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1, WSG워너비, 최예나, 지코, Billie Eilish 외
예옹 : 아직도 이 MR. BAD를 말랑콩떡 사랑 노래 싱잉 래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며. pH-1이 이번에 발매한 싱글인 ‘MR. BAD’는 특유의 쫀득한 랩과 싱잉에 SUMIN의 힙한 감성이 입혀져 탄생한 곡이다. 핫한 R&B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인 SUMIN이 작업에 참여하면서, pH-1의 강점인 귀에 꽂히면서도 여유롭고 그루비한 랩이 빛을 발했다. 둔탁한 비트 뒤에 깔리는 무심하게 찍어낸 신스 사운드와 SUMIN의 백그라운드 보컬이 인상적이다. 2020년 발매됐던 정규 [X]에서처럼 빡센 랩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이런 R&B 힙합 곡이 가장 매력적으로 들린다. 피처링은 우원재로 특유의 담담하게 툭툭 뱉는 래핑이 곡의 무드와 잘 어우러진다.
베실베실 : <놀면 뭐하니?>와 WSG 워너비의 시점이 아닌 전적으로 정준일 팬의 시점에서 리뷰를 써보려 한다. 기본적인 곡의 뼈대는 전형적인 정준일 표 발라드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금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면 강화성 표 EP를 바탕으로 (상대적) 고음역대가 몰아치는 ‘고백’이나 ‘기억해줘요’ 혹은 ‘첫사랑’과 비슷할 것이다. 곡 자체만 놓고 본다면 비슷한 정준일 곡 라인업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준수한 곡인 건 분명하다. 후렴구 탑 라인도 쉬우면서도 세련됐고 브릿지 빌드업도 팬들이 좋아하는 특유의 진행 공식을 충실히 이행했으며 박인영과 강화성의 편곡은 여전히 유효하다. 허나 아쉬운 점은 이 음악이 어디까지나 예상 가능한 지점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2014년 군 전역 이후로 너무 많이 시도한 작법인지라 아무리 퀄리티가 좋다고 한들 적어도 팬들에게는 더 이상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 2달 전 선예와 함께 한 싱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를 리뷰할 때도 비슷한 요지의 글을 썼기도 했었고 말이다. 지금 정준일이 만들어야 할 곡은 이런 발라드 넘버가 아니라 정규 앨범에 수록될 만한, 재즈 팝 혹은 얼터너티브 락 장르의 음악들이다. 만약 정준일이 이러한 점을 고려해 이 노래를 본인이 직접 발매하지 않고 다른 가수를 준 것이라면 그나마 약간의 면죄부를 발행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럴 확률은 적겠지만 말이다.
예옹 : ‘SMARTPHONE’은 이전 흥행곡 ‘SMILEY (Feat. BIBI)’와 비슷한 느낌의 Pop Rock 곡이다. 프로덕션에서의 변화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비슷한 팝펑크 느낌을 가져가면서 이전 흥행을 의식하며 안정적으로 발매한 곡이라는 느낌이 든다. 곡 자체는 좋다. 그러나 이전에 ‘SMILEY (Feat. BIBI)’가 워낙 YENA 그 자체인 곡이라 반응도 좋았고 첫 솔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성적도 대단했다.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이번 타이틀곡은 성적이 저조하다. YENA의 발랄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이 두 타이틀곡에 찰떡이지만, 이번에는 신선함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이전 앨범처럼 이번 앨범에도 수록곡들 또한 비교적 Rock의 비중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YENA가 본인 앨범에 작사, 작곡으로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타이틀곡으로 Rock을 고집한다면, 차라리 이전 앨범의 ‘Lxxk 2 U’ 같은 느낌의 곡으로 악동 락스타로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 사실 이건 항상 생기는 아이돌 시장에서의 난제가 아닐까. 한 가지 이미지만으로 활동하는 아이돌은 항상 한계에 다다른다. 하지만 YENA의 솔로 행보는 이제 시작되었고, 그녀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에 다음 앨범은 어떨지 기대해본다. (듣다 보니 ‘SMARTPHONE’에서 인트로의 ‘음음음’부터 벌스의 랩까지 전소미의 ‘BIRTHDAY’가 묘하게 계속 생각난다.)
베실베실 : 소집 이후 첫 작업물인지라 기대한 팬들이 많았겠지만 필자는 [Thinking] 시리즈와 [Random Box]를 너무나도 좋지 않게 들었던 터라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들었다. 그리고 역시 기대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곡들이 ‘어디서 들어본’ 것들 투성이다. 1번 트랙 ‘괴짜’는 전성기 블락비 시절의 타이틀곡 클리셰 답습에 불과하며 ‘SEOUL DRIFT’는 요새 기타 위주의 레트로 팝이 유행하니 어영부영 한번 편승해봤다는 생각만 들게 한다. ‘Trash Talk’에서 지코와 창모의 랩 퍼포먼스는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으며 ‘OMZ Freestyle’ 역시 마찬가지이나 본인이 전작에서 시도했던 ‘극’이나 ‘Dystophia’같은 기존 지코 표 컨셔스 힙합의 양산형 버전에 그친다는 사실은 이 앨범을 더욱더 심각하게 만든다. 그나마 ‘Nocturnal animals’가 인상 깊지만 이마저도 지코의 곡이라기보단 Zior Park의 노래에 지코가 얹힌 느낌이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돼버렸다.
분명 [Gallery]나 [Television] 앨범까지는 본인이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가, 앨범을 통해 어떤 스토리를 담고 싶은가를 분명히 전한 앨범이었다. [Thinking] 시리즈는 곡의 퀄리티나 앨범의 유기성과는 철저히 담을 쌓은 앨범이지만 적어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대체 뭘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그냥 적당한 케이팝과 힙합 곡, 그리고 뜬금없는 Zior Park 스타일 노래를 한데 섞은 모음집에서 청자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적어도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지코가 분명 감각 있고 랩 잘하는 래퍼인 것은 맞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앨범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금 더 반추해보고 답을 찾아냈으면 한다.
예옹 : 이 앨범은 Folk Ballad 장르로, 복잡한 것들은 덜어내고 감정의 표현에만 초점을 둔 정직하게 구현된 음악이다. 이런 류의 음악이 나올 때마다 그녀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는 빛을 발한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음색으로 가사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트랙은 두 개로 ‘TV’와 ‘The 30th’가 있다.
‘TV’의 가사는 관계의 어려움과 자괴감이 주내용이다. 계속해서 우울한 바이브로 진행되다가, 후반부에 팬들의 떼창 녹음이 삽입되어 있다. 이 곡은 투어에서 이미 팬들에게 들려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녹음과 제작 방식이 가능했다. 이 파트(가사 중 ‘Maybe I'm the problem’)는 그녀가 홀로 가창하다가 팬들의 떼창이 더해지면서, 팬들도 같은 내용을 부르며 홀로 자책하는 그녀를 위로하는 방식의 연출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마냥 우울했던 분위기가 잠시 환기되는 효과가 생긴다.
‘The 30th’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내용의 가사이다. 초반에는 차분하게 시작되지만, 후반부에 브릿지에서 점점 고조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 파트의 연출 방식이 이 곡의 전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킬링 포인트이다. 이 구간에는 가사 중 ‘What if … (만약 그랬다면…)’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또한 호흡을 끊지 않고 길게 가창하며, 음악이 점점 고조되면서 그녀의 두려움이 증폭되는 것이 표현된다. 마지막에 악기가 빠지면서 안도하는 내용(가사 중 ‘You’re alive’)이 나온다. 리스너도 그녀처럼 긴장하고 숨 막히다가 마지막에 숨이 트이면서, 그녀의 긴장감과 안도감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한 표현법이 뛰어났다.
베실베실 : DOMi나 JD BECK 개개인 모두 (좁아 터진) 현재의 재즈 씬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던 데다가 Thundercat, Mac Demarco, Herbie Hancock, Anderson. Paak 등 유명 인사들이 총출동했으니 이 콜라보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결과가 긍정적이었냐는 물음에는 의문부호가 남을지도 모른다. 막상 결과물을 까놓고 보니 이미 근 10년 전부터 수많은 연주자들이 해온 Nu Jazz 장르의 다른 앨범들과 비교해 특별한 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 이전에 Flying Lotus가 있었고, Anomalie가 있었고, 그 밖에도 이름을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팀들이 존재했다. 그들과 비교해 이 앨범만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인가? 앨범을 다 듣고 나면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는 DOMi의 Nord 피아노도, JD Beck의 드러밍이 아니라 Herbie Hancock의 보코더와 Kurt Rosenwinke의 기타 솔로뿐이다. 밴드가 아니라 연주자 둘을 프론트맨으로 내세운 앨범이니만큼 건반과 드럼 연주에 조금 더 포인트를 실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앨범 하나를 키를 잡고 오롯이 이끌어 나가기에는 그들의 힘이 아직은 너무나 미약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자꾸 맴돈다.
※ '베실베실', '예옹'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