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순, 안신애, 여자친구, Ethel Cain, Jeff Satur 외
광글 : 세븐틴(SEVENTEEN)은 11년의 시간 동안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자연스러운 컨셉 변화를 겪었다. 세븐틴 특유의 소년미가 넘치며 밝은 에너지를 보여줬던 초기 컨셉은 공백이 생기게 되었고 이는 유닛인 부석순이 계승했다. 여기에 부석순은 오렌지 캬라멜이 떠오르게 만드는 B급 감성 컨셉을 차용해 소구점을 잡았다. 이를 활용한 댄스 챌린지는 대중에게 적중했고, 전 작인 [SECOND WIND]는 부석순에게 큰 성공을 안겨줬다. 이러한 B급 감성 컨셉은 현재 K팝에서 부석순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특성이라는 것에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앨범이 기존 음악과 다른 특성이 존재하냐에 대한 물음엔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타이틀곡 ‘청바지’는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는 명확하고 단순한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후킹하고 쉬운 가사로 챌린지 프로모션을 유도했는데 이는 전 작인 ‘파이팅해야지 (Feat. 이영지)’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차용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또한 브라스 세션과 빠른 킥 그리고 러프한 보컬이 특징인 스윙 재즈, 컨트리 장르를 선택해 활동적인 에너지를 표현했다. 이러한 음악적 특징은 훵키함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세븐틴의 ‘아주 NICE’, ‘HEY BUDDY’와 유사하다. 나아가 빠른 BPM과 반복되는 클랩 사운드 그리고 재즈 피아노가 나오는 구성은 긴박감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지만 이 또한 세븐틴의 ‘HOME;RUN’을 떠올리게 만든다. 트랙 구성에서도 전 작인 [SECOND WIND]와 비교했을 때, '플레이리스트'라는 키워드를 동일하게 사용한 점은 인하우스 프로듀싱의 특징으로 비춰지기 보단 묘한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종합적으로 이번 앨범은 세븐틴과 부석순이 보여줬던 음악들로 설명할 수 있다. 기존 결과물을 조합한 것에 그친다는 건 과거의 그림들로 현재의 그림을 모두 대치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새로운 방향성보다는 안정된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도전적인 변화를 기대한 리스너의 시각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기존과 동일한 음악적 방향성을 설정해 맛이 보장된 대중성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면, 이미지 소모를 방지하고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서 부석순만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하울 : 안신애는 바버렛츠 시절 때부터 꾸준히 뮤지션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아온 싱어송라이터다. 그녀의 음악은 클래식하면서도 유려한 탑라인이 특징적인데, 이하이의 ‘홀로’, ‘ONLY’, 화사의 ‘I Love My Body’ 등을 작사•작곡하며 그녀의 능력치는 이미 수없이 입증된 바 있다. 하지만 10여 년의 시간 동안 퍼포머로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상황인데, P NATION과의 계약 이후로, '나라는 가수',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등 공격적인 미디어 노출을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TV 프로그램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100% 보여줄 순 없는 법. 그런 점에서 [Dear LIFE]는 '안신애'라는 아티스트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선보이고 싶은지, 그녀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완성이 되었다.
[Dear LIFE]는 '안신애' 하면 떠오르는 스탠다드 팝 대신 훵크, 뉴잭스윙, 보사노바 등 다양한 시대의 장르를 자유롭게 시도한다. 타이틀곡인 ‘South to the West’는 두껍게 올린 베이스라인이 특징적인 곡으로 1970년대의 훵크 음악을 연상시키는 반면, Crush와 함께한 ‘Lover Like Me’ 같은 경우에는 1980~1990년대의 뉴잭스윙을 세련된 터치로 재해석한다. 지금까지는 1950~1960년대의 두왑이나 컨트리, 알앤비 등 주로 템포감이 느긋한 장르를 다뤘었다면, 이번 EP에서는 비트감도 강하고 BPM도 빨라진 음악들이 연이어서 등장하며 '내가 알던 안신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음악색이 옅어지는 경우에는 좋은 평가를 내리기가 쉽지 않은데, 이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기존의 음악색이 워낙 짙었기 때문에 대중음악으로써 듣기에는 밸런스가 잘 잡힌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전작 [Dear City]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지나치게 대중성을 의식하는 모습이 청자의 시선에서도 보였다는 점이었다. 전형적인 피아노 발라드 역시 장인이 만들면 그 만듦새가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전형적이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한계 또한 존재한다. [Dear LIFE]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로' 같은 테마보다는 아티스트 개인의 삶을 녹여내면서 대중성을 향한 접근을 달리한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던 부담감을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편하게 음악을 만들어내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재미'를 되찾은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에너지가 있다. 아티스틱한 정체성은 유지를 하되 또 다른 '안신애'의 모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음반이 아니었나 싶다.
아인 : 웅장한 사운드와 서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K-POP 아이돌을 떠올릴 때, 여전히 '여자친구'가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부재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진 그리움의 목소리는, 여자친구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음을 증명한다. 10주년 기념 앨범의 타이틀곡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는 감미롭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역시 여자친구답다"라는 평가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코러스에서의 가볍고 청량한 피아노 사운드는 여자친구 특유의 음악적 색채를 한층 선명하게 부각시키며, 오랜 기다림 끝에 선물 같은 위로를 전한다.
다만, J-POP 밴드 사운드 기반의 편곡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도입부의 현란한 기타 리프와 빠른 템포의 탑 라인은, YOASOBI의 ‘夜に駆ける’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요소는 본연의 스타일을 재현하려는 의도와 K-POP 시장의 흐름을 따르려는 타협이 어설프게 얽혀, 결국 기존의 곡을 답습하는 데 그쳤다. 또한, ‘시간을 달려서’, ‘너 그리고 나’ 등 과거 히트곡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는 구조적으로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멜로디 라인도 익숙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예상 가능한 패턴의 반복으로 인해 신선함을 느끼기 어렵다. 이는 기존 팬들에게는 안정감을 주지만, 아티스트로서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주년'이라는 맥락에서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는 여자친구의 정체성과 추억을 되새기는 데 충실했다. 특히 한국어 가사가 전하는 정서와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은 여자친구 특유의 감성을 깊이 새겨 넣어, 그들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음악적 도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며, 이번 앨범이 오랜 시간 함께한 팬들과의 유대감을 더욱 굳건히 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울 : 데뷔 앨범 [Preacher’s Daughter]는 종교적인 믿음, 가족 트라우마, 불안정한 관계 등을 다루면서 컬트적인 팬층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Cain. '순교자의 딸'이 식인 살인마에게 죽음을 당한다는 앨범의 결말은 많은 리스너들에게 충격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이 그녀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관심을 받게 되고, 나아가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일종의 밈으로 활용이 되자, 그녀는 '팝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거부하며 대중에게 선호받지 않을 만한 음악을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허나 현재 미국에서 흥행 중인 공포 영화 '노스페라투'와 시기 상으로 맞아떨어지면서 [Perverts]는 또 한 번 인터넷상에서 의도치 않은 하입을 받고 있다.
[Perverts]는 슬로코어, 앰비언트, 드론, 노이즈 록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사용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가장 밑바닥을 묘사한다. 암울하다 못해 공포스럽게 들리는 사운드스케이프는 마치 한 편의 고어물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이처럼 이야기적인 맥락보다는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프로덕션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애초에 가사가 중심이 되는 곡이 몇 곡 없다는 게 그 증거다. 특히 드론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하나의 음정을 지속적으로 연주하게 되는데, 이것이 전기톱을 작동시키는 소리, 또는 사람이 말을 잇지 못하는 소리와 유사해 눈앞에서 어떠한 죽음이 벌어지는 상상을 하게끔 한다.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가사를 신경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청각적인 쾌감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있다. 데뷔 앨범이 전자였다면, [Perverts]는 후자에 해당하는 음반이다. 연초부터 이렇게까지 분위기를 가라앉힐 일인가 싶긴 하지만, 그조차도 그녀의 계산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람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것도 대중예술이지만, 사람들의 예상을 180도 비트는 것 또한 대중예술이다. [Perverts]는 정확히 그 목표점에 도달한 작품이라고, 감히 생각을 해본다.
아인 : 태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Jeff Satur는 태국의 감성과 음악적 실험 정신을 결합해 독창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왔다. 그의 음악은 긴 잔향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통해 태국 음악 특유의 내면적 평온함을 표현한다. 동시에, 동서양의 사운드를 조화롭게 녹여내어 국내외 팬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싱글 ‘Ride or Die’는 팝과 일렉트로닉을 결합한 곡으로, 빠르고 역동적인 템포와 단단한 킥 드럼, 그리고 강렬한 신스 리프가 어우러져 곡의 에너지를 극대화한다. 프리코러스에서는 리버브를 활용해 입체적인 공간감을 더했다. 이는 코러스의 리듬감을 강조해 몰입감을 한층 높였다. 그러나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사운드 디자인이 강조되면서, Jeff Satur 특유의 몽환적인 색채는 다소 옅어진 느낌을 준다.
‘Ride or Die’는 강렬하고 직선적인 사운드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전략이 엿보이지만, 디스코 팝의 뻔한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전 곡 ‘DUMDUM’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신스와 일렉 기타가 조화를 이루는 매력적인 전개가 돋보였으며, ‘Fade’에서는 몽환적인 신스와 느린 리듬을 통해 감정선을 극대화했다. 반면, ‘Ride or Die’는 반복적인 비트와 단순한 전개로 인해 Jeff Satur의 섬세한 감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Jeff Satur는 최근 영어 곡의 비중을 늘리며 더 넓은 청중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Ride or Die’ 역시 전체 영어 가사로 제작되었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보편적인 스타일이 그의 개성을 희석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언어적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시도가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전 앞에서 잠시 주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음악을 의심하지 않는 것. Jeff Satur가 자신의 강점을 믿고 나아간다면, 그의 음악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고민과 도전이 더해질수록 그는 더 큰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Jeff Satur가 글로벌 무대에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기대해 볼 만하다.
광글 : 컨트리 장르의 부활을 이끈 장본인인 모건 월렌은 여타의 팝스타들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기존 팝스타들이 보여준 과시적인 모습과 달리, 모건 월렌은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매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가사, 변주 없이 흘러가는 익숙한 멜로디를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향후 발매될 정규 4집의 세 번째 싱글 ‘Smile’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Smile’은 함께 찍은 사진 속 환하게 웃는 상대방을 보며 변해버린 관계를 깨닫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 곡은 찰나의 순간을 음악 한 곡에 담아내는 모건 월렌만의 특별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백보컬의 허밍은 가스펠 특유의 성스러운 보이스를 떠올리게 하며, 헤어짐에 대한 자조적인 태도를 나타낸 가사와 묘하게 대비를 이루면서 역설적으로 가사를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번 싱글은 사운드 요소를 최대한 덜어내며 절제된 보컬에 집중한 비움의 미학을 선보였다.
더불어 모건 월렌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장치로써 그의 와일드하고 허스키한 보컬을 활용한 점은 이번 노래에서도 느껴졌다. 강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통해서 컨트리만을 외쳤던 지난 노래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도, 역시 그의 노래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독보적인 목소리 덕분이다. 앞서 발표한 싱글 ‘Love Somebody’ 역시 라틴 음악을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장르적인 이질감보단 새로움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모건 월렌의 투박한 보이스가 라틴과 컨트리의 경계에 있는 음악을 하나로 감싸 기초적인 통일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향후 발매될 정규 4집에 대한 기대는 모건 월렌의 '보컬'로 귀결된다. 어떤 시도를 하더라도 그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게 만드는 치트키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신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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