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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un 17. 2024

인디 아티스트 연습생의 시대

신예 발굴을 넘어 신인 제작을 시도하는 인디 레이블


'인디 뮤지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누군가는 90년대 말 홍대 앞 거리와 클럽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자본과 프로듀싱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형성한 인디 씬의 태동을 떠올리는 한편,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한 방송을 통해 보인 주류 음악과는 다른 독특한 색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2020년대의 인디 씬은 꽤나 모호하게 느껴진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수많은 공연장과 플랫폼들이 사라지고 개인화된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낮아진 음악 제작의 장벽으로 아티스트의 수 자체가 늘어난 와중에 씬을 기반으로 레이블과 함께 찬찬히 인지도와 체급을 키워나가며 대중음악의 범주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인디 뮤지션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디로 정의되는 뮤지션의 스펙트럼 안에는 레이블 없이 혼자서 음악을 만들고 활동하는 뮤지션부터 레이블에 소속되어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들까지 포함되어 있는 상태가 되었고, 이를 한데 묶기 위해 오늘날 인디 뮤지션의 정의는 인지도나 레이블의 유무를 떠나 자체적인 프로듀싱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티스트의 주도권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되는지와 같은 '정체성'의 형태에 가까워지게 된다.


한로로 / Drgon Pony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모호한 씬에서 비교적 명확한 전략을 갖고 나타난 아티스트들이 있다. 2022년 데뷔 싱글 ‘입춘’을 시작으로 단번에 인디 씬의 라이징스타로 떠오른 한로로와 데뷔 미션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며 데뷔를 예고한 안테나의 신인 보이 밴드 Dragon Pony(드래곤 포니)이다.


유튜브 한로로 <[Piece of RORO.01] 전설의 시작> 中

한로로의 경우 직접 현 레이블에서 연습생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그의 데뷔 과정을 각색한 자체 콘텐츠 <Pieces of RORO>에 의하면, 가수가 되고 싶어 현 레이블의 전신인 Studio MOS에 한로로가 DM을 보냈고 무료 작곡 프로그램과 우쿨렐레로 쓴 데모곡과 미팅을 통해 연습생 신분으로 현 레이블에 입사했다고 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매주 보컬, 미디 등의 레슨과 브랜딩 회의를 거쳐 1년 만에 자작곡이자 대표곡이 된 ‘입춘’으로 데뷔한 케이스다.


안테나의 4인조 밴드 드래곤 포니는 멤버 모두가 오디션을 치러 현 소속사에 입사했다. 케이팝 씬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밴드 DAY6나 Xdinary Heroes의 경우 악기 포지션이 아닌 보컬/댄스팀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밴드팀으로 옮기며 처음으로 연주와 작곡을 시작하는 멤버도 있었으나, 드래곤 포니는 멤버 모두가 실용음악 전공생으로 오랫동안 음악과 악기를 다뤄왔고 오디션 역시 기존의 포지션대로 치러지며 일반적으로 인디밴드들이 결성되는 형태와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Dragon Pony

이들은 드래곤 포니로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 새하마노라는 이름으로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등 활동의 시작 역시 대다수의 인디 밴드들의 활동 방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안테나는 이들을 인디 밴드가 아닌 미국의 백스트리트보이즈나 영국의 원디렉션 등으로 대표되는 용어인 ‘보이 밴드’로 규정한다. 이는 표현 그대로 해외 보이밴드를 레퍼런스 삼겠다는 의미보다는 좀 더 대중들과 팬 사이드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밴드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이들의 데뷔 프로젝트 과정을 담은 자체 콘텐츠 <용마랜드에서 만나>에서 그 근거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두 아티스트는 모두 일반적인 인디 뮤지션들과는 다르게 '오디션과 연습생'의 과정을 거쳐 대중의 앞에 서게 된, 새로운 유형의 인디 씬 기반 아티스트인 것이다.


유튜브 Dragon Pony <용마랜드에서 만나>

오디션과 연습생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은 그들의 데뷔가 아티스트 스스로가 아닌 회사의 결정으로 이뤄졌다는 뜻과 같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커리어와 관련된 결정들을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로로와 드래곤 포니와 같은 아티스트는 데뷔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회사의 투자가 이뤄지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빠른 성과를 얻기 위한 치밀한 사전 전략과 기획이 존재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두 아티스트는 유튜브 자체 콘텐츠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로로는 시적인 가사와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록 사운드를 더해 ‘청춘을 위로하는 차세대 록스타’라는 명확한 브랜딩을 반영하기 좋은 콘텐츠를, 드래곤 포니는 라이브 클립과 데뷔 미션 달성기인 <용마랜드에서 만나>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의 일상부터 기존의 인디 밴드에서 볼 수 없던 챌린지 촬영, 먹방 라이브, 공연 후 리뷰, 일상 모습 및 곡 작업 과정들을 담아내며 여러 다른 분야의 콘텐츠에도 개방적인 모습과 함께 소통의 의지를 드러낸다.


두 아티스트 모두가 자체 콘텐츠에 힘을 쏟는 이유는 아마도 '코어 팬덤'을 확보하기 위함으로 추측된다. 음악과 공연 외의 자체 콘텐츠들은 기존의 인디 뮤지션들에게 비교적 부족했던 소위 ‘떡밥’이나 ‘덕질 요소’로 훌륭히 활용된다는 점에서 타 인디 뮤지션들에 비해 더 빠르게 팬덤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디 뮤지션들에게는 음악과 공연 이외에 인력이나 자본의 부재 혹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이렇다 할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하다 보니 충성심이 높은 팬덤이 생기기엔 장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의 대중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한 이유로 팬이 되고, 더 많은 면을 보고 팬이 되는 만큼 음악 외에 다양한 요소를 보여주는 이들의 자체 콘텐츠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과밀화된 인디 씬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해 타 인디 뮤지션들에게도 자신의 음악뿐 아니라 아티스트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정의하고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만들어주었다. 특히 록 장르의 뮤지션으로써 두 아티스트의 성과는 해당 장르에 대한 관심과 트래픽의 증가로 사라져 가는 록, 밴드 채널을 확장해 대중음악의 새로운 선택지로서 몸집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안테나의 경우 여타 인디 레이블 혹은 레이블이 없는 아티스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환경이지만 언제나 결과물의 퀄리티나 효용성이 자본에 비례하는 것만이 아닌 만큼 각자의 환경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의 등장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로로와 드래곤 포니가 공들여 제작한 데뷔 과정을 비롯한 여러 콘텐츠들은 기존의 인디 씬 팬뿐 아니라 케이팝 팬을 비롯한 대중음악 팬들의 유입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데뷔 콘텐츠라는 형식 자체가 케이팝 아티스트를 제작하기 위한 서바이벌과 여럿 오디션 프로그램을 봐온 이들에게 익숙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사례로 제시한 두 아티스트의 데뷔 콘텐츠는 기존의 케이팝 아티스트를 뽑기 위한 콘텐츠들과 달리 이렇다 할 갈등도 보기 힘든 경쟁 구도도 없다는 차별점이 있다. 화제성을 높이기 위한 과도한 경쟁 구도나 연출보다 데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풋풋한 시작의 설렘과 신인으로써의 귀여운 모습이 더 돋보인다는 점에서 콘텐츠의 자극적인 연출에 지친 이들에게 신선한 대안이 되어 줄 것이다. 성장형 아이돌은 지겹지만, 성장형 인디 뮤지션은 묘하게 새롭게 다가온다.


2024 부산국제록페스티벌 1차 라인업


다만 자체적으로 프로듀싱을 하던 기존 인디 뮤지션의 이미지와 소속사의 기획을 통해 제작된 아티스트의 이미지가 상충하는 만큼 대비되는 두 정체성을 융합하기 위한 세심한 전략이 요구될 것이다. 데뷔 6년 차의 인디 밴드가 여전히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슈퍼루키로 이름을 올리는 데에 반해 아직 데뷔도 하지 않고, 앨범도 발매하지 않은 드래곤 포니가 부산국제록페스티벌 1차 라인업에 단번에 이름을 올린 현황은 인디 팬들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상황일 수 있다. 물론 페스티벌의 원활한 모객을 위해 티켓파워가 직접적으로 증명된 드래곤 포니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인원이 조금 적을지라도 드래곤 포니가 활동을 시작한 현 인디 씬에는 좋은 음악을 중점으로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을 공연을 소비하며 씬을 지켜나가는 팬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더 많은 장르 음악의 존재 가치와 발전을 이뤄내는 발판이 되는 만큼, 데뷔 전부터 치밀한 기획을 바탕으로 뮤지션의 본질인 좋은 음악과 대중과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엔터테이너 사이의 간극이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신경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by 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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