 선택지는 그 어느 산업의 기업이라도 선택하기 힘든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K팝 기업들이 대신 선택한 선택지가 친환경 앨범이다. 그 예로 2022년 SM엔터테인먼트는 NCT DREAM의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Beatbox]의 제작에 국제산립관리협의회의 인증을 받은 친환경 용지와, 콩기름 잉크, 휘발성 유기 화합물 배출이 없는 친환경적인 자외선 코팅을 사용한 바 있다. 그보다 앞서 2021년 송민호, 청하 등이 친환경 소재의 앨범을 발매하며 NCT DREAM과 함께 선구자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하이브의 자회사 위버스 컴퍼니에서는 실물 CD를 동봉하지 않고 QR코드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랫폼 앨범을 발매하는 등, 실물 음반을 대체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현재에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친환경 앨범과 플랫폼 앨범을 발매하고 있을 정도로 K팝에서 친환경적인 전환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ESG가 기본적으로 기업 이미지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 K팝 기업들의 빠른 ESG 전환에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이미지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업의 이미지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산업이다. 특히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 좋은 이미지를 영위해 온 JYP의 경우, EDM (Every Dream Matters)와 같은 사회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오며 ESG 중 사회적 요소를 관리하는데 힘쓰고 있었다. 더해서 2022년에는 본사의 전력 사용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활용하는 RE100과 같은 환경적인 요소를 추가로 달성하기도 했다. 이에 2023년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ESG 평가에서 AA 등급을 획득해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ESG의 선점자 위치를 취했다. 즉, 기업이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릴 수 있는 ESG는 이미지로 먹고사는 K팝 기업들에게 여유만 된다면 가장 먼저 달성하고 싶은 도전 과제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ESG 중에서도 특히 환경에 대한 문제는 비단 K팝의 영역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이며 기업을 넘어 개개인 모두가 짊어져야만 하는 하나의 담론에 해당한다. 따라서 기업에게 환경적 문제를 요구하는 자세도 좋지만 그 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개인이 먼저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감히 생각한다. “K팝은 환경을 지켜라!”도 좋은 문구지만, “K팝도 환경을 지켜라!”가 조금 더 보기 좋은 문구가 아닐까?
by 동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