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leS, 멜로망스, 한로로, Billie Eilish 외
배게비누 : 트리플에스는 여러모로 K-POP의 다양성을 지켜주는 믿는 구석 같은 면이 있다. 복잡한 세계관과 팬 투표로 타이틀곡을 선정하는 파격적인 시스템 그리고 K-POP에서 흔히 듣기 힘든, 어찌 보면 다소 마니악한 음악들. 이 같이 쉽사리 하기 힘든 혁신적인 선택이 이들의 정체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보에서 역시 아이돌 곡임에도 아마피아노의 chill한 무드를 살린 ‘White Soul Sneakers’나 ‘이면의 이면 (Beyond the Beyond)’ 같은 곡들로 K-POP의 확장성을 보여주며 K-POP 고인물에게도 신선함을 선사한다.
이들의 시스템은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지만 음악은 어떤 그룹보다도 가장 현실과 맞닿아 있다. 온라인 속 자아, 냉소적인 사회, 자본주의, 미성숙함,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풍조 등 현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소녀들의 모습과 그들이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는다. 트리플에스의 다음 디멘션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K-POP에서 건들지 않은 다양한 소녀들을 꺼내줄 수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벤느 :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바탕으로 해 전 연령대의 공감을 낼 수 있어 다양한 스토리로 리메이크가 되고 있다. 멜로망스는 이 곡을 자신들의 짙은 감성을 활용해 풀어냈다. 예를 들어, 원곡은 20대 초반의 어리숙한 썸을, 작년에 발매된 홍대광의 리메이크 OST는 10대의 풋풋한 짝사랑을 그려냈다. 그리고 멜로망스는 이 곡을 보다 성숙한 사랑으로 풀어냈다. 전반부에는 멜로망스 특유의 재즈적인 코드 편곡을 바탕으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전면에 배치해 자신들의 감미로운 보컬을 강조했으며, 후반부에는 밴드 사운드를 더하면서 그루비한 리듬감을 통해 감정을 고조시켜 짙은 호소력까지 돋보이게끔 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곡의 방향성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홍대광의 뮤직비디오에서는 10대 주인공들이 우정에서 사랑으로 발전하는 감정을 처음 느껴보는 스토리가 나온다. 한편, 멜로망스의 뮤직비디오에서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녀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현재의 관계를 배려해 마음을 정리한다. 특히 주인공이 홀로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장면에서 어른들의 성숙한 연애방식이 잘 나타난다. 이렇게 같은 곡이어도 각자 다른 분위기의 곡과 다른 스토리의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리메이크 곡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율무 : ‘입춘’과 ‘이상비행’에서 보여준 날카로움과는 다르게, 드림팝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운드와 몽롱한 기타 연주가 한로로의 청아한 음색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보컬의 미묘한 흔들림은 사라지고, 직선적이면서도 안정적인 보컬을 선택해 곡이 훨씬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불안한 내면의 탐구를 담아냈던 다크한 얼터너티브 락을 넘어서, 투박했던 모습을 벗어나기 위해 음악을 부드럽게 다듬고, 음악의 스케일을 점점 확장하는 중이다. 이제는 한로로의 청춘을 자유롭게 즐길 적기라고 생각한다. 불안과 두려움만의 삶이 아니라, 짧은 청춘을 자유롭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한로로의 음악적 성장이 그 위로의 방식에 성숙함을 더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배게비누 : Billie Eilish는 강렬했던 ‘Bad Guy’와 한없이 약한 모습의 ‘What Was I Made For’로 대표되는 (크게는) 두 가지 스타일의 음악이 떠오르는 아티스트다. 이 세 번째 정규는 상반된 스타일을 스펙트럼화해서 이름처럼 HARD하고도 SOFT한 충격을 선사한다.
‘LUNCH’, ‘THE DINER’처럼 리드미컬한 베이스 위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강조한 곡과 ‘SKINNY’, ‘THE GREATEST’처럼 베드룸팝, 인디 발라드 류의 익숙한 트랙들이 준수한 퀄리티로 수록되었다. 무엇보다도 ‘CHIHIRO’, ‘WILDFLOWER’같이 이 두 스타일이 자연스레 합쳐진 곡들과 모든 트랙이 한 곡처럼 유려하게 흘러간다는 점, 3분~5분대의 넉넉한 길이로 감정과 여운을 충분히 담아 완성도를 높였다는 게 이 앨범의 놀라운 점이다.
평단의 좋은 평가와 달리 상업성에선 다소 아쉬웠던 2집과 다르게 이번엔 ‘LUNCH’처럼 성적을 기대해 볼 만한 트랙들이 있는 걸로 봐서 [HIT ME HARD AND SOFT]는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잡는 앨범이 될 것 같다. O’Connell가(家) 천재 남매의 개성을 다듬은 수작이 어떤 성과를 낼지 다음 주 차트가 꽤나 기대된다.
벤느 : 솔로 데뷔 이후 줄곧 라틴 음악을 고수하던 Camila Cabello가 본격적인 리브랜딩에 들어가는 듯하다. 2번째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발매된 선공개 곡들 ‘LUV IT’과 ‘HE KNOWS’ 모두 지난 음악 스타일과 확연히 다르게 전자음이 중심이 된다. 신스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EDM 마냥 반복되지만 Lil Nas X의 피처링 부분은 라틴 느낌을 살렸다. 장르들의 혼합을 통해 신박한 장르를 개척해 나가려는 시도가 나쁘진 않다. 중독성도 좋고 사운드가 튀지 않고 잘 융합되어있기에 그러하다.
다만 갑작스러운 변화를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두 곡이나 선공개를 했지만 다른 신스팝 가수가 떠오른다는 평이 전반적이기 때문이다. ‘HAVANA’라는 세계적인 라틴 유행곡을 가지고 있는 그녀인 만큼 리브랜딩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대표적인 라틴 음악 스타에서 새로운 장르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지는 그녀의 정규 앨범이 나와봐야 확실해질 것 같다.
율무 : [lately I feel EVERYTHING]과 [COPINGMECHANISM]에서 줄곧 지향했던 팝 펑크의 하드코어 스타일이 많이 희석되고, 대신 펑크에 재즈와 네오소울을 결합한 새로운 사운드를 재창조했다. 매끄러운 연주 사이로 불규칙한 펑크 리듬과 싸이키델릭한 재즈의 소용돌이가 여러 차례 휩쓸고 지나간다. 특히 보컬이 악기처럼 세밀하게 운용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home’에서는 아카펠라처럼 흥얼거리는 보컬로만 곡을 이끌고, ‘run!’에서는 펑크의 거친 매력과 함께 변화무쌍한 드럼 비트를 따라가며 보컬이 펼치는 다이내믹함이 돋보인다.
Olivia Rodrigo가 솔직하고 당당한 하이틴 이미지로 팝 펑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동안, WILLOW의 평범한 펑크 음악이 살아남기에는 경쟁력이 다소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WILLOW는 펑크라는 연결고리는 유지하되 탁월한 우회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예술적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독특한 퓨전 장르를 성공적으로 개척했다. 이를 통해 중저음 보컬의 역량과 매력을 강조하면서, WILLOW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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