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S, 더보이즈, 이날치, d4vd, Tom Misch 외
루영 : '트로피컬 사이키델릭 그루브'라는 장르로 '끝나지 않는 여름'을 노래하던 밴드 CHS가 겨울 시즌송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했다. 여름을 테마로 한 기존 앨범에서는 일렉기타 중심의 쨍하고 청량한 사운드를 담았다면, 이번 싱글에서는 피아노와 색소폰으로 겨울 노래에 어울리는 따뜻한 느낌의 사운드를 중점으로 내세운 게 색다르다.
여타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러 장르와 사운드를 난잡함 없이 조화롭게 구성해 낸 프로듀서의 강점이 잘 발휘된 곡이다. 특히 80년대 A.O.R 스타일의 순화된 락 장르와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 스무스 재즈 등의 팝적인 장르가 도입부와 후반부에서 자연스럽게 교차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80년대 잔잔한 팝 음악이 연상되는 클래식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해서, 힘찬 느낌의 리프가 일렉기타에서 색소폰으로, 다시 일렉기타로 이어지는 구성이 코러스와 함께 부드러우면서도 활력 있는 역동성을 형성한다. 멜로디뿐만 아니라 사운드 면에서도 곡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어서, 일렉기타와 색소폰을 리드 악기로 선택한 게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고된 2024년을 보낸 우리에게, 지난날의 추억을 따뜻하게 보듬으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2025년을 힘차게 다시 시작하자는 에너지를 전해주는 것 같은 음악이다.
둥 : 인하우스 프로듀서가 있는 아이돌과 그렇지 못한 아이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앨범 하나하나의 콘셉트 외에 팀을 아우르는 일관된 색깔과 그걸 끌고 나갈 큰 그림이 존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더보이즈의 최근 행보에서도 그런 한계가 느껴지는 듯했는데, ‘Last Kiss’는 그럼에도 이 팀이 그동안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키며 그들의 강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제는 전 소속사가 된 IST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한 마지막 곡으로 매년 겨울 선보이던 스페셜 싱글의 연속이지만, 이례적이게도 1곡이 아닌 3곡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정성이 엿보인다. 어찌 보면 방송국 연말 무대에서 스페셜 무대로 들을 법한 정석적인 스타일의 곡들이지만 뻔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90년대 사운드가 가미된 ‘Last Kiss’, 유려한 악기 사운드 위 세련된 멜로디가 더해진 ‘Candle Light’ 등 3곡이 각기 다른 스타일이지만 하나의 싱글로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또한 부드럽고도 섬세한 사운드 프로덕션으로 넘쳐 나는 캐럴 속에서 다시 한번 듣고 싶은 매력을 지녔다. 새로운 무언가는 없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사운드를 비롯한 모든 구성 요소들이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다. 이 점이 이 팀의 경쟁력이 아니었을까. 소속사에서 더보이즈와 팬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선물 같은 느낌이다.
키키 : "범 내려온다"로 핫했던 이날치를 들어본 적 있는가. 국악과 팝을 융합한 크로스오버 밴드 이날치는 2019년 결성되어 정규 1집 [수궁가]로 아이코닉한 음악을 선보이며 국내외에 큰 화제를 모았다. 전통 국악을 현대적인 사운드로 재해석한 조선의 힙스터 이날치 밴드는 독특한 밴드 구성, 창법, 음악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곡에서 선보인 국악과 펑크의 만남은 뭐랄까. 쌀과 젤라또를 합한 이색적인 리조 젤라또 같다고 해야 할까. 은근히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밴드 구성은 남녀 혼성으로 구성된 3인의 보컬과 두 명의 베이스와 드럼으로 기존 국악 편성에 밴드 구성을 접목하여 자신들만의 색깔을 보여준다. 기존의 밴드 편성과는 다른 구성으로 유니크한 색깔을 아우르는데, '히히하하'와 같은 의성어 사용, 속소리(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국악적 창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함으로 재미있게 느껴진다. 널뛰는 듯한 국악적 보컬을 받쳐주는 드럼과 베이스는 싸이키델릭 락, 펑키한 사운드를 충분히 내주며 국악과 펑크 양쪽의 장르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듯 무게의 균형을 맞춰주는 느낌이다. 국악의 틀에 갇히지 않고 새롭게 개척한 팝 장르처럼 실험적이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점이 이 곡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키키 : d4vd는 '미국판 검정치마'라고 불릴 만큼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로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다. ‘Where'd It Go Wrong?’은 얼터너티브, R&B, 그리고 인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곡으로 느린 템포로 감정을 풍부하고 섬세하게 전달한다. d4vd의 전매특허 리버브와 딜레이가 걸려있는 보컬과 기타는 d4vd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을 극대화한다. d4vd만큼 이런 몽환적인 사운드를 감각적으로 잘 만드는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다만 이번 싱글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전 작품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신선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곡의 흐름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두드러지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결로 흘러가 다소 단조롭게 느껴진다. 곡 중반 이후에는 단조롭다 못해 루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d4vd의 지난 곡들이 중독성 있는 멜로디 라인을 잘 짜서 후렴구가 뇌리에 박히는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 곡은 확실히 꽂히거나 터지는 부분이 부족해 보인다. 몽환적인 사운드는 누구보다 감각적으로 잘 만들어내는 아티스트이지만, 이 시점에서 새로운 분위기의 곡으로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포텐셜이 더욱 빛을 발할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루영 : '가벼운 만큼 평이하고, 무난하다.' Tom Misch의 새 EP를 다 듣고 나서 든 생각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새 앨범을 내기 전에 빛을 봐야 할', 오래전에 작업한 6곡을 공개했다.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드럼과 약간의 신스를 곁들이는 등 전반적으로 사운드의 구성이 심플하고, 곡 구조도 전형적인 팝의 문법을 따른다. 그나마 타이틀곡 ‘Falling For You’에서 퍼커션과 피아노가 더해져 잼처럼 이어지는 연주가 다채롭게 느껴지는 편이다.
정규 앨범에 비하면 가벼운 규모지만, 선공개 싱글과 수록곡이 많이 겹치는 것을 포함해, ‘Lost in Paris’, ‘It Runs Through Me’ 등 기타 리프가 강조되는 [Geography]의 몇몇 트랙의 자가복제 느낌이 강한 게 아쉽다. 2022년부터 Supershy라는 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Yussef Dayes, FKJ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면서 다채롭고 실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왔기에 더욱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캐치한 멜로디와 심플하고 세련된 비트가 듣기에 나쁘진 않은 터라, 함께 예고한 2025년의 새 앨범에서는 보다 새로운 Tom Misch 스타일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둥 : 전체적으로 따뜻한 멜로디에 재지한 악기 사운드가 약간씩 가미되어 연말에 듣기 괜찮은 앨범이다. 10월에 발표한 정규 앨범 [Kaleidoscope]에 수록되지 않은 곡을 모아놓은 EP라 밝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정규와는 상반되게 트랙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고 전부 스타일이 다르다. 사운드와 멜로디 모두 무난하게 듣기 좋았고, 수많은 소스들을 자연스럽고도 매력적으로 엮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믹싱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듯 깊이가 부족하였고, 투박한 사운드 탓에 트랙 간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점은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정규에 비해선 가볍고 쉬운 편이지만, 정글 비트의 폭격 속에서 유려한 건반 연주를 선보인 ‘Ocean Wisp’만은 그 진가를 발휘했다. 정규의 확장판을 기대했다면 못 미치겠지만, 연말의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히 즐거운 앨범이다.
※ '둥', '키키'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