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글로벌을 바라보는 촌스러운 음악
요즘 사투리를 활용한 병맛더빙 콘텐츠를 재미나게 본다. 거친 억양으로 말맛을 살리면서도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촌스러움의 미학이 있다. 컨트리라는 장르도 마찬가지다. 비음(Twang)이 섞인 미국 남부 사투리에 기반한 발성법으로 시골의 정겨운 분위기를 표현하는 음악이다. 특히 컨트리는 1920년대부터 오랫동안 레드넥으로 불리는 시골 중년 남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술집에 모여서 회포를 풀 때도, 황량한 전쟁터에서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때도, 언제나 컨트리가 함께했다. 이들에게 컨트리는 단순히 음악을 넘어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비빌 언덕이었다.
2010년대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정치적 올바름(PC)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컨트리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Kacey Musgrave는 ‘Follow Your Arrow’에서 “Kiss lots of boys or kiss lots of girls, if that’s something you’re into”(당신이 원한다면 누구에게나 키스를 할 수 있다)라는 동성애를 내포하는 가사를 선보였다. 오래도록 고수해온 컨트리의 보수적인 가치관은 금기처럼 여겨졌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컨트리 스타 바로 Morgan Wallen이다. 그는 ‘Whiskey Glasses’에서 암묵적으로 억눌려왔던 컨트리의 마초적인 감성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If I’ma be single, I’m need a double shot of that heartbreak proof”(이별을 한다면 독한 술로 상처를 씻어야 해)라는 가사처럼, 병나발을 불며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는 근본이 넘치는 이미지로 단숨에 남심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2020년대로 접어들며 컨트리는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Morgan Wallen이 흑인 비하 단어(N-Word)를 내뱉은 문제로 씬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이자 컨트리 팬들은 역으로 그의 앨범을 구매하며 지나친 PC주의에 불만을 표했다. 나아가 이러한 감정은 미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과 맞물리며 마침내 폭발했다. 지난 2023년, Morgan Wallen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레드넥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Last Night’으로 16주간 빌보드 핫 100 차트 정상을 사수했고, 민주당 지지층을 저격하는 내용으로 논란을 만든 Jason Aldean의 ‘Try That In A Small Town’도 공화당 정치인들의 찬사를 받으며 빌보드 핫 100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컨트리의 빌보드 점령기였다.
이처럼 특정 인종, 계층, 이념과 관계가 밀접한 컨트리는 필연적으로 높은 진입 장벽(Gate Keeping)을 가지고 있다. 흑인을 대표하는 팝스타인 Beyonce는 [Lemonade]에 수록된 컨트리 트랙 ‘Daddy Lessons’로 CMA(Country Music Awards) 무대에 올랐지만 당시 컨트리 팬들의 반발을 샀고, 심지어 그래미 어워드 컨트리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그래미 측에서 거부한 사건도 있었다.
그래서 Beyonce는 흑인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3부작(Trilogy)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컨트리를 선택했다. 사실 컨트리는 흑인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장르이다. 컨트리의 음악적 정체성인 밴조(Banjo)는 아프리카의 전통 현악기이고, 컨트리를 상징하는 이미지인 카우보이(Cowboy)도 본래 목장에서 일하는 흑인 직원들을 부르던 명칭이다. 이처럼 컨트리에 담긴 흑인 문화의 흔적을 집대성한 앨범이 바로 [COWBOY CARTER]. 특히 리드 싱글인 ‘TEXAS HOLD’EM’에는 컨트리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장르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암울한 현실을 위로하고자 불렀던 블루스의 색깔이 짙게 묻어난다. ‘TEXAS HOLD’EM’으로 Beyonce는 이번에도 컨트리 방송국에서 송출이 거부되는 진입 장벽을 마주했다. 그러나 ‘AMERICAN REQUIEM’에 적힌 믿음처럼 행동하면 변화는 일어나는 법. 트위터(X)에서 #Beyonceiscountry 운동이 일어나며 마침내 ‘TEXAS HOLD’EM’이 라디오에 울려 퍼졌고, 빌보드 Hot 100 차트 정상까지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컨트리가 흑인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넘어, 앞으로 다양한 배경의 아티스트가 자유롭게 컨트리에 도전하도록 진입 장벽을 허물어준 기념비적인 성공이었다.
덕분에 작금의 컨트리는 완전히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컨트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Shaboozey는 ‘A Bar Song (Tipsy)’에서 힙합 음악인 J-Kwon의 ‘Tipsy’를 인용하고, Moneybagg Yo는 ‘Whiskey Whiskey’에서 밴조 사운드와 트랩 비트를 결합한 음악을 내세우며, 이들은 흑인 아티스트로서 장르의 한계를 실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Austin’에서 매혹적인 여성미를 강조하는 Dasha와 ‘I Had Some Help’에서 전통적인 브로 컨트리(Bro-Country) 감성을 특유의 락킹한 사운드로 풀어낸 Post Malone에게는 컨트리 씬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진다.
컨트리는 음악을 넘어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힙합 씬의 전설적인 프로듀서이자 최근에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의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Pharrell Williams는 지난 2024 F/W 컬렉션을 컨트리의 상징인 카우보이 코어 스타일로 꾸몄다. 이후 Bella Hadid, Kim Kardashian 등 많은 셀럽들이 착용하면서 카우보이 코어는 올해의 라이징 패션 키워드가 되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컨트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트럼프 피격 사건으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공화당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리고 사건 직후 컨트리 아티스트 Zach Bryan의 신보 [The Great America Bar Scene]의 트랙 대부분이 빌보드 Hot 100 차트에 꽂히는 모습에서 여전히 끈끈한 관계성을 엿볼 수 있었다. 만약 지금의 기세가 당선으로 이어진다면, 컨트리는 공화당의 시대에서 더욱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주류 시장(Mainstream)을 장악할 것이다.
또한 컨트리는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향하고 있다. Noah Kahan, Zach Bryan 등 오피셜 싱글 차트 전반에 점차 컨트리 아티스트들이 이름이 보인다. 상위권은 여전히 Sabrina Carpenter의 위상이 공고하지만, Shaboozey, Dasha를 필두로 컨트리가 턱밑에서 훗날을 도모하고 있다. 나아가 옆동네 일본에서도 村上想楽(Murakami Sora)처럼 컨트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가 느껴진다. 약간의 호들갑을 떤다면, 문자 그대로 촌스러운 컨트리라는 장르가 앞으로 힙합을 대체하는 글로벌 팝의 새로운 정의가 될지도 모르겠다.
by. J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