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is Lim, 나상현씨밴드, 한요한, HONNE 외
등구 : 반려견을 담은 숏폼 영상에 자주 쓰여 화제가 되었던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의 주인공답게 반려견의 사진이 담긴 앨범자켓과 반려견 이야기를 담은 곡들이 눈에 띈다. 거기에 ‘원형 탈모 올 것 같아’, ‘주유 뚜껑도 안 닫아버렸어’ 같은 현실적이고 솔직한 가사와 내레이션 등에서는 장기하가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재치 있고 귀여운 앨범으로 넘길 수 없는 숨어있는 한 방이 있다.
사실 그의 보컬적 능력이 수준급이라고 하기는 아직 어려운 데다가, 화제 되었던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나 ‘비몽사몽’, ‘매미만 우네’ 등의 곡은 특별할 것 없는 죠지, 미노이 류의 흔한 감성 R&B로 보인다. 하지만 ‘JAMI’, ‘Give Me the Night’, ‘FEELING!’에서 보여준 소울과 훵크적 요소는 집중력을 확 끌어올려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Otis Lim이 어떤 아티스트인지에 대한 답이 되어주고 있다. 특히나 ‘FEELING!’은 훵키한 기타와 스트링, 신스로 디스코의 복고스러움을 재현하면서 제임스 브라운을 연상시키는 ‘Get up, Get on up’ 라인과 함께 60~70년대의 흑인 음악 아티스트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듯한 보컬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이 앨범 안에서 온도가 맞지 않는 트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트랙이야말로 그의 다음 앨범을 궁금하게 하는 중요한 곡이다. 완벽히 다듬어지지 않은 보컬이 디스코와 훵크의 자유분방함과 만나 유쾌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앨범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감성 R&B가 쉽게 쉽게 듣기는 좋지만, 당장 떠오르는 아티스트만 해도 여럿일 정도로 대체제들이 많은 레드오션인 것도 사실이기에 신인 아티스트가 호기심과 흥미를 끌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그 만의 재치와 자유로움을 훵크에 녹여낸다면 더욱 재밌고 유니크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이다음엔 반려견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영상에서 그의 음악을 듣게 될지도.
심피송 : 그동안 너와 나의 연대, 우리(we)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하며 희망과 위로를 주던 이들이 결성 10주년을 맞이하여, 팀이 시작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보다 개인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을 담아냈다. 특히 타이틀곡 ‘어떡하라고’에서는 "뭘 어떡하라고 나도 다 모르겠는데"라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달라진 메시지만큼 사운드도 변화했다. 안정적이고 따스해서 편안했던 이전의 음악과는 다르게, 과도한 이펙터와 노이즈를 적극 활용하여 하드록 스타일의 거칠고 원초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주제와 사운드가 다소 변화한 나상현씨밴드의 음악에도 이전과 일맥상통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리스너들과 호흡하며 즐길 수 있는 부분을 빼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하루’의 "너/ 나", "오오오오"라던가, ‘Love Love Love’의 "Love love love"와 같이 이들의 음악 대다수에 함께 호흡하는 파트가 존재한다. 이처럼, 이번 앨범의 ‘어떡하라고’에서는 함께 "어떡하라고"를 연신 외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뭘까’에서는 "멋져보여/ 달라보여" 등 읊조리듯 비슷하게 반복되는 어구를 배치하여 자연스럽게 떼창 파트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 부분들은 모두 직관적인 가사로 구성되어 리스너들이 쉽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진심을 담아 즐길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상현씨밴드의 롱런의 비결이 바로 이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리스너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위치에 놔두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토대로, 능동적으로 노래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 나상현씨밴드와 리스너가 음악으로 인해 하나의 우리(we)가 되어 함께 상호작용을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 이들만의 매력이자 롱런의 비결이 아닐까.
동치쓰 : 본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한요한은, 저스트뮤직 입단 후 당시 국내 힙합 씬에서 유일무이했던 락과 힙합이라는 신선한 조합을 선보여 리스너들에게 확실한 임팩트를 남겼다. 게인을 잔뜩 머금은 기타 위주의 락 사운드와 거칠게 내지르는 샤우팅 훅 등 ‘Break up!’에서도 본인만의 확고한 음악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해당 곡은 그가 발매했던 앨범들 중 초반부 어딘가에 배치되어 있더라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쉽게 예측이 가능하며, 신선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유형의 곡을 선보일 때는 피처링 진의 벌스가 그 기대감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 줬었지만, 이번 곡에서 피처링으로 참여한 래퍼들마저 그의 곡에서 익숙하게 등장했던 인물들이기에 한요한만큼이나 예상대로 진행된다고 느껴졌다.
최근 앨범 [Shining Star]나 [Time Machine]에서는 팝적인 성향을 짙어진 탓인지, 그가 힙합 씬에 발을 들였을 때 선보였던 ‘범퍼카’나 ‘커트코베인과’ 같은 킬링 트랙이 부족했었다. 때문에 ‘Break up!’은 당시의 임팩트를 되찾기 위하여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팝 펑크 사운드를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캐릭터를 다시금 살리고자 한 시도는 좋았으나 이러한 시도로 인해 오히려 모든 수가 읽혀버리고 말았다. 기타리스트라는 장점을 살려서 락의 더욱 다양한 사운드를 대중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락의 세부 장르와 힙합의 조합은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을 것이라 믿는다.
동치쓰 : 미니멀한 구성을 지향했던 지금까지의 혼네의 음악들과 비교해도 ‘Imaginary’는 그 감성의 종류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곡의 시작부터 느낄 수 있다. 이전까지의 음악들에서도 Chill한 바이브를 풍기며 나른해지는 감성을 느낄 수 있었지만, ‘Imaginary’는 이전 음악들보다 따뜻함이라는 측면에 그 방점이 찍혀있다. 이러한 변화는 아마도 가정을 이룬 두 멤버의 환경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따뜻함의 표현은 소규모 오케스트레이션의 스타카토 스트링 사운드나 벨 사운드 등으로 구현되어 있다.
이러한 '따뜻함' 자체는 과거에 선보였던 ‘Day 1 ◑’이나 ‘Warm On A Cold Night’등의 곡들과 비교하면 임팩트가 적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다소 소박하면서도 대중들에게 익숙한 사운드가, 현시점에서의 혼네가 느끼는 따뜻한 감성을 가장 잘 담아낸 표현 방식이라고 느껴졌다. 또 그러면서도 지금까지의 이지리스닝적인 방향성과도 적절하게 맞아떨어져, 이들의 현 상황을 적합하게 담아낸 레퍼토리의 확장으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바람으로는 해당 싱글을 발전시켜 다음 앨범의 큰 주제로서 작용시켜 주길
심피송 : Remi Wolf는 뭔가 다르다. Soul, Funk, Pop 아티스트로 분류되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장르가 Remi Wolf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레트로하면서도 세련되었으며,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이다. 그녀는 서로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어낸다. 그리고 그 방식이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다.
‘Toro’에 Remi Wolf만의 매력이 한껏 담겨있다. 머리를 찌르는 듯한 고음역의 신스, 애니메이션 효과음으로 사용될 법한 벨 사운드, 이펙트를 가득 넣은 일렉기타의 사운드와 같은 임팩트 강한 실험적인 요소들이 다소 정신없게 다가오지만, 멜로딕하고 캐치한 탑라인을 통해 부담스러움을 상쇄시켜 곡의 전반적인 밸런스를 잡았다. 특히, 곡 후반부에는 다양한 사운드가 질서 없이 겹쳐져서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Outro의 심플한 퍼커션 연출로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Alone in Miami’는 펑키(funky)하고 즐거운 바이브의 ‘Toro’와 반대되는 쓸쓸하고 잔잔한 록스타일로, 이처럼 상반된 장르와 무드의 트랙 또한 Remi Wolf만의 스타일로 한 싱글 안에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숏폼에 잘 활용될 법한 이지리스닝 곡들이 차트에 오르면서 심플하고, 어렵지 않은 음악이 일종의 흥행 공식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렇기에, Remi Wolf와 같이 자신만의 음악적 색을 꿋꿋이 유지하고,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티스트가 반갑게 느껴진다. 그녀가 극도로 예술성만을 추구하지도, 극도로 대중성만을 추구하지도 않은 덕분에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두 경계가 기분 좋게 흐려지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싱글이다.
등구 : The Lemon Twigs의 이번 신보는 작년의 [Everything Harmony]와는 달리 계절감을 신경 쓴 듯 여름에 어울리는 더 밝고 힘찬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섬세한 감성의 어쿠스틱 사운드가 주였던 이전 앨범에 비해 일렉 기타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것도 또 하나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60, 70년대의 바로크 팝, 소프트 록 음악을 연상케 한다. 과거의 것을 어느 정도 현대의 것과 적당히 버무리는 대다수의 음악들과는 다르게 이들의 음악은 정말 그 당시에 발매되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한 정도이다. 그럼에도 마냥 올드하다며 리스너들에게 외면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어쩌면 '올드함'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80년대, 90년대는 건너뛰고 바로 60년대의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가 떠오른다. 거의 5~60년 전인 이 옛날 아티스트의 앨범은 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명반이라기보다는 그저 지루한 옛날 노래라고 느껴질 수 있다. 비치보이스를 제 손으로 듣지 않는 젊은 세대들에게 The Lemon Twigs의 음악은 오히려 새로움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작년의 5집 이전까지만 해도 보다 글램 록에 가까운 음악을 했는데, 오피셜 차트의 앨범 세일즈, 앨범 다운로드 등 여러 앨범 차트 순위에서 볼 수 있듯 방향성을 바꾼 5집 [Everything Harmony] 이후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엔 그 새로운 올드함과 함께, 친절하게 느껴질 정도의 캐치한 탑라인이 이들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과 다양한 악기 운용 스킬과 합쳐져 호불호 없이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음악을 한 번만 듣는 건 쉽지 않다. 바쁜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롭고 아름다운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은 너무나 달콤한 휴식이자 모험이니까.
※ '등구', '동치쓰', '심피송'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