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달라진 하이퍼팝의 형태
'현시대 하이퍼팝의 대표 아티스트'로 불리는 Charli XCX는 지난 6월 발매된 [brat]을 통해 다시금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 팝스타 노선을 타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던 전작 [CRASH]에서는 짙어진 팝의 색채로 인해 중간중간 이도 저도 아닌 인상이 묻어나곤 했지만, 이번 [brat]에서는 클럽 음악과 팝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구성과 개연성 있는 곡의 흐름으로 많은 호평을 낳았다. 그 결과,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수의 음악 리뷰 사이트에서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받았고, 빌보드 200에 3위로 진입하는 등 자체 커리어 하이를 경신했다. 그야말로 예술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앨범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녀의 음악이 하이퍼팝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예시로 음악 평점 사이트인 <Rate Your Music>에서 해당 앨범은 하이퍼팝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고 있으며, 한 웹진에서는 전작이었던 [CRASH]를 "하이퍼 팝이 SOPHIE의 죽음 이후로는 더 이상 성립 가능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듯한 고루한 사운드를 담고 있었다"며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brat]은 하이퍼팝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말하긴 했다) 하이퍼팝의 사운드적 특징을 만든 SOPHIE와의 작업으로 새로운 길에 들어선 Charli XCX였기에 이러한 평가는 다소 의문스럽기도 했다. 무엇이 그녀의 음악에 질문을 던지게 한 걸까.
하이퍼팝은 A. G. Cook이 설립한 영국의 레이블 PC Music에서 시작된 음악으로 세상에 없는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껏 올린 보컬 피치와 뭉개지고 뒤틀린 사운드를 중점으로 다양한 요소를 극단적으로 풀어내어 '과장'을 넘어 '과잉'을 선사하면서도 팝 특유의 후킹한 멜로디가 얹어진 것. 마치 '도파민 중독'이라는 유행어가 떠오르기도 하는, PC Music이 만들려 했던 '세상에 없는 새로운 미학'은 바로 '뒤틀린 과잉'이었다.
하나의 ‘장르’보다는 ‘비슷한 음악 스타일’로 통용되던 초기에는 버블검 베이스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으나, 미국의 음악 듀오인 100gecs의 성공 이후 스포티파이에서 이러한 음악들을 한데 모아 '하이퍼팝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고, 이때부터 하나의 특색 장르로 인식되며 '하이퍼팝'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PC Music은 기존의 것을 따르지 않고 비틀고 찌그러트리는 방식을 활용하면서도 팝의 감성을 추가해 누구나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었다. 예측 불가한 전개 속에서 디지털 질감과 가벼운 멜로디의 조화는 독특한 비디오에 적합한 음악이 되었고, 짧은 시간에 임팩트 있는 영상을 남겨야 하는 틱톡에 제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많은 사람이 틱톡을 하게 되었고, 하이퍼팝은 코로나 시대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틱톡에 힘입어 몸집을 키워 나간 하이퍼팝은 많은 곳에서 영향을 받은 만큼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었다. 게임기 소리와도 같은 칩튠과 전자기기에서 오류가 발생할 때 나는 기계음인 글리치, 2개 이상의 음악을 하나로 합치는 매쉬업, 금속 질감의 사운드, 트랜스 특유의 악기 구성, 현란한 배경과 컴퓨터 그래픽 등이 그 예시이다. 또한, 서브컬쳐에서 활용되던 피치를 높이고 배속시키는 리믹스인 나이트코어에도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현재 활발히 사용되는 sped up과도 이어진다.
반대로 하이퍼팝이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예시로는 레이지 힙합이 있다. 레이지의 경우 2020년대 새로운 힙합 하위 장르로 급부상하며 근 몇 년간 힙합씬에서 자주 사용되었는데, 레이지 힙합의 트렌드를 가장 잘 주도한 앨범으로 평가받는 Trippie Redd의 [Trip at Kinght]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레이지라는 이름이 파생된 'Miss the Rage'가 그러하다. 레이지의 가장 큰 장르적 요소인 정신없이 난무하는 전자음이나 이펙팅한 보컬에서 하이퍼팝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해당 곡의 비주얼라이저에 나오는 게임적 요소 및 컴퓨터 그래픽 또한 마찬가지다. 더불어 레이지로 명명되기 전 하이퍼 랩이나 하이퍼 트랩으로 불렸던 점에서 해당 장르가 하이퍼팝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분명 Charli XCX는 하이퍼팝의 대표 아티스트로 불리고 있으며, 음악에서 특징이 묻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brat]은 자자한 호평 사이 하이퍼팝이 아니라는 목소리를 낳고 있는 걸까?
먼저, 초기 하이퍼팝의 문화와 다르기 때문이다. PC Music은 당시 유행하던 Skrillex의 덥스텝이 주는 어둡고 진지한 일렉트로닉에 반하여 팝처럼 밝고 활기찬 음악을 만들기 위해 2014년 발매된 Hannah Diamond의 ‘Every Night’을 시작으로 공식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 전까지는 약 1년 간 사운드 클라우드에 무료로 배포했다) 이러한 대안적인 분위기는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다름'을 표현하는 퀴어 문화와도 연결되었다. 실제로 하이퍼팝의 뿌리와 선구자로 칭해지는 아티스트 대부분이 퀴어였으며, 피치를 올린 보컬은 성별을 감추기 위함에서 출발된 장치였다. 여기에 일찍이 자신이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고백한 SOPHIE는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던져왔다. 'Ponyboy', 'Faceshopping'처럼 급진적인 과거가 담긴 곡에서는 BDSM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였고, 'Immaterial'에서는 자신의 중성적 포지션을 당당하게 노래했다. 어느덧 SOPHIE의 음악은 성소수자들의 스피커이자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되었지만, Charli XCX의 [brat]은 여느 앨범과 다름없이 명성과 성공,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갈등을 자전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초기 하이퍼팝은 귀를 찢는 듯한 과격함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왜곡된 형태의 소리, 비틀고 찌그러트리는 음악에 팝스러운 멜로디를 얹어 과잉의 과잉을 선보인 데 반해, Charli XCX의 경우 오히려 팝스러운 음악에 하이퍼팝 특유의 독특한 사운드를 얹은 느낌에 가깝다. 이번 타이틀 곡인 '360'에서는 분절된 멜로디를, 선공개 싱글이었던 'b2b'에서는 예측 불가한 전개를 보이며 '뒤틀린 과잉'을 시도하려 했지만, 뒤틀리지 못한 사운드로 인해 ‘과잉’만 건진 셈이 되어버렸다. 앞서 언급한 SOPHIE 외에도 GFOTY의 'Don't Wanna / Let's Do It'이나 '100gecs의 'money machine'을 들어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하이퍼팝으로 알려진 곡들 또한 마찬가지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에스파의 ‘Savage’를 보면 서늘한 금속 질감의 드럼 사운드와 파열음, "Get me get me now Get me get me now" 파트에서의 왜곡된 보컬, 그리고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컴퓨터 그래픽 세트장과 게임 애니메이션 효과는 하이퍼팝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내용과 같은 맥락으로 컨셉 특성상 전반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뿐이지, 이 또한 완전한 하이퍼팝으로 정의하긴 어렵다.
하이퍼팝의 대중화가 시작된 지 약 4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 하이퍼팝으로 분류되는 상당수의 곡은 초기 하이퍼팝과는 다른 형태를 띤다. 하이퍼팝이라는 장르 자체가 커지면서 더는 메시지나 문화, 아티스트는 퀴어에 국한되지 않게 되었고, 상업적 성공을 위해 일렉트로닉 팝 성향이 있으면 일단 하이퍼팝 딱지를 붙이다 보니 점차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 변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퀴어 문화에서 비롯된 성별에 대한 메시지와 일반 대중이 데일리로 감상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음악이라는 점도 한 몫 했다. 3분 내내 지속되는 마이너하고 거친 사운드는 국내 정서와는 거리감이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아직 퀴어에 보수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해외는 좀 더 개방적이긴 하다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미 커질대로 커진 장르 씬에서 이전처럼 음악을 통해 다름을 표현하기보다는 상업적인 목표가 더 커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범위가 확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오늘날 순도 100%의 하이퍼팝이 존재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따라서, 작금의 하이퍼팝은 더는 특정된 형태의 장르가 아닌 힙합이나 케이팝처럼 하나의 포인트를 첨가하여 활용할 수 있는, 그리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광범위한 장르로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본다.
by.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