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과도기에 접어들며
K-POP이 무더운 여름과 Y2K의 열풍에 어울리는 라틴 아메리카의 색채를 더하면서, 지리적 경계를 넘어 더욱 확장되고 있다. Stray Kids의 ‘Chk Chk Boom’은 스페인어와 스페인식 억양이 담긴 라틴 힙합 곡으로 빌보드 차트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고, LISA는 스페인 출신의 ROSALÍA와 협업하여 스페인어 가사를 채택함으로써, 팝스타로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면모를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라틴 음악의 흐름 속에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과연 라틴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실 K-POP 시장에서 라틴 음악은 주목받는 시간이 짧고, 그 인기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베이비복스의 ‘Why’와 백지영의 ‘Dash’처럼 90년대부터 라틴 음악은 우리 대중음악에 서서히 스며들어 왔지만, 라틴 음악이 본격적으로 붐을 일으킬 기회는 많지 않았으며, 그런 시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라틴 음악이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받았다면, 오늘날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색채가 강한 아프로비츠가 여기저기서 자주 들려오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전히 라틴 음악은 한국에서 자리 잡기 어려운 장르일까.
라틴 음악의 인기는 최근 2~3년간 급격히 증가했다. 음악산업 분석업체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K-POP의 성장률이 47.67%였던 반면, 미국 내 라틴 음악 앨범의 소비량은 55.29%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Bad Bunny는 2022년에 발매한 정규 앨범 [Un Verano Sin Ti]로 스포티파이에서 185억 회 이상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플랫폼 역사상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앨범 1위에 올랐고, 그는 라틴계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미국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에서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직비디오는 Karol G의 ‘Si Antes Te Hubiera Conocido’로, 이 곡은 6월 21일 발매 이후 8월 21일까지 스포티파이에서 약 2억 9,000만 회, 유튜브에서 1억 4,0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30위권까지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라틴 음악의 인기를 끌어올린 요인 중 하나는, 전 세계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 주된 음악 감상 방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낯선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젊은 세대가 이를 주로 이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스포티파이가 라틴 아메리카로 확장한 이후, 라틴 음악 청취자는 986% 증가했으며, 라틴 트랙은 스포티파이의 상위 100곡 중 20% 이상을 차지할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존중하고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음악을 듣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라틴 음악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들이 라틴 음악에 열광하는 이유는 흥겨운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문화가 라틴의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틴 음악은 주로 타악기의 강한 킥이 리드하며, 강한 퍼커션의 리듬감과 멜로디가 조화를 이룬다. 엇박이 강조되어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후 정박으로 연주될 때 그 긴장감이 해소되는, 일종의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대립 구조를 가진다. 리듬의 변화나 구조적인 변동은 크지 않지만, 단순한 박자가 탑라인과 중첩되면서 특유의 당김음이 더욱 두드러진다. 라틴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지친 몸과 마음에 활기를 되찾기 위해 엇박자의 라틴 스텝으로 걸음을 되살렸고, 돌과 나무를 두드리며 감정을 나누던 소리는 다양한 타악기로 재현되면서 음악과 춤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2017년 Louis Fonsi의 ‘Despacito’가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16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기점으로 라틴 음악의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Camila Cabello는 ‘Havana’를 통해 라틴 음악으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고, J Balvin은 Beyonce와 협업하여 발매한 ‘Mi Gente’로 ‘Despacito’에 이어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비영어 싱글 두 곡이 동시에 TOP 10에 진입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이후 Nicki Minaj의 ‘Tusa’와 Cardi B의 ‘I Like It’이 큰 인기를 끌며 라틴 음악은 더욱 탄력을 받았고, 라틴 리듬을 적극 활용하는 신예 아티스트들의 활약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라틴 요소를 접목한 K-POP 그룹과 음악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순히 라틴 리듬을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힙합과 EDM을 결합하거나 리듬 자체를 변형하는 등 음악의 예술적 순수성보다는 흥과 오락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타악기의 화려한 리듬을 바탕으로 중독성 있는 비트를 만들어내는 특징이 퍼포먼스 중심의 K-POP과 잘 어우러지면서, 라틴 리듬의 빠른 비트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에 적합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NCT 127의 ‘Regular’, (여자)아이들의 ‘Senorita’,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등이 발매되었다.
라틴 요소가 살짝 가미된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라틴 음악의 작법이 중심이 되는 곡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Guaynaa가 피처링에 참여해 현지 시장에 직접 진출한 청하의 ‘Demente’, 르세라핌의 ‘Fire in the belly’와 Stray Kids의 ‘Chk Chk Boom’처럼 라틴 음악의 전통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곡들이 등장하고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부른 공식 주제가 ‘Dreamers’에서도 라틴 리듬이 사용된 것을 보면, 이 리듬이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대중적인 요소임을 알 수 있다.
K-라틴 음악이 글로벌로 향하는 흐름과 달리, 국내에서는 라틴 음악의 인기가 아직 뚜렷하게 감지되지 않고 있다. ‘라틴돌’이라 불렸던 VAV의 ‘Senorita’는 유튜브에서 약 4,000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고, 라틴 아메리카 투어를 진행할 정도로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국내에서는 그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한 모모랜드의 ‘Yummy Yummy Love’도 라틴 팝 아티스트 ‘Natti Natasha’와의 콜라보레이션로 남미 최대 음원 차트인 모니터라티노 주간 차트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지만, 국내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라틴 음악이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라틴 음악이 비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반면, 한국 대중은 멜로디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K- POP은 정교한 스토리텔링과 강렬한 퍼포먼스, 다각도의 기획으로 종합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특히 강렬하고 중독적인 멜로디는 노래를 기억에 남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이를 위해 반복성이 강한 코러스, 예상치 못한 코드 진행, 독특한 리듬 패턴 등이 활용되어 익숙함과 신선함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라틴 음악은 단순한 리듬을 통해 자유롭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가진 K-POP의 다양성과 라틴 음악의 단순함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일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단순하고 경쾌한 리듬과 비트,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는 라틴 음악과 K-POP의 공통점일 수 있지만, 라틴의 낯선 정서가 한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높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 이들을 지배한 유럽의 클래식한 선율, 그리고 노예로 끌려온 흑인의 강렬한 리듬감이 혼합된 독특한 혼혈 리듬 문화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다. 문화적 접점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라틴 음악의 직설적인 감정 표현과 특유의 리듬이 영미권 팝과 비교했을 때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멜로디 중심의 K-POP과 비트 중심의 라틴 음악은 서로 다른 평행 세계에서 각자의 독보적인 정체성을 형성해 온 것이다.
현재 K-POP 시장이 라틴 음악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에, 이제는 이러한 장벽을 넘어, 두 장르가 공감하고 연결될 수 있는 본질적인 접점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유사한 리듬을 가진 아프로비츠가 미국과 영국 차트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처럼, 라틴 음악도 아프로비츠의 행보를 참고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아프로비츠와 라틴 음악은 모두 화려한 퍼커션을 중심으로 경쾌한 리듬과 민족적인 질감을 잘 표현하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아프로비츠는 재즈, 훵크, 소울의 요소가 더해져 있어, 미국의 기존 R&B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올 만큼, 진한 소울과 영적인 느낌을 강하게 전해준다. 그 결과, 미국의 팝 문법을 자연스럽게 따르며, 잔향이 긴 리듬과 부드럽고 그루비한 멜로디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적당히 이국적이면서도 진입 장벽이 낮다.
대표적으로 Tyla의 ‘Water’는 경쾌한 아프로비츠 리듬에 이국적인 느낌을 더하면서도 팝스러운 멜로디와 R&B 스타일의 보컬로 대중의 접근성을 높였다. 아프로비츠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부차적인 요소로 활용하여 대중음악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이 접근법은 K-POP에서도 점차 응용되고 있다. 효린의 ‘Wait’, SUMMER CAKE의 ‘Squat’, 지민의 ‘Be Mine’ 등 올해만 해도 아프로비츠를 활용한 곡들이 연이어 발매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르세라핌의 ‘Smart’는 R&B 스타일의 그루브한 멜로디 뒤에 아프로비츠 리듬을 드럼 박자로 살려내고, KISS OF LIFE의 ‘Sticky’에서는 이지리스닝 기조에 맞춰 부드러운 탑라인과 아프로비츠가 조화를 이루어, 여름의 여유롭고 편안한 무드를 완성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K-POP이 지향하는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사운드와 잘 어우러지며, 독특한 리듬감을 탑라인과 잘 조화시킨다면 더욱 다양한 무드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공 방정식이 라틴 음악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K-POP은 본래 해외 음악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탄생한 만큼, 라틴 음악이 글로벌하게 유행하면 우리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단순히 팝 음악의 공식을 따르는 단계를 넘어, 제3의 대중음악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대안 문화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라틴 음악을 더욱 주목해야 할 선의의 경쟁자로 바라보고 싶다.
K-POP의 본질이 낯선 새로움을 환영하는 문화인 만큼, 이제는 라틴 음악을 외지인이 아닌 가까운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만약 며칠째 반복해서 듣는 K-POP에 지쳤다면, 이제 경쾌하면서도 직관적인 그루브와 귀에 감기는 낯선 리듬을 한 번쯤 경험해 볼 적기이다.
by. 율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