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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un 30. 2024

우리 이제 뭐 팔지?

케이팝 제작사의 최대 고민 : 과대 포장된 음반 판매량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NCT, 그리고 테일러 스위프트. 이게 무슨 조합인가 의문도 들만한 영 연관성 없는 조합이다. 언뜻 3세대 남자 아이돌 조합처럼도 보이지만, 실은 2023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 아티스트의 목록이다. 지난 3월 IFPI(국제음반산업연맹)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0개 중 9개가 모두 케이팝 아티스트의 앨범이며, 유일한 비(非) 케이팝 아티스트의 앨범이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 – [1989(Taylor’s Version)]이었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 이견이 없을 수 있겠지만, 음원과 공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실은 꽤 이상한 통계다. 이른바 ‘테일러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대중성은 물론, 강력한 슈퍼팬덤까지 지닌 테일러 스위프트와 케이팝 아이돌의 영향력은 일대일 비교는 다소 어렵기 때문이다. 대체 케이팝 아티스트는 어떻게 이렇게 비이성적인 음반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는 걸까?


물론 독특한 케이팝만의 팬덤 문화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BTS의 전례 없던 성공 이후 조금은 주춤한듯도 보이는 현재의 케이팝 씬을 생각하면 이토록 높은 피지컬 세일즈를 기록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렇기에 팬덤은 계속해서 ‘음반 당겨쓰기’에 대한 의혹을 계속해서 제기해왔다. 이른바 ‘음반 당겨쓰기’란 실제 고객이 음반을 구매하기 전, 기획사가 음반사 등에 먼저 음반을 판매해 판매량을 부풀리는 전략이다. 즉, 실제 고객은 음반을 구매하지 않았음에도 표면적으로 판매량은 상승하게 된다. 대개 음반사에 음반을 판매하며 팬싸인회, 팬이벤트 등의 행사를 통해 음반 재고를 소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전 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이는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기정 사실화된 편법이었는데, 이것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에서였다. 민희진 대표는 음반 당겨쓰기를 ‘음반 밀어내기’라는 단어로 표현하며, 현 세태를 비판했고, 이후 대중 역시 케이팝 아티스트의 음반 판매량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왜 유달리 케이팝 팬덤은 다른 장르의 팬덤에 비해 많은 앨범을 살까? 대체 언제부터 케이팝의 음반 판매량이 이토록 높아졌을까? 1세대부터 다양한 아이돌 그룹이 라이벌 구도로 경쟁하며-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성장해온 케이팝 씬의 특성이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또한 최근의 글로벌 확장 역시 증가한 판매량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경쟁 구도에 더욱 큰 불을 붙인 데에는 MNET의 대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이 있다.


서바이벌, 즉 팬덤 투표를 통해 최종 데뷔 그룹의 멤버를 선정하고, 무대의 센터를 선정하겠다는 프로듀스 101의 핵심 아이디어는 결과적으로 개인별 경쟁 구도를 유행시켰고, 자연스럽게 ‘최애’, ‘차애’라는 단어가 유행하며 팀 전체의 팬보다는 멤버 개인 팬을 자처하는 수가 늘어났다. 같은 다인원 그룹이라 하더라도, 프로듀스 101 방연 이전에 데뷔한 EXO(이하 엑소)의 전략을 떠올려보면 비교가 더욱 쉽다. 엑소의 리더 수호는 ‘We are one’을 외쳤지만, 프로듀스 101의 출연자들은 Pick ‘me’를 외쳤다. 결국 프로듀스 101은 한국 아이돌 씬의 경쟁 구도를 그룹 대 그룹 사이에서, 동 그룹 멤버 사이의 경쟁으로 확장시켰고, 그 흐름은 NCT, 더보이즈 등 수많은 다인원 그룹으로까지 이어져왔다.


멤버 개인의 경쟁 구도가 강력했던 3세대에서 과도한 앨범 구매가 생겨난 것은 이해가 된다. 개인 경쟁 구도를 강화하며 포토카드, 멤버 개인별 커버 등이 유행했기 때문에,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만을 위해서 앨범을 구매하는 개인 팬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팀 전체를 좋아해야만 했던 이전과는 달리 ‘입덕’의 허들도 낮아지면서, 팬의 모수 자체가 늘어나는 현상도 나타난 것도 한 몫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최근에는 앨범 밀어내기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앨범 구매를 과장하고 있는 걸까? 바로 팬덤의 단순 구매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왜 팬덤은 이전처럼 앨범을 공격적으로 구매하지 않을까?


NCT의 마지막 유닛, NCT WISH

불경기, ESG 등의 이슈는 물론이고, 주춤한 글로벌로의 케이팝 씬 확대 역시 큰 원인이다. 그러나 최근 변화한 아이돌 시장의 흐름 역시 원인이 된다. 최근 4-5세대 아이돌은 프로듀스 101으로 대표되는 3세대의 다인원 전략과 개인 경쟁의 구도에서 벗어난 흐름을 보인다. 멤버 수가 7명을 넘는 4-5세대 걸그룹은 찾아보기 어렵고, 최근 데뷔한 BOYNEXTDOOR, RIIZE, TWS 등의 보이그룹의 멤버 수 역시 7명을 넘어가지 않는다. 3세대를 대표하는 보이그룹들은-EXO, BTS, 스트레이 키즈, NCT 등-대부분 7명 이상의 멤버로 데뷔했음을 생각해보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멤버 수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그러하다. 4세대 걸그룹 호황기의 정점에 있는 그룹으로 평가받는 뉴진스가 대표적인데, 뉴진스는 멤버 개인 활동보다 팀 활동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개인보다 팀의 브랜드 가치를 우선으로 두는 전략을 취하며 팀을 사랑하는 팬덤을 구축하기에 최선을 다한다. 뿐만 아니라, 3세대 아이돌 역시 전략에 변화를 주고 있다. 다인원 그룹, 개인 경쟁 구도의 가장 최전선에 있던 NCT는 최근 NCT WISH의 데뷔와 동시에 무한 확장 시스템의 종료를 알렸다.




불경기, 글로벌 확장의 하락세, 그리고 아이돌 시장의 전략 변화. 앨범 판매가 줄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이다. 기획사는 왜 줄어든 앨범의 판매량을 부풀리려고 할까? 수많은 팬싸인회와 행사를 계약하면서까지 앨범을 파는 것이 어떤 이득이 될까? 왜 유통사와 음반사는 이 현상을 멈추려고 하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첫 번째 원인은 매출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무형의 음원보다는 실물이 있는 음반의 판매가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음반 매출은 기획사뿐만 아니라 이를 유통, 판매하는 유통사와 판매사 입장에서도 큰 매출 파이를 차지하게 된다. 게다가 판매를 담당하는 음반사의 경우 정치적인 관계를 고려하면 대형 기획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실정이 되지 못한다.


보이그룹 골든차일드 영상통화 팬싸인회 현장

매출 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아티스트의 브랜드 가치 역시 문제가 된다. 기획사 입장에서 아티스트의 네임 밸류를 신경쓰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실시간으로 앨범 판매량이 공개되고, 그를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는 현재의 케이팝 시장에서 앨범 판매량은 곧 팬덤 숫자의 반증이나 마찬가지이다. 차후 광고, 페스티벌 등 대외적인 활동에서는 물론이고, 미래를 위해 투자를 유치하는 등의 측면에서도 앨범 판매량은 아티스트의 현재 지표와 팬덤 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모두가 앨범 판매량을 부풀려 평균치를 높여놓았기 때문에, 기획사 입장에서는 앨범 판매량을 부풀리지 않는다면 미래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팬싸인회나 행사 등의 이벤트를 늘려서 음반을 파는 것이 브랜드 가치의 손상이 되지는 않는 것일까? 간혹 가다 아이돌 팬덤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행사의 수를 지적하며 음반 밀어내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아이돌 팬덤 내부의 이야기일 뿐, 대중에게까지 큰 논란이 되어온 전적은 거의 없다. 더불어, 팬 이벤트는 음반의 재고를 처리하는 측면뿐만 아니라 팬덤의 추가 유입을 노릴 수 있음을 생각해보면 기획사에서는 더더욱이나 손해는 아니다.




이제 왜 팬덤이 그렇게나 과도하게 앨범을 사는지, 왜 최근에는 앨범을 많이 구매하지 않는지, 그리고 앨범을 판매하는 것이 왜 기획사와 유통사 등에는 이득이 되는지는 이해했다. 그렇다면 불경기와 변화한 아이돌 시장의 전략으로 인해 음반 판매량이 줄어든 지금, 앨범 밀어내기 현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산업의 많은 사람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줄어드는 앨범 세일즈를 다시 증가하도록 하는 방법과, 줄어든 앨범 세일즈를 받아들이고 과대 포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에스파의 cdp 앨범

첫 번째로, 현재의 음반 세일즈를 유지하면서도 인위적인 편법은 사용하지 않는 식이다.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뉴진스의 전략과도 같다. 음반이 이미 음악을 듣는 수단이 아니라 MD 성격으로 전환되었음을 받아들이고, 팬덤이 ‘가지고 싶을만한’ MD 성격의 음반을 제작하는 방법이다. 뉴진스 앨범과 함께 판매된 가방이나, CD 플레이어를 함께 판매하는 에스파의 최근 앨범이 이런 전략을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전략에는 기획사 실무진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성격의 앨범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더불어 MD 성격의 상품이 대부분 그러하듯, 결국 가격에 비해 실용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 구매를 더욱 망설이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플랫폼 앨범의 일종인 SMini(좌)와 네모 앨범(우)

두 번째로는 플랫폼 앨범을 적극 활용하는 점이다. 최근 QR코드나 NFC를 이용한 다양한 플랫폼 앨범이 개발되어 많이 상용화되었는데, 실제 음반에 비해 제작비와 판매가 역시 낮다보니 음반 판매량을 증가시키는 데에 사용된다. 음반 내의 부속품이 적어 음원과 음반의 중간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는 점에서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기에 용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토카드 외에는 소구 포인트가 없다시피 한 점에서, 의미 없는 상술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는 점은 리스크로 꼽힌다.


결국 하나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극대화하는 방식, 하나는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새로운 방식의 음반을 고안해내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을 담당해야 하는 기획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SMini’라는 SM엔터테인먼트의 독자적인 플랫폼 앨범 형식이나, MD 형태의 앨범은 대부분 개발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결국 줄어드는 음반 세일즈를 유지하면서 편법은 줄일 수 있기에, 음반사, 유통사에는 호재가 될 것이며, 추가적으로 새로운 음반 개발을 도울 다양한 제작사에도 호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표적 음반 집계 플랫폼 '써클차트'

전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음반 세일즈를 받아들이고, 사업 모델을 변화시키는 방법 또한 있다. 혹자는 음반 판매량 집계를 비공개로 전환하면, 음반 판매량으로 경쟁하는 현재의 세태가 변화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음반 판매량을 대중이 알 수 없게 되면, 결국 대중이 아티스트 가치와 음반 판매량을 연결 짓는 행위를 멈출 것이고, 결국 네임 밸류를 위해 판매량을 과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물 음반을 미발매하는 방식 역시 존재한다. 물론 매출의 큰 비중을 포기해야 하겠지만, ESG 측면에서 큰 호응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실물 음반 제작비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장점도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떨어지는 매출이 가장 큰 벽이다. 이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음원보다는 음반에 대부분의 매출을 기대고 있는 현재의 아이돌 산업 구조에서 음반을 포기한다는 건 사실상 매출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획사 입장에서 생각하면 음반을 만드는 데에 들이는 제작비에 비해, 판매를 통해 돌아오는 매출이 크기 때문에, 음원, 공연, 행사 등의 방식으로 매출을 메꿔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렵다. 또한 아이돌의 음반 매출 비중이 큰 음반사나 유통사의 반발 역시 해결할 방법이 묘연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최근 음원/반 업계에서 가장 큰 화제로 꼽히는 음반 밀어내기 현상과 관련, 이를 둘러싼 케이팝 씬의 비정상적인 음반 판매량의 원인과 음반 밀어내기가 등장한 원인, 이를 타계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 언급했다. 다만 언급한 것과 별도로, 음반 시장의 침체는 단시간에 일어난 현상은 아니라는 점, 또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원인이든 다소 과장된 바 있는 현재 케이팝의 매출 크기를 포기하는 과정은 필연적이다. 결국 그 과정에서 MD, 온라인 구독 서비스, 새로운 공연 서비스, 혹은 음원 시장의 구조의 변화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결국 이를 성공하는 기획사만이 현재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음반사나 유통사 등 음원/반 시장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업체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점점 몸집을 불려가고, 이전에 비해 한국 내수 시장에 기대는 비중이 줄어드는 현재의 한국 케이팝 기획사 입장에서는 유통사나 음반사의 기능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통사나 음반사에 지불하는 비용을 줄이고, 작은 기획사의 음원반을 유통하는 수수료를 받아, 줄어드는 음반 매출을 방어하는 것도 일종의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될 경우 큰 자본을 가진 기획사가 시장을 독식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 역시 경계해야 할 필요는 있다.



By. 이하보

https://brunch.co.kr/@hab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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