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퇴를 선하며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안긴 Adele(아델)의 마지막 공연이 될 ‘Adele in Munich’의 막이 올랐다. 이 공연은 기존에 존재하는 공연장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오직 아델의 공연만을 위해 7만 5천 석 규모의 임시 팝업 스타디움인 ‘아델 아레나’를 제작하는 이례적인 행보로 큰 화제가 되었는데, 공연장 외부에서 ‘아델 월드’라는 이름으로 여러 부대 프로그램과 즐길 거리도 제공되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ADELE IN MUNICH' 공연장 및 프로그램 배치도
‘아델 월드’는 공연 전 약 4시간 동안 운영되는 프로그램 존으로 그의 고향인 런던과 아티스트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콘셉트의 F&B, 놀이 기구, 노래방 시설 그리고 스파이스 걸스의 트리뷰트 밴드의 무대 등 본 공연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기 좋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달 공개된 당시 공연 현장의 사진을 보면 일반적으로 공연장에서 보이는 모습인 공연 장 밖 광장에서 굿즈샵과 포토월 줄을 기다리는 등의 모습이 아닌, 영국스러운 맥주 펍과 와인 바에서 술을 한 잔씩 들고 테이블과 빈백에서 쉰다거나 독일 옥토버 페스트와 같이 회전목마와 관람차를 즐기는 등,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는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포착된다.
아델의 사례를 보며 공연과 음악 외 여러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F&B, 어트랙션, 숙박 등 타 산업이 한데 모이고 융합되어 관객과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케이팝 콘서트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BTS와 세븐틴의 '더 시티' 공연 포스터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하이브(HYBE)의 도시형 콘서트 플레이파크 ‘더 시티(THE CITY)’ 프로젝트이다. 최근 Taylor Swift의 월드 투어 ‘The Eras Tour’가 창출하는 도시의 경제 효과인 ‘스위프트노믹스’(테일러 스위프트+이코노믹스)를 연상시키듯 투어를 위해 방문한 도시 전체를 아티스트의 콘서트와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물들이는 공연 모델이다.
202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BTS의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LAS VEGAS’의 경우 BTS 음악에 맞춰 세계 3대 분수 쇼 중 하나인 벨라지오 분수 쇼가 진행되고, 멤버들이 즐기는 한식 요리를 엄선해 코스로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BTS 테마로 꾸며진 숙소에서 숙박할 수 있는 ‘BTS THEME ROOM’, 그리고 콘서트가 끝난 뒤 ‘BTS THEME ROOM’ 대상 숙박 시설 중 하나인 아리아 리조트 내 클럽에서 BTS의 곡으로 애프터 파티까지 진행한다. 이 외에도 도시 자체가 ‘BTS CITY’화 되며 이 공연만으로 라스베이거스는 약 26만 명의 관람객 수를 기록했고, 현장에 마련된 공식 상품 판매 스토어에서는 9만 3천여 건에 달하는 결제 수와 함께 글로벌 팝스타로서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FOLLOW> AGAIN TO INCHEON' 프로그램 中
세븐틴 역시 일본, 태국,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더 시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올해 인천과 서울에 걸쳐 공연장 인근의 교통수단을 콘서트 테마로 꾸며 운행하거나 한강 크루즈 파티 전야제를 기획해 불꽃놀이와 프로듀서 BUMZU의 세븐틴 음악 디제잉 파티를 진행하는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앞서 언급한 BTS와 세븐틴 더 시티 프로그램의 경우 아델처럼 공연장과 맞붙어있는 공간보다는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이었으나, ‘<FOLLOW> AGAIN TO INCHEON’에서는 세븐틴 콘서트에서 아델의 사례와 유사하게 늘 진행되었던 부스인 공식 멤버십 캐럿에게 특전을 증정하는 ‘캐럿 존’ 외에도 ‘플레이그라운드’ 존을 만들어 세븐틴 공연 히스토리나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전시했으며 ‘플레이스크린’에서는 이전 공연 클립이나 공연에서 보여준 VCR을 상영하며 팬들의 대기시간을 채워주었다.
인천과 공연장 인근 식당과 카페 역시 직접적인 콜라보를 진행한 건 아니지만 공연을 통해 방문한 관객들이 SNS로 활발히 정보를 공유하며 주변 상권도 크게 살아나게 되었다. 세븐틴의 ‘더 시티’ 인천 공연을 통해 하이브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81.8%가 서울을 방문하는 반면 인천 방문율은 6.2%에 그쳤으나, 전야제 파티의 80% 그리고 콘서트 관객 5만 6천여 명 중 2만 명 이상이 해외 팬덤인 것으로 집계되며 인천이 관광지 중 하나로 새롭게 인식되는 유의미한 결과를 남겼다고 자평했다.
일본 나고야 사카에마치 역에 들어선 메이테츠선. 세븐틴 멤버들이 래핑된 전철이 운행되었다.
이렇듯 공연의 경험을 확장해 일종의 관광 상품의 형태로 진행되는 공연 모델의 경우 주최하는 기업 측에서는 자사의 아티스트 IP를 활용해 여러 기업들과 협업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수익화 및 부가가치를 모색할 수 있다. 23년 일본 돔 투어로 진행된 ‘<FOLLOW> TO JAPAN’의 경우, 직전 해에 일본에서 진행한 ‘더 시티’에서 2주의 투어 기간 동안 오사카 지역 거리의 유동인구수가 하루 평균 300만 명, 총 2500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나고야 철도 주식회사를 보유한 일본의 ‘메이테츠 그룹’이 지난해 오사카 난카이 난바역 대계단과 라피트 특급열차를 세븐틴 이미지로 랩핑 한 대중교통 협업 사례를 확인하고 효과를 실감해 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유력 부동산 개발 기업 ‘미쓰이 부동산’은 하이브에 먼저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고야의 히사야 오도리 파크 쇼핑몰을 비롯해 도쿄, 오사카 등 일본 전역에 미쓰이 부동산이 보유한 쇼핑몰을 ‘더 시티’ 장소로 활용하게끔 했으며, 돈카츠 체인 ‘야바톤’ 역시 과거 세븐틴 멤버 호시가 방문한 뒤 유명해지면서 올해 선제적으로 협업을 요청했다고 전해졌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도시 이곳저곳에서 체험하고 온라인 콘텐츠보다 현장에서 직접 맞닥뜨리는 여러 경험이 공연에 대한 몰입도를 상승시키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다만 이러한 공연 모델이 마냥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미 콘서트만으로도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며 공연장 외부 그리고 도시 전체로 기획을 확장하는 데에는 협찬을 제외하면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는 대형 아티스트와 엔터테인먼트만 실현할 수 있는 모델이 된다. 당장의 앞선 사례만 해도 국내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인 하이브와 가장 티켓 파워가 큰 BTS, 세븐틴의 사례뿐이니 말이다.
게다가 공연을 관람하는 케이팝 팬덤의 경우 팬덤 문화가 크게 발달된 만큼 새로운 공연 전 콘텐츠가 없어도 굿즈 나눔 및 교환 등의 자체적인 콘텐츠가 이미 존재하며 모든 공연장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세븐틴의 인천 공연 사례를 조사하며 살펴본 약 30개정도의 팬 브이로그 및 공연 후기를 찾아본 결과, '더 시티' 인천의 공연장 외부 프로그램 중 하나인 ‘플레이그라운드’를 이용했다고 언급된 후기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으며 아예 언급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플레이스크린’의 경우 다소 합리적이지 못한 위치에 설치되어 편안히 감상하기 어려웠다는 평도 있었는데, 이는 공연장 외부의 큰 공간에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일이 어렵거나 동선이나 필수 설치물 위치 계획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편함이 아닐까 추측된다. 쉽게 말해 진행하기 까다로워 굳이 시도하지 않는 요소인 것이다.
임영웅 콘서트 '히어로 스테이션'
따라서 앞서 언급한 아델과 하이브의 사례처럼 단순히 ‘다른 아티스트가 시도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이유로 형식적인 부대 프로그램을 추가하고 규모를 과도하게 확장하기보다, 각 회사와 아티스트의 상황 그리고 관객의 수요를 고려해 쾌적한 관람을 위한 공간이나 서비스 요소를 강화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콘서트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가 이를 잘 반영한 좋은 사례로 꼽히는데 장시간 착석해서 봐야 하는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객석마다 방석을 제공하였고, 공연장 밖에서도 부모를 모시고 온 자녀들이 공연 끝나는 시간에 맞춰 대기하는 동안 쉴 수 있는 가족 대기실을 제공하는 등, 관객층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후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 공연 관람객뿐만 아니라 케이팝 팬덤 사이에서도 콘서트계의 혁명이라며 큰 화제가 되었다. 스케일은 크지만 효용이 낮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보다 좀 더 관객 친화적인 관점으로 수요를 성실히 충족한 좋은 예시인 셈이다.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단위로 성장하면서 이들의 음악을 경험하고 라이브 퍼포먼스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의 무대를 감상할 기회는 자국에서 진행될 콘서트가 거의 유일한 상황이다. 그마저도 치열하고 비합리적인 티켓팅 구조와 K팝 인플레이션으로 불릴 만큼 티켓 가격은 20만 원을 웃돌며, 해외 팬들의 경우 자국에서도 큰 도시에서만 공연이 진행되기 때문에 티켓 값 외의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콘서트가 아티스트와 무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에도 소비하기까지의 고민이 길어지고, 아티스트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한 번의 공연과 경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앞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공연 모델과 기획이 고려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더 활발히 진행되기를 바란다. 아델과 하이브의 사례를 통해 콘서트라는 형태를 어떻게 확장하고 타 산업 및 지역과 결합해 수익 및 부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관객들도 이를 활발하게 이용하며 좋은 사례가 되었으나 앞서 언급하듯 모든 아티스트에게 적용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화려한 정답을 쫓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안전하고 쾌적한 공연관람을 위한 근본적인 디테일을 보강하는 것이 대다수의 공연을 만드는 데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하고 특별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가장 근본적인 쾌적한 공연관람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앞서 임영웅 콘서트의 사례처럼 관객들의 느끼는 공연에 대한 만족도는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작해 부대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기존 케이팝 공연에서의 수많은 인파로 인한 통신장애나 교통 및 편의 시설 부족 문제를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사운드 체크, 리허설을 관람하는 등의 특별한 이벤트나 프로그램도 좋지만 소수가 높은 값을 지불하고 누리는 특권이 아닌 공연을 보러 온 대부분의 관객이 효용을 느낄 수 있는 서비스나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더 우선이 되며 공연의 모습이 발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