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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 데뷔 4년 만에 선보이는 첫 정규 앨범이 주는 기대 심리.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은 리드 싱글 ‘Supernova’였다. '아, 지금까지 낸 곡들은 평범한 편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한 사이버 펑크 감성을 대중적인 감각으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풀어냈다. 특히 싱코페이션으로 쫄깃하게 들어오는 코러스 탑라인과 주문을 외우는 듯한 중독적인 챈트가 거친 쇠맛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하이퍼 사운드에서 필연적으로 느껴지는 피로감을 통쾌하게 날려버렸다. 마치 이지리스닝의 홍수 속에서 하나의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법은 만고의 진리인가. [Armageddon]은 리드 싱글의 임팩트를 앨범 단위로 끌고 가지 못해 아쉬운 앨범이었다. 밋밋한 트랩 비트의 ‘Mine’과 ‘Licorice’가 허리 라인에 애매하게 위치하면서 몰입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한 말랑한 질감의 트랙들은 신선함이 전혀 없어서 텁텁한 끝맛을 남겼다. 특히 찰리 푸스의 ‘Dangerously’가 내내 귀에 맴도는 ‘Prologue’는 그저 정규 앨범을 위한 볼륨 채우기일 뿐이었다. ‘Supernova’를 통해 동세대 걸그룹 중에서 독보적인 컬러감을 구축한 이들이지만, 두 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결국 탄탄한 앨범 한 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도라 :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 그리고 ODD EYE CIRCLE을 거쳐 결성된 ARTMS의 완전체 앨범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이번 앨범이 발매되기 전 ARTMS는 이달의 소녀 세계관을 자신들의 이야기로 변주할 예정임을 밝혔는데, 기존의 커리어를 버리지 않고 연계하는 새로운 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toe shoes'처럼 멤버들의 이전 커리어를 가사로 표현하던 LE SSERAFIM과 달리 ARTMS는 모습이 달라졌을 뿐, '이달의 소녀 시즌 2'가 시작된 느낌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모드하우스의 이러한 행보가 더욱 특별하게 여겨지는 지점은 트랙을 통해 이를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번 음반 [Dall]의 5, 6, 7번 트랙이자 선공개 곡이었던 ‘Flower Rhythm’, ‘Candy Crush’, 그리고 ‘Air’는 각각 희진, 하슬의 솔로 트랙, 그리고 ODD EYE CIRCLE의 타이틀곡을 차용하여 완성되었다. 음악을 통한 결합은 그간 선보인 유닛과 솔로 활동이 '본 활동 전 맛보기 활동'이 아닌 '완전체가 되기 위한 여정' 임을 보여준다. 그뿐일까? 이달의 소녀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한 ‘Butterfly’가 연상되는 10번 트랙 ‘Butterfly Effect’까지…. 이전 음원의 차용을 통해 음반의 완성도는 물론,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가 팬과 멤버들에게 추억이자 나아갈 발판이 되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정병기 프로듀서는 복잡하고 방대한 세계관을 음악과 MV를 통해 꾸준히 제시해 왔는데, 그의 작업에 오랜 기간 합을 맞추는 팀의 존재가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이번 음반에서도 그간 MV를 통해 수많은 떡밥과 세계관을 표현해 온 DIGIPEDI는 물론, 후배 그룹 tripleS의 시작을 함께해 온 프로듀서 EL CAPITXN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듯 '자주 보는 얼굴들'의 꾸준한 참여로 지속된 세계관은 ARTMS를 넘어 모드하우스만의 색깔을 구축해 나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타이틀 곡은 어떨까. ‘Virtual Angel’은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아야 비로소 연결되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담아내고 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아이돌의 입지를 다정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Virtual Angel’을 통해 '닿지 못할 허상을 좇는 바보 같은 존재'로 팬을 묘사하는 대신, '화면 너머로 느끼는 애정 또한 진실한 사랑' 임을 그려냈다. 유사 연애, 과몰입이라는 말로 상처받던 팬들에게 '그래도 우리가 응원하던 그 마음은 다 진심이었잖아'라고, 말해주는 음반이라니! K-Pop 팬덤에 대한 홀대가 꾸준히 문제가 되는 가운데 단비 같은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기획을 풀어가는 과정이 기존 팬들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정병기 프로듀서, 그리고 모드하우스의 방향성은 독보적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심피송 : K팝 보이그룹 최초 코첼라 무대 입성에 빛나는 ATEEZ. 작년에 발매한 정규 2집으로 중소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ATEEZ는 데뷔 초부터 명확한 세계관과 강렬한 팀 이미지로 구축된 확실한 정체성과, 안정적인 실력이 뒷받침되는 파워풀한 무대 퍼포먼스로 인해 해외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더불어, 세계적으로 라틴 음악의 인기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Dune’, ‘ARRIBA’, ‘미친 폼 (Crazy Form)’ 등 지속적으로 라틴 장르의 음악을 이어오며 해외시장의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번 앨범 또한 기존의 장르적 기조를 이어간다. 특히 ‘Blind’는 쿠바 트럼펫, 뎀 보우 리듬, 특유의 건반 리프와 보컬 이펙터, 그리고 'Cha Cha Cha'와 같은 문화적 측면이 포함되고 스페인어 활용이 두드러지는 가사를 활용하여 라틴 음악의 정석을 보여주며, ‘Shaboom’에서는 진한 레게 장르를 맛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한층 밝아진 세계관과 분위기를 담아내어 이전과 동일하다기보다는 새로움이 앞서 다가온다.
특히나 타이틀곡 ‘WORK’는 라틴과 ATEEZ가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어서 인상적이다. 프리코러스와 3절은 라틴이, 그 외의 파트는 힙합의 무드가 짙은데, 다소 맥시멀 했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캐치한 리드악기의 리프를 활용하여 미니멀하게 구성되어 있다.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국내 차트 상위권을 석권했듯이, 한층 가벼워진 ‘WORK’를 통해 해외시장뿐만 아니라, 국내시장 또한 충분히 타겟팅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전 세계를 아울러 ATEEZ가 모두에게 주목받는 황금기가 올 때가 된 듯하다.
심피송 : 캘리포니아 출신 그룹답게 almost monday의 음악은 햇빛이 쨍쨍한 여유로운 여름을 연상시킨다. ‘sunburn’, ‘life goes by’ 등 거의 모든 곡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길게 늘어진 기타 사운드와 전반적으로 깔끔하지 않은 빈티지한 사운드 질감은 이들의 시그니처로, 위와 같은 그룹의 이미지를 생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이번 싱글을 그들의 음악과 닮은 슬슬 더워지는 시점에 전략적으로 발매한 것이 인상적이다.
‘can’t slow down’ 또한 기존 곡의 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로써 almost monday는 음악적, 그룹적 색채를 한 번 더 강조하여 이미지를 굳히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너무나 이를 동일한 방식으로 풀어냈기에 다소 지루하고 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덧 데뷔한 지 5년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앞으로 지속 가능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과거의 모방이 아니라,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발전적인 모습을 고민하고, 보여줘야 할 시간이다.
도라 : 빅룸 장르는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메인스트림에 오랜 기간 머물러 왔다. '여기서 노시면 됩니다!' 하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드롭이 너 나 할 것 없이 때 되면 뛰어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빅룸 장르가 서서히 지고 '지금이 뛰어야 할 때 맞나요?' 하며 주위 사람들과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트랙들이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 'Future Rave'라고 하는 이 새로운 장르의 매력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Future Rave는 빅룸의 무식할 정도로 쿵쿵 울려대는 묵직한 킥 사운드, 레이브의 반복되는 원노트 베이스의 결합으로 청자를 무아지경의 세계로 이끈다. 크게 터지는 드롭보다 잔잔하지만 세밀한 비트에 빠져들다 보면 모두가 영원히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는, 슴슴하지만 중독적인 매력이 일품이다. Future Rave는 David Guetta와 MORTEN이 프로듀서 듀오로 손을 잡으며 탄생했다. 두 사람이 동명의 레이블을 설립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오고 있기에 2019년에 시작된 아주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렉트로니카 씬에서 유명한 두 사람이 전면에 나서니 전혀 다른 장르를 구사하던 Dj들도 하나둘 Future Rave에 손을 뻗으며 메인스트림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Kill The Vibe’ 트랙을 처음 들었을 때, 웅장하게 울리는 4박 킥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았다. 아주 넓은 공간감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붕 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의 묵직함. 그 위에 보컬 chop을 통해 만들어낸 리듬을 받는 플럭 사운드까지. 꽤나 단순한 구성이지만 반복 학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루브가 착착 감겼다. 미니멀함이 주는 세련된 분위기는 덤. 공간감이 넓다 보니 보컬리스트가 끼어들 여지가 상당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리듬이 세밀하게 쪼개져 그루비함은 보장되어 있으니, 비어있는 여유 공간 위로 탑라인이나 랩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일렉트로니카 씬에서도 점차 기세가 오르고 있으니, 새로움을 찾는 국내 힙합, 혹은 힙합 베이스의 팝 장르를 작업하는 작가라면 함께 Future Rave의 파도에 올라타 보는 건 어떨까.
Jason : 힙합을 기반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멜로디컬한 감성을 만들어온 포스트 말론이지만, 전작인 [Austin]에서는 힙합과 약간의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본명을 걸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앨범인 만큼, 어린 시절 영향을 받은 컨트리 사운드에 집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포스트 말론은 생각보다 컨트리에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I Had Some Help‘can’t slow down’에서는 인트로부터 아날로그한 질감의 리프로 컨트리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을 위시하면서 힙합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마룬 파이브스러운 모던한 진행은 그저 담백한 팝이었지만, 귀에 감기는 탑라인과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컨트리와 팝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앞으로 '컨트리 스타'로서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그의 야망은 뮤직비디오에서도 드러났다. 특히 현시점 최고의 컨트리 스타인 모건 월렌이 컨트리 펍에서 내쫓긴 그를 일으켜주면서, 컨트리의 중심지이자 그의 고향인 댈러스가 박힌 모자를 씌워주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컨트리 팬들의 게이트키핑을 피하면서 씬을 향한 발걸음을 크게 내디딘 것이었다. 과연 포스트 말론은 앞으로 컨트리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단언은 어렵지만 씬의 최전선에서 특유의 팝스타일로 대중들과의 접점을 만들어준다면, 그가 새로운 컨트리 붐을 이끌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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