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
지난 4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의 코첼라 밸리에서 열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이하 ‘코첼라’)’에서 아이돌 에이티즈는 찢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엄청난 무대를 소화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 ‘강강술래’, 국가 무형문화재인 봉산탈춤을 활용한 퍼포먼스는 한국 고유의 미를 더욱 강조해 케이팝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줬다. 무대가 끝난 후에는 트위터 대한민국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에이티즈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며,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Weibo)와 미국 트위터 트렌드 최상위권에 랭크가 되어 월드클래스임을 입증했다. 이처럼 케이팝의 위상은 모든 국가가 인정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인기의 비결로 많은 팬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혹독한 트레이닝의 결과물로 나타난 차별화된 퍼포먼스라 말한다. 단순히 듣는 음악을 넘어 팬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춤을 따라 추고 싶은 욕망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케이팝 댄스학원이 큰 인기를 얻은 것 역시 케이팝에서 퍼포먼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하는 결과이다.
케이팝과 퍼포먼스의 상관관계는 사실상 당연하다.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 1980년대 댄스가수 소방차의 노래 ‘어젯밤 이야기’는 0세대 아이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파급력을 만들었다. 그 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당시 미국에서 유행한 힙합댄스를 대중들에게 보여주면서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의 큰 인기를 얻었다. 이처럼 한국 음악에서 퍼포먼스의 중요성은 조금씩 성장을 하고 있었으며, 전 SM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수만은 케이팝의 시작을 알리는 그룹 H.O.T.를 제작했다. H.O.T.는 이수만 대표가 90년대 초 미국의 마이클 잭슨의 무대를 보고 언젠간 대한민국에서도 신나는 음악에 맞춰 군무를 하는 가수가 인기를 얻을 것이라 생각해 제작했다고 알려진다. 특히, 마이클 잭슨의 대표곡 ‘Thriller’의 안무를 보면 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움직이는 동작이 특징인데 이것은 케이팝에 그대로 들어와 첫 번째 퍼포먼스 트렌드 ‘칼군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칼군무는 칼+군무의 합성어로 여러 사람이 협동하여 추는 춤 중에서도 마치 자로 잰 듯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정확하게 동작을 맞춘 춤으로 화려하면서도 절도 있는 특징을 지닌다. H.O.T.의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 동방신기의 ‘Rising Sun (순수)’ 등 1990년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이러한 칼군무는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이후에는 칼군무 속 포인트를 넣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Genie)’에서는 일명 제기차기 춤이라 불렸던 멤버들의 긴 다리를 활용한 재밌는 포인트를 넣었으며, 군무돌로 알려진 인피니트의 ‘BTD (Before The Dawn)’에서는 마치 한 마리의 전갈이 꼬리를 치켜올리는 듯한 포인트 안무를 통해 더욱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칼군무 안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획일적인 통일성을 위해 개성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그룹의 안무만을 강조하기에 퍼포먼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형식의 구성을 활용할 수 없으며, 매번 같은 대형(피라미드, 일렬댄스, 잔상춤 등)은 처음 봤을 땐 감탄을 만들어도 발매된 노래마다 일정하면 차별성이 없어진다. 2015년에 데뷔한 그룹 여자친구는 완벽한 칼군무 안무로 큰 사랑을 받았으나 데뷔 3부작 ‘유리구슬 (Glass Bead) -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 - 시간을 달려서 (Rough)’을 차례대로 찾아보면 매번 예린, 신비를 중심으로 같은 후렴구의 안무 대형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상 이것은 그룹의 고유 포지션이 존재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으나(여자친구뿐 아니라 그 당시 거의 모든 그룹은 센터와 메인댄서를 필두로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이런 세분화된 포지션은 최근 케이팝 시장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칼군무의 인기 역시 점차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안무가 류디를 필두로 댄서 + 작곡가들이 하나의 곡과 퍼포먼스까지 동시 제작하는 콘텐츠인 ‘Hi-Hat Dance Song Camp EP. 3’에서 전문적인 댄서들의 발언을 통해 살펴보면 빵빵하고 강하게 만들었던 것이 옛날 트렌드였지만 요즘에는 좀 더 가벼운 느낌의 꾸밈없는 것이 트렌드라고 말했다. 즉, 작은 디테일을 강조한 정교한 느낌의 칼군무가 아닌, 동작을 크게 사용해 포인트를 강조하면서 무엇보다 재밌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지코의 ‘아무노래’를 시작으로 유행을 시작한 챌린지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노래의 가사에 맞는 재밌는 동작은 대중들에게 춤을 따라 추고 싶다는 욕구를 만들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후렴 안무를 추곤 한다. 또한 본무대용 안무와 챌린지용 안무 2가지를 동시에 제작하는 방식은 현재 아이돌 시장에서 큰 유행으로 남아있다. 좀 더 안무의 난이도를 낮춰 팬들이 쉽고 재밌게 따라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취지이다. 대표적으로 엑소의 ‘첫눈’ 챌린지를 뽑을 수 있으며, 본래 아무런 퍼포먼스가 없는 노래를 안무가 황세훈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고 노래의 포인트를 잘 살리는 챌린지용 안무를 제작해 10년 전 발매된 노래 ‘첫 눈’을 음원차트 1위라는 역주행에 성공했다.
또한 칼군무처럼 한정된 공간이 아닌 멤버들끼리 다른 각도와 위치에서 각자의 안무를 소화해 구성적으로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최근 퍼포먼스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강해린 스텝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뉴진스의 ‘OMG’ 안무를 살펴보면 해린의 파트에서 나머지 멤버들은 센터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단 한 번에 빠르게 센터로 다시 모이는 구성을 통해 퍼포먼스의 질을 높였다. 이러한 구성은 뉴진스의 ‘ETA’에서 다시 강조됐다. 무대의 센터가 크게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다양한 각도에서 퍼포먼스를 이어가 전체적인 구성을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같은 동작을 하는 후렴구 안무에서 역시 멤버 5명의 시선은 모두 다르다. 이처럼 무대를 더욱 넓게 쓰면서 재밌는 구성을 통해 획일화되지 않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 퍼포먼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으로 남아졌다.
이런 변화가 찾아왔다고 퀄리티가 낮아진 것은 아니다. 칼군무 퍼포먼스를 처음 봤을 때의 전율과는 다를지라도 보다 자유로운 느낌으로 예상하지 못하는 대형 변화, 무대 공간의 활용 등은 오히려 더욱 대중의 감탄을 만든다. 이것은 획일화된 구성의 단점을 가진 예전 퍼포먼스 트렌드를 탈피한 것이며, 한 단계 성장했다는 증거이다. 또한 하우스의 근본 스텝을 완벽히 소화한 라이즈의 ‘Impossible’, 베이비몬스터의 ‘SHEESH’ 안무 속 들어있는 kid n play kick 동작 등 스트릿 장르의 춤이 케이팝의 들어왔다는 점과 세븐틴의 ‘손오공’처럼 다수의 댄서를 활용한 메가 크루 급 퍼포먼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케이팝이 정식으로 들어오고 2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퍼포먼스의 형식 역시 함께 성장하고 있었으며, 모든 국가가 인정할 정도로 퀄리티가 높아졌다. 또한 이러한 변화에 맞춰 아티스트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BADVILLAIN (배드빌런)의 엠마와 클로이 영, 라이즈의 쇼타로처럼 전문적으로 댄서를 아이돌로 데뷔시키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키스오브라이프처럼 데뷔 전 멤버의 댄스 영상을 선공개하는 마케팅 방법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그룹의 독창적인 퍼포먼스 차별성을 만들어 퀄리티를 높이면서 대중에게 실력적 부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이며, 그만큼 퍼포먼스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by 만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